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오클랜드 슬랙스의 조사원 대일.
그는 1회 초, 대호의 삼중살을 보고 감탄했는데, 녀석이 2회 초 외야 어시스트까지 해내자 더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영광고의 2회 말 공격은 볼 게 없었다.
1회와 마찬가지로 삼자범퇴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3회 초, 광영고는 또다시 1점을 획득해 스코어 3:0으로 홈팀인 영광고를 리드하였다.
‘그 녀석은 대체 몇 번 순서지?’
대일은 조용히 대호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때, 그가 기다리던 정대호가 타석에 들어왔다.
영광고의 다른 선수들은 지고 있어서 굳어 있는 표정인 반면, 녀석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평안한 모습이었다.
“수비는 합격점인데, 타격은 어떨까?”
타석에 들어서는 대호를 보며 대일은 작게 중얼거렸다.
따아악!
‘하, 참.’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회까지 영광고의 타선을 쉽게 막아 내던 최윤열의 공을 너무나 쉽게 공략했다.
그것도 초구에 뭐가 나올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수비만 아니라 타격도 준수하군.”
살짝 가운데로 몰리긴 했지만, 언뜻 봐도 구속 140㎞는 나올 것 같은 패스트볼을 그대로 당겨 쳐 홈런을 만들었다.
‘누구지?’
솔직히 영광고는 서울에서 중하위권 정도 실력을 가진 학교였기에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당장 오늘 친선 경기도 최윤열이 나오기 때문에 보러 온 게 아닌가.
그렇기에 영광고 타자 중 초고교급으로 예상되는 최윤열의 공을 너무도 가볍게 쳐 내 홈런을 만드는 타자가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와아… 정대호 대박인데?”
옆자리에서 응원을 하던 학생들의 대화에서 주목하던 선수의 이름을 알아냈다.
“정대호라… 이런 놈이 있었나?”
영광고의 엔트리를 확인한 대일은 대호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단에 없던 이름이었다.
수비를 잘한 것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선수인데 타격 능력까지 갖춘 것에 더욱 관심이 일었다.
“설마 1학년인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호가 보여 주는 퍼포먼스는 1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그가 보기에는 마치 프로에서 몇 년간 구른 베테랑인 듯했다.
“대호요? 쟤 2학년이에요.”
대일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학생, 저 선수 알아요?”
느닷없는 훈수에 대일은 고개를 돌려 물어보았다.
“네. 저희 반인데, 착해요.”
그 대답에 대일은 잠시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씩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다.
“그런 것 말고. 조금 전에 2학년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작년에는 시합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
2학년이라면 주전은 아니더라도 시합에서 최소한 한 번은 대타나 대주자, 혹은 대수비로 출전했을 텐데 정보가 없어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들려온 대답은 의외였다.
“아~ 그거요? 대호네 집 형편이 안 좋아서 감독하고 코치한테 찍혀서 그렇대요.”
“…뭐?”
이해하기 힘든 대답.
그러나 한국 고교 야구의 현실을 잘 아는 조사원 대일로서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대호네 부모님이 한 번도 학교에 찾아오지 않았고, 또 회비도 겨우겨우 낸다고 해요.”
‘제길.’
야구부 회비도 겨우 낸다는 학생의 이야기에 대일은 이를 세차게 악물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이 아님에도 큰 분노가 일어나는 듯했다.
자신의 학창 시절에도 그런 일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2학년을 단 한 차례도 시합에 내보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어떻게 그런 부당한 일을 당했음에도 저런 표정, 저런 활약을 보일 수 있는 건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만약 대일 자신이 그 대상이었다면…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멘탈이 어마무시하군.’
그런 생각이 들자 대일은 체크리스트에 대호의 이름을 적고 주의 요망 표시를 적었다.
‘광영고의 최윤열을 보러 왔다가 뜻하지 않은 유망주를 찾게 되었군.’
대일은 메이저리그 구단인 오클랜드 산하 아시아 지부에 속한 조사원이지만,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직원이었다.
그렇기에 유망주에 대해 많이 조사하면 할수록 수당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중 정식으로 계약을 하는 유망주가 나오면, 거기에 더해 계약금의 일정 퍼센트를 인센티브로 받을 수 있었다.
