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돈이란 참 좋은 것이다.
있다가 없으면 무척이나 서럽고, 또 사람을 비굴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여유가 생기면 어깨도 올라가고, 자신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도 많이 바뀌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그냥 넉넉하다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만.
‘갑부… 정도는 아니지만, 700만 달러면 졸부는 충분히 되고도 남지.’
지금 대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오클랜드와 계약한 이후, 행정 처리가 완료되어 통장으로 돈이 입금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선 대호의 통장 계좌가 있는 은행에서의 대우가 VIP로 바뀌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각종 벌레와 함께 살던 집도 바뀌었다.
무엇보다 가장 기쁜 것은 늘 괜찮은 척했지만, 조금은 힘겨워하시던 엄마의 표정이 밝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실 대호 집안의 빚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것이니 만큼 여유가 생겼음에도 아버지는 그저 미안하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지만, 엄마는 마음속 깊이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이셨다.
‘참… 이 장면은 몇 번을 봐도 감동적이네… 이제 더 효도해 드릴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대호는 아직 미안함이 남아 있는 아버지의 얼굴도 기쁨으로 물들이겠다고 다짐하고 이사하게 되었다.
반지하에서 번듯한 2층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 * *
집안 문제를 해결하고 걱정거리를 내려놓은 대호는 내년 2031년부터 시작될 자신의 커리어 만들기에 들어갔다.
따악! 따아악!
최신형 피칭 머신에서 날아온 공을 흐트러짐 없는 안정된 자세에서 히팅 포인트에 맞췄다.
“굿!”
“와아!”
대호가 타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하나같이 감탄을 내뱉었다.
“대호우, 아주 좋습니다.”
타격 훈련을 하는 대호의 뒤에서 어설픈 한국어가 들려왔다.
검은 머리에 검은 피부를 가진 외국인이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대호가 미국에서 조나단에게 부탁했던 에이전트가 붙여 준 인스트럭터였다.
대호는 메이저리그 준비를 위해 에이전트를 추천해 줄 것을 부탁했고, 이에 조나단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에이전트를 추천했는데, 대호는 그 사람의 이름을 듣자마자 두말하지 않고 곧바로 계약을 맺었다.
‘설마 조나단이 잘 알고 있는 에이전트가 3회차 때 나랑 오래 인연을 맺던 이일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곧바로 찾아가서 계약할 걸… 그런 생각을 한 대호였다.
‘아니지. 물론 내가 오클랜드산 특급 유망주라는 사실 정도는 저쪽도 알겠지만, 내가 먼저 계약 맺자고 나서면 호구 잡혔을 수도 있어. 원래 아쉬운 쪽이 이것저것 더 퍼주는 게 맞으니까.’
회귀자인 대호로서는 전 회차에 좋은 인연을 맺은 이와 사이가 틀어지는 경험도 한 적 있고, 조금산처럼 그다지 좋지 않은 인연도 그럭저럭 괜찮게 써먹은 적 있기에 사람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나단의 추천으로 계약을 맺게 된 건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포츠 에이전트와 선수의 우정을 기린 제리 맥과이어라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대호가 이번에 계약을 맺은 에이전트는 의뢰인에게 진실된 서비스를 해 주는 사람이었다.
3회차에 포스팅 제도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대호 역시 적응 기간이 필요했는데, 적절한 도움 덕에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 비해 쉽게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니까.
그래서 대호는 당시 그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또 대단한 성적을 내주는 대호를 그 또한 좋아해 주어 나이를 떠나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지금 대호의 뒤에서 타격 자세를 봐주고 있는 인스트럭터는, 한국까지 파견되어 대호를 가르쳐야 한다는 디메리트에도 승낙해서 온 사람이었다.
여러모로 에이전트도, 또 그가 붙여준 인스트럭터도 마음에 들었다.
대호는 잠시 자신의 뒤에서 굿! 나이스!를 외치는 인스트럭터, 존 밀러를 돌아보았다.
‘붙임성이 좋다니까.’
속으로 생각을 하며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에게 투덜거렸다.
“존! 좋다고만 하지 말고 제 자세를 좀 봐달라고요.”
작은 투덜거림을 들었는지 존 밀러가 대답하였다.
