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2030 세계청소년 야구대회 준우승.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이번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출전한 청소년 야구 대표 팀의 귀국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이는 계속된 부진으로 침체일로를 걷고 있던 아마 야구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주역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번 청소년 야구 대표 팀이 비록 결승에서 미국을 상대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최근 역대 전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대만을 2라운드에서 콜드게임으로 이기고, 또한 세계 아마 야구에서 미국과 함께 최강으로 불리고 있는 숙적 일본을 준결승에서 꺾은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사실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는 시작부터 큰 기대를 가지지는 않아 TV 송출이 아니라 몇몇 사이트에서 중계된 것에 불과했지만, 숙적 일본을 꺾었다는 사실만큼은 널리 알려졌고, 대표 팀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더군다나 청소년들이니 만큼 이번 황금 세대의 활약 덕분에 향후 10년은 걱정 없으리라는 기대도 한몫했고 말이다.
* * *
청소년 대표팀이 해산되고 학교로 돌아온 대호를 가장 먼저 환영해 준 것은 영광고 야구부 감독인 조금산이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처음 인연이야 좋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아니, 자신이 능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산은 조금씩 달라졌다.
대호 역시 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고, 조금산도 자신을 적극 기용하면서 실적을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산 감독과는 원만한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조금 욕심이 많기는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도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제는 볼 날도 몇 달 남지 않았으니까.’
세계청소년야구대회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10월이 되었다.
곧 드래프트 지명이 이루어 질 것이고, 뽑힌 선수들은 지명된 팀으로 가서 훈련하고, 나머지도 대학 진학 등으로 바빠질 테니 3학년은 이제 대호만 남게 된다.
“감독님도 축하드립니다.”
자신에게 축하를 건네는 조금산 감독을 향해 대호도 축하를 전했다.
‘설마 내가 빠진 상태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지는 몰랐어. 다들 성장했구나.’
영광고는 에이스인 정대호 없이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 이유는 그동안 선수들의 실력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향상된 것도 있지만, 상위 랭크에 있는 우승 후보 고교들도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선수들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네 도움 덕분이다.”
뭔가 감성적으로 변한 것인지, 조금산 감독은 대호의 축하 인사에 공을 돌려주었다.
얼굴 표정도 무언가 쑥스러운 것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
‘솔직히 2학년 때까지의 나는 별로 도움이 안 되긴 했지. 그렇다고 뒷돈이나 받아먹는 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이전까지 별 영양가가 없던 정대호라는 선수는 2학년 2학기 말에 회귀를 하며 완전히 변하게 되었다.
조금산의 시선이 바뀐 것도 광영고와의 첫 경기 이후.
그러고 나서 3학년이 된 이후로는 완전히 영광고 야구부의 중심이 되었다.
감독의 암묵적인 허락 하에 동기들을 시작으로 도움을 청하는 이들은 다들 도와주었고, 상대방의 분석, 작전 수립 등 다방면에서 도움이 되었으니까.
또한 개인의 성적만 좋아진 게 아니라 야구부 전체적으로 기여한 것은 곧바로 결과로 드러났다.
‘솔직히 3회차랑도 비교하기 힘든 성적이지. 고만고만한 실력의 야구부에서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청룡기에서 모두 우승을 넘볼 만한 학교로 환골탈태 했으니까.’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다 보니, 올해 초만 해도 영광고 전체 회의에 불려가 존폐 위기, 혹은 감독 경질의 위기에 놓여 있던 조금산 역시 어깨를 으쓱일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KBSA에서도 주목하고 있었고.
대호가 잠시 지난 1년을 회상하고 있을 때, 조금산이 말을 걸었다.
“그래. 이젠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건 확정지었냐?”
조금산 감독이 가장 궁금해하던 점이었다.
“예. 전에도 잠깐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제 목표는 메이저리그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겁니다. 그것도 첫 턴에요.”
“음…….”
