132화
2루에 있던 대호가 짧은 안타에도 불구하고 홈으로 들어오고, 홈 승부에서 득점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2번 타자인 지미 울프는 2루까지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다 보니 결국 뉴욕 킹덤즈의 선발 라이언 홈즈는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뉴욕 킹덤즈 프런트에선 어떻게든 그가 5회까지라도 마무리해 주길 바랐겠지만, 지미 울프의 안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마운드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3선발이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은 뉴욕 킹덤즈 입장에선 너무도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지미 울프 다음 오클랜드의 3번 타자를 고의 사구나 볼넷으로 내보내며 불펜에 조금 더 시간을 주었어야 했지만, 한 점을 더 잃어버린 킹덤즈는 투수 교체 타이밍을 너무 일찍 가져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뼈아팠다.
따악! 따아악!
새로 교체된 릴리프 투수는 마운드에 올라 연속해서 안타를 맞았다.
더욱이 심각한 점은 연속해서 맞은 안타가 모두 2루타로 장타라는 사실이었다.
어이없이 빼앗긴 2점.
그런 주제에 아웃 카운트는 고작 하나밖에 잡지 못해 현재 스코어는 8:0이 되어 버렸다.
3:0까지 잘 막아 왔는데, 이른 투수 교체로 선발투수가 내보낸 주자까지 더해 비자책점 1점과 자책점 3점까지 내주면서 8:0으로 벌어진 것이다.
뉴욕 킹덤즈가 이렇게 무너지는 상황에서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발투수인 레프리 그로스는 타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5회에도 무실점으로 뉴욕 킹덤즈의 타자들을 막아 냈다.
* * *
중계석에 앉아 있는 김승주와 하구연은 긴장된 표정으로 TV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6회 말 뉴욕 킹덤즈의 공격이 끝나고 7회 초 오클랜드 슬랙스의 공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회가 끝나고 잠시 클리닝 타임이 가진 후, 오클랜드 슬랙스의 7번부터 시작된 공격은 이전과 다르게 삼자범퇴로 끝났다.
그에 반해 6회 말 뉴욕 킹덤즈의 공격은 달랐다.
클리닝 타임을 가지면서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뉴욕 킹덤즈의 타자들은 그동안 잘 막아오던 레프리 그로스의 공을 공략해 1점을 내고 2, 3루에 진루하였다.
그 과정에서 투아웃이 되기는 했지만, 그 동안 아무런 힘도 써 보지 못했던 것과는 다르게 점수를 빼앗았다는 것이 주요했는지 소강 상태를 이루던 킹덤즈 스타디움을 찾은 팬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타선이 새롭게 마운드에 오른 오클랜드 슬랙스의 불펜 투수로 인해 잔루 2, 3루에서 막혀 버렸다.
그리고 7회 초 오클랜드 슬랙스의 공격이 시작되고, 선두 타자로 대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네 번째로 타석에 들어서는 대호는 현재 2루타 하나를 뺀 사이클링 히트에 도전하고 있었다.
“정대호 선수, 이제 2루타 하나만 기록하면 사이클링 히트, 힛 포더 사이클을 달성하게 됩니다.”
김승주는 상기된 표정으로 멘트를 날렸다.
“하 의원님, 설마 오늘도 거르는 것은 아니겠죠?”
어제 홈런 사이클 상황에서 고의 사구로 대결을 피한 것을 상기한 듯 물었다.
“허허, 힛 포 더 사이클. KBO에선 사이클링 히트라 하죠. 비록 사이클링 히트가 대단한 기록이긴 하지만, 이 상황에서 굳이 승부를 피하진 않을 겁니다.”
8:1이란 스코어에서 홈런 사이클도 아니고 겨우 힛 포 더 사이클 때문에 대호와 승부를 피하지는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건 뉴욕 킹덤즈의 팬이나 프런트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이미 어제 있었던 일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가을 야구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치는 게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결을 피할 수준까지는 못되었으니까.
