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아웃!”
내셔널 리그 팀의 공격이 끝났다.
잠깐의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중견수로 출전한 대호의 활약으로 간단하게 보살로 투아웃을 만들고, 다음에 들어선 3번 타자도 내야 플라이로 아웃되면서 공수 고대가 이루어졌다.
“와아아아!”
마이너리거들의 올스타 경기라고 하지만, 시작부터 수비에서 슈퍼 플레이가 나오면서 퓨처스 게임을 관람하러 온 야구팬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하하, 정말이지 정대호 선수의 플레이는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 데려다 놔도 충분할 정도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맞습니다. 하이 싱글A에서부터 대호 선수의 넓은 수비 범위는 매우 유명했죠.”
장내 아나운서인 제레미 화이트와 존 쿠거는 조금 전 대호가 보여 준 슈퍼 플레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호오! 내셔널 리그 팀의 1회 초 공격이 끝나고 공수 교대를 했는데, 아메리칸 리그 팀에서 조금 전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 준 대호 선수가 1번 타자로 타석에 나옵니다.”
제레미 화이트와 존 쿠거는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대호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 가는 동안, 아메리칸 리그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선두는 앞서 말했듯이 정대호.
대호는 상대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잭 로빈스라…….’
내셔널 리그의 선발 투수는 샌프란시스코 티탄즈 산하 트리플A 구단인 새크라멘토 리버채츠의 1선발인 잭 로빈스로, 대호가 3회차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했을 때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투수였다.
당시의 잭 로빈스는 샌프란시스코 티탄즈의 2선발로 수준급 실력을 자랑했다.
‘잭이라, 오랜만이네.’
대호는 잭 로빈스와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그냥 같은 메이저리거로서 이름과 얼굴을 아는 정도?
하지만 대호가 야구를 은퇴하고 명예의 전당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종종 연락을 하기도 했기에, 회귀한 뒤 처음 마주치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했다.
‘뭐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
탁탁.
반갑지만 현재 적으로 만났으니 지금은 자신의 본분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헬멧을 두드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팡!
“볼!”
잭 로빈스가 던진 초구는 볼이었다.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볼이라 대호는 이를 그냥 지켜보았다.
타악!
같은 코스로 초구와 비슷한 볼이었지만 대호는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결과는 파울이 되면서 포수의 글러브를 벗어나 뒤로 빠졌다.
볼카운트는 1B 1S가 되었지만, 대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음 투구를 기다렸다.
팡!
이번에는 몸 쪽으로 파고드는 투심이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존에 살짝 걸쳤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도 볼 판정을 받고 말았다.
“볼!”
잭 로빈스는 심판의 콜을 듣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보기에 방금 전 인코스로 들어간 투심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주심을 보고 있는 하버트 콜은 인코스로 들어오는 공에 대해 상당히 인색한 편에 속하는 심판이었다.
그 때문에 방금 전 몸 쪽으로 파고든 투심에 볼 판정을 내린 것이다.
심판의 권위에 대놓고 반항할 수는 없는 노릇.
잭 로빈스는 살짝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작은 불만을 표출하고, 다시 투구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조금 더 스트라이크 존 안 쪽으로 집어넣어야겠군.’
그러나 네 번째 공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3구째 공을 의식한 잭이 실수로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힘을 주는 바람에 완전히 가운데로 몰려 버렸기 때문이다.
따아아악!
가운데에 몰린 포심 패스트볼은 대호에겐 먹이나 다름이 없었다.
“와아아아! 빅 타이거!”
라스베이거스, 혹은 오클랜드의 팬인지 대호의 별명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안정된 하체를 바탕으로 허리 회전을 이용한 깔끔한 스윙은 가운데로 몰린 포심 패스트볼을 정확하게 배트 히팅 포인트에 맞출 수 있었다.
‘좋았어!’
대호는 볼이 배트에 맞는 순간 알았다.
배트를 휘두르는 손에 아무런 반발력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확하게 타격을 하였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홈런이야!”
투수가 던진 실투를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배트 중심에 맞추다 보니, 공 또한 정확하게 중견수 방향으로 날아가 뉴슬랙스 볼파크 외야 2층 관람석에 떨어졌다.
자신이 던진 공을 대호가 받아 치자, 곧바로 홈런임을 직감한 잭 로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록 소속된 리그는 다르지만, 정대호라는 괴물 루키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잭 로빈스는 설마 마주한 첫 타석부터 이렇게 홈런을 날릴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이번 공이 실투이긴 했지만… 97마일 포심이었는데 이렇게 가볍게 받아치다니. 정대호, 역시 알려진 것보다 더 무섭군. 직접 상대하기 전까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대야.’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대호를 곁눈질로 쳐다본 잭 로빈스는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첫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음에도 샌프란시스코 티탄즈의 유망주 랭킹 2위에 빛나는 잭 로빈스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잭은 이미 메이저리그로 콜업 될 것을 통보 받은 상태였기에, 사실 이번 퓨처스 게임을 메이저리그로 올라가기 전, 경기 감각을 다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홈런을 맞는 건 역시 기분이 좋지 않군.’
조금은 느슨하게 임하던 잭은 마음을 다잡았다.
팡! 팡!
