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8화 (18/209)

18화

부우웅!

탁!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호는 차에서 내리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조금산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집안 형편 때문에 야구부에 후원금 한 푼 내지 못하는 자신을 무시로 일관했던 조금산 감독이었지만, 겨울방학 합숙 훈련 이후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 자신을 다른 야구부원들보다 훨씬 더 살뜰하게 챙겼다.

대호는 이미 세 차례나 회귀를 하다 보니, 조금산 감독이 어째서 이렇게 잘해 주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뭐, 어차피 그걸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감독이 내 실력과 가정 형편 때문에 멀리했던 것처럼, 나도 유용하게 이용하면 돼. 딱 거기까지인 사이지.’

어차피 사람이란 것이 다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 학교를 대표해서 출전하는 것이니 만큼 좋은 성적 내길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부웅!

덕담을 하고 떠나는 조금산 감독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대호는 KBSA에서 알려 준 소집 장소인 CH베이스볼 파크 안으로 들어갔다.

CH베이스볼 파크는 1990년대 말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이며, 최초로 메이저리그 100승을 달성한 투수인 신찬호 선수가 은퇴를 하고 돌아와 설립한 야구 전문 훈련장이다.

야구에 재능이 있는 선수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 사제를 털어 건립한 이곳 CH베이스볼 파크는 그의 이름인 찬호(CH)의 앞 글자를 따 명명하였다.

“휴, 새롭네.”

사실 대호는 이곳 CH베이스볼 파크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3회차에서도 경험을 해 봤으니까.

처음 회귀를 했던 2회차에는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파견되는 청소년 대표로 선출되지 못했지만, 3회차에는 당당히 뽑힌 경험이 있었다.

“이제 오냐?”

CH베이스볼 파크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이들이 대호를 맞았다.

“최태경, 오랜만이다.”

대호를 맞이한 사람은 바로 광주상고의 포수 최태경이었다.

광주상고의 최태경과는 3월에 있었던 뉴월드배와 5월에 있었던 황금사자기에서 격돌하며 친해졌다.

“경제도 오랜만이네.”

최태경의 옆에는 광주상고의 막강 배터리인 김경제도 있었다.

저 두 사람은 3회차에도 당연히 대표로 뽑혔고, 그럴 만한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그리고 대통령배 우승 축하한다.”

“맞아, 나도 그거 축하해! 아, 그리고 너 대통령배에서도 홈런왕 됐더라? 그것도 축하!”

광주상고는 대통령배에서 안타깝게 8강 탈락을 하였다.

당시 에이스 김경제가 손목 부상으로 인해 팀을 이탈한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김경제만 있었더라면 결승 상대는 성남고가 아니라 광주상고였을지도 몰랐다.

“고마워. 그런데 다른 사람은?”

대호는 휑한 주변 풍경을 보며 두 사람에게 아직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소집 시간까진 아직 30분 정도 더 남긴 했지만, 주변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김경제와 최태경 뿐이었으니까.

“응? 광영고 최윤열하고, 부산정보고 이기동, 나연호. 그리고 휘성고 나지만이랑 김일권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어. 또…….”

최태경은 먼저 소집 장소로 들어간 이들을 알려 주었다.

“내가 가장 늦게 온 건가?”

시간을 확인한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니. 아직 안 온 애들도 많아!”

“그래? 일단 들어가자.”

로비 앞에서 서 있어 봐야 나올 것도 없기에 대호는 소집 장소인 2층 대회의장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먼저 온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이미 대회에서 몇 차례 만나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아니, 다들 전생에 만나 본 이들이라고 칭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 * *

시간이 흐르고 KBSA 19세 이하 부 상무인 최태원이 들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 모였나?”

“예!”

최태원 상무의 물음에 아이들은 모두 힘차게 대답을 하였다.

“반갑다. 난 KBSA 19세 이하 부서 담당인 최태원이라 한다. 그리고…….”

최태원은 자신의 소개를 하고는 이곳에 모인 청소년 대표들에게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이들을 이끌어 갈 감독과 코치들을 소개했다.