“오우! 대호우, 지금 자세 아주 조아요. 지금 그 자세만 유지하면, 바로 메이저로 가도 0.333은 칠거에요.”
존 밀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였다.
“그렇지 않나요우?”
마치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는 듯,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까지 하였다.
“맞아! 대호, 네 타격 자세는 완벽하다.”
뒷자리에서 대호의 타격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추인수가 대답을 하였다.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 당시 청소년 야구 대표 팀 감독으로 대호를 가르쳤던 추인수는 대회가 끝나고 이곳 CH베이스볼파크에서 18세 이하 아마추어 유망주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다 대호가 CH베이스볼파크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대비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소리에 찾아와 구경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대호는 자신에게 이대로만 하면 충분하다고 조언을 하는 추인수의 말에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추인수가 이런 칭찬을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금 전까지 대호가 타격 훈련을 하던 피칭 머신에서 쏘아진 공의 시속이 무려 160㎞였기 때문이다.
비록 진짜 투수가 아닌 기계(피칭 머신)가 던지는 공이라고 하지만, 160㎞는 쉽게 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그런데 대호는 그것을 마치 타격 감각을 높이기 위해 던져 주는 공을 치듯 가볍게 쳐냈다.
또한 타구의 질 또한 매우 훌륭했다.
대부분 타구들이 외야 펜스까지 날아갔고, 높은 비율로 홈런성 타구를 알려 주는 비거리 표가 걸린 그물망을 때렸다.
즉, 매우 가볍고 부드러운 스윙에도 불구하고 장타를 쉽게 만들어 내고 있다는 소리였다.
비록 몇몇 타구는 잘 맞았음에도 좋지 못한 코스로 뻗어 나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적은 비율이었다.
보통 타자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매 타석마다 안타나 홈런을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수한 타자의 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타율이 3할.
비록 데이터 야구가 되며 클래식 스탯의 중요성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어도, 라이트한 야구팬들에게 가장 어필이 되는 요소는 스탯이었다.
즉, 세 번 중 한 번만 안타를 만들어 내도 훌륭한 타자라는 얘기였다.
‘정대호, 저 녀석은 열 번 중에 무려 8~9번을 때려 내고 있어. 그것도 160㎞를 자랑하는 피칭 머신에게서…….’
추인수 감독은 속으로 감탄했다.
수준 높은 메이저리그에서도 160㎞을 평균 구속으로 가지고 있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만큼, 피칭 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160㎞을 잘 친다는 얘기는 무브먼트나 공의 회전이 더해진 150㎞도 비교적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
존 밀러와 추인수는 대호의 재능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정작 대호 본인은 그다지 마음에 드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의 타격 능력은 3회차 자신의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고작 80%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자신은 이제 스무 살이라고는 믿기 힘든 정도의 실력이겠지만, 두 차례나 회귀하고 프로의 경험이 있는 대호로서는 그저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부족해. 히데오 소이치로, 그 녀석도 지금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을 텐데…….’
대호는 이를 악물었다.
조급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최종 목표인 명예의 전당을 생각하면 조금쯤 조급해져도 괜찮으리라.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정대호(18)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60
힘 65
민첩 53
체력 50
지능 50
정신 56
순발력 52
컨택 50
내구력 30
보너스 포인트 : 0
퀘스트 : 일일 퀘스트(1)
재능 : 평원을 달리는 전령, 목인방의 통과자, 내가 홈런왕이다(Lv.3), 그라운드의 대도(Lv1)
― 내가 홈런왕이다(성장형) Lv3 힘 10UP, 컨택 5DOWN
― 그라운드의 대도(성장형) Lv1 민첩 3UP, 컨택 3UP, 순발력 5UP
―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계약 보너스 올 스탯 5UP
타격 훈련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대호는 상태창을 열고 스탯과 재능 타이틀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내구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50을 넘었다.
그리고 회귀하자마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관리해 온 힘은 메이저리그 평균이라고 할 수 있는 65포인트를 달성한 상태였다.
‘지금 내 레벨이 60. 시스템으로 올릴 수 있는 레벨은 분명 100까지였지.’
