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빡!
털썩!
“우우우!”
사고가 발생했다.
“파울!”
투수가 던진 볼을 맞고 타자가 쓰러졌지만, 판정은 몸에 맞는 히트 바이 피치가 아닌 파울이었다.
“이 개 같은 놈들이!”
대호가 투수가 던진 볼에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마자 분기에 차 달려오던 오클랜드의 선수들은 곧바로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터는 대호의 모습에 멈춰 서서 멍하니 있었다.
“오우, 우리의 빅 타이거! 별다른 부상이 없는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털고 있습니다.”
“와아아아!”
시범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와 갑작스러운 사고에 깜짝 놀랐던 팬들은 대호가 덤덤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터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조금 전보다 더욱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한편 천천히 일어난 대호는 방금 전 투구를 복기하였다.
‘이 새끼들 완전 꼴통이네.’
방금 전 자신에게 날아온 공은 절대로 실투가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던진 공.
‘좋았어! 어디 해 보자고.’
대호의 성격상 이런 승부는 절대로 피하지 않았다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포수와 나누었던 대화나,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포수의 미트가 아닌 자신을 쳐다본 것 등을 고려하면 방금 전에는 당연히 자신을 노리고 던진 게 분명했다.
척!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낸 대호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입가를 살짝 비틀어 썩소를 지어 보였다.
절대로 위협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드웨인! 왜 투수에게 경고를 주지 않는 거야!”
막 다시 경기가 시작되려던 때, 오클랜드의 감독인 마이크 케세이가 주심인 드웨인 존에게 항의하였다.
초구부터 타자 몸 쪽 깊숙이 파고드는 위협구를 던졌고, 방금 전에는 정말이지 머리에 맞은 것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공이 날아왔다.
천만다행으로 배트의 그립 부분에 맞아 파울이 선언되었지만, 만약 조금만 더 위쪽으로 맞았다면 큰 부상을 입을 정도로 위험했다.
“그만 들어가세요.”
감독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금 위험한 순간이 있기는 했지만, 야구 경기를 하다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장면이라 판단한 드웨인 주심의 판단에 기각된 것이다.
다만 마이크 감독의 항의가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투수에게도 주의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투수도 한 번 더 타자의 머리 쪽으로 공을 던진다면 바로 퇴장 조치를 내릴 것이니 명심하도록!”
비록 강력하진 않지만 주의가 주어졌기에 마이크 감독도 더 이상 항의를 하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정규 시즌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고작 시범 경기에 날을 세워 심판과 대립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더한 조치를 얻어내더라도 별다른 이득이 없음을 잘 알기에 어느 정도 자신의 뜻을 받아들인 것에 만족한 것이다.
그러나 주심에게 경고를 받은 투수의 표정은 살짝 찌푸려졌다.
경고를 받은 것에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대호는 더 이상 자신을 향한 위협구는 던지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이젠 복수를 할 때라고 여겼다.
‘어디…….’
마이너리그… 아니, 이전 회차부터 대호는 자신이나 동료 선수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를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다.
“보내려면 확실하게 보냈어야지. 기대해!”
낮은 목소리로 LA데블스 포수에게 경고를 보냈다.
“뭐?”
데블스의 포수는 곧장 으르렁거리며 반문했지만, 곧 자신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틱!
“파울!”
퍽!
“아욱!”
순간, 데블스 포수는 낭심 쪽에서 큰 충격을 느꼈다.
대호의 전매특허가 다시 한번 발휘된 것이었다.
파울 팁으로 인해 공의 코스가 변경되면서, 포수 미트를 벗어난 각도로 꺾이며 낭심에 직격.
포수의 부상으로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다.
하지만 조금 전 대호를 덮치던 것과 다르게 이번 사고는 경기 중 흔하게 일어나는 사고였기에 오클랜드 더그아웃이나 LA데블스, 어느 쪽도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잠시 포수의 고통이 진정이 되길 기다렸다가 진정되자, 다시금 경기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경기는 다시금 멈춰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투수가 던진 볼에 대호가 배트를 휘둘렀지만, 또다시 파울이 되면서 같은 부위에 다시 한번 타구가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작 두 번으로 끝낼 대호가 아니었다.
퍽!
“크아악!”
두 번째까진 바지 속에 착용한 낭심 보호대 덕분에 참고 일어났지만 세 번째가 되자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력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이에 포수는 더그아웃에 도저히 경기 진행을 할 수 없다는 사인을 보냈고, 이쯤 되자 LA데블스 더그아웃에선 방금 전 사고가 결코 우연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LA데블스 더그아웃만이 아니라 오클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운 놈!’
처음은 안타깝고 두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세 번째는 아니었다.
