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0.01초 소드마스터 172화
테키나는 마기에 의해 태어난 족속이라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레메게톤이라는 어둠의 신이 탄생하고, 그가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퍼진 마기가 그 주변 종족들을 변화시켜 지금의 테키나 족속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테키나 족속은 생긴 것도 제각각인 것이다.
더군다나 마기의 특성으로 인해 서로 유대감을 갖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런 그들을 하나로 모은 것이 레메게톤이며, 레메게톤 말고는 이들을 모을 수 있는 명분이 없을 정도였다.
“레비오트. 너는 정말 이대로 레메게톤 님의 뜻을 저버릴 셈인가?”
뿔뿔이 흩어진 바빌론.
그들은 예전처럼 독립된 생활을 이어가며 더는 서로 대면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모데루스가 바빌론 중 하나인 레비오트를 찾아왔다.
“아직도 넌 그 타령이구나, 모데루스.”
레비오트는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대륙 정복이든 뭐든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했으면 이제 그만 해도 될 때가 아닌가? 지금까지 못 해낸 거라면 영원히 못 한다고 봐야겠지.”
“온 대륙을 정복하는 건 레메게톤 님의 숙원이셨다.”
“그러니까 그게 레메게톤 님의 숙원이지, 내 숙원이었냐고 묻는 거다. 난 더 이상 쓸데없는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특히 아슬란에게 개죽음을 당하긴 더더욱 싫다고!”
“······.”
“그러니 이제 돌아가라. 너와 더는 할 말이 없으니까.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땐 동료가 아닌 적이다.”
그 말을 남기고 레비오트는 모데루스에게서 돌아섰다.
“안타깝게 됐군. 그래도 너는 나와 마음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네 착각이다, 모데루스. 그나마 바빌론 중에서 네가 제일 나아 보였기에 따르는 척을 했을 뿐. 하지만 지금 보니 네가 제일 어리석구나.”
“그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모데루스는 검은 마기로 날카로운 검을 만들어낸 뒤, 그대로 레비오트의 등 뒤를 찔렀다.
“크악!”
꼬챙이처럼 몸이 꽂혀 버린 레비오트를 위로 번쩍 들고 모데루스가 소리쳤다.
“테르카나. 포탈을 열어라!”
그러자마자 바로 포탈이 열렸고 모데루스는 레비오트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모데루스······! 이 미친 새끼! 감히 네가 나를!!”
“레비오트. 레메게톤 님은 그분의 뜻을 이어가고자 우리 바빌론을 만드셨다. 그런데 네가 그분을 배신하다니. 이건 모두 너의 잘못이다.”
“흥! 오직 파괴만을 일삼는 그 미친 작자의 야망을 내가 왜 따라야 한다는 거냐? 차라리 그놈이 라할의 손에 죽어 버린 게 다행이지!”
“누가 그러지? 그분이 죽었다고.”
“뭐야?”
“뒤를 보거라.”
레비오트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 있는 길쭉한 관에서 익숙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그래. 그분이 바로 레메게톤 님이시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리며 잠들어 계시지.”
“!?”
이 관 속에 있는 자가 레메게톤?
이 익숙한 마기는 필시 레메게톤에게서 느꼈던 것이다.
“······살아계셨단 말인가?”
“그래. 살아계셨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레메게톤이 이런 곳에 묻혀 있었다니.
레비오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떠냐? 이제 다시 그분을 따를 마음이 생기느냐?”
“모데루스. 나는······.”
파앗-!
바로 그때였다.
관에서 뻗어 나오는 검은 줄기들이 방심하고 있던 레비오트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뭐, 뭣!?”
레비오트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줄기들이 더욱 그의 몸을 휘감을 뿐이었다.
“레비오트. 그분을 배신한 죄를 이곳에서 묻겠다. 그분의 양분이 되어 죄를 갚아라.”
“자, 잠깐만! 난 다시 그분을 따를 생각이었다!”
“이미 늦었어. 손바닥 뒤집듯이 그분에 대한 충심을 바꾸는 놈은 분명 다음에도 배신을 하겠지. 그런 놈은 우리 테키나 족속에 필요하지 않다. 또한 바빌론이란 이름도 아깝다.”
“모데루스!!”
콰아아악-!!
레비오트는 마기를 끌어 올려 자신을 휘감은 줄기를 태워 보려 했으나,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마기를 끌어 올리면 끌어 올릴수록 더욱 빠르게 몸의 힘이 저 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결국 이대로 끝이라는 것을 깨달은 레비오트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모데루스에게 말했다.
“모데루스. 결국 네놈도 이용만 당할 뿐이다.”
“······.”
