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4화 (4/209)

4화

“대호 나이스!”

1사 만루에서 또다시 중견수인 대호의 슈퍼 플레이로 광영고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2회 초 광영고의 공격이 마무리되고 영광고의 2회 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좋은 시간은 거기까지.

영광고의 타자들은 최윤열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삼자범퇴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3회 초가 되자마자 광영고의 타자들은 선발 홍진호의 공을 두들기며 1점 더 달아났다.

대호도 이번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는데, 자신의 앞으로 오지 않는 타구까지 억지로 잡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실점을 빠르게 머릿속에서 떨쳐 내고, 대호는 외야 플라이를 처리해 3회 초를 막아 냈다.

그리고 3회 말.

드디어 대호는 선두 타자로 나섰다.

지금까지 아무도 최윤열의 공을 치지 못해 어느새 더그아웃도 축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감독인 조금산까지 말이다.

‘하긴, 최윤열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한 수 아래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면 두 수, 세 수 아래였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그러나 대호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후우! 후우!”

휘잉!

타석에 들어가기 전, 대호는 대기 타석에서 두어 번 연습 배팅을 해 봤다.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며 최윤열의 공에 배팅 타이밍을 맞춰 본 것이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타석에 들어가기 전, 아마 야구의 규정대로 주심을 보고 있는 심판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 마운드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는 최윤열을 주시했다.

‘호오?’

한편, 심판은 인사를 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대호를 보며 살짝 이채를 띠었다.

지금껏 영광고의 선수들 중 이런 태도를 보인 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최윤열이라는 이름값에 눌려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너무 의욕만 앞서 배트를 휘둘렀다.

여섯 명의 타자 전부가 말이다.

‘흐음…….’

기세를 올리고 있는 최윤열을 보며 대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했다.

초고교급 투수로 불리는 최윤열을 상대로 오늘 2안타를 쳐 내야만 했다.

그것도 2루타 이상의 장타를.

하지만 대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겪어 본 상황인데다가, 그의 정신은 이미 KBO와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베테랑이니까.

대호의 눈에 사인을 받았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최윤열의 모습이 보였고, 이윽고 팔이 위로 올라갔다.

휘익!

‘역시.’

최윤열은 자신의 실력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영광고 타자들을 무시하는 것인지, 초구부터 별다른 컨트롤 없이 한가운데 직구를 던졌다.

따아악!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타구를 친 대호도, 최윤열도, 지켜보던 관중들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홈런이다!’

“와아!”

대호가 홈런을 치자, 스탠드에서 지켜보던 영광고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3회 말인 지금까지 최윤열의 공을 전혀 건드리지 못했는데, 7번 타자가 초구에 홈런을 쳤으니 당연했다.

그것도 넓은 영광고 운동장을 훌쩍 넘어가는 대형 홈런이었다.

탕탕탕!

홈런을 치고 대호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영광고 선수들은 앞으로 나와 대호의 헬멧과 등을 두드리며 환영해 주었다.

“이 새끼…….”

“역시 대호, 네가 한 건 할 줄 알았어!”

깡!

“어?”

대호의 홈런에 축하를 해 주던 영광고 선수들은 또다시 들리는 경쾌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최윤열의 투구를 치고 달리는 동료의 모습을 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홈런을 맞아서일까, 초고교급이라 불리는 최윤열이 흔들린 것이다.

급하게 광영고 포수가 마운드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윤열아, 침착해. 방금 전 홈런은 우연하게 상대방이 노리던 공이었을 뿐이니까, 네가 못 던진 게 아니야!”

광영고 포수는 흥분해 흔들리는 최윤열에게 그의 잘못이 아님을 강조하며 멘탈을 잡아 주었다.

사실 최윤열은 초고교급이라 불리긴 하지만, 예전에 있었던 대회에서도 느닷없이 맞은 홈런 한 방에 쉽게 멘탈이 흔들리는 약점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겨우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훈련을 했지만, 아직 완벽히 나아지지는 않은 듯했다.

“…알았어.”

자신의 격려에 정신을 차린 듯한 최윤열의 대답에 포수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최윤열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삼진과 내야 땅볼로 점수를 주지 않고 이닝을 마무리했다.

“아웃! 공수 교대.”

3회 말 영광고의 공격은 선두 타자로 나왔던 대호의 솔로 홈런으로 얻은 1점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영광고의 상승세가 완벽하게 꺾인 것은 아니었는지, 4회 초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줘 이전과는 달리 실점을 하지 않았다.

‘좋아. 이대로만 간다면…….’

“야, 정대호. 아까 최윤열 공, 어떻게 친 거냐?”

4회 초가 끝나고 공수 교대가 이루어졌다.

수비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중, 주장 박재홍은 작은 목소리로 대호를 불러 물었다.

팀 내에서 4번 타자를 맡고 있지만, 오늘 최윤열을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에 대호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다.

씨익.

대호는 영광고 4번 타자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을 깨닫자 곧바로 자신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박재홍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전에도 그랬다.

자신이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제일 먼저 다가오는 녀석이 바로 재홍이었다.

그리고 대호는 이런 친구에게 조언을 아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그 녀석 별거 없어. 지금 최윤열이라는 이름값에 눌려 있어서 공을 못 치는 거야.”

“이름값?”

“어. 나 올해 첫 출전인거 알지?”

“……!”

“그런 나도 치는데 너희는 어떻겠어. 초고교급 유망주? 그게 뭐 어쨌는데? 진짜 한국 고등학생을 초월한 수준이면 야구 유학이라도 떠났겠지.”

