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7화 (7/209)

7화

감독실로 찾아간 대호는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나왔다는 사람을 만났다.

‘정대일? 스카우터라고? 구단 소속 스카우터가 어떻게 벌써 나를…….’

처음에는 아직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자신을 어떻게 알고 찾았지? 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차츰 실망감이 먼저 들었는데, 그 이유는 너무도 가벼운 대일의 언변 때문이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러한 평가는 싹 바뀌었다.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사기 위해 칭찬을 늘어놓을 때까지만 해도 무슨 감언이설로 속이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이미 3회차에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대호로서는 호구같이 당해 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누가 보면 FA를 앞둔 베테랑이 구단 프런트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라고 착각할 정도로 대호의 태도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이렇습니다. 제 말, 전부 이해하셨나요?”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대일이 말을 멈추자, 대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비록 관심을 가진 게 스몰 마켓 구단인 오클랜드라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금 자신의 목표는 단순히 메이저리그 진출이 아니라 그곳에서 레전드가 되고, 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을지도.’

그의 말마따나 오클랜드가 스몰 마켓 구단이다 보니, 그곳만의 장점도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고.

자본이 많은 빅 마켓 구단이 막대한 계약금을 부르며 우수한 유망주를 쓸어 가 마치 복권을 긁듯 구단을 운영한다면, 자본력이 약한 스몰 마켓 구단은 그 틈새에서 가격 대비 저평가된 유망주를 찾아 적은 금액으로 계약을 한다.

그리고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준수한 수준의 메이저리거를 만들어 적당히 써먹다 가격이 오르면 필요한 구단에 팔거나 우수한 유망주를 받고 트레이드를 시켰다.

그러고 나서 벌어들인 돈과 유망주를 다시 키워 되팔아 구단을 운영한다.

그 과정에서 대호와 같이 우수한 재능을 가진 유망주들은 많은 기회를 잡으며 스타가 되고 또 그중에선 레전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 명예의 전당을 목표로 하는 대호의 입장에서 굳이 기회가 적은 빅 마켓 구단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대호는 어차피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리라는 것을 확신했고, 목표도 돈이 아니라 명예의 전당 입성인 상황.

그렇기에 대일의 제안도 한 번 고려해 보기로 생각했다.

‘나쁘지 않아, 그렇지만 벌써부터 오클랜드를 고집할 필요도 없어.’

나쁘지 않았지만, 딱 거기까지.

겨우 나쁘지 않은 정도로 메이저리그에 갈 구단을 선택해 다른 구단을 밀어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에겐 게임 시스템이 있고 아직 고등학교 3학년.

즉, 올해에 몇 개월의 시간이 더 남아 있으니까.

남은 기간 동안 레벨을 올리고 더 많은 재능을 활성화시킨다면, 굳이 스몰 마켓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가 아니더라도 여러 빅 마켓 구단에서 자신과 계약을 하자고 달려들 테니까.

‘뭐, 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지. 오늘 스탯만 해도… 흐흐.’

현재 대호의 스탯은 3회차,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포스팅 신청을 하기 직전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즉,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하다면 고등학생 시절에 그때의 스탯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스탯을 가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 * *

대호와의 만남 이후, 정대일은 자신의 상급자인 조나단에게 경기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에 든 대호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개인 자료를 첨부했다.

“이게 정말이야?”

보고서를 읽던 조나단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

“네, 정확합니다.”

대일은 상급자인 조나단의 질문에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조나단의 눈빛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광영고와 영광고의 친선경기에 대한 정보는 들었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터 입장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건 선발 투수 최윤열뿐이었으니까.

스몰 마켓 구단인 오클랜드의 입장에선 야수보단 투수 유망주를 더 선호했다.

아니, 아시아 유망주 중에는 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아시아 출신 야수 유망주라…….’

사실 야수 유망주 중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물론 예외도 있는데, 작년 일본 갑자원을 평정한 히데오 소이치로 정도의 실력이라면 메이저리그도 관심을 둔다.