대호의 대답을 들은 조금산은 저도 모르게 낮은 침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의 말이 심상치 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학기 초부터 공공연히 떠들던 대호였다.
조금산이 그 이야기를 들은 건 그냥 아이들끼리 떠드는 것을 주워들은 것뿐이었지만, 당시에도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냥 프로에 진출하고 싶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다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명예의 전당은 쉽게 입에 올리기 힘든 곳이니까.
그리고 여름 합숙을 거쳐 대호의 활약을 보며, 그는 대호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누구보다 일찍 나와서 달리기와 스트레칭을 하고, 훈련이 다 끝난 늦은 시간에도 자율적으로 배팅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당연한 거지.’
물론 훈련만 많이 하고 실력 없는 선수도 존재하나, 대호의 실력을 보면 그런 일말의 걱정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런 결과물들이 쌓여 이번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했고, 정대호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기록을 쌓으며 대회 MVP와 홈런왕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런 대호가 아니면 누가 메이저리그에 도전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대호가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보는 듯하자 조금산 감독은 더 이상의 판단을 포기했다.
‘내가 가늠할 그릇이 아니다.’
조금산 감독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새겨졌다.
“그래. 너라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조금산 감독은 그냥 이런 덕담이나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명예의 전당을 노린다는 선수에게 무어라 해 줄 조언도 딱히 없었고.
“감사합니다.”
“그래. 그만 나가 봐라!”
덕담을 주고받은 조금산과 대호는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덜컹!
‘어?’
막 감독실을 나가려던 대호는 문을 열다 마침 들어오려던 안기준 코치와 마주쳤다.
“어?”
“다녀왔습니다.”
서로 마주하고 놀란 안기준 코치의 반응에 대호가 먼저 인사를 하였다.
비록 관계가 원만하진 않지만, 황금사자기 이후 더 이상 자신을 터치하지 않는 안기준 코치로 인해 대호의 야구부 생활에 힘든 점이 없어졌기에 이제는 그를 경계하진 않았다.
서로 데면데면하고 지나갈 지경이니, 이제 와서 굳이 척질 필요성도 없기도 했다.
“그래, 왔냐?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준우승과 MVP, 홈런왕 수상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안기준 코치의 축하 인사에 대호는 편안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 모습에 안기준은 잠시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그냥 넘겼다.
“나가는 길이면 애들 모여 있으니까 인사나 하고 가라.”
안기준은 곧 있을 전국체전에 관한 의논을 하기 위해 감독을 찾아온 것이기에 더 이상 입구를 막고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다.
“예,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직까지는 대호의 소속이 영광고 야구부였지만, 이제 조금만 있으면 프로 구단과 계약을 하고 그곳에 가게 되리라.
저벅저벅.
먼저 발걸음을 뗀 것은 감독실을 나가는 대호였다.
그런 대호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본 안기준은 입맛이 쓴 것을 느꼈다.
‘욕심을 조금만 줄일 걸…….’
학기 초, 조금산 감독은 그에게 대호와 대립각을 새우지 말라고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옹졸한 안기준으로서는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과 자존심 때문에 조금산처럼 대호를 이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구단 중 하나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스카우터가 찾아왔을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라도 생각을 고쳐먹고 관계 개선을 하려고 했으면 어땠을까?’
안기준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미 물을 엎질러졌고 버스가 떠난 후였다.
물론 대호에게 불합리한 일을 시키는 것은 그만두었지만, 자신의 고집 때문에 그저 데면데면한 관계로만 지냈다.
그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골든 타임을 날려 보낸 사이, 대호는 바람을 탄 연처럼 훨훨 날아갔다.
* * *
학교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 온 대호는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대호 너, 정말로 메이저리그 가는 거야?”
대호에게 말을 건 것은 얼마 전 신인 아이돌로 데뷔를 한 누나 정미호였다.
“응!”
대호는 누나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어디? 계약금은 얼마나 준대?”