펑!
“볼!”
살짝 낮고 바깥으로 빠진 공이었다.
낮지만 않았더라면 오늘 주심의 성향상 스트라이크를 줘도 뭐라 항변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한 곳으로 들어온 공이었다.
‘오늘은 피하지 않네.’
방금 들어온 공을 보면서 대호는 어제와 다르게 투수가 피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섰다.
‘그럼 맞아야지.’
물론 좋은 공으로 승부를 하진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보더 라인 안과 밖을 넘나드는 승부를 보일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볼넷이 나오는 건 승부를 피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터, 투수로서는 더그아웃의 결정을 따를 게 분명했다.
펑!
“스트라이크!”
비슷한 코스, 하지만 이번에는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왔다.
1B 1S로 나쁘지 않은 볼카운트다.
투수나 타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유불리가 없는 볼 카운트, 대호는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따악!
2연속 바깥쪽으로 들어왔기에 한 번은 안쪽으로 들어올 것이라 판단한 대호는 자신이 예상한 코스로 투구가 날아오자 스윙을 가져갔다.
그런데 몸 쪽으로 투구가 날아올 것이라 판단하기는 했지만, 설마 여기서 체인지업이 들어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급히 스윙 속도를 줄이고 떨어지는 궤적을 따라 살짝 무릎을 구부려 배트의 스윙 궤적을 변경했다.
그러다 보니 팔에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고 끊어 쳤다.
다다다다.
살짝 좌측으로 먹히긴 했지만, 대호는 빠르게 뛰었다.
1루를 지나 2루로 가는 상황에서 타구는 바운드 되며 3루 쪽 펜스를 맞고 그라운드 안쪽으로 휘어 들어왔다.
타구를 따라가던 좌익수는 튀어나온 공을 잡아 2루로 송구를 하였다.
휘익!
촤아악!
2루로 달리던 대호는 2루로 송구되는 공을 보며 빠르게 슬라이딩을 하였다.
툭!
“세이프!”
“와아아아!”
타구가 빠르다 보니 보통은 넉넉하게 2루까지 들어갈 수 있는 코스였지만, 대호도 슬라이딩까지 하여 2루에 들어갔다.
척!
2루에 진루 성공을 한 대호는 베이스를 밟고 한 손을 높이 들어 보였다.
“호! 호! 호! 호!”
운동장에 대호를 연호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이번 2루타로 힛 포 더 사이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비록 어제 있었던 홈런 사이클 도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오늘 기록한 힛 포 더 사이클도 대단한 기록인 것은 맞아, 팬들을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정대호! 정대호! 우리의 정대호 선수 2루타! 2루타를 치고, 어제 아쉽게 놓친 홈런 사이클만큼은 아니지만, 타자로서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에서 힛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합니다. 장합니다.”
김승주는 대호가 3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치고 2루에 진출한 것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2루에서 2루심의 세이프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흥분해 떠들었다.
“정말이지 장합니다, 장해요.”
하구연 해설 위원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장하다는 말을 하였다.
“들리십니까?”
김승주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정면의 카메라가 아닌 좌우측에 놓인 카메라를 두리번거리며 말을 하였다.
“이곳 킹덤즈 스타디움에 있는 야구팬 모두가 조금 전 정대호 선수의 2루타, 아니 힛 포 더 사이클 달성 후 정대호 선수를 연호하고 있습니다.”
말을 하면서 정면에 있는 카메라 감독에게 신호를 보내 중계석 좌우에 있는 야구팬의 반응을 촬영하라고 하였다.
그곳에는 분명 이곳 뉴욕 킹덤즈의 유니폼을 입고 킹덤즈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이 맞는데도, 조금 전 대호의 힛 포 더 사이클 달성에 환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김승주는 마음 같아서 카메라를 들고 어떤 마음으로 그러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선을 넘은 것 같아 마음만으로 멈췄다.
