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0.01초 소드마스터 158화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이제는 베라크 제국이 된 일라이 왕국.
오랜만에 도시에 방문한 레베카는 완전히 뒤바뀐 성 안 풍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가 말하지 않았소, 누님. 예전 일라이 왕국이 아니라니까요?”
레베카는 부하들과 함께 대륙 전역을 탐험했다.
최근에는 배를 이끌고 나가 인간이 살지 않는 미지의 대륙도 탐험했을 정도다.
그리고 다시 이곳에 돌아오니, 베라크 제국이란 곳이 세워져 있었다.
“경배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라할의 화신이자 이 대륙을 구원하고자 친히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신 아슬란 님에게!”
“아슬란 님께서는 우리의 빛이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성 안에서는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슬란을 칭송하고 있었다.
“잠깐. 저거 레이어스 교단 사제복 아니야?”
“어? 그러네요.”
“그냥 가짜 아닐까요?”
“그럴 리 없어. 진짜 사제가 아닌데 사제복을 입고 있으면 큰 처벌을 받게 돼.”
그렇다는 건 저들이 진짜 레이어스 교단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아슬란이 라할이라고 말이다.
“이거, 소문이 정말 사실인가 보오.”
“레이어스 교단이 아슬란 황제를 라할의 화신으로 인정했다던데, 그게 정말인가 본데요 누님?”
대륙의 소식이 닿지 않는 곳에 오랫동안 있느라 돌아온 이후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중 제일 충격적인 건 아슬란이 라할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헛소문이라 생각했는데, 여기 백성들의 모습을 보니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깡깡깡-!
도시 한 가운데에서는 거대한 조각상이 세워 지고 있었다.
수많은 조각가들이 땀방울을 흘리며 땡볕 아래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웃는 얼굴로 열심히 작업을 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다고 해야 할까.
그것이 부하들에게도 특별하게 보였는지, 그중 하나가 다가가서 물었다.
“지금 뭘 만들고 있는 거요?”
“허허. 보면 모르겠소? 이 위엄 넘치는 풍채와 근엄한 모습을 보고도 말이오.”
“아······ 설마 아슬란?”
그러자 조각가의 안색이 확 변해 버렸다.
“지금 감히 우리 황제 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른 것이오?”
“응?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당신들 뭐야? 뭔데 감히 하늘과 땅을 두루 다스리시는 우리 폐하를 함부로 부르는 거야!”
소란을 듣고 다른 조각가들이 각자 연장을 챙기며 레베카 무리에게 모여 들었다.
레베카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들 오해하지 마세요. 여기 이놈이 머리가 아픈 놈이라 사리 분별을 못 합니다.”
“크흠. 왠지 어디가 많이 모자라 보이긴 했어.”
“한번만 더 그따위 소리를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 아무리 아픈 자라고 해도 신성 모독을 하는 건 용서할 수 없으니.”
그들은 다시 작업을 하기 위해 돌아갔고, 레베카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 장인들이 유독 아슬란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것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 보라.
“빛의 신이시여!”
“오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부디 그 따뜻한 손길로 보살펴 주십시오.”
곳곳에서 사제들을 중심으로 기도회가 열렸으며, 아슬란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또한 거리에서는 아슬란의 그림이 새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상인들도 아슬란과 관련된 물품을 파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말 신이 된 모양이네. 그 인간.”
아슬란이 라할이라.
어째서 그런 일이.
“저기요. 언니..”
“아, 응.”
“근데 언니가 정말로 아슬란의 약혼녀였어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던 중 만나게 되어 그녀의 새로운 부하가 된 에밀리.
아무런 악의도 없는 순진무구한 그 눈동자에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랬지. 근데 잠깐이었어. 딱히 우리 둘 다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 그럼 지금은요? 지금도 마음이 없어요?”
“야.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입 다물어.”
“그래도 약혼녀인데. 아슬란을 개인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거야······.”
너무나도 위대해져 버린 아슬란이었기에 과연 그녀를 만나 줄 지도 의문이었다.
“에이. 몰라.”
어차피 그를 만나려고 이곳에 온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지 말고 한번 만나보는 게 어때요?”
“뭐?”
“궁금하잖아요. 과연 아슬란이 언니를 어떻게 대할지. 그리고 여기서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황제라는 사람이 도와 주면 더 쉬워지지 않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가는 건 좀······.”
바로 그때였다.
에밀리의 손에서 분홍빛 마력이 새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
그 마력은 고스란히 레베카에게 스며 들어갔다.
“괜찮아요, 언니. 언니는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아슬란을 만나러 가봐요.”
마력에 잠식당한 레베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라할의······ 화신?”
“예. 교단이 정식으로 선포했습니다. 아슬란 황제가 라할의 화신임을 말입니다.”
바빌론들은 대륙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미간을 좁혔다.
아슬란.
바빌론 중 하나인 레키어스를 죽였던 인물.
그리고 그들은 그가 뿜어낸 마기를 보고 그가 설마 레메게톤의 화신인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뜬금 없이 그가 라할의 화신이었다니?
“확실한 정보인가?”
“무려 교단이 정식으로 인정한 일입니다. 그렇다는 건 아슬란이 정말 라할의 화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분명합니다. 그 교단이 인정한 일이니까요.”
테르카나의 말에 바빌론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라할이라니? 레메게톤 님이 아니라?”
“그럼 저번에 아슬란이 보여줬던 그 마기는 대체 무어란 말이냐?”
“글쎄요. 알려진 바에 의하면 라할은 어둠의 힘을 결코 쓰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이야기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군요. 라할은 최고의 신으로 추앙받지 않습니까? 당연히 어둠의 힘을 다룰 줄도 알겠지요.”