즉, 앞으로 레벨 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스탯 포인트는 40포인트 뿐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를 판단하는 40―80 시스템을 생각하면, 고작 40포인트로는 전설적인 선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명예의 전장 첫 턴 입성.
그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메이저리그에서 괜찮은 선수로 알려지고, 또 부를 얻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전설적인 업적을 이루어야만 했다.
‘아시아계로서 알게 모르게 받게 될 차별까지 전부 걷어 내고, 기자들도 절대 반박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말이지.’
그러기 위해서 이번 회차를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홈런 타자가 되기로 결정한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 저변 깔린 수비 능력은 기본이고 말이다.
보통 5툴 플레이어라고 말하면, 파워(장타력), 스피드(주력), 수비(순발력과 핸들링), 컨택(타격 정확도), 어깨(송구 능력)을 기준치 이상으로 갖춰야 한다.
하지만 100레벨이 되어도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포인트를 모두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 4회차, 지난번에 얻지 못한 재능을 얻게 되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성장형 타이틀? 그래 이거야!’
스탯과 다르게 시스템에서 재능은 일종의 업적과 같은 개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2, 3회차 회귀를 했을 때는 얻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분명 이번에 압도적인 활약을 보이며 새로 얻게 된 것임이 틀림없었다.
일례로 ‘내가 홈런왕이다’의 개방 조건은 바로 고교 시절 야구 대회에서 홈런왕 세 번 타기였다.
‘그라운드의 대도’ 역시 개방 조건이 고등학교 시절로 한정되어 있었고.
‘이러니까 내가 못 찾았지…….’
성장형 타이틀은 목인방의 통과자나 평원을 달리는 전령처럼 1회성 능력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타이틀이 성장하며 점점 더 큰 스탯을 부여해 주었다.
이번에 얻은 성장형 타이틀 두 개 중, 대호가 더 큰 가치를 둔 것은 ‘그라운드의 대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홈런왕이다’는 힘을 크게 성장시켜 주기는 했지만, 반대급부로 컨택을 내리는 디메리트를 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라운드의 대도는 달랐다.
고작 1레벨임에도 민첩, 순발력, 컨택, 세 가지 스탯을 올려 줬다.
‘내가 홈런왕이다는 홈런왕을 받을수록 레벨이 오르고, 그라운드의 대도는 도루, 어시스트, 호수비를 할 때마다 경험치가 오르네. 시즌에 한 번 있는 홈런왕과 다른 기록들의 차이인가?’
성장형 타이틀의 만렙이 몇 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대호는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에 기뻐했다.
시간이 지나면 올 스탯 80을 달성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호의 목표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좋았어.’
시스템과 레벨 업만으로 과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되었던 대호였지만, 성장형 타이틀의 발견 이후 다시 한번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덜컹!
문이 열리고 인스트럭터 존 밀러가 들어왔다.
“대호우! 휴식 끝이다. 다시 훈련 시작이야.”
“알겠습니다.”
존 밀러의 훈련 개시라는 말에 대호는 힘차게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식 시간 고민을 하던 사이, 어느새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운동을 하러 나가는 대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훅! 훅!”
훈련을 시작하기 전 가볍게 몸을 풀며 몸에 예열을 하였다.
“대호우! 이번에는 수비 훈련이야!”
존 밀러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펑고를 준비했다.
따앙!
펑고를 위해 전용 배트를 쥔 존 밀러는 대호가 수비 위치에 자리하자 공을 타격했다.
높게 뜬 플라이 볼을 보냈는데, 처음 시작이니 대호의 위치인 중견수 자리에서 몇 걸음 움직이지 않고 잡을 수 있었다.
따악! 따악!
플라이 볼을 시작으로 그라운드 볼까지 다양한 타구를 치며 대호의 훈련을 도왔다.
다다다다!
2루 뒤, 짧은 그라운드 볼이 날아오자 대호는 타구를 듣고 빠르게 달렸다.
보통 선수들이라면 원 바운드로 안전하게 캐치할 공이었지만, 대호는 자신의 주력을 믿고 노 바운드 캐치로 아웃 처리했다.
“좋아!”
대호는 최대한 노 바운드 캐치를 하며 수비 능력을 점검해 보았다.
그런 대호의 모습을 보던 존 밀러의 마음속에서 정대호라는 선수의 가치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