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경기는 23:4로 라스베이거스 에이베이터스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경기의 MVP는 당연히 대호로 결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가 트리플A에 콜업 되고 첫 경기인 오늘, 대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더블A에서 홈런 사이클이란 야구 역사상 세 번째 대기록을 세웠는데, 오늘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야구 역사상은 네 번째, 그리고 트리플A에서는 첫 번째인 대기록을 세운 것이었다.
이에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팬들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조금 전 느꼈던 흥분을 되새기고 있는 중이었다.
“와아아아―!”
“정대호! 정대호!”
“정대호! 정대호!”
팬들은 영어식 이름이 아닌 한국식으로 대호의 성과 이름을 부르며 어깨동무를 하고는 대호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런 팬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한나 포커스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경기장에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야구팬 여러분. 울프스포츠의 한나 포커스입니다.”
한나 포커스는 미들랜드 트리뷴의 야구 담당 아나운서였는데, 5일 전 울프TV로 이직하였다.
전부터 더욱 큰 대형 방송사로 이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가 이렇게 손쉽게 이직하고 또 현장에 나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대호의 영향이 아주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대호를 알게 된 이후로 얼굴을 많이 알리게 되었으니까.
처음 대호를 인터뷰한 5월 경 이후 불법 약물 루머를 타파하기 위한 조치로 대호가 관찰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이를 전담하게 된 미들랜드 트리뷴은 한 번이지만 대호에게 익숙한 한나 포커스를 메인 MC로 내세웠고, 대호만큼은 아니지만 그녀의 인지도도 상당히 올라갔다.
또한 이것이 그녀의 경력에서 가장 큰 이점이 되면서 미국 전국구 방송국이라 할 수 있는 PAX로 이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아직 수습 기간인 그녀가 오늘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와 솔트레이크 비스의 경기 MVP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오늘 트리플A 데뷔 경기에서 역사적인 대기록을 세운 대호 정 선수를 인터뷰하겠습니다.”
기본적인 인터뷰 전 오프닝 멘트를 하고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옆에 서 있는 대호에게 마이크를 가져갔다.
“하이, 대호!”
한나는 친근한 목소리로 대호를 불렀다.
“하이, 한나. 이직을 한다고 하더니 그곳이 울프였군요? 이직 성공 축하해요.”
친근하게 자신을 부른 한나에게 대호도 카메라를 보며 축하 인사를 했다.
“어머!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요? 감사해요.”
자신이 이직할 예정이라고 이전에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한나였다.
바쁜 야구 선수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자신에 대해 기억하고 축하해 주는 대호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하하, 한나. 그 말을 한 게 겨우 일주일 전이에요.”
대호를 일주일이란 기간을 강조하며 웃었다.
그런 대호의 인터뷰 스킬은 무척이나 상대로 하여금 편하게 해 주었다.
원래는 리포터인 한나가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대호의 인터뷰 경험은 사실 그녀보다 더 오래되었기에 훨씬 더 세련된 기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어린 남성이었음에도 인터뷰를 보는 시청자들은 전혀 어색하게 느끼지 않았다.
아니, 대호와 한나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 어울리는 남녀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호호, 제 이직을 축하하기 보다는 오늘 대기록을 세운 대호 선수의 기록을 먼저 축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가요? 전 일주일 전에도 똑같은 기록을 세웠는데?”
“물론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 알고 있죠. 하지만…….”
한나 포커스와 대호의 MVP 인터뷰는 무척이나 순조롭고 매끈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이를 듣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흥분을 금치 못하게 만들고 있다.
“더블A에서 올라오자마자 홈런 사이클이란 대기록을 세웠는데, 기분은 어떤가요?”
간단한 신변 이야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MVP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한 번 경험을 해서 그런지 크게 와 닿지는 않네요.”
트리플A에 콜업 되고 데뷔 경기에서 홈런 사이클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대호의 기분은 처음 홈런 사이클이란 대기록을 세웠던 더블A 샌안토니오 미션스와의 경기 때 이상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또 대기록을 세웠구나, 기쁘네… 이 정도 뿐이었다.
오히려 홈런 사이클이란 대기록을 트리플A 리그에서 세웠으니, 시스템이 가져다 줄 보상이 더 기대되었다.
‘더블A에서 기록을 세웠을 때 분명 올 스탯 3포인트를 얻었지… 그렇다면 상위 리그인 트리플A, 더군다나 최초 기록이라면 얼마나 더 큰 걸 줄까?’
이런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감돌 뿐이었다.
“어머? 그래요?”
물론 이런 걸 알지 못하는 한나는 예상과 다른 대호의 답변에 깜짝 놀랐다.
분명 더블A에서 콜업 되기 직전 가졌던 경기에서 홈런 사이클이란 대기록을 세우고 기뻐하던 모습이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본 대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단순히 콜업이 된 것만이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으니 한나로서는 이상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두근두근.
전에도 대호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진하게 느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전에도 생각했지만, 자신과 대호와의 나이 차이는 무려 7살이나 났다.
