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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70화 (170/200)

170화

0.01초 소드마스터 170화

“여긴······.”

테르카나가 열어 준 포탈을 타고 도착한 곳은 어둠만이 가득한 어느 동굴 안이었다.

촤악-!

하지만 테르카나의 손짓 한번에 사방에서 불이 일어났고, 모든 것이 환하게 보였다.

한 발자국 앞으로 발을 내디딘 모데루스는 곧 인상을 찌푸렸다.

“악취가 나는구나.”

“예. 강력한 신성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요. 그나마 이것도 많이 약해진 겁니다.”

악마이기에 이런 신성 마법에는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신성 마법으로는 모데루스 정도 되는 악마에게 생채기조차 낼 수 없지만, 이곳에 깔린 마법들은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대체 여긴 어디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린다고 말입니다.”

그분이 있는 곳이라면-

“레메게톤께서 이런 곳에 계신단 말이냐?”

“예, 바로 저곳입니다.”

테르카나가 가리킨 곳은 이 우중충한 동굴 끝자락이었다.

그곳에는 길쭉한 네모 모형의 관 같은 것이 높게 솟아 있었다.

“흠-”

모데루스는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파직-!!

신성력이 깃든 방어막이 스파크를 튀며 그를 강렬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그에 굴하지 않고 모데루스는 방어막을 억지로 파고 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파직-! 파지직-!

몸이 검게 그을리며 타들어 가고 신성력에 의해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었지만, 모데루스는 이를 악물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모데루스 님. 분명 이 마법을 다른 방법으로 해제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요.”

“더 이상 맘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가 이렇게 있는 동안, 아슬란이 언제 악마들을 소멸시키러 올지 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레메게톤 님을 부활시켜야 한다!”

그 굳건한 의지로 거침없이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가진 모든 마기를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크윽-”

중간중간 몸이 너덜너덜해지면서 그 고통에 무릎을 꿇었지만, 끝끝내 그는 동굴 끝자락에 다다랐다.

“고작 이 정도 신성력으로는 그분을 살리려는 날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석관 위에 있던 신성한 마력핵을 움켜쥐는 순간.

파앗-!!

동굴 전체에 가득했던 숨 막히는 신성 마법이 전부 해제되었다.

“후우-”

간신히 살아난 모데루스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로 정신과 육체가 고통스러워지는 신성력은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짝- 짝- 짝-

뒤에서 느릿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테르카나는 건방을 떨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모데루스 님이라면 어떻게든 이 신성 마법을 해제시켜 줄 거라 믿었습니다.”

“너······. 일부러 날 여기에 데려왔던 것이냐? 이 마법을 해제하려고?”

“예, 송구하지만, 저는 모데루스 님처럼 대단한 바빌론이 아니라서요. 방금 그 정도 신성력이었으면 전 죽었습니다. 하지만 모데루스 님은 다르시죠. 그래서 이렇게 부탁을 드린 겁니다.”

소름 끼치는 놈.

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저놈은 항상 모데루스를 높이 평가해 주며 아부를 떨어댔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늘 저놈에게 이용당하는 것만 같았다.

‘이 일만 잘 끝나면 저놈은 죽여야겠다.’

그동안은 포탈을 열 수 있다는 그 특별한 능력 때문에 살려뒀지만, 보면 볼수록 꺼림칙했다.

“그런데 이런 곳은 대체 누가 만든 거지?”

“그건 아마 라할일 것입 니다.”

“라할?”

“예, 레메게톤 님을 이곳으로 유인하여 봉인해 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레메게톤 님에게서 나오는 마기에 의해 신성력이 약해져 갔던 겁니다. 덕분에 이렇게 우리가 해제를 시킬 수 있었던 것이고요.”

그랬던 거였나.

이런 곳에 레메게톤 님께서 갇혀 있으셨다니.

“어떻게 하면 레메게톤 님을 살려낼 수 있겠나?”

“레메게톤 님을 부활시킬 수 있는 주문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문을 외우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제물?”

“예. 그것도 마기가 가득한 제물 말입니다.”

“······대악마들을 바치면 되는 건가?”

“아니요. 그것보다 더 큰 것이 필요합니다. 가령-”

테르카나는 힐끗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빌론이라든가······.”

“뭐라고?”

모데루스는 눈을 부라렸다.

“물론 모데루스 님을 제물로 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레메게톤 님께서 부활하시면 크게 쓰이실 텐데, 당연히 이 자리에 계속 남아 주셔야지요.”

“그럼?”

“다른 바빌론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레메게톤 님의 뜻을 잊어버리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쓸모없는 놈들을 붙잡아 레메게톤 님의 위대한 부활에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바빌론을 붙잡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인가?

제정신이 아닌 소리 같았지만-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레메게톤 님을 모른 척할 것인지, 아니면 대의를 잊은 그 바빌론들을 제물로 바칠지 말입니다.”

모데루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 * *

콰쾅-!

한가로운 오후.

하지만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길 시간은 없었다.

우리 병사들이 칼루탄을 잔뜩 가져와 마구 터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콰쾅-!!

‘아따 잘 터진다.’

이것이 과학의 힘이라는 것인가.

과학이라는 것도 좀 웃기긴 했다.

칼루탄도 결국 마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일정 마력을 가하여 터트리는 것이 칼루탄인데, 라파엘이 마법 공학으로 칼루탄의 위력을 키워 놓았다.

그 덕분에 저 큰 산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되었다.

‘저 요상한 골렘 놈이 튀어나올 정도면 분명히 여기에 문이 있다는 뜻인데.’