미호는 동생 대호가 자신의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자마자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해진 곳은 없어.”
“그게 뭐야?”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는지, 미호는 급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씨익.
대호는 그런 누나를 보며 살짝 웃었다.
아직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들의 성격을 잘 알기에 대호의 미소를 보고 조용히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몇몇 구단에서 접촉이 있기는 했지만, 템퍼링 문제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어.”
“아!”
야구 선수의 가족이다 보니, 누나 미호도 템퍼링이란 야구 용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게 정말이야?”
“응. 오클랜드에서 왔었어.”
솔직히 템퍼링 제도가 있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는 프로 구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들켰을 때의 파장이 적진 않지만, 우수한 유망주를 미리 선점했을 때의 효과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시도할 만 했으니까.
또한 운이 좋다면 귀중한 지명권도 지킬 수 있었다.
‘게다가 나처럼 미리 몇 회차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신인 고교 선수라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지. 구단이 뒤로 찔러 볼 만큼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해야 하나?’
다만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을 노리는 대호는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프로 구단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는 편이었다.
떡고물을 원하던 안기준 코치로부터 여러 번 시비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묵묵히 견뎌 냈다.
‘국내 구단은 쳐다볼 것도 없고.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는…….’
미호의 질문에 대호도 밥을 먹다 말고 잠시 멈춰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성적이 좋으니까 메이저리그 계약은 확실해.”
생각을 정리한 대호는 그렇게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메이저리그 계약은 확실하다 못을 박듯 대답을 하였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부모님의 표정도 그 말을 듣자 확연히 밝아졌다.
누나인 미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대호의 가족은 쪼들리는 집안 사정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한때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무리한 투자로 인해 자금 경색의 상황에 놓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영 실적 악화로 부도를 맞았다.
그로 인해 대호네 가정 형편은 급격히 쪼들리게 되었다.
부도로 인해 빚더미에 앉게 된 집안은 아버지가 한 달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엄마가 파트타임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춤과 노래에 재능 있는 누나 미호가 일찍이 연예 기획사에 픽업되며 연습생이 되었고, 데뷔 조에 들면서 돈이 들어가지 않아 숨통이 틔었다.
그러다 올 초에 정식 데뷔를 했고, 정산을 받게 되면 집안에 더욱 도움이 되리라.
그런 와중에 대호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가족 모두들 표정이 밝아진 것이다.
‘뭣 모르는 인간들은 우리 가족들이 내 메이저리그 계약금에만 관심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고, 또한 자신이 야구 선수로 성공한 2회차와 3회차를 경험한 대호였다.
큰돈이 생기면 변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적어도 정대호의 가족은 그 대다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음… 그리고 아마 계약금도 꽤 받을 수 있을 걸? 생각하는 것보다 높을 거야.”
대호는 마치 지나가는 말인 것처럼 계약금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미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연한 의문을 표시했다.
“설마 템퍼링 왔을 때 금액도 얘기해 준거야?”
대호는 누나의 연이은 질문을 듣고 다시 한번 씨익 웃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정보원으로 있는 정대일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작년, 일본의 최대 유망주인 히데오 소이치로와의 계약을 놓친 오클랜드가 자신을 두고 꼭 계약할 거라며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3회차에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히데오 소이치로, 그가 메이저리그 구단인 보스턴 블루삭스와 계약한 금액이 무려 700만 달러였다.
대호는 자신의 몸값을 적어도 500만 달러로 상정했다.
이는 자신의 라이벌이 오클랜드에 제안을 받은 금액이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고교 야구를 평정하고,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일본을 우승으로 이끈 히데오 소이치로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 수도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메이저리그 스카우터, 혹은 메이저리그 구단 관계자)들이 판단하는 것이기에 대호로서도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대호는 자신의 실력이 그와 비교했을 때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스템으로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또 그동안 자신이 이룩한 대회 성적을 보면 작년의 히데오 소이치로를 능가했으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히데오 소이치로 보다 적은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