대호가 홈 베이스를 밟고 들어가며 경기가 재개되기 무섭게 잭 로빈스는 전력을 다해 투구했다.
“아웃!”
“아웃! 쓰리 아웃 체인지!”
비록 대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후속 타자들을 삼진과 범타로 아웃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하였다.
* * *
따아아악!
1회 말, 선두 타자로 나온 대호가 솔로 홈런을 쳤다.
“오오!”
뉴슬랙스 볼파크 VIP 관람석에서 퓨처스 게임을 지켜보던 조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탄성을 질렀다.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이라고 하지만, 단장인 그가 이렇게 경기장을 찾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특히나 메이저리그 올스타 경기도 아니고, 마이너리거들이 펼치는 퓨처스 게임이야 두말할 것 없었다.
하지만 조엘은 오늘 퓨처스 게임을 관람하기 위해 공무도 뒤로하고 경기장을 찾았다.
“저 정도면 바로 올려도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대호의 솔로 홈런을 감상한 조엘은 고개를 돌려 비서인 크리스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미스터 정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량이 발전했습니다.”
크리스가 보기에도 대호는 이미 마이너리그에서 보여줄 것은 모두 보여 준 상태인 듯했다.
솔직히 말해서 메이저리거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고 해도 과연 대호의 기량만큼 해낼 수 있을까?
크리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대호는 홈런 사이클이란 대기록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세웠으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보통 선수라면 그런 대기록을 세우게 되면 어떻게든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만일 투수가 퍼펙트게임, 혹은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고 가정할 때, 그 다음 경기에 어떤 모습을 보이겠는가.
지난번의 기록을 의식하느라 힘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러나 정대호는 마치 야구를 하는 기계처럼 그저 자신의 스윙에 집중하였다.
크리스는 그러한 대호의 초인적인 인내심과 자기 관리에 이미 감명 받은 상태였다.
“그럼 콜업 시기를 언제로 잡는 게 좋을까?”
조엘은 자신의 비서를 돌아보며 물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논의된 것은 확장 로스터가 있는 9월에 콜업 할 것인지, 아니면 오클랜드의 가을 야구를 위해 보다 이른 시기에 부를 것인지였다.
“분명 지난번에는 가을 야구를 위해 좀 더 이른 시기에 부르자고 결론을 냈지만… 오늘 경기에서 보여 주는 모습을 보니 더 확신이 듭니다. 계획보다 빨리 불러도 될 것 같다고요.”
만일 대호가 메이저리그 콜업이 유력시되는 여타 유망주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이렇게 목을 맬 필요까진 없었지만, 하이 싱글A에서 트리플A까지 리그를 완전히 폭격하고, 또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기대를 걸어 봐도 될 듯했다.
또한 구단 내에서 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대호를 빠르게 콜업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시기상으로도 적절했다.
“가을 야구… 와일드카드라도 받아서 진출하려면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조엘이 중얼거리자 크리스가 옆에서 말을 이어 받았다.
“물론, 미스터 정의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고, 저는 하루빨리 승격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개 마이너리거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죠.”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이 싱글A부터 지금까지 쌓아 온 기록이 대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조엘과 크리스는 동시에 말하고는 씨익 웃음을 터뜨렸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선수 한 사람만의 힘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죠.”
“그래. 기대를 걸어 보긴 하겠지만, 과도한 기대가 유망주를 어떻게 망가뜨리는 지도 잘 알고 있지. 지금은 구단과 팬들이 모두 정대호의 승격을 원하지만 만일 기대만큼 못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은 이미 대호의 승격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게 단장의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올려야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미스터 정에게는 예방주사가 필요해요.”
“예방주사라.”
“네. 지금까지 승격할 때마다 적응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걸 감안하면 적응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크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라와서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지금 하는 만큼만 해 주면 비난의 화살이 가지는 않을 겁니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남은 경기는 후반기의 70경기.
현재 42승 50패를 거두고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가 가을 야구에 원활하게 진출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나은 성적이 필요했다.
“결국은 하던 얘기의 반복이군. 우리 둘도 의견이 일치하고, 모두가 원하니 더 늦출 필요는 없겠지. 다만 우리의 희망적인 예측이 맞아 들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게 아니기만을 바랄 뿐…….”
“결론을 내렸으니 이젠 희망적인 얘기를 해 보죠. 솔직히 홈런 사이클을 두 번이나 기록했으며, 열다섯 경기에서 열두 개의 홈런을 치고 장타율이 2를 넘는 타자가 실패하기가 더 어려운 일 아닐까요?”
“그렇지, 대호가 보여 준 성적은 감히 일개 마이너리거라고 볼 수 없지.”
그때였다.
따아악!
또다시 커다란 타격음이 울리며 뉴슬랙스 볼파크에 커다란 축하곡이 울려 퍼졌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구장이다 보니, 슬랙스와 관련된 선수가 홈런을 쳤을 때만 울리는 축하곡이었다.
조엘과 크리스가 급히 시선을 돌려 경기장을 보니, 정대호가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스터 정이 또 홈런을 쳤군요.”
“하하하!”
조엘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나눈 얘기를 전부 바보 같은 걸로 만드는 장면이군. 좋아!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겠어!”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