“최고의 신은 오직 레메게톤 님 뿐이시다.”
“그럼 레메게톤 님께서는 빛의 힘을 다루실 줄 아십니까?”
“······.”
라할과 레메게톤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빛과 어둠에서 최고의 힘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서로 다른 힘을 사용하지 못 한다.
라할은 오직 빛의 힘만, 레메게톤은 오직 어둠의 힘만을 다룬다.
상극이 되는 다른 힘을 쓰지 못 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로써 확실해지지 않았나? 아슬란은 레메게톤 님의 화신이 아니다. 놈이 라할의 화신이라면 우리가 없애야 할 적이다.”
“오랜만에 맞는 소리를 하는군. 아슬란은 우리가 죽여야 할 적이다. 그가 정말로 라할의 화신이라면 반드시 죽여야 돼.”
바빌론들의 말에 모데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슬란이 라할의 화신인지 아닌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
“이미 교단에서 공식으로 선포를 했다면서?”
“그래. 그렇다는 건 라할을 따르는 자들도 그 소식을 들었을 거다.”
“라할을 따르는 자?”
“라할이 직접 창조한 가짜 신들 말이다.”
레메게톤에게 바빌론이 있는 것처럼, 라할에게도 그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바로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 하지만, 그것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건 바빌론들도 알고 있었다.
“그 역겨운 놈들이 과연 다시 나타나려고 할까?”
“라할이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아슬란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겠지. 만일 그가 사기꾼이라면 우리가 손을 쓰기도 전에 놈들이 먼저 그를 제거할 것이다.”
라할이 만든 신들이니, 분명 누구보다도 라할을 잘 알아보게 될 터.
그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 테르카나가 말했다.
“만약 그들마저도 아슬란이 라할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면······ 그땐 어쩔 생각이십니까?”
“······.”
그 말에 바빌론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정말 라할이라면 레메게톤이 부활하지 않는 한, 그들이 라할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 * *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분이시여! 오늘도 저희를 굽어 살펴 주십시오.”
“빛의 신이시여. 오늘도 당신의 위대하신 존안을 뵙습니다.”
나도 이제 모르겠다.
황궁에 있는 모든 신하들과 기사들이 나를 신으로 떠받드는 중이다.
그것 뿐인가.
신전의 제사장들도 나를 라할로 공식 인정을 하면서 황궁 옆에다 신전을 새로 세우는 대대적인 공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말려 보려 했으나, 이미 호레스와 아론을 중심으로 놈들이 작당하여 모든 계획을 세워 둔 상태였다.
“폐하. 부디 윤허해 주십시오.”
“이는 빛의 신이신 폐하를 섬기고자 하는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 때문입니다.”
“예. 모두 폐하의 위대하신 이름을 칭송하길 원하며, 당신께 기도를 올리고 싶어 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괜한 짓 하지 말라고 거절을 했는데, 호레스는 날마다 인원수를 늘려와 내게 신전을 세우도록 허락해 달라며 반 협박을 해댔다.
이러다가는 정말 폭동이라도 일어날 기세라 나는 허락해 주었다.
곧 나 아슬란을 신으로 추앙하는 신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 않은가.
내 책임이 아예 없지도 않아서 누굴 탓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나는 그냥 저들이 나를 신으로 부르든 말든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라할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놈들은 내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며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나는 열려 있는 상점창을 쭉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펜던트가 나왔네?’
[테르셰의 팬던트]
-악의 힘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유물.
-여섯 개로 나뉜 팬던트들을 하나로 모으면 전설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의 신, 테르셰의 가호가 함께 하는 팬던트입니다.
-구매시 랜덤으로 옵션이 부여됩니다.
이번에 퀘스트를 연달아 클리어하면서 얻게 된 골드로 상점이 열렸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펜던트가 있었다.
다른 매혹적인 아이템들도 많았으나,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결국 하나 밖에 없었다.
‘나쁜놈들. 이럴 거면 그냥 이거 하나만 보여 주고 나머지는 보여 주지 말든가.’
괜히 사람 군침만 돌게 말이야.
나는 눈물을 머금고 팬던트를 구입했다.
“폐하.”
그때 시종 하나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
“레베카라는 여인이 폐하를 뵙고자 합니다. 과거 폐하의 약혼녀였다고······.”
“레베카가?”
“예.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갑자기 레케베가 여긴 왜 온 거지?
심지어 나와 약혼을 했다는 사실까지 밝히면서 말이다.
“데리고 오너라.”
“예.”
나는 레베카가 오는 동안 팬던트를 살펴보았다.
그것이 내 손에 쥐어지기 무섭게 새로운 효과가 부여 되었다.
[시간이 멈춘 자]
-15초 동안 무적 상태가 됩니다. 단, 시전자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500초)
이건······!
나도 알고 있는 효과였다.
약 3초가량 행동 불능이 되는 대신, 무적 상태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인데, 이건 무려 15초 동안 그 효과가 유지된다.
심지어 이 효과는 찰나의 괴력을 쓰지 않아도 쓸 수가 있는 능력이었다.
‘그럼 15초 동안은 어떤 공격이라도 다 씹을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혼자 씨익 웃고 있을 때였다.
시종이 레베카와 그녀의 일행을 함께 내 집무실로 데리고 왔다.
“어서 오너라, 레베카.”
레베카 옆에 있던 노란 머리의 여인은 맑은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광기마저 느껴지는 눈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으나, 그 위에 나타나는 정보창에 지나칠 수가 없었다.
[테르셰]
“······!?”
저 순진무구하고 광기 어린 눈동자를 가진 여인은 다름 아닌 이 팬던트의 주인이자 ‘신’인 테르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