코칭스태프뿐만 아니라 함께 세계청소년야구대회가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까지 동행할 프런트 직원까지 소개하는 모습을 보니, 협회가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2030년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차출한 청소년 대표는 사실 황금 세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최태원은 내심 적어도 4강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야구의 정점에 있는 미국이나 아마 야구의 강국인 쿠바, 그리고 작년 우승팀인 일본.

그 외에 경계할 팀은 2020년대 후반부터 야구 강국으로 떠오른 호주와 중남미 전통의 강호인 도미니카 공화국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야구 강국들이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참가하지만, 올해의 한국 대표들의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특히나 세 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홈런왕을 차지한 정대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정대호, 저놈은 단순히 홈런만 잘 치는 거포형 타자가 아니야.’

최태원의 생각대로 대호는 파워(장타력), 스피드(주력), 컨택(타격 정확도), 수비, 송구 능력, 이렇게 다섯 가지 능력이 모두 뛰어난 5툴 플레이어였다.

특히나 대호의 파워와 수비 능력은 당장 프로에 가져다 놔도 상위에 속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렇다고 주력이나 컨택, 송구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주력은 팀 내에서 그린 라이트를 받을 정도로 뛰어났으며, 타격 정확도는 고교 리그에서 7할을 달성하고 있는 타율만 봐도 더 할 말이 없었다.

또한 마지막 송구 능력의 경우, 대호가 황금사자기나 대통령배에서 매 경기 어시스트를 한 개 이상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매우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내심 이 정도의 타자라면 작년에 일본이 배출한 천재인 히데오 소이치로에게 비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유망주였다.

‘이 아저씨 눈빛이 뭐 이리 뜨거워!’

기대감을 품은 최태원을 보며 대호는 지난 회차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했다.

* * *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 팀은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플로리다 공항에 도착했다.

“와아! 날씨 죽인다.”

공항을 빠져나온 일행 중 광주상고의 최태경은 말로만 듣던 플로리다의 맑은 날씨에 감탄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네. 플로리다 쥑이네!”

최태경의 말을 받은 것은 그 옆에 있던 부산정보고의 이기동이었다.

그는 최태경과는 달리 공항 근처의 미인들에게 눈길이 팔린 상태였다.

시원시원한 옷차림 때문에 이기동 말고도 다른 팀원들 역시 주변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자자, 빨리 움직이자.”

아이들의 어수선한 모습에 인솔자인 추인수 감독이 급히 진정시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옙!”

“네!”

현역 시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하고, 말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활약한 추인수는 현역 은퇴를 한 뒤 자신이 활약한 메이저리그 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나름대로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 가던 와중, 한국으로 귀국해 후진 양성에 힘을 쏟는 중이었다.

그러다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를 맞아 KBSA의 협회장 이상협의 권유로 대표 팀 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할 테니까 오늘은 가벼운 몸풀기로 훈련을 마치고 쉴 테니, 어서 가자!”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다 보니 장시간 비행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 * *

WBSC(세계야구소프트볼 총연맹)이 주관하는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정식 명칭은 WBSC 18세 이하 야구 월드컵.

매년 WBSC에 속한 회원국이 돌아가며 대회를 열었는데, 이번 2030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개최되었다.

대회 출전국은 주최국 미국, 작년 우승국 일본을 비롯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 캐나다, 베네수엘라, 호주, 한국, 대만, 네덜란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총 열두 개 팀이 출전을 하였다.

이중 상위 네 팀이 시드 배정을 받아 1라운드 부전승으로 2라운드에 진출한다.

대회 출전국의 숫자가 적다 보니, 야구 붐을 위해 예전에는 다양한 방식이 채택이 되어 경기를 치렀지만, 현재는 고전적인 라운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 * *

WBSC는 대회 주최를 하면서 출전국 임원은 물론이고 선수들을 위한 숙소와 훈련장을 마련해 주었다.

“와! 호텔 좋다.”

한국 대표팀에 배정된 호텔은 3성급의 호텔이었지만, 선수들은 이 정도에도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 경기를 치를 때는 호텔이 아닌 모텔에 투숙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3성급 호텔에 투숙하는 것도 감지덕지였던 것이다.

“다른 나라 대표들도 왔을 테니까, 충돌하지 말고 조심해라!”