한편 어제에 이어 오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기록 도전을 하고, 급기야 힛 포 더 사이클이란 기록을 달성한 대호의 모습에 오클랜드 슬랙스 더그아웃은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선수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직 7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의 마음이 흥분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잠시 경기가 중단되고, 대호는 1루로 걸어가 코치에게서 장갑을 넘기고 2루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코치는 대호의 어깨를 치고 기록 달성을 축하해 주었다.
* * *
뉴욕 킹덤즈 스타디움 VIP룸.
VIP룸 한 곳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랜디 로빈 사장과 브라운 캐시 단장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랜디 로빈은 이곳 뉴욕 킹덤즈의 사장이었고, 브라운 캐시는 뉴욕 킹덤즈의 단장으로 이번 자신들의 홈에서 치러지는 디비전 시리즈를 지켜보며 많은 갈등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사람이 이번 디비전 시리즈를 뉴욕 킹덤즈의 우세를 점쳤다.
비록 오클랜드 슬랙스의 올해 승률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는 했지만, 정규 시즌이 아닌 짧은 포스트 시즌에서는 투수진이 탄탄한 뉴욕 킹덤즈가 오클랜드 슬랙스를 압도할 것이라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라스베이거스의 도박사들은 7:3 혹은 6.5:3.5로 뉴욕 킹덤즈의 승리를 점쳤다.
이러다 보니 이번 뉴욕 킹덤즈와 오클랜드 슬랙스의 디비전 시리즈 승리에 걸린 도박 자금은 뉴욕 킹덤즈에 몰리면서, 도박사들의 승률 예측과 다르게 0.28대 3.12까지 쏠렸다.
즉 디비전 시리즈를 뉴욕 킹덤즈가 승리하면, 뉴욕 킹덤즈에 건 사람은 1달러 당 28센트를 따는 것이고, 반대로 오클랜드 슬랙스에 걸었는데, 승리하면, 3달러 12센트를 버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과 정반대로 되고 있었다.
아직 디비전 시리즈가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1차전과 2차전을 오클랜드 슬랙스가 가져가는 분위기였다.
1차전은 너무도 완벽하게 오클랜드 슬랙스가 가져갔고, 오늘도 7회 현재 8:1로 오클랜드 슬랙스가 7점차 앞서고 있었다.
“브라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랜디 로빈 사장은 자신의 옆에 앉은 브라운 캐시 단장을 보며 물었다.
어젠 방심해서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어찌 된 것이란 말인가.
천하의 뉴욕 킹덤즈가,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 팬들에게 악의 제국이라 불리던 자신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전문 도박사들도 자신들이 이번 디비전시리즈에서 우세할 것이라 이야기하였고, 세이버 메트리션들도 자신들이 유리할 것이라 떠들었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오클랜드와 자신들의 디비전 시리즈 그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그 정반대였다.
너무도 일방적으로 오클랜드에 자신들이 밀렸다.
랜디 로빈 사장은 도저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브라운 단장을 불러 물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브라운 캐시 단장이 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뉴욕 킹덤즈를 만든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이 세이버 메트리션이었기에 선수 구성이나 능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또 상대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전력도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일방적으로 자신이 꾸린 팀이 상대에게 밀린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창밖 저 멀리 보이는 그라운드 중앙에 서 있는 대호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재작년 WBSC U―18 대회에 나와 활약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잠시 관심을 보였지만, 그 정도 재능을 가진 유망주는 많다고 판단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한 관심은 아시아 선수가 아닌 중남미 선수에게 돌리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오클랜드 슬랙스가 역대 최대 규모의 해외 유망주 계약을 했다고 했을 때도, 오클랜드가 전년 보스턴에 자신들이 노리던 해외 유망주(히데오 소이치로)를 놓친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변한 것은 바로 작년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깐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오클랜드의 단장인 조엘에게 연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엘의 무리한 요구에 트레이드를 포기했었다.
‘그때 못 이기는 척 딜을 했어야 했어.’
때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