이는 노리고 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런 걸 노린다는 건 배트 컨트롤이 뛰어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니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세 번이나 낭심에 타구를 맞은 포수는 교체되었고, 새로 들어온 포수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하하, 배트 컨트롤이 상당한데? 우리 좋게 좋게 가자고.”
교체된 LA데블스 포수인 지미 프레드는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무리 라이벌 팀이라고 하지만, 괜히 트래시 토크를 하다가 동료 토드 필 같은 부상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곳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자칫 잘못 맞았다가는 남자로써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장애를 가질 수도 있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하하, 제가 토드에게 일부러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대호는 앓는 소리를 하는 지미를 보며 대답했지만, 살짝 말끝을 흐렸다.
아직 복수가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데블스 포수 지미의 얼굴도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투수가 자신이 던진 공에 맞는 상황이 벌어졌다.
따악!
퍽!
“으악!”
70이 넘어가는 힘, 민첩, 컨택의 위력은 대단했다.
투수가 던진 95마일의 공을 정확하게 맞춰 투수 강습 땅볼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내가, 이 내가 저런 놈에게……!’
LA데블스의 오늘 선발 잭 크루거는 아시안 혐오주의자였다.
한국인인 대호뿐만이 아니라, 같은 팀의 동료 일본인 선수들도 무시하는 그야말로 인간말종.
토드 필은 그 정도로 극단적이진 않았지만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라이벌 구단의 잘나가는 아시안 타자에게 위협구를 던졌던 것이다.
피식.
대호는 강습 타구에 맞아 마운드 위를 구르는 잭 크루거를 비웃으며 달려갔다.
다다다다!
촤악―!
오른쪽 어깨를 맞은 잭 크루거는 제때 반응하지 못했고, 1루에 도착한 대호는 그제야 멈춰 섰다.
1루에 들어선 이후에도 잭 크루거는 겨우겨우 일어났을 뿐, 고통스러운 낯빛은 그대로였다.
“타임!”
또다시 경기가 중단되었다.
포수에 이어 투수까지 대호가 친 타구에 맞아 부상을 당하자, 이제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말이다.
잭 크루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던 LA데블스 투수 코치는 더그아웃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구를 맞은 어깨 부위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타구에 맞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근육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조금만 건드려도 투수가 통증을 호소하였기에 더 이상 투구를 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니, 투구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부상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젠장!”
한편, 투수 코치에게서 잭 크루거가 더 이상 투구를 할 수 없다는 신호를 받은 LA데블스의 감독 필 네쉬는 급히 불펜에 연락하고는 욕설을 터뜨렸다.
“일이 꼬이려니까 이렇게도 되는군…….”
부상이 가벼우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근육에 큰 문제가 생긴다면 정규 시즌 운용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그가 화를 내는 동안, 투수 코치는 시간을 벌기 위해 팀 닥터를 불러 잭 크루거를 진료하게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 경기 지연을 두고 볼 수 없던 심판이 호출했고, 롱 릴리프 보직에 있는 투수가 나와 연습 투구를 했다.
대호는 어깨를 부여잡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잭 크루거를 향해 싸늘한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다가 데블스의 감독 필 네쉬와 눈이 마주쳤는데, 두 사람은 강렬한 눈초리로 서로를 쏘아보았다.
‘빌어먹을 놈!’
‘눈길이 이상한데… 정규 시즌에서도 조심해야겠군.’
사실 이번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투수나 포수가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또 라이벌 의식이 강한 선수라 하더라도 방금 전까지 위협구를 던진 것은 감독의 허락이나 묵인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빈볼에 맞은 선수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자신들의 팀에도 보복을 당할지도 모르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빈볼을 던진 잭 크루거가 미친놈이라고 가정해도, 오클랜드에도 역시 미친놈이 있을 수도 있는 노릇 아니겠는가.
LA데블스 감독과 눈이 마주친 대호는 차갑게 눈빛을 반짝이며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감독, 다음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당신도…….’
경기장에 나오지 않는 감독을 신체적으로 위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냥 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철저히 괴롭혀 주지.’
감독은 감독이란 직책에 맞게 경기에서 괴롭히면 된다.
대호의 철칙이었다.
경기가 재개된 이후, 대호는 1루에서 리드를 길게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은 감독에게 그린라이트를 허락받았으니까.
작년 2031시즌, 이미 도루 스물여덟 개를 성공시킨 대호였다.
당연히 새로 올라온 릴리프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휙!
촤악!
“세이프!”
리드가 길어지자 투수는 포수의 사인을 보고 1루로 견제구를 던졌다.
하지만 이미 투수의 동작을 읽은 대호는 빠르게 귀루를 하여 세이프가 되었다.
그렇게 몇 차례 견제구가 던져지고 귀루하길 반복했지만, 그럼에도 대호의 리드는 줄어들지 않았다.
교체된 투수가 타자에게 집중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흔들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