이성간의 사랑에 나이 차이란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라고 하지만, 한나는 아직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더욱이 자신은 백인이고, 상대는 백인보다 어려 보이는 아시안이었으니…….
만약, 정말 만약에 대호와 자신이 잘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아직 20대인 지금이야 크게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나중에는 어떻겠는가.
1년 뒤, 또 1년 뒤에는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기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호는 한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계속해서 인터뷰를 이어 갔다.
그때였다.
“어멋!”
인터뷰 도중, 느닷없이 대호가 자신을 휙 잡아당겨 끌어안자 한나 포커스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곧이어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촤악!
‘아! 선수들이 장난 쳤구나!’
순간 많은 양의 물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짧은 티셔츠를 입고 있던 자신의 팔뚝에 액체가 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큰 키를 자랑하는 자신이 음료수 세례에 당했는데, 피해가 고작 팔뚝 정도라는 것에 살짝 놀랐다.
큰 키 때문에 높은 굽이 있는 구두를 신지 않았다고 하지만, 미국 평균보다도 훨씬 큰 자신의 키 때문에 다른 MVP 인터뷰 당시 선수들의 짓궂은 장난에 함께 당해서 옷을 망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그때와 비교하면 너무나 멀쩡했다.
“괜찮아요?”
그때, 머리 위에서 자신의 안부를 물어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모르게 듬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요.”
한나는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씨익.
“달튼!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조심해!”
한나에게 한번 웃어 준 대호는 자신에게 장난을 친 달튼을 향해 소리쳤다.
사실 인터뷰 도중 이런 음료를 뿌리는 건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다만 한나는 대호와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선수들이 매우 친하게 보이는 듯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정대호 선수, 이제 콜업 된지 일주일 밖에 안 지났다고 알고 있는데, 동료가 이렇게 짓궂은 장난을 치다니… 정말 친화력이 대단하네요.”
“하하, 달튼이 워낙 친화력이 좋아서요. 제가 콜업 되고 여기로 온 그날 바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대호는 아론과 함께 콜업이 되어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로 온 첫날을 떠올렸다.
무성의하고 경계하는 듯한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사무실 직원이나 후보 선수들의 태도는 대호와 아론으로 하여금 나쁜 첫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달튼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분명 처음에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그때는 숙소에서 대놓고 험담을 하기도 했고, 또 대호 자신의 이름을 듣자마자 곧바로 장난을 걸던 달튼이 생각나자 대호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걸렸다.
그런 대호의 표정 변화에 한나 포커스는 다시 한번 놀랐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인터뷰도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해요.”
“아닙니다. 이직한다고 해서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겨우 일주일 만에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어요.”
대호는 찡긋 초승달과 같은 눈 모양을 그리며 웃어 보였다.
“저도 반가웠어요.”
인터뷰 마무리 인사까지 마친 두 사람.
카메라 불이 꺼졌고, 촬영진은 철수하는 분위기가 되자 한나는 어쩐지 아쉬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곧 저녁인데, 약속 없으면 우리 함께 저녁이나 먹을래요?”
대호는 정리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응?’
느닷없는 대호의 저녁을 함께 먹자는 제안에 한나 포커스는 순간 기쁘면서도 당황했다.
그러면서 조금 전 인터뷰를 하던 도중, 그의 품에 안겼던 때가 생각났다.
두근두근.
또다시 심장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뛰기 시작했다.
“흠흠! 뭐 다른 스케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어느 순간부터 한나의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인터뷰를 할 때면 공적인 일을 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강했다면, 방금 전에는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담담하다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억지로 하는 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봐요.”
대호는 그렇게 조금 뒤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경기를 마쳤으니 땀과 흙먼지로 더러워진 몸을 씻으러 간 것이다.
그런 대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한나는 얼른 방송 장비를 반납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조금 전 대호가 제안한 저녁 식사를 위해 준비를 할 필요성이 있어서였다.
* * *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와 솔트레이크 비스의 경기가 끝난 시각,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 사무실은 분주했다.
“경기 결과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인 조엘이 물었다.
“다행히 오늘은 승리했습니다.”
“그래?”
“네. 젠슨이 5이닝 1실점으로 잘 버텨 줬고, 타자들이 활약을 하면서 5점을 뽑아냈습니다. 비록 젠슨이 물러난 뒤 릴리프가 3점을 내주긴 했지만, 5:4로 승리했습니다.”
“하아!”
선발이 5회까지 1점으로 잘 막아 내고, 또 타자들이 5점이나 뽑아냈으면서도 불펜이 불안정해 그 뒤로 3점이나 내줬고 결과는 5:4 신승(辛勝).
조엘은 이 상황에 한숨만 나오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2031시즌도 벌써 7월, 중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맡고 있는 오클랜드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메리칸 리그에 속한 오클랜드는 현재 라이벌인 텍사스 레이더스의 밑인 지구 4위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그 밑으로는 시애틀 마린스밖에 없었다.
이 상태로는 올 시즌 가을 야구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