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2032시즌 시작을 알리는 개막전에서 오클랜드 슬랙스는 라이벌인 LA데블스를 상대로 상대 홈구장에서 승리를 가져갔다.
LA데블스는 팀 에이스인 프랭크 타이라를 선발로 내놓고도 오클랜드 슬랙스에게 10:3이란 스코어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날, 프랭크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인지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1회 4실점을 하고 강판 되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을 정도로 무너지며 LA데블스가 개막전에 패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었다.
그에 반해 오클랜드 슬랙스는 선두 타자인 대호를 비롯한 타자들의 활약으로 LA데블스의 막강한 투수진을 상대로 10점이나 점수를 뽑아냈다.
그리고 대호는 이날 1회 초 예고 홈런을 비롯해 5타석 4타수 4안타를 치며 출루율 100%로 활약하였다.
* * *
와하하하!
오클랜드 슬랙스의 원정 숙소 호텔에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일도 또 경기아 있지만, 개막전 대승의 기쁨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감독 마이크 케세이 또한 맥주 한 캔을 손에 들고 웃으며 말했다.
“다들 고생했다. 다만 내일도 경기가 있으니, 1인당 맥주 한 캔씩만 허용하겠다. 괜찮겠지?”
“예!”
“하하, 어차피 맥주 아닙니까? 그냥 파티 기분만 내는 겁니다 감독님.”
“맞습니다. 누구 오늘 프랭크 녀석 얼굴 본 사람?”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중에서도 주장인 홈런 브레드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하하, 그 얼빵한 모습을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럽니까?”
“맞아! 1회 초 대호에게 예고 홈런을 맞은 이후로는 완전 넋이 나갔던데요?”
대호와 마찬가지로 오늘 큰 활약을 펼친 지미 울프와 리키 헨슨이 홈런의 말에 대답했다.
이렇게 선수들이 웃고 떠들고 있을 때, 파티장에 누군가 들어섰다.
“…어?”
“웬일이지?”
웅성웅성.
오클랜드 슬랙스의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단이 모인 파티장에 새로운 사람이 걸어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한 인물이 바로 존 피셔 주니어, 오클랜드 슬랙스의 구단주였으니 말이다.
“하하, 이런. 나 때문에 파티 분위기를 망쳤군!”
그는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단장급도 아니고, 사실상 명줄을 쥐고 있는 구단주가 나타났는데 파티장 분위기가 숙연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파티에 샴페인이 필요할 것 같아 들린 것뿐이네!”
존 피셔 주니어는 뒤에 서 있는 비서에게 손짓을 하며 준비한 것을 가져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비서가 들고 온 것은 돔 페리뇽 P2였는데, 일전에 조엘 헌트가 파티장에 가져온 것보다 한 단계 위의 제품이었다.
“뭐, 최고급 와인도 아니고 기껏해야 샴페인 아닌가? 부담 없이 마셔도 괜찮네!”
그래도 한 병에 900달러 정도의 가격을 자랑하는 샴페인이었는데, 존 피셔 주니어는 오늘 데블스 구단주 아르테 모레노와의 내기에서 이겨 선수단에 이것을 선물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럼, 방해꾼은 이만 사라지기로 하지.”
존 피셔 주니어는 그 말만을 남기고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느닷없이 등장했다가 선물을 주고 떠난 구단주로 인해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은 잠시 당황했다.
“이거… 왠지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비슷한 일이 분명 작년 시즌에도 있지 않았나?”
“흠흠!”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였다.
“구단주님이 저렇게까지 말씀하는데 거절할 순 없지. 좋아. 다들 마셔라! 다만 이것 때문에 내일 경기에 지장이 생긴다면 그놈은 당장 선발에서 빠질 줄 알아. 적당히 조절들 해.”
“와우! 감독님, 최곱니다!”
선수들은 그렇게 파티를 즐겼다.
* * *
개막전 승리 파티를 한 다음날,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은 전날 구단주가 주고 간 축하주 때문인지 이날도 맹활약을 하며 라이벌인 LA데블스를 맞아 12:1이란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이날 대호는 3회와 8회에 홈런을 치며, 아메리칸 리그 홈런 선두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대호의 미친 행보는 시작에 불과했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라이벌인 LA데블스와 원정 세 경기를 모두 승리를 하며 2032시즌 출발을 기분 좋게 시작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휴스턴 스트로스와의 원정경기에도 스윕 승을 기록하면서 원정 6경기를 모두 승리하고 홈으로 돌아왔다.
하루 휴식을 취하고 홈 개막전을 준비하는 오클랜드 슬랙스.
이번에 맞이하는 팀은 또 다른 라이벌인 텍사스 레이스였다.
오늘 경기의 선발은 작년까지 3선발로 뛰다가 2선발이던 레프리 그로스의 부상 때문에 2선발로 올라온 체프 벤.
레프리 그로스가 데드 암으로 2032시즌 전체를 날려 버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2선발이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체프 벤은 개막 2차전 6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고, 2선발로써의 역할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헤이, 빅 타이거!”
오늘 선발인 체프 벤은 연습 투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타격 훈련을 하기 위해 배팅장으로 가는 대호를 보며 그를 불렀다.
“체프. 오늘 선발인데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요?”
경기 직전의 선발 투수가 얼마나 예민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는 대호는 자신을 부르는 사람이 오늘 선발인 체프 벤임을 알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하하, 난 그렇게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거든. 경계할 필요 없어.”