“레메게톤이 부활해도 결국 상황은 똑같다. 아슬란이 너희를 전부 무저갱으로 처박아 버리겠지. 그리고 너도 똑같이 배신당해 죽을 것이다, 모데루스.”
이제 마지막 숨결밖에 남지 않은 레비오트였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 너희들이 내 뒤를 따라올 날이 머지않았다.”
그렇게 레비오트의 존재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저 관 속에 전부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나?”
모데루스의 물음에 테르카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제가 시작인 걸요.”
“뭐?”
“모든 바빌론을 데려와 이곳에 바치셔야 합니다.”
그 말에 모데루스는 테르카나의 끌어당겨 그 목을 붙잡았다.
“모든 바빌론? 그런 말은 없었잖아.”
“후후. 제가 바빌론 한 명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린 적도 없을 텐데요?”
“······.”
모데루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왠지 놈에게 속는 느낌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레메게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바빌론들을 싸그리 붙잡아 제물로 바치는 건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요?”
“뭐?”
“새로운 군단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레메게톤 님과 악마를 숭배하는 광신도들이 당신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이용해 자스트라 영역에 있는 몬스터들을 전부 악마 군단으로 만들어야지요. 곧 부활하실 레메게톤 님을 위해서 말입니다.”
“······.”
그렇기에 모데루스는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 * *
[블랙 메테오]
-하루에 한번 블랙 메테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스킬과 조합은 불가능하나, 속성을 바꿀 순 있습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그날 바빌론들에 내게 쏘아 보냈던 그 블랙 메테오가 나의 고유 스킬이 되었다.
하루에 한 번 쓸 수가 있으며, 다른 스킬들과는 다르게 찰나의 괴력을 섞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찰나의 괴력을 소모하지 않고도 강력한 블랙 메테오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위력도 내가 아는 블랙 메테오의 위력을 가지고 있으려나?’
이게 제일 궁금한 점이었다.
과연 내가 아는 블랙 메테오의 위력이 나올지, 아니면 이름만 그냥 블랙 메테오일지 말이다.
“폐하. 자스트라 영역 쪽에 포탈 설치를 완료했다고 합니다. 또한 호드족이 있는 곳에도 현재 포탈 설치를 하는 중입니다.”
“알겠다. 기사단을 대기시켜라. 곧 출정할 것이다.”
“예!”
아론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호레스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폐하. 또 원정을 가시는 겁니까?”
“그래.”
“이틀 전에 이미 큰 전투를 벌이지 않으셨습니까? 몸이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그런 그의 말에 이놈의 허세가 꿈틀거렸다.
“큰 전투?”
“예?”
“그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그런 걸 전투라고 부르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지.”
그러자 기사들은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과연 폐하께서는······.”
“그래. 폐하께 그런 전투는 숨 쉬듯 쉽겠지.”
쉽기는 개뿔.
나도 뒤질 뻔했구먼.
블랙 메테오도 정면으로 처맞고, 거기다 루겔로스라는 신까지 튀어나와서 날 괴롭혔잖아.
“폐하. 대륙을 정복하시겠다는 그 원대한 뜻은 깊이 헤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대륙을 정복해?
아직도 이놈들은 내가 진짜 대륙을 정복하려 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폐하께서는 아직 후사가 없으십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서둘러 황후마마를 들이셔야 합니다!”
호레스의 말에 신하들이 동조했다.
“맞습니다! 얼른 황후를 맞이하시어 제국의 앞날을 대비하십시오!”
“통촉하여 주십시오!”
또 그놈의 황후 타령인가.
그동안 잘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호레스 저게 틈만 나면 황후를 빨리 맞이하라고 아우성이다.
뭐, 이해도 하는 것이 원래 황제라는 자리가 후사를 빠르게 결정하면 결정할수록 황권이 바로 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제가 모태솔로로 남아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 문제는 다음에 논의하도록 하지.”
“하지만······!”
“지금은 더 급한 문제가 있다. 짐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내가 눈을 부릅뜨고 일갈하자 신하들은 알아서 깨갱거렸다.
“일단 포탈이 설치된 곳으로 가 보겠다.”
나는 더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황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문이 있을지도 모르는 두 번째 후보지를 향해 나아갔다.
“폐하. 말씀하신 대로 기사단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아론은 무려 5만에 달하는 기사들을 대기 시켜 놓았다.
너무 과하게 많은 숫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저번 일을 생각해 보면 적당한 수준이지.’
또 어떤 미친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았다.
“출정한다.”
“예!”
나는 항상 그랬듯이 팔짱을 낀 채로 선두에 서서 나아갔다.
그러자 백성들이 내 앞길에 꽃잎을 뿌리며 소리쳤다.
“위대한 정복왕이시여!”
“모든 대륙을 당신 발아래 두소서!”
“아슬란 황제 폐하 만세!!”
