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0.01초 소드마스터 147화
“이렇게 모이는 것도 오랜만이군.”
7명의 바빌론.
지옥의 왕, 레메게톤의 수족이자 대악마들을 이끄는 지휘관들이었다.
하지만 300년 전 전쟁 이후로 그들 중 몇몇은 죽고, 새로운 바빌론이 탄생했다.
그리고 악마라는 특징 때문인지,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오히려 경계하며 심하면 전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7명 중에서 6명만 말이다.
“레키어스는······. 정말 죽은 건가?”
“레키어스, 그 멍청한 놈이 인간의 손에 죽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런데 왜 저 불꽃이 왜 아직도 남아 있는 거지?”
바빌론들은 레키어스 자리에 일렁거리고 있는 불꽃을 보고 의아해했다.
분명 보고에 의하면 레키어스는 인간의 손에 죽었다.
그렇다면 그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저 원혼의 불꽃이 사라져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저 불꽃이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거라면······.
“레키어스가 죽지 않았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레키어스 님은 분명히 죽으셨습니다.”
그때 목소리를 낸 것은 다름 아닌 테르카나였다.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레키어스 님께서 아슬란 손에 죽으시는 것을.”
“직접? 그렇다는 건 레키어스가 죽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켜만 봤다는 건가?”
“어쩌겠습니까. 제가 가진 힘이 보잘것없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도망치는 것밖에 없는데요.”
테르카나의 솔직한 대답에 바빌론들은 저마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곳에서 누구 하나 레키어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불꽃은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거지? 고장 난 건 아닐 텐데. 네가 분명 레키어스는 죽었다고 했잖아?”
바빌론 중 하나의 물음에 테르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분명 제 두 눈으로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레키어스 님께서 아슬란의 검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가지고 계시던 모든 마기가 아슬란에게 흡수되었다는 겁니다.”
“······뭐라고?”
바빌론들의 안색이 굳어 갔다.
바빌론이란 존재가 인간의 손에 죽은 것도 충격인데, 그 지독한 마기가 전부 흡수되었다는 건가?
“그래서 불꽃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레키어스 님의 마기가 아슬란에게 남아 있는 것이니까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러나 이들 중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바빌론의 마기는 흡수할 만한 것이 아니다. 대악마 수십을 합쳐도 그 정도의 마기가 나오지 않으니까. 그만큼 특별한 마기라는 것이다. 우리끼리도 상대의 마기를 흡수하지 못하거늘, 고작 하찮은 인간 따위가 레키어스의 마기를 흡수해?”
“비록 우리 바빌론끼리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서로의 실력은 인정하는 바다. 레키어스의 마기는 굉장히 지독하지. 그것을 조금이라도 품는다면 악마의 몸이라도 버티지 못할 터. 인간이 그것을 취할 수 있을 리 없다.”
바빌론들의 말에 테르카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빌론 님들의 마기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하지만······. 전 본 것을 그대로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아슬란에게 흡수되기 전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레메게톤 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고 말입니다.”
“!?”
듣다 못한 바빌론 하나가 소리쳤다.
“테르카나!! 네놈이 죽고 싶어서 감히 그따위 소리를!”
하지만 테르카나는 겁을 먹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당신들의 종인 저는 그저 사실을 전할 뿐입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고, 이내 묵직한 음성 하나가 들려왔다.
“테르카나.”
“예, 모데루스 님.”
“네가 본 것을 우리에게 보여라.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테르카나는 마법을 펼쳐 그가 그날 보았던 것을 이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그 보랏빛 마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바빌론들은 레키어스의 최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역시도.
“레키어스······. 이 미친놈이······.”
“레메게톤 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정신 나간 발상이로군.”
“하지만······. 아슬란. 이놈의 정체는 대체 뭐지? 어떻게 저런 마기를 풀어낼 수가.”
다른 바빌론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테르카나가 남긴 잔영을 확인하던 모데루스가 물었다.
“테르카나. 네가 본 것이 확실한 거겠지?”
“그 어떤 마법으로도 조작하지 못 하는 겁니다. 제가 본 것 그대로를 보여 드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정말 그 아슬란이란 자가 바빌론을 집어삼킬 만큼의 마기를 가졌다는 것이냐?”
“예. 레키어스 님은 그것이 레메게톤 님의 마기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분께서 인간의 화신으로 오신 것이지요.”
“닥쳐라! 레메게톤 님은 지금 이 아래 계시거늘!”
다른 바빌론의 반박에 테르카나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저 레키어스 님이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는 것뿐입니다.”
바빌론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었다.
지옥의 왕, 레메게톤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레메게톤은 누구보다도 인간을 증오하지 않았던가.
거기다 그의 영혼은 지금 이 무저갱 밑바닥에 잠들어 있다.
“레키어스가 어리석은 놈은 아니다. 너희도 보지 않았나? 아슬란이란 인간이 가진 힘을. 그는······. 우리 바빌론을 뛰어넘는 마기를 지니고 있다. 레키어스가 괜히 레메게톤 님의 이름을 꺼낸 것이 아니야.”