하지만 그런 야수는 정말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이고, 보통의 아시아계 야구 선수들은 기본적인 내구력이 서양인에 비해 약해 성공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히데오 소이치로가 일본 고교 야구를 평정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일본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의 많은 구단이 놀라며 영입 작업에 뛰어들지 않았는가.

오클랜드 역시 스타 마케팅을 위해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는데, 보스턴에게 막판에 빼앗겨 버렸다.

‘정대일 조사원의 말처럼 굉장한 선수라면 좋겠지만,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그 정도의 천재가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원래 자신의 계획은 영광고의 투수 유망주를 보기 위해 대일을 보냈었다.

그동안 조나단 자신은 KBO 소속 프로 선수들을 관찰하기 위해 프로 구단을 찾아갔는데, 사실 결과가 신통치 않아 실망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직 표본은 적지만 괜찮은 야수가 있다고 하니, 솔직히 곧바로 믿기는 힘들었다.

‘혹시… 로비를 받은 것은 아닐까?’

한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일본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했기에 혹시나 작년 일본에서 타격 천재라 불리는 히데오 소이치로가 나온 것에 대한 반발로 억지로 스타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이걸 좀 보십시오. 이걸 보시면…….”

대일은 자신의 말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 조나단을 보며 영광고의 감독인 조금산으로부터 받은 대호에 대한 신체 능력과 훈련 성과를 기록한 자료를 보여 주었다.

조나단은 너무나 열성적인 대일의 모습에 프로필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지 않아 의아해했다.

“지금 보고 있는 자료에는 1, 2학년 때의 기록이 없는데?”

“예, 그것도 별첨해서 뒷장에 적어 놓았습니다.”

‘하, 이런 자료나 가져오다니… 정대일 조사원, 계속 믿고 써도 되는 건가?’

솔직히 조나단은 정식 경기 결과도 아닌 이런 개인적인 자료를 가져온 것부터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앞에서 눈을 반짝거리는 정대일 때문에 계속해서 읽어 갈 수밖에 없었다.

“흠.”

모든 자료를 읽은 조나단의 얼굴은 복잡미묘했다.

공식 기록은 하나도 없지만, 하필 오늘 이 선수의 포텐이 터진 것인지 3타석 3안타에 홈런만 두 개를 쳤다.

게다가 나머지 하나도 3루타.

야구 선수라면 가끔 이런 날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낮잡아 볼 수 없는 성적.

‘게다가 1회에 트리플 플레이, 2회에 홈 어시스트라고? 수비 능력도 출중하군.’

정보원이 친선경기를 하는 것을 직접 보러 간 날 포텐이 터져버린 것인지 3타석 3안타에 홈런만 2개를 친 것도 모자라 안타 하나도 보기 힘든 3루타를 쳤다.

야구선수라면 꼭 한번 찾아오는 그날이라고 해도, 그가 보여준 성적은 결코 낮잡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이게 고등학생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인가?’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무수히 많은 유망주 중에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보고서의 주인과 같은 재능을 보여 주는 이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등학생이 아닌 대학 리그에서 천재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조나단은 이런 무명의 선수가 그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 줬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흠, 대일과 같은 성을 쓰고 있는데 혹시… 아니겠지.’

조나단이 순간적으로 그런 의심을 품을 정도로 칭찬만이 쓰인 보고서였다.

하지만 그는 곧 그것을 부정했다.

대호와 대일은 성과 이름이 비슷할 뿐이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 보고서가 사실이란 말이지?”

“예. 전혀 사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가 드린 보고서의 내용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대일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조나단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씨익.

자신하는 대일의 모습에 조나단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단장에게 불려가 질타를 받지 않았나.

실전에 써먹을 해외 선수를 찾아내지도 못했고, 또 당첨이 확실한 유망주와의 계약도 다른 구단에 인터셉트 당했다는 이유에서다.

겨우 계약금 200만 달러 때문에 중도에 포기해 버린 것에 대한 질책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은 덤이었다.

조나단이 생각하기에도 조금 아깝기는 했다.