호텔에 도착하고 흥분한 아이들로 인해 코칭스태프는 계속해서 긴장 상태였다.

한창 혈기가 방장할 때가 아닌가?

작은 불씨만 생겨도 크게 타오를 나이였다.

그러니 최대한 문제가 발생하기 전 미리 단속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튀어나왔다.

“ダサいジョセンジンがうるさいね!(촌스러운 조센징이 시끄럽군!)”

느닷없이 들린 일본어로 인해 아이들의 입이 닫혔고, 그러면서 일본어가 들린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뭐? 조센징!’

모두가 들었다.

다른 말은 못 알아들었다고 해도, 조센징이라며 한국인을 비하하는 단어는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국 대표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인상을 썼다.

“今、何て言ったっけ?(방금 뭐라고 했지?)”

자신들을 향해 비하하는 말을 내뱉은 일본인을 보며, 대호가 소리쳤다.

“어? 대호 너, 일본어도 할 줄 알아?”

대호의 능숙한 일본어에 최태경이 놀라 물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무시한 일본인에게 화가 나 있는 대호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なんで返事がないんだろう?(왜 대답이 없지?)”

자신의 물음에 대답이 없자, 대호는 인상을 쓰며 방금 전 떠들던 일본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에 놀란 그 일본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192㎝의 큰 키에 구릿빛으로 그을린 대호의 얼굴은 유명한 사찰의 입구를 지키는 무시무시한 야차의 모습을 보는 듯 강렬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믿고 함부로 말을 한 그 일본인은 당황하고 위축이 되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そこはどうしたの?(거기 무슨 일이야?)”

호텔 로비가 소란스러워지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일본인이 나타나 소리쳤다.

“이 사람이 우리들을 보며 비하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따지는 중입니다.”

대호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현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뒤늦게 나타난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처음 소란을 일으킨 일본인을 보며 물었다.

“야마다 군! 지금 이 말이 사실인가?”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토미야스 감독의 물음에 소란을 일으킨 야마다란 사내가 대답을 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소란스러워서…….”

야마다 토루 행정 부장은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누가 들어도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최태경이 호텔 로비로 들어서며 잠시 감탄성을 지르고 또 다른 아이들도 흥분을 하기는 했지만, 그리 소란스럽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야마다 토루는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우리를 조센징이라 비하하는 말을 할 근거가 되나?”

옆에서 듣고 있던 대호는 변명을 하는 야마다를 보며 따지듯 물었다.

“아직도 일본인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당신들 식민지였던 조선인줄 알아? 정신 차려. 당신들은 90년 전에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했고, 우린 식민지에서 독립을 했어! 알아?”

지금은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앞에 있는 야마다처럼 아직도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아래라 보며 비하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

그러한 것을 대호는 콕 찍어 경고를 한 것이다.

작지만 힘이 실린 대호의 말에 이를 정면으로 받고 있던 야마다는 물론이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도 순간 흠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을 하는 대호에게선 평소 느껴보지 못한 섬뜩한 느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맹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노출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군.”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은 저도 모르게 사과 비슷한 말을 하였다.

‘제길. 미안하면 미안한 거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뭐야? …그렇지만 여기서 소란을 더 피워 봤자 우리도 피해를 보겠지. 일단은 여기서 마무리 짓자.’

대호는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감독님이 사과를 할 필요는 없지만, 이곳에서 일본을 대표하시는 분이시니 받아들이겠습니다.”

대호는 일본 청소년 대표를 이끄는 토미야스 감독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이쯤에서 일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한편, 대호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선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의 표정은 조금 전 사과의 말을 건넸을 때와는 전혀 딴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히익!’

바뀐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의 표정을 본 야마다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이 내가 조센징에게… 가만 안 두겠다.’

겉으로는 인자한 사람 같지만, 사실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은 야마다 이상으로 극우 성향을 띠는 사람이었다.

만약 세계청소년야구대회가 이곳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개최가 되었다면 아마 그의 반응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었기에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것을 꺼려하여 사과를 한 것뿐이었다.

겉으로야 사과를 했지만, 그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러한 창피를 준 야마다와 또 그 건방진 한국인을 용서하지 않겠다 다짐을 하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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