* * *
어찌어찌 한 명을 삼진으로 처리했지만, 대호가 보기에 광영고 최윤열은 아직 멘탈이 온전히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
연속해서 안타를 맞은 것 때문인지, 아니면 루상에 주자가 나가 있는 것 때문에 그런 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리라.
그렇기에 오늘 타격감이 떨어지는 2번 타자 재환도 첫 번째 타석과 두 번째 타석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투수의 공을 끝까지 지켜보며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고 있었다.
딱!
타다다다!
재환은 광영고 수비들의 예상을 뒤집고 기습 번트를 하고, 1루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작전이 성공했다.
1아웃에 1, 3루 상황.
조금산은 여기가 분기점이라 판단을 하고 런 앤 히트를 지시한 것이다.
“좋아, 달려!”
재환의 번트와 함께 영광고 선수들은 급히 더그아웃 난간에 매달려 소리쳤다.
기가 막히게 라인을 따라 천천히 굴러가던 공을 1루수가 겨우 잡아 홈으로 던졌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세이프!”
주자 올 세이프.
너무도 기가 막힌 기습 번트와 작전으로 인해 1, 3루에 있던 주자는 물론이고 타자인 재환까지 1루로 살아 나갔다.
“윤열이 내려!”
스코어는 3루 주자가 들어오면서 3:3 동점이 되었다.
이에 더 이상 점수를 내줄 수 없다고 판단한 광영고 감독 채문열은 투수 교체를 지시했다.
광영고 선발 최윤열은 2회까지 잘 던졌지만, 3회에 들어서면서 대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또 5회에 들어서면서 또 다시 대호에게 3루타를 허용하면서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결국 3:3으로 동점이 되어 버렸다.
또, 아직 원 아웃에 1, 2루인 만큼, 영광고에게 역전의 찬스는 남아 있었다.
급하게 몸을 푸는 광영고의 두 번째 투수는 잠시 연습 투구를 했고, 곧 시합이 재개되었다.
“1사 1, 2루 상황이다. 한 방 더 부탁한다.”
“영광고 파이팅!”
계속해서 밀리다가 드디어 동점을 만든 5회 말.
게다가 원 아웃이지만 역전의 기회가 생겼다.
이를 지켜보던 영광고 학생들은 추운 날씨도 잊고 열렬히 선수들을 응원하였다.
“지호야! 너도 하나 쳐야지.”
“그래, 안타 하나 가자!”
“가자!”
타석에 들어서는 박지호를 보며 스탠드에 있던 학생들은 물론이고 야구부 동료들도 그를 응원했다.
그러한 친구들의 응원이 통했는지, 타석에 들어선 박지호의 표정은 매우 비장했다.
따악!
야구에는 투수가 교체되었을 때 초구를 노리라는 격언이 있다.
당연한 게, 스트라이크 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초구에 스트라이크라고 생각될 위치에 투구를 할 확률이 높을 테니까.
타구는 맞는 소리부터 달랐다.
비록 홈런은 아니었지만, 우익수 방면 깊은 곳까지 흘러가는 장타 코스였다.
적어도 2루타는 될 게 분명했다.
타다다다닷!
지호의 타구가 장타란 것을 느낀 주자들은 빠르게 달렸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고, 뒤이어 1루에 있던 재환도 빠른 발을 이용해 2루와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렸다.
슈화악!
1루 주자였던 재환은 홈으로 들어오며 슬라이딩을 하였다.
포수가 홈 베이스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는 기지를 발휘하여 포수 왼쪽으로 돌아 손끝으로 홈 베이스를 터치하였다.
“세이프!”
홈에서 아슬아슬하게 세입이 되고, 그사이 타자 주자였던 지호는 여유 있게 2루로 진출하였다.
5:3.
드디어 영광고가 광영고를 역전한 순간이었다.
“우와아아! 역전!”
더그아웃은 물론이고, 추운 날씨에도 응원하던 이들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나서도 영광고의 찬스는 계속되었다.
따악!
따악!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3번 타자와 4번 타자도 좌익수 방면, 그리고 우익수 방면 안타를 쳐 내며 점수를 냈다.
초고교급 투수 최윤열을 상대하다가 평범한 투수를 만나서일까?