그런데 본사에서 그렇게 상급자에게 당하고 왔는데, 뜻하지 않은 초고교급 유망주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 유망주는 지금까지 전혀 기록이 없어 다른 구단들이 알지 못하는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나 마찬가지.

“좋았어, 이제부터 대일은 영광고의 정대호에 대한 정보를 더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영광고의 감독이나 코치의 성향이 좀…….”

그러자 대일은 곧바로 영광고의 감독인 조금산과 안기준 코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친선경기 때부터 조사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무척이나 돈을 밝히는 인물.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라고 속이긴 했지만 자신에게 완전히 협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혹여나 대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다른 구단에 정보를 팔아먹거나 국내 프로 구단과 연결시키려 할 수도 있었으니까.

크흠.

그렇게 헛기침한 조나단은 곧바로 말했다.

“그건 영수증 처리해.”

대일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나단이 먼저 비용 처리하라는 말을 꺼낸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영광고 정대호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래, 하지만 다른 학교도 조금 신경 쓰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일이 한 건 해낸 덕분에 처음 회의를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회의장 분위기는 무척이나 훈훈하게 끝났다.

* * *

“모두 집합!”

“집합!”

코치의 집합 소리에 몸을 풀고 있던 영광고 야구부원은 복창하며, 안기준 코치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선수들이 모이자, 감독인 조금산이 등장했다.

“1달 뒤면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있다.”

조금산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고교야구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의 개막이 앞으로 한 달 정도 남았다.

2월 초, 광영고와 친선경기를 한 뒤 기존 3학년들은 졸업하였고, 이젠 정말로 2학년이 주축이 되어 야구부를 이끌어 가야 했다.

‘음.’

대호는 감독이 뉴월드배 야구대회를 언급하자 집중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고교야구가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우리 영광고의 주전 선발은 오로지 실력으로 평가할 것이다.”

웅성웅성.

감독의 선언이 있자 선수들 내부에서 작은 소요가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영광고의 주전은 오로지 감독과 코치의 독단으로 정해졌다.

그러다 보니, 실력보다는 감독과 코치에게 얼마나 많은 봉투를 주었는지에 따라 주전이 뽑혔다.

사실 영광고의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실력만으로 뽑아도 될까 말까 하는데, 돈 봉투가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합에 나가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물론 감독이나 코치는 나름대로 변명을 할 수도 있었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선수들의 실력이 고만고만했으니, 돈이 되는 선수를 기용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이젠 막바지에 이르렀다.

교무 회의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는 야구부를 더 육성해야 하냐는 안건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니, 교무 회의에서만 나왔다면 교장이 무마할 수 있겠지만, 동문회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었다.

조금산 감독 역시 성적을 못 내는 야구부에 책임이 있었기에 어떠한 반론도 하지 못했고.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렇게 배수의 진을 치게 된 것이다.

일단 올해는 유예를 두기로 했기에, 선수 선발 과정을 성적 위주로 뽑기로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몇몇 2학년들의 표정이 굳었다.

항상 돈 봉투를 찔러 주던 이들로, 그들은 당연히 주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실력은 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제대로 시합에 나가보지 못했던 학생들의 경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조 감독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쯤이었어.’

전생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러나 1회차와 2회차 때는 조 감독이 너무도 늦게 정신을 차리는 바람에 대호의 졸업과 동시에 감독 자리에서도 잘렸다.

‘하지만 1회차에는 아예 영광고 야구부가 폐지되었고, 2회차에는 감독만 바뀌었지.’

그리고 3회차에는 대호가 프로 구단에 입단하면서 야구부는 물론이고 감독도 살아남았다.

2회차와 3회차의 다른 점은 대호의 활약 유무였다.

비록 야구부의 성적은 고만고만했지만,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도 한 번 타고, 프로 구단에 입단하면서 학교에 발전 기금도 두둑하게 받게 만들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내일부터 다시 합숙에 들어간다.”

3월에 시작되는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위해 합숙을 시작한다는 감독의 말에 선수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