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3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차가운 겨울의 냉기가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영광고 야구부의 훈련은 대부분 실내 연습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딱! 딱!
“지호야! 좀 더 간결하게!”
지금 타석에는 영광고의 테이블 세터 중 한 명인 지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따악! 따악!
광영고와 연습경기를 치른 지도 3주가 지났다.
하지만 지호는 당시 광영고 에이스 최윤열에게 완벽하게 밀린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바뀐 투수에게서는 안타를 만들어 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정대호. 저 녀석도 최윤열을 상대로 2타수 2안타… 아니, 홈런 두 개를 쳤지.’
아무리 최윤열이 고교 최고의 에이스 중 한 명이라 불리긴 하지만, 작년까지 별 볼일 없던 대호도 홈런 두 개를 쳤는데, 1학년 후반기부터 지금까지 주전으로 뛰었던 자신이 무안타라니.
게다가 맞대결 결과는 삼진 두 개였다.
지호는 이것이 무척이나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체면 불구하고 시합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대호를 찾아가 자신의 타격에 대해 물었다.
― 그… 오늘 내가 최윤열의 공을 하나도 못 쳤는데, 그 이유가 뭐냐?
― 그거? 네가 최윤열의 명성에 겁을 먹어서 그래.
― 뭐? 내가 겁먹었다고?
― 아냐? 긴장한 게 눈에 훤하던데.
― 그런데 넌 어떻게……?
― 나야 그 녀석 공에 겁먹지도 않았고, 또 충분히 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 야, 정대호. 넌 그렇게 빠른 공이 무섭지 않다고?
― 아무리 빨라 봐야 같은 고등학생의 인데 뭐.
따악! 따악!
대호의 조언을 통해 지호의 방망이 정중앙에 타구가 맞아 들기 시작했다.
“나이스!”
멀리서 울리는 대호의 함성을 들으며 지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대호 녀석 말을 듣고 확실히 나아졌어.’
박지호는 원래 타격 센스가 꽤나 있었고, 합숙 기간 동안 대호의 조언을 받으며 타격 폼을 바꿨다.
그런데 그 작은 조언이 박지호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기존에도 영광고의 테이블 세터의 한 축으로 괜찮은 실력이었지만, 140㎞가 넘어가는 속구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약점이 존재했다.
그랬기에 최윤열과의 대결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를 대비한 합숙에 들어가고 고작 3주.
그 짧은 기간에 약점을 극복한 것이다.
쉬익!
박지호는 145㎞로 설정된 배팅 머신에서 날아온 공을 힘차게 때렸다.
딱!
‘이제는 최윤열, 그 녀석… 아니, 더 대단한 녀석이랑 맞붙어도 떨지 않아.’
그렇게 연습을 마치자 코치 안기준이 말했다.
“지호, 이제 나오고 재환이 들어가!”
그러나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는 안기준 코치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제길, 마음에 안 들어.’
현재 영광고 야구부의 타격 능력은 3주 전 광영고와 연습 경기를 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럼에도 안기준으로서는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는데, 그 타격 능력 향상에 기여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대호였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친선경기 이후 지호를 필두로 몇몇 야구부원들이 대호에게 비결을 물었고, 또 대호가 알려 준 대로 타격 폼을 바꾸거나 스윙할 때 드는 힘의 배분 등을 연습하자 확연히 실력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당연히 그 이후론 너나 할 것 없이 대호에게 조언을 구했고.
물론 선수들도 눈치가 있다 보니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코치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이 가르치지 않은 대로 타격을 하니 금세 들통 났다.
처음에는 코치들이 노발대발했지만, 대호의 조언 덕에 부족한 타격 능력이 향상됨을 느낀 야구부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연습했다.
또, 조금산 감독 역시 선수들의 성장이 늘어나는 게 눈으로 보이니, 코치들의 반발을 애써 억눌렀다.
존폐 위기에 놓인 야구부의 성적이 올라가면 좋은 사람이 그였기에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석 코치인 안기준의 입장에서는 평소 고깝게 생각하던 대호를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따악! 따아악!
박지호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재환은 처음부터 배팅 머신의 구속을 145㎞로 설정하더니, 곧바로 외야 깊은 곳으로 쳐 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곳에 편중된 것이 아니라 우익수, 좌익수, 그리고 중견수 방면까지 여러 방향으로 골고루 때려 냈다.
그렇게 영양가 있는 장타를 만들어 낸 재환은 스무 번의 타격이 끝나고 타석에서 물러났다.
“와…….”
“재환이가 언제 실력이 저렇게 늘었지?”
어제까지만 해도 스무 번의 타격 중 두세 번 정도는 빗맞아 야수 정면이나 내야수에게 걸리는 타구가 나왔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구경하던 부원들과 코치진 역시 감탄할 수밖에.
“좋았어!”
평소에는 별다른 칭찬을 하지 않는 조금산 감독마저 재환의 타격을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재환은 빠르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 연습장으로 들어서는 대호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재환 역시 대호의 조언 덕에 이득을 보았기에 감사 인사를 건넸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더 이상 최윤열이 무섭지 않았다.
“코치님!”
타격 훈련을 하기 위해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곧바로 안기준 코치를 불렀다.
“왜?”
“죄송한데 배팅 머신의 속도를 좀 올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대호는 145㎞로 세팅 되어 있는 머신의 속도를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안기준은 잠시 멈칫했다.
예전 같았으면 코치에게 건방진 소리를 하는 대호에게 호통쳤겠지만, 지금 대호의 입지는 상전벽해 했으니까.
특히나 감독인 조금산이 끼고 있기에 더 이상 터치할 수가 없었다.