재홍을 향해 이야기했지만, 다른 팀원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아직 어리다 보니, 상대의 이름값에 너무 휘둘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해 최윤열에게 맥없이 당한 것이다.

‘음…….’

재홍은 그 말에 무언가 떠오른 게 있는 듯,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스윙을 할 때는…….”

대호는 이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재홍은 스윙을 할 때 팔이 몸에서 일찍 떨어지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타격 시 배트가 흔들리고, 또 힘도 제대로 실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양 팔꿈치를 몸에 붙이고, 허리를 이용해 스윙을 하라는 거지?”

“맞아. 그렇게 하면 처음에는 어색하고, 또 스윙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 같을 수 있어. 하지만 익숙해지면 스윙 속도도 빨라지고, 투수의 투구를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어 정확한 타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음. 알겠어.”

“참, 그리고 너한테는 어퍼 스윙 보단 레벨 스윙이 더 적합할 거야.”

“그래? 고마워.”

대호의 조언을 들은 재홍은 잠시 후 대기 타석으로 들어가며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인지 대기 타석에서 스윙 연습을 하였다.

그 모습에는 조금 전 대호가 했던 타격 폼에 관한 것이 적극 반영되어 있었다.

선두 타자가 아웃되고, 두 번째로 타석에 들어간 재홍은 조금 전 연습한 타격 폼을 시험하기 위해 타이밍을 속으로 세 보았다.

‘하나, 둘, 셋!’

펑!

“볼.”

살짝 위로 날아드는 공.

최윤열이 던진 공은 볼이 되었다.

‘어? 이거 타이밍 잡기 편한데.’

재홍은 바로 전 타석까지만 해도 최윤열의 투구에 대한 타이밍을 잡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대호의 조언을 듣고 타격 폼을 조금 고치고 나자, 타이밍을 잡기가 편해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에 더해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 또한 선명하게 느껴졌다.

뭔가 자신감이 생긴 듯한 박재홍을 보며 최윤열은 조금 꺼림칙한 눈빛을 보냈다.

‘저 녀석, 뭔가 방금 전 타석이랑 달라진 거 같은데…….’

최윤열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패스트볼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휘익!

그러나 스트라이크 존과 타이밍이 맞아 가자 이젠 두려울 것도 없다 보니, 재홍은 최윤열이 던진 몸 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그대로 당겨 쳤다.

따악!

“와아! 잘한다!”

또다시 안타가 나오자 스탠드에 있던 학생들로부터 열렬한 환호성이 들렸다.

비록 추운 날씨인데다가 점수가 잘 나지 않고 있었지만, 4번 타자 박재홍이 처음으로 친 안타에 영광고 학생들과 관계자들은 벌떡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쳐 주었다.

비록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 잔루에 그쳤지만, 이들을 응원하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광영고의 에이스에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만큼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재 스코어는 3:1.

지고 있지만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점수였고, 대호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최윤열의 공을 쳐 내자, 영광고의 타자들 역시 어느새 눌려 있던 모습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 * *

5회 말, 선두 타자 정대호.

최윤열은 이를 꽉 깨물었다.

‘젠장, 저놈 타석부터 꼬였어.’

그는 3회 대호의 타석부터 경기 흐름이 꼬였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신중하게 공을 던졌다.

슈우욱!

‘오? 그래도 이번엔 변화구네. 하지만…….’

따악!

가볍게 걷어 올린 공은 다시 한번 외야로 향했다.

양 팀 더그아웃, 그리고 관중석의 모두가 환호성을 지를 때 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타구는 지난번과 달리 조금 낮게 떴기 때문이다.

대호는 달리는 와중에도 3루에 나가 있는 주루 코치를 보았다.

계속해서 팔을 돌리는 모습을 보니, 3루까지 가도 될 듯했다.

‘아직 여유 있구나.’

코치의 표정이 바뀌고 양팔을 넓게 벌린 순간, 대호는 슬라이딩을 하며 손을 베이스로 뻗었다.

촤아악!

“세이프!”

툭.

손끝에 3루 베이스의 촉감이 느껴지고, 곧이어 허리춤에 3루수의 글러브가 닿았다.

― 띠링!

[퀘스트를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은 경기가 끝난 뒤 소급 적용됩니다.]

기분 좋은 알림이 울렸다.

‘좋았어.’

비록 2루타 이상을 두 개나 쳐야 하는 퀘스트였지만,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대호가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미소를 짓는 순간, 다음 타자가 공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따악!

타다다다닷!

기쁜 순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대호는 8번 타자가 공을 치자마자 곧바로 뛰어 홈을 밟았다.

이제 점수는 3:2.

광영고에 고작 1점밖에 뒤지지 않는 점수였다.

노 아웃, 주자는 2루.

놀랍게도 세 번째 타자도 광영고의 투수가 던진 공을 받아쳤다.

연속 안타를 얻어맞자, 광영고에서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로 모여들었다.

영광고의 타격 흐름을 끊고, 투수에게는 잠시 멘탈을 정리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다음 타자는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때, 대호는 덕아웃에서 상황을 살폈다.

원 아웃에 주자 1, 3루 상황이다.

그리고 영광고의 타순은 2번.

오늘 2번을 맡은 재환이의 타격 감각이 좀 좋지 못하긴 하지만, 현재 흐름을 타고 있는 상황인 만큼, 뭔가 해 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