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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82화 (82/209)

82화

오클랜드 슬랙스와 LA데블스의 시범 경기는 초반부터 달아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리그 같은 지구 라이벌들의 경기였고, 또 시작부터 상대 선수에 대한 도발성 위협구까지 난무하다 보니 벌써 두 명의 부상자가 나온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상자는 상대편을 위협하던 LA데블스의 배터리, 즉 투수와 포수였다.

둘 다 대호가 친 타구에 맞아 더 이상 경기 진행이 불가능한 부상을 입는 바람에 다른 선수와 교체되었다.

그리고 초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군 주인공 정대호는 현재 1루에 진루하여 교체된 투수의 타이밍을 흔드는 중이었다.

‘지금!’

촤아악!

“세이프!”

“와아아아아아!”

투수와의 신경전이 드디어 끝났다.

대호의 과감한 2루 스틸에 이를 지켜보던 오클랜드의 팬들 역시 기뻐하며 환호를 보냈다.

통상적으로 우완 투수보다 좌완 투수에게서 2루를 스틸하는 게 더 힘들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현재 릴리프로 올라온 데블스의 투수는 좌완이니, 팬들의 반응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호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여러 번의 흔들기, 그리고 그 덕분에 발견한 투구 동작의 빈틈 덕분이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대호에게 신경이 쏠린 배터리 덕분에 현재 타자의 볼카운트는 3B 0S.

타자에게 무척이나 유리한 상황이었다.

펑!

“볼!!”

결국 투수의 선택은 볼넷이었다.

아니, 투수의 선택이라고 하기 보단 LA데블스 더그아웃의 결정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오클랜드의 4번 타자이자 주장인 홈런 브레드를 상대로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승부를 볼 필요가 굳이 없었다.

정규 시즌도 아니거니와, 강타자를 상대로 억지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다 터지는 경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비어 있는 1루로 보낸 후, 5번 타자를 상대하는 게 안정적이었다.

병살타도 노릴 수 있고, 현재 아웃 카운트가 투 아웃이었기에 적절한 판단이었다.

현재 2루에 가 있는 대호만 아니었다면.

“뛴다. 나 뛴다고.”

“좀 닥쳐!”

대호는 또다시 리드를 길게 가져가며 2루수와 유격수, 그리고 투수의 신경을 건드렸다.

2루수가 거칠게 말했지만, 대호의 도발은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투수의 바로 등 뒤에 있는 상황.

대호가 다 들리게 중얼거리자, 결국 데블스의 릴리프는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견제구를 던졌다.

휘익!

“세이프!”

견제구는 아무런 긴장감도 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견제구를 던진 투수도 대호를 잡겠다고 던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 그대로 견제구였던 것이었다.

씩씩거리던 투수가 공을 돌려받고 이번에는 타자를 향해 공을 던졌다.

그때였다.

타다다다!

대호는 투수가 공을 돌려받는 순간 다시 리드를 길게 가져갔다가, 곧바로 3루를 향해 뛰었다.

“젠장!”

지미 프레드는 곧바로 3루를 향해 공을 던졌는데, 그때 1루에 있던 홈런 브레드도 도루를 시도했다.

그의 옆에 있던 1루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도루였다.

모두의 시선이 대호에게 집중되어 있는 바람에, 경기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장내 아나운서와 팬들만이 홈런의 도루를 지켜보았을 뿐이다.

“세이프!”

“2루! 2루로 어서 던져!”

데블스의 1루수는 목이 터져라 외쳤고, 3루수는 급하게 송구했는데 이것이 실책이었다.

“어… 어엇!”

2루수는 점프해서 어떻게든 공을 잡으려 했지만,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기는 에러를 잡을 수는 없었다.

“달려!”

그리고 3루에 있던 대호는 주루 코치의 외침을 듣고 다시 한번 홈으로 쇄도했다.

다다다다!

대호가 공이 빠졌다는 것을 듣고 홈으로 뛰는 동안, LA데블스 우익수는 뒤로 빠진 공을 쫒아 뛰었다.

급히 공을 주운 우익수는 재빨리 홈으로 던졌다.

휘잉!

다행히 LA데블스 우익수의 송구는 3루수와 다르게 안정적이었다.

포수 지미 프레드는 가까이 온 대호의 얼굴을 마주하며 생각했다.

‘접전이겠군.’

텁.

촤아악!

지미는 공을 잡은 뒤, 홈으로 달려오는 대호를 향해 몸을 틀어 태그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 대호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슬라이딩하며 홈 플레이트를 오른손으로 터치했다.

“세이프!”

주심의 선언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홈에서 길게 난 손자국이 보였다.

“와아아아! 빅 타이거!”

투수 앞 강습 타구로 1루에 진출한 대호, 그는 두 발만으로 1점을 만들어 냈다.

빠른 발과 작전을 통해 점수를 내는 것은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기에 이번 환호성은 더욱 컸다.

게다가 대호가 홈으로 들어오는 동안, 홈런 브레드 역시 어느새 3루로 간 상황.