“그래, 대호에게는 이 정도 속도론 연습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소원대로 해 줘.”
‘젠장.’
감독의 허락이 떨어졌기에, 안기준은 배팅 머신의 구속을 올리기 위해 마운드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런 귀찮음을 야기한 대호에 대한 불만을 중얼거렸다.
‘어디 네 소원대로 해 봐라!’
147, 148, 149, 150㎞.
위이잉!
145㎞로 세팅 되어 있던 배팅 머신은 150㎞로 바뀌었고, 모터의 요란한 굉음과 함께 돌아갔다.
“150㎞다.”
비록 마음에 들진 않지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세팅된 구속을 알려 주었다.
그런 안기준의 말에 대호는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코치님, 조금 더 구속을 올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실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를 위한 합숙 훈련이지만, 첫 상대인 남성고의 선발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150㎞도 과했다.
그러나 대호는 그 다음 상대인 성남고의 에이스, 강보석을 의식하고 있었기에 더 높은 구속을 요구한 것이다.
‘아!’
안기준 역시 어째서 대호가 계속해서 구속을 올려 달라고 부탁하는지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묵묵히 다시 머신을 조정했다.
153㎞.
최종적으로 세팅 된 구속이었다.
물론, 실제로 투수가 던지는 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배팅 머신으로 연습하는 건 결국 구속에 대한 반응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뿐이니까.
“간다.”
위이이잉!
조금 전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는 배팅 머신.
“와… 소리 뭐냐?”
“그러게.”
대호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연습을 마친 영광고 선수들이 주변으로 몰려와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153㎞라는 구속에서 들리는 소음은 선수들을 긴장시키고, 이목을 모으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따악!
“정대호… 이제 진짜 말도 안 나오네.”
구경을 하고 있던 아이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153㎞라는 구속으로 날아온 배팅 머신의 공은 그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호는 그런 차이를 무시하고 타격했으니, 선수들이 놀랄 수밖에.
또한 대호를 고깝게 보고 있던 안기준 코치와 느긋하게 훈련을 지켜보던 조금산 감독마저 입을 쩍 벌리고 타격 연습을 보게 되었다.
따아악! 따악!
반발력이 약한 나무 배트였지만, 정확하게 스윗 스팟에 맞다 보니, 실내 연습장의 홈런을 표시하는 그물에 계속해서 명중했다.
심지어 타구의 각도 역시 장타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20~35도 사이로 형성되며 날아가는 모습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지만 고교 레벨에서 153㎞라는 구속을 저렇게 매번 받아치다니.
‘하! 이거 이렇게 되면 머리가 엄청 복잡해지네.’
대호의 타격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조금산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기존 영광고 야구부의 타선은 이러했다.
1, 2번 : 김재환(3학년), 박지호(3학년)가 번갈아 리드오프를 맡음.
3번 : 이강(2학년).
4번 : 주장 박재홍(3학년).
5번 : 최수호(3학년).
6번 : 송대익(2학년).
그리고 하위 타순인 7번, 8번, 9번은 그때그때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끼워 넣었다.
그러다 지난 광영고와 연습시합에 대호를 7번에 깜짝 등용했다.
지난번 겨울 합숙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대호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는데, 생각 이상의 엄청난 기량을 보이며 광영고 에이스 최윤열을 격파했다.
그 뒤로 조금산 감독의 머릿속에는 정대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랬는데 오늘 대호의 타격을 본 뒤로 그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규격 외의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기존의 타선이 완전히 붕괴되었으니까.
사실 2학년인 이강을 중심 타선 중 하나인 3번에 넣었을 때도 말이 많았다.
그런데 2년 동안 한 번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대호를 갑자기 타선에 넣게 된다면, 분명 학부형회나 영광고 OB 후원회에서 말이 나올 게 분명했다
‘젠장… 그나마 이강은 1학년 때 실력을 보이기라도 했지, 대호 녀석은 아직 우리 야구부에서만 아는 놈인데 자칫했다간 또 불려 가게 생겼네…….’
하지만 그게 무서워서 대호를 하위 타선에 넣을 수도 없었다.
이전 연습 경기에서 최윤열의 공을 통타한 건 차치하더라도, 조금 전 153㎞의 속구를 쳐 내는 모습을 보고도 중심 타선에 넣지 않는 다면 감독으로써 직무유기나 다름없었다.
아니, 자신의 다음 계약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대호를 이강 자리에 넣고 한 자리씩 뒤로… 아니야!’
타선을 구상하던 조금산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생각했다.
대호의 타순을 앞으로 끌어올리는 건 좋지만, 자칫하면 주장인 재홍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래, 이강을 4번이 아닌 6번으로. 그리고 6번인 대익이를 7번으로 밀면 별다른 말이 나올 것도 없지.’
물론 그렇게 되면 6번으로 옮겨지는 이강의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하겠지만, 3학년인 재홍과 수호를 뒤로 미는 것보다는 나았다.
3학년에 이어서 2학년들의 타격 훈련이 시작되고, 또 1학년 신입생들의 타격 훈련이 진행이 되는 동안에도 조금산 감독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번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의 타순 구상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대호의 타선을 3번으로 낙점했다.
예전에는 팀의 4번 타자가 가장 강한 공격력을 가진 선수였지만, 현대 야구는 프로와 아마 야구를 떠나 3번 타자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심지어 메이저리그의 경우 ‘강한 2번’이라는 말처럼 2번도 중요해지는 추세였으니까.
다만 영광고의 경우 지금까지 확실한 강타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어 2학년인 이강이 3번을 맡고 있었지만,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