영광고의 타선은 불을 뿜었다.
5번 타자 역시 자신이 영광고의 클린업 트리오 중 하나란 것을 증명하듯 안타를 뽑아내며 타점을 올렸다.
애석하게도 6번 타자가 연타를 이어 가지 못하고 아웃이 되기는 했지만, 영광고의 5회 말 공격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2사 3루 상황, 대호는 같은 5회 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이 마지막 타석이 될 것 같네.’
대호가 느끼기에 자신의 타석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대호는 모든 정신을 집중해 투수의 공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자. 그리고 저 녀석은 최윤열급도 아니야.’
앞 타석에서는 잠시 방심하는 바람에 집중력이 흐트러져 실수를 했다.
그렇기에 이번만은 앞선 타석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타석에 임했다.
팡!
“볼!”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이었다.
휙! 휙!
볼이 선언되자 대호는 가볍게 배트를 휘두르며 타이밍을 잡았다.
“볼!”
이미 대호의 타격 능력을 보았던 광영고 선수들이었기에, 좋은 공을 주지 않았다.
연속해서 볼이 선언되면서 볼카운트는 대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대호의 표정은 점점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는 아직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니까.
상태창도 말하지 않았는가.
성적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된다고.
그러니 지금 광영고 투수가 계속해서 볼을 던지는 게 그리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타자인 대호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만약 프로 무대였다면 트래시 토크를 하며 상황을 바꿔 보겠지만, 지금은 고교 아마 야구였고 또 두 학교의 친선 경기 중이었다.
그러니 트래시 토크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 그냥 퀘스트 성공에 만족해야 하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낙담을 하고 있을 때, 교체되어 연속해서 안타를 맞고 있던 광영고 투수가 흥분한 것인지 실투를 했다.
‘어!’
슬라이더를 던지려고 했는지, 볼이 되었던 패스트볼보다 구속이 느린 공이 한가운데로 날아왔다.
밋밋한 각으로 치기 딱 좋은 공이었다.
대호는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따아악!
요란한 타격음과 다르게 손에는 아무런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배트의 정중앙에 맞다 보니, 반발력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타격된 것이다.
“와아아!”
들리는 함성.
볼 것도 없이 대호가 친 타구는 홈런이었다.
첫 홈런과 마찬가지로 영광고 펜스를 훌쩍 넘기는 장외 홈런이었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조사원인 정대일은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대호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기대하지 않고 왔던 연습 경기에서 뜻밖의 보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엄청나다.’
초고교급이라 불리는 최윤열에게 2타수 2안타.
그것도 1홈런과 3루타로 모두 장타였다.
또 이번 세 번째 타석에서도 홈런을 만들어 냈다.
즉, 오늘 시범 경기에서 3타수 3안타를 쳤는데, 모두 장타였고, 홈런만 두 개를 친 것이다.
비록 1, 2학년 때의 정보가 하나도 없지만, 오늘 보여 준 능력만 놓고 보면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타격에만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수비에서도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 범위와 야구 센스를 보유하였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1회 초, 만루 위기에서 뛰어난 판단력으로 한순간에 삼중살을 잡아 내며 무사 만루 상황에서 더 이상 점수를 주지 않고 막아 냈다.
또 3회 초의 1사 만루 위기에서도 중견수 깊은 곳으로 날아오는 공을 잡아 보살을 만들어 팀의 위기를 극복했다.
이렇게 공격에서는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대호의 뛰어난 활약 덕분에 영광고는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되는 광영고를 상대로 8:4 역전승을 거뒀다.
비록 이번 연습 경기가 9회까지 가는 정식 시합이 아니라 양 팀의 합의에 의한 7회 단축 경기이기는 했지만, 대일은 9회까지 간다고 해서 광영고가 역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오늘 경기를 보면서 아무도 모르는 보석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보여 준 능력이 플루크가 아니라면 어쩌면…….’
대일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대호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오클랜드가 놓친 일본의 천재 타자 히데오 소이치로.
물론 히데오 소이치로가 일본 갑자원에서 보여 준 성적을 놓고 비교를 하면, 아직까지 대호가 그에게 비비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보여 준 실력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면 또 달랐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