체프 벤은 너스레를 떨며 대호를 향해 말했다.
그러고 나서 대호를 부른 용건을 곧바로 이야기했다.
“대호, 오늘도 개막 2차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화끈하게 좀 부탁해!”
자신이 마운드에 올랐던 LA데블스와의 2차전을 언급하는 체프를 보며 대호도 이제 마주 웃었다.
“하하하! 저야 그러고 싶죠.”
‘하지만 야구란 게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만 진행되는 스포츠가 아니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체프 벤은 대호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물론 나도 그건 알지. 하지만 왠지 넌 그럴 수 있을 것 같단 말야? 하하하!”
“하하하!”
두 사람은 그렇게 깔깔 웃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체프 벤은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정대호를 적으로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분명 다른 팀 투수들처럼 됐겠지…….’
작년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본 이후, 불과 반 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대호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야구 천재.
그로서는 이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오랜 기간 투수로 있으면서 많은 선수들을 봐 온 그에게도 대호는 천재로 비춰졌다.
더욱 높이 올라가 진정한 별이 될 사내와 함께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든든했기에 이런 부탁을 한 것이기도 했다.
“후우.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볼게요.”
한바탕 웃어 젖힌 뒤, 진지한 표정을 짓는 체프 벤을 바라보며 대호도 이번에는 표정을 다잡고 말했다.
“정말 고마워… 아!”
“응? 뭐 더 하실 말씀이 있나요?”
“그래. 이런 부탁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안 되지. 만약 홈런성 타구를 얻어맞거나 내가 위기에 있을 때 큰 도움을 주면, 저녁 한 번 크게 사지.”
“저녁이요?”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에는 굳이 식사를 얻어먹지 않아도 괜찮지만, 선발투수가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저녁을 사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좋아요. 최고급 스테이크로. 콜?”
“스테이크가 뭐야? 더 비싼 것도 가능하지! 콜!”
체프 벤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면서 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음… 작년에 승수가 많이 모자라긴 했어. 3선발… 아니, 2선발에서도 먹히는 수준의 실력이었는데 고작 10승밖에 못 거뒀으니까.’
승수는 클래식 스탯에서도 중요도가 많이 떨어지는 지표다.
하지만 어떤 투수가 선발로 나와서 지거나, 혹은 비긴 상태에서 내려가는 걸 좋아할까?
체프 벤은 이닝도 잘 먹어 주고, 구속이나 가지고 있는 구종도 괜찮은 투수다.
그러나 유독 운이 없는 게 승리라는 존재였다.
신체에 부상이 없고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한 시즌 동안 선발투수가 등판하는 횟수는 보통 서른 번.
작년에 체프 벤에게는 주어진 기회도 같았으나, 그가 거둔 승리 횟수는 고작 열 번이었으니 승리에 목마를 만 했다.
평균자책점이나 여러 가지 지표는 괜찮은데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그가 선발일 때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타자들이 잘 치지 못했고, 불펜 역시 방화를 저지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대호에게 직접적으로 부탁을 한 것에도 이런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오늘 한 번 일내 보겠습니다.”
“그래. 그 말 기억하지.”
대호와 대화를 마친 체프 벤은 호탕하게 웃고는 로커 룸으로 들어갔다.
* * *
펑!
“스트라이크!”
텍사스 레이스를 맞아 홈경기 선발로 출전한 체프 벤은 야수들을 믿고 과감하게 초구 포심 패스트볼을 한가운데 꽂았다.
텁!
‘좋았어!’
스트라이크를 잡고 넘겨받은 체프 벤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투수와 배터리를 맺은 포수는 투수의 공이 좋을수록 돌려주는 공에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방금 전, 포수에게서 돌아온 공엔 매우 강한 힘이 실려 있었으니 체프 벤 역시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개막전부터 시작해 원정 여섯 경기를 모두 승리를 하는 중인 오클랜드다.
정말이지 올해만큼이나 시즌 출발이 좋은 적이 없었다.
팡!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은 타자의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였는데, 타자는 이를 포심 패스트볼로 착각해 헛스윙을 했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텍사스 레이스 선두 타자를 상대로 체프 벤은 삼구 삼진을 잡았다.
하지만 이게 독이 되었는지 2번 타자에게는 그만 3구째에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따악!
투수의 키를 넘기며 2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가른 중전 안타.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체프 벤은 글러브를 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작게 두드렸다.
그렇지만 과도한 자책을 하진 않았다.
자신의 뒤에서 소리치는 대호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체프! 안타를 맞은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대호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체프 벤은 레이스의 3번 타자를 상대로 신중하게 공을 던졌다.
팡!
“볼!”
바깥쪽 살짝 빠지는 공이었는데, 오늘 주심은 이를 잡아 주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존이야 심판의 재량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홈이라고는 하지만, 심판의 판정은 언제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바깥쪽 존이 빡빡하네!’
오늘 주심을 보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이 기존 다른 심판들에 비해 타이트 하다는 것을 깨달은 체프 벤은 조금 안쪽으로 컨트롤하며 공을 던졌다.
따악!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공을 레이스의 3번 타자 제프 톰슨이 그대로 받아쳤다.
제대로 맞은 타구는 우중간으로 날아갔는데, 대호는 타격음을 듣자마자 스타트를 끊었다.
다다다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