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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28화 (28/209)

28화

대호가 세계청소년야구대회를 다녀온 뒤로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가장 많은 곳은 역시나 국내 프로야구 구단들이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표명하며 고교 드래프트에 참가를 하지 않았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연락을 한 것이다.

하지만 대호는 이런 전화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이번 생의 목표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으로 잡은 상태였으니까.

‘여기서 한국 프로야구단이랑 계약해 봤자, 3회차의 반복일 뿐이지. 지금은 그냥 내 목표를 위해서 달리는 게 맞아.’

FA까지 가지 않고 포스팅 제도로 진출하는 것 역시 야구 인생을 처음부터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니까.

사실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 구단의 높은 계약금 때문에 곧바로 메이저 행을 고르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타지 생활의 어려움, 메이저로 콜업 되지 못하고 더블 A나 싱글 A에서 맴돌다 한국으로 리턴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 대호 같은 케이스가 더 적은 게 사실이었다.

‘근데 그건 실력 없는 애들이나 그런 거고. 난 다르지.’

한국 프로야구단 다음으로 많이 연락이 온 곳은 에이전트들이었다.

국내 에이전트는 물론이고,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이전트도 대호에게 연락을 주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도움을 주겠다는 이야기로 접근한 것이다.

하지만 대호는 이미 3회차에 많은 에이전트들을 경험했다.

국내 에이전트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 다수의 메이저리거를 거느린 에이전트도 있었다.

‘확실히 에이전트가 있으면 계약이 편하긴 해. 이건 고려할 만하지. 하지만… 없다고 해서 내게 불리한 것도 없어. 어차피 난 계약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잘 알고, 첫 계약 정도는 에이전트를 안 껴도 충분하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중에 에이전트를 둘 계획은 있었기에 대호는 적당한 말로 우선 전화번호만 챙겨 두었다.

“많이 기다렸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언제 다가왔는지 정대일이 옆에서 물었다.

“아니요.”

“그래. 일단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준우승 축하한다. 그리고 MVP와 홈런왕 수상도.”

정대일은 대호를 보자마자 곧바로 그가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거둔 결과물을 축하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수상을 축하해 주는 정대일의 말에 대호는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하였다.

“그래.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냐?”

느닷없이 연락을 받고 나온 대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형, 전에 그랬죠?”

대호는 대일을 향해 형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질문했다.

“그래. 뭐든지 물어봐.”

“오클랜드에선 절 어느 정도로 판단하고 있어요?”

오클랜드의 정보원인 대일을 상대로 대호는 자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로 책정되어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만약 대일이 오클랜드의 정식 스카우터였다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일은 오클랜드의 정식 스카우터가 아닌, 그 밑에서 정보를 물어다 주는 정보원이었다.

즉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란 소리다.

“음… 나도 구단 내부에서 정확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리란 건 맞지. 아니, 눈이 있으면 그 정도는 당연한가? 하하!”

대일의 대답을 들은 대호는 눈을 반짝였다.

“그럼 저와 작년 국제 유망주 최대어인 히데오 소이치로와 비교를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저를 그 정도로 봐줄까요?”

대호는 본론을 꺼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히데오 소이치로를 언급하며 질문을 하자 대일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클랜드 내부적으로 대호와 히데오 소이치로를 비교하는 대화를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 * *

3개월 전.

오클랜드 슬랙스의 아시아 담당 스카우터인 조나단 샌더스는 단장인 조엘 헌트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메일 보냈습니다. 확인하시고 전화 주십시오.”

정보원인 정대일이 수집한 자료를 구단 양식에 맞게 고친 뒤 메일을 보냈다.

자신이 아시아 담당으로 파견된 이후 두 번째로 발견한 대어다.

비교를 하자면 작년 국제 유망주 중 최대어였던 일본의 히데오 소이치로에 버금가거나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다.

다만 발전 가능성은 히데오 소이치로보다 조금 전 메일을 보낸 정대호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조나단이 그리 판단하는 근거는 바로 스포츠 선수의 기본인 하드웨어와 그 발전 속도에 있었다.

정대호가 188㎝의 키에 몸무게 90㎏ 정도인 것에 비해, 히데오 소이치로의 키는 대호 보다 8㎝ 작은 180㎝에 78㎏의 몸무게를 가지고 있다.

히데오 소이치로가 일반인이었다면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무게라고 할 수 있었지만, 프로 운동선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은 키와 몸무게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보여 준 지표는 히데오 소이치로가 더 높은 건 맞지. 잠재력은 정대호가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스카우터인 그가 할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지금은 히데오 소이치로가 근소한 우위,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조나단은 최종적인 판단을 단장인 조엘에게 자료를 보내 결정하려고 한 것이다.

“조나단, 조나단이 판단하기에는 어때요? 대호가 히데오보다 낫다고 보세요?”

대일은 오클랜드로 메일을 보낸 조나단을 보고 물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래도 한국인인 대일은 히데오 소이치로보다 대호 쪽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있었지만, 조나단의 판단은 다를 수 있었다.

“흠… 지금까지 조사한 정보만 가지고 판단을 한다면, 히데오 쪽이 좀 더 우위라고 할 수 있지.”

조나단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일이 속으로 실망한 것도 잠시, 아직 조나단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가 없어.”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일은 조나단이 어떤 근거로 미래를 알 수 없다고 하는지 더욱 궁금해져 그가 좀 더 이야기를 풀어 놓기를 기다렸다.