인간이, 그 하찮고 나약한 인간 따위가 바빌론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정말로 레메게톤 님이 아슬란이란 인간의 몸으로 환생하신 거라면······ 그땐 어떡해야 하지?”
“······.”
혼란에 빠진 바빌론 중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당분간 아슬란이란 자의 정체가 확실시될 때까지 그에게 접근하지 마라. 레키어스처럼 잡아 먹히고 싶지 않다면.”
침묵은 곧 긍정을 뜻했다.
* * *
“······.”
갑자기 오한이 느껴졌다.
또 누군가 작당 모의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제 바빌론들이 계속 나오겠지?’
레키어스가 나왔으니, 이제 다른 바빌론들이 줄줄이 나오게 될 것이다.
“마탑 건설은 착실하게 되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신 대로 샤나 왕국에 지은 것처럼 이곳에는 더 웅장하고 위대한 마탑을 쌓아 올리는 중입니다.”
“현재 에인소프 왕국에도 새로운 방어 시설을 만드는 중입니다.”
“명령을 내리신 대로 악마들과의 전쟁에 대비해 대대적인 군사 모집을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열 배나 많은 이들이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방어 시설 구축은 착착 진행이 되는 중이었다.
그때 내 귀에 끌리는 소식이 하나 있었다.
“열 배?”
“그렇습니다. 왕께서 군사를 필요로 하신다는 말을 듣고 백성들이 너도나도 지원서를 내고 있습니다.”
나는 흐뭇하게 웃고 있는 아론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론의 선동에 힘입어 나를 숭배하는 광신도들이 열 배나 많이 지원을 해 준 것이리라.
‘흠. 좋은 건가?’
그래도 군사들이 부족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 적당히 추려라. 열 배는 너무나도 많으니, 두 배 정도만 받아서 군사력을 늘리면 될 터. 양 보다는 질이라는 것을 기억하거라.”
“왕의 명령을 받듭니다!”
그러다 나는 오늘 회의에 모인 사람 중 어울리지 않는 한 명에게 눈길을 보냈다.
“엘버스테인.”
“아, 예. 왕이시여.”
“너는 가서 네 왕국을 돌봐야 하지 않느냐?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악마가 침공하고 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전쟁에 대비하고자 왔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이제 왕국 간의 텔레포트 게이트 만들어 서로 왕래가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물론 그걸 만들게 되면 마력석이 더럽게 많이 필요하다는 게 단점이었다.
거기다 그 마력석을 사는 데에 들어갈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지만, 지금 돈을 아껴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이럴 때를 위해서 그동안 개처럼 벌어왔던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시여.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오메르, 가자르, 샤나, 할라즈, 만, 등등. 이미 일라이 왕국에 충성을 맹세하며 당신의 밑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왕국의 명맥 또한 이어가고 있지요.”
그렇게 만든 이유가 있었다.
그곳을 다스리는 왕을 폐위시킨다면 새로운 책임자를 놓아야 하고, 그럼 안 그래도 어수선한 민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내 명성으로 어떻게든 잠재울 수 있다고 해도 기존에 있던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것이기에 여러모로 복잡해진다.
그래서 그냥 그들의 왕권을 가만히 놔두는 것이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그들이 힘을 합쳐 나를 칠 명분도 없거니와, 그런다고 해도 우리 군사력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하기에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왕의 업적은 늘어나고 있으며, 그 명성 역시 하늘보다 높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항복했던 왕국의 백성들은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기뻐하는 중입니다. 아슬란 님의 이름 아래 자신들이 속해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부족한 소속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이놈이 무슨 말을 하려고 무게를 잡는 거지?
심지어 전각에 모인 기사들과 신하들 역시 미리 입이라도 맞춘 것인지 적당히 엘버스테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고 있었다.
“왕이시여.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왕께서는 대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시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대로 왕국들을 가만히 두고만 보시렵니까? 그들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러자 엘버스테인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내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왕이시여. 대륙 최초의 제국을 세워 황제가 되어 주십시오.”
“······!?”
뭐, 뭐여?
제국을 세워?
“황제가 되어 주십시오!!”
“새로운 제국의 황제가 되어 이 대륙을 다스려 주십시오!”
엘버스테인에 이어 다른 신하들도 모두 엎드려 내게 소리쳤다.
황제가 되어 달라고 말이다.
‘갑자기 황제?’
아니.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카르만이 다스리고 있는 칼라 왕국을 제외하고는 이미 모든 왕국을 내 손아귀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제국을 세우게 되면 칼라 왕국이랑 전쟁을 벌이겠다는 거잖아?’
아직 칼라 왕국이 건재한데도 제국을 세운다는 건, 너마저도 내 손아귀에 넣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칼라 왕국과의 사이가 무척 껄끄러운데, 여기서 제국을 세워 나 스스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건 무조건 전쟁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바빌론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칼라 왕국이랑 전쟁을 해버리면······.’
[‘황제의 길’ 메인 퀘스트가 업데이트 됩니다.]
그때 내 눈앞에 메시지 창 하나가 떴다.
-칼라 왕국을 정복하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십시오.
-보상으로 30골드를 얻습니다.
놈은 내가 칼라 왕국과 전쟁을 하여 제국을 건설하길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