더블 스틸에 이어 에러가 발생하며 주자 1, 2루 상황이 1득점에 주자 3루로 바뀌어 버렸다.

“제기랄!”

데블스의 감독 필 네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욕설을 내뱉었다.

조금 전 4번 타자 홈런 브레드를 고의사구로 거른 것이 더욱 악순환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 자식 때문에…….”

필 네쉬는 원독에 찬 눈길로 더그아웃을 향해 걸어가는 대호를 노려보았다.

하기야 그의 입장에서야 대호 때문에 배터리를 날려 먹은 것은 물론이고, 시범 경기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반면 오클랜드 슬랙스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하하하! 필, 저놈 얼굴이 어떨지 뻔히 이해가 가는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마이크 감독과 그렉 수석 코치는 그런 한담을 나누었다.

또한 홈런 브레드의 다음 순서로 나오는 오클랜드의 5번 타자 역시 마음이 가벼워졌다.

1, 2루 상태에서 주자를 불러들이려면 큰 거 한 방이 필요했는데, 이젠 단타만 쳐도 득점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편해진 마음은 연쇄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따악!

1루수 키를 살짝 넘는 안타.

홈런 브레드는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오며 세레머니를 펼쳤고, 오클랜드의 팬들은 작년 이맘때보다 훨씬 나아진 경기력에 일제히 환호했다.

“하하하! 데블스 놈들, 맛 좀 봐라!”

“다행이야. 겨울 동안에 예전처럼 돌아가는 게 아닐까 걱정 많이 했다고!”

* * *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대호가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들어가자, 수석 코치인 그렉 헥슬러가 대호의 뒤를 따라왔다.

“대호, 잠시 이야기 좀 하지.”

마이크 감독의 지시를 받고 온 그렉 수석 코치는 조심스럽게 대호를 불렀다.

“예!”

대호는 곧바로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무슨 일이시죠?”

“감독님의 지시다.”

‘응?’

감독의 지시라는 말에 대호의 머릿속은 궁금증으로 인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혹시 모르니 먼저 병원에 가 보라고 하셨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듣자 순간 대호는 당황했다.

‘설마 조금 전 일로?’

하지만 곧바로 머릿속에 자신이 넘어졌던 상황, 3B 1S에서 배트로 막아 냈던 공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겐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만, 아까 그것…….”

“예, 그때 파울이 된 공은 배트에 맞은 겁니다. 절묘하게요.”

대호는 그렉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 주었다.

“정말로 다른 부위에 맞은 게 아니라 배트에 맞았다고?”

“예, 그렇습니다.”

자신의 부상을 걱정하는 그렉 수석 코치를 향해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다시 한번 알려 주었다.

“휴!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냥 쉬어.”

그렉은 대호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휴식을 권했다.

사실 마이크 감독은 이미 오늘 대호를 교체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껏해야 시범 경기가 아닌가.

물론 라이벌인 데블스와의 경기라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발로 만들어 낸 점수도 1점 있으니 팬들도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뒷사정을 알면 팬들이 먼저 대호에게 휴식을 권하리라.

“알겠습니다.”

대호도 그렉 수석 코치에게 감독의 생각을 전해 들은 뒤, 굳이 남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오늘은 그만 빠지기로 결정하였다.

뭐, 더 뛰고 싶다고 해도 이미 교체되어 버린 마당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병원에 들려 검사를 받아 봐!”

그렉은 정말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비해, 의사의 소견을 받아 올 것을 요구했다.

대호야 상태창을 통해 자신의 컨디션과 신체 상태를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없으니 확실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긴 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오클랜드의 사무실에서 마지막 시범 경기를 보고 있던 조엘은 깜짝 놀랐다.

“저… 저……!”

TV 모니터에 투수가 던진 공을 맞고 바닥에 쓰러진 대호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자, 그는 온 몸에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소름이 돋아 새된 비명을 이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저렇게 타석에 쓰러진 선수가 현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한 명인 정대호였기에 더더욱.

오클랜드 사상 최다 계약금을 주고 들여온 해외 유망주였고, 또 불과 반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그의 최대 성과물이다.

고작 시범 경기 따위에서 해를 입어선 안 될 사람이란 뜻이었다.

TV 화면 안에서 소란이 일더니, 잠시 후 정대호가 툭툭 바지를 털며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휴우…….”

천만다행으로 당장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선수가 심각한 부상이라도 입었다간… 끔찍했다.

조엘 자신이 생각하는 최강의 오클랜드와 완전히 멀어지는 길이기도 했으니까.

“아직 전성기도 오지 않은 선수한테 해를 입히려고 하다니… 설마 일부러 저런 건 아니겠지?”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조엘로서는 그저 추측밖에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뿌드득.

만약 저것이 실수라고 해도, 라이벌 팀인 데블스에 의한 것이라면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전화로 비서를 불러 말했다.

“크리스! 당장 마이크에게 연락해. 어서!”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하나가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이후, 조엘의 눈에 더 이상 오늘 경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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