피식.

조나단은 대일이 어떤 마음에서 물어보는지 다 안다는 듯 살짝 피식거리더니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봐 대일, 히데오 소이치로의 신체 조건이 어떻지?”

“어… 분명 신장 180㎝에 몸무게 78㎏이었죠.”

“그럼 정대호는?”

“188㎝에 90㎏… 아!”

대일은 그제야 조나단이 무슨 근거로 이야기했는지 알아챘다.

“물론 운동선수가 뛰어난 성적을 보일 수 있는 조건이 하드웨어가 다는 아니지. 하지만 같은 시기에 비슷한 성적을 거둔 두 선수의 조건이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어떨까?”

“…분명 대호 쪽에 좀 더 보너스 점수를 주겠네요.”

“그렇지.”

“하긴, 말이 8㎝ 차이지 조금 기준을 내려서 생각하면 170과 180의 싸움이네요? 게다가 운동량을 생각하면 몸무게도 근육의 차이가 클 테고요.”

“그래. 몸집이 크면 둔하다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도 있지만, 프로 레벨의 신체 조건에서 큰 덩치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수단이지. 공격 능력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고.”

조나단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현재로써는 많은 지표를 보여 준 히데오 소이치로가 조금 더 우세할지 모르지만,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하드웨어가 더욱 우수한 대호 쪽이 우세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 * *

대일은 잠시 3개월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나서 씨익 웃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 왜 조나단이 그런 말을 했는지 더 이해가 가네.’

“여름까지는 너보단 히데오 소이치로가 좀 더 우위에 있다는 판단을 내렸어.”

“그래요? 그럼 지금은 어떨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협상을 벌여야 할 지금, 자신의 가치를 알고 싶었다.

물론 스스로는 절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히데오 소이치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타인이 봤을 때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

꿀꺽.

대호는 4회차가 되어 처음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듣게 될 기회가 오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하아… 모르겠어.”

대일의 답은 그것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대호로서는 맥 빠지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대일도 변명할 게 있었다.

작년 이맘때의 히데오 소이치로와 비교하면 대호가 조금 더 위라고 말하겠지만, 대호가 성장을 한 것처럼 히데오 소이치로 역시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성장폭도 어마어마했다.

‘분명 40인 확장 로스터에 든 이후 10경기 32타수 13안타 3홈런에 도루도 다섯 개 였나? 첫 콜업 된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정도였지.’

비록 스몰 샘플이지만, 타율로 환산하면 무려 4할 이상인 0.406이나 되었다.

이제 고작 마이너리그 1년차 유망주가 펼친 활약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호성적이었다.

만약 이렇게만 간다면 내년에는 마이너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 입성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지. 대체 어떤 구단이 메이저 첫 콜업에서 4할을 넘긴 타자를 마이너에 방치하겠어? 팬들한테 계란 맞을 일 있나.’

특히나 외야가 약한 보스턴이라면 당장이라도 주전 외야수를 히데오 소이치로로 교체하거나 정말 낮아도 백업 멤버로는 사용할 게 분명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대일의 대답을 듣고 난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비록 지금까진 자신보다 히데오 소이치로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실망하기에는 아직 일렀으니까.

어차피 자신은 현재의 히데오 소이치로와 비교를 당하는 것이 아닌, 작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를 치른 히데오 소이치로와 비교 당할 것이기에 방금 전 대일의 대답은 대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정도로만 평가 받아도 지금 내 가치가 어떤지는 충분히 알 수 있어.’

비록 명확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목적은 모두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형은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실 거죠?”

용건을 마친 대호는 대일의 다음 행선지를 물어보았다.

“그렇지.”

“제가 앞으로 여러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 협상을 위해 만나게 되겠지만, 뭐…….”

대호는 오클랜드의 정보원인 대일에게 은근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히데오 소이치로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계약 기준이 그에게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계약금의 마지노선도 정해지는 셈이었다.

물론 그 금액이 오클랜드가 히데오 소이치로의 가치로 제시한 500만 달러인지, 아니면 보스턴이 제시한 700만 달러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언급을 한다는 것은 메이저리그 구단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기에 일부러 피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면도 보여 주었다.

그런 대호의 이야기에 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들었다.”

그러고 나서 대일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대호는 이제 겨우 고등학교 3학년일 뿐이다.

그런데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마치 협상을 많이 해 본 노련한 협상가처럼 보였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그러했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행동이 매치가 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이 대일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대호 너, 에이전트는 구하지 않고 직접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할 거냐?”

대일은 지금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에이전트의 부재 때문이라고 판단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어차피 메이저리그 계약도 아니고 고작 국제 유망주 계약일 뿐이잖아요. 괜히 돈 낭비 할 필요가 있나요?”

에이전트를 통해 계약을 하게 되면 보통 3~5%정도의 수수료를 에이전트 비용으로 계약된 곳에 지불해야 한다.

2회차에 경험한 국내 FA,그리고 3회차에 여러 번 메이저리그에서 에이전트와의 계약을 체험한 대호로서는 지금 당장은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마이너리그를 경험하고 정식으로 메이저리그 콜업이 된 이후, 정식 계약을 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만 말이다.

‘지금으로써는 있으면 좋지만, 그게 내가 수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계약할 가치가 있냐고 물으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이번 계약은 에이전트 없이 치를 예정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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