세상의 끝으로 닿는 문.

그 안에 들어가면 과연 무엇이 튀어나올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거기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도, 패턴도, 전부 다 랜덤이니 말이다.

한 가지 이상한 건, 보통 그 문으로 향할 때는 저런 몬스터가 튀어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골렘이에요.”

내게 덤볐다가 반갈죽이 나 버린 골렘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라파엘이었다.

“마치······. 우리 엘프들이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은 기운이······.”

그리 라파엘이 중얼 거리고 있을 때였다.

“여기에 뭔가가 있습니다!!”

병사들의 목소리에 나는 무너져 내려 버린 바위산 위로 올라가 보았다.

‘뭐야 이건?’

근데 내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분명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입구를 기대했는데, 이건 푸른색 마법진이 새겨진 내 키만 한 마법석이 두둥실 떠 있었다.

“어, 어찌할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도 처음 보는 거라 당황스러운데.

그래도 일단 부숴는 봐야겠지?

이걸 부수면 문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알렉산더.”

“예!”

[알렉산더]

무력: 95

지력: 90

이제는 완전히 괴물이 되어 버린 우리 알렉산더가 힘찬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에 반해 뒤에서 쭈굴쭈굴 있는 아론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이걸 부숴라.”

“예.”

혹시 모르니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알렉산더는 검을 뽑아 들곤 준비 자세도 없이 냅다 마법석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때 라파엘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달려왔다.

“자, 잠깐만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알렉산더의 검이 마법석을 정확하게 내려쳤으니.

콰아앙-!!

마법석이 강한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에 강한 힘을 뿜어냈다.

그것은 내가 있는 곳으로도 과격하게 날아 들어왔는데, 아론이 빠르게 나아가 나를 대신하여 몸으로 막아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드디어 한 건 했다는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론이 조금은 불쌍해 보였다.

그래도 아론아.

넌 내가 그동안의 공을 생각해서 대기사단장을 시켜줬잖니.

사실은 아론이 가진 특성 때문에 시킨 것도 있긴 하다.

“모두 괜찮으냐?”

“예.”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마법석을 부순 알렉산더는 조금 다친 것 같았지만, 저놈이 가진 괴물 같은 회복력이면 걱정할 것 없었다.

‘근데 대체 뭐가 있길래 저런 마법석이 여기 있는 거야?’

안 그래도 알렉산더가 저 마법석을 치기 전에 라파엘이 달려와서 멈추라고 소리를 쳤었다.

“라파엘. 너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예. 처음에는 저도 긴가민가했지만,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저건 고대 엘프들이 만들어낸 마법석입니다.”

“고대 엘프?”

“네, 저 마법석이 있다는 건 필시 뭔가를 여기에다 봉인해 놨다는 거예요.”

그렇다는 건 방금 우리가 그 봉인을 깨버렸다는 건가?

‘이거 왠지 도망가야 할 거 같은데.’

왠지 저런 거대한 골렘이 떡하니 입구를 지키고 있더라.

누군가가 이 봉인을 풀지 못하게 막아 놓은 것이 분명하다.

‘그럼 더 늦기 전에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쿠구구구-!!

땅이 울부짖는 것처럼 굉음을 내며 흔들리더니, 마법석이 있던 자리에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어리석은 필멸자들이여.]

너무 빛이 강하여 그것의 형체를 알아볼 순 없었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너희의 우매함과 어리석음을 깨우칠 시험을 내리노라.]

그 강렬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동시에 고막을 터트릴 것만 같은 시끄러운 소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크악!”

기사들은 괴로움에 귀를 막고 발버둥을 쳐댔다.

나 역시 난생처음 들어보는 그 엄청난 소음에 귀에서 피가 터질 것 같았다.

나의 부하들도 전부 신음을 터트리며 쓰러지는 와중에,

“흐읍-!!”

라일라칸과 알렉산더만은 정신줄을 붙잡고 칼을 뽑아 우리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달려 나아갔다.

콰콰콰콱-!!

그 두 사람이 날린 일격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누구도 신의 시험을 피할 수 없다.]

신의 시험?

그게 뭐지?

[나 루겔로스는 오늘 너희를 시험하고, 심판할 것이다.]

잠깐.

루겔로스라고?

루겔로스.

지배의 신으로 불리며, 라할이 만든 6명의 신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6명의 신 중에서 가장 포악한 성격을 지녔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 악명대로 놈은 다짜고짜 우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크윽!”

라일라칸과 알렉산더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비틀거렸다.

어떻게든 라일라칸은 힘을 끌어 올려 대항했으나, 쉬워 보이진 않았다.

상대는 바로 신이라 불리는 존재이지 않던가.

그리고 루겔로스가 이들에게 환상을 보여 주고 있는지, 부하들과 기사들은 울음을 터트리거나, 아니면 화를 내거나, 그것도 아니면 신음을 토하며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왜 나는 멀쩡한 거지?’

처음에만 귀가 아플 정도로 소음이 들리다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그냥 이대로 나도 미친 척을 해야 하나? 저놈이 눈치채기 전에?’

그런 일련의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스르르르-

저 멀찍이 라일라칸과 알렉산더를 상대하고 있던 루겔로스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마치 귀신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말이다.

놈을 보고 화들짝 놀라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미 머리끝까지 잠식해 버린 허세로 인해 그럴 수 없었다.

[넌 뭐지? 왜 내 시험을 받지 않는 것이냐?]

오히려,

“감히 누가 짐을 시험할 수 있단 말인가?”

루겔로스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허세를 부렸다.

“죽고 싶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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