난 그들의 찬사에 심취했다.
그들의 칭송이, 그들의 찬양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졌다.
부끄럽지도, 마음이 격동하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그들의 경배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포탈을 지나 우린 자스트라 영역 안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호드들이 미리 우리 군을 기다렸다.
“폐하.”
호드들의 왕, 막투르.
참 오랜만에 보는 친구였다.
“막투르. 상황은 어떠한가?”
“미리 점지를 해 주신 위치에 호드의 전사들을 보내려 했으나······.”
막투르가 말을 끄는 것이 왠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말씀하신 땅이 마기에 더럽혀져 그곳에 잘못 발을 들인 호드 전사들은 미쳐 버리거나, 아니면 마기에 잠식되어 끔찍한 괴물이 되었습니다.”
마기에 잠식된 땅?
설마 마굴인가.
이 게임을 하다 보면 마굴로 변해 버린 땅들이 가끔씩 등장한다.
악마 군단을 만들고자 테키나 족속이 특정 땅에다가 마기를 풀어 버리는 것인데, 이로 인해 그 주변 지역에 있던 몬스터들이 악마로 변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마기가 필요하며, 그것이 충분히 땅에 뿌리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이 땅에 악마들을 돕는 쥐새끼들이 있구나.”
내 말에 막투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자스트라 영역 내에 있는 블라우르 족속과 여러 인간이 모여 이 땅을 더럽힌 듯합니다.”
피를 빨아 먹는 족속, 블라우르.
그놈들이야 원래 악마들 편에 서는 놈들이니까 그렇다 치고.
인간들이 모였다라.
그렇다는 건 광신도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뜻한다.
악마를 숭배하는 광신도 비율은 늘 많았는데, 게임 난이도에 따라 그 비율이 천차만별로 바뀌게 된다.
아무리 제국을 세워 광신도들을 퇴치해도 여전히 그 숫자가 많이 남게 된다는 것.
그나마 아론이 나를 섬기는 아슬란교를 만들어 그 숫자가 예전보다는 훨씬 줄어들긴 했다.
“저곳인가?”
“그렇습니다.”
우린 호드들의 안내에 따라 문제의 땅으로 가 보았다.
산맥 위에서 바라본 땅은 이미 검게 물들어 있었고, 그곳에서 악마들이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저걸 오랫동안 놔두면 위험하겠군요. 엄청난 숫자의 악마 군단이 만들어지게 될 겁니다.”
아론의 말대로 저걸 가만 놔두면 악마 군단 웨이브가 만들어져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즉, 여기서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그럼 제가 가서 그 뿌리를 자르고 오겠습니다.”
스르릉-
라일라칸이 칼을 뽑아 들고 먼저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막투르가 만류하며 말했다.
“저 앞은 테리슈나로 막혀 있습니다. 왠만한 공격으로는 뚫리지 않습니다.”
“테리슈나?”
테리슈나.
아주 예전에 호드들과 함께 악마들을 상대할 때 나왔던 마법 방어막이다.
테키나 족속이 가진 최고의 방어 마법으로, 웬만한 마법과 공격으로는 절대 뚫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걸 해제하려면 별도의 마법을 쓰거나, 아니면 테리슈나가 스스로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테리슈나라면······. 좀 성가시겠군.”
물론 라일라칸 정도 되는 놈이라면 테리슈나를 어떻게든 부수긴 하겠지만, 마기에 잠식되어 버린 땅에 오래 있으면 라일라칸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딱 좋은 연습 장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블랙 메테오를 어디서 연습해봐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마침 이렇게 밥상을 차려주는구나.
“모두 뒤로 물러나거라.”
“예?”
“짐이 직접 저들에게 심판을 내릴 것이다.”
그 말에 기사들이 얼른 뒤로 물러났다.
나는 거만하게 말 위에 앉아 있는 채로 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콰아아아-!!
그 위로 시커먼 블랙 메테오가 아닌, 찬란한 빛을 내뿜는 빛의 메테오가 생성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무지막지한 힘에 뒤로 물러나 있던 기사들이 경악 어린 기함을 터트렸다.
“저, 저건!”
“대, 대체 저게 뭐지?!”
이렇게 바로 만들어지는구나.
거기다 빛 속성으로 바꾸니 빛의 메테오가 되었다.
‘여기쯤이면 별로 영향이 없겠지?’
거리가 꽤 되는 곳이니 저 가운데에 던져서 폭발해도 이곳까지는 피해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메테오를 냅다 저기 악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땅에 던져 버렸다.
‘잠깐만.’
그때 던지고 나서 생각이 난 것이 있었다.
‘어둠 속성을 공격할 때 빛 속성으로 공격을 하면······.’
그 파괴력이 2배가 된다.
즉,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