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0.01초 소드마스터 132화
“여긴······.”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있는 곳이다.”
라일라칸을 따라간 곳은 다름 아닌 가자르 왕국의 중심에 있는 지하 무덤이었다.
카르만은 라일라칸이 선을 너무 과하게 넘었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작스레 가자르 왕국을 침범하여 그들의 병사들을 죽이고 대기사단장인 레키엘까지 죽여버렸다.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그를 심판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충성스러운 부하들이라고 하면······.”
“300년 전 나를 따라 악마들을 몰아냈던 최정예 기사단이지.”
라일라칸의 최정예 기사단?
왠지 그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3,000명으로 이루어진 청명의 기사단.
그들은 라일라칸과 함께 싸워 테키나 족속을 몰아냈고, 라일라칸이 죽으면서 그들도 함께 따라 묻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들의 무덤이 여기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그 당시 가자르 왕국의 왕이 나와 은밀한 약속을 맺었지. 헌데 이 어리석은 놈들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내 길을 막더구나. 그래서 정당한 형벌을 내렸을 뿐이다.”
“······.”
고작 그런 말로 이 학살이 정당화될 거라 믿는 것인가.
카르만은 점점 라일라칸이 사실은 미친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헌데 이곳에는 왜 오신 겁니까?”
“당연히 이들을 살리기 위해 왔지.”
“예? 설마 이들도 봉인이 된 것입니까?”
“아니. 이들은 정말 죽었다. 하지만 다시 되살릴 방법이 있지.”
그 말에 카르만은 미간을 좁혔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마법, 네크로맨시.
그건 모든 국가에서 금지하는 흑마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륙의 영웅이라는 자가 그걸 쓰겠다는 것인가?
“라일라칸 님. 네크로맨시는 모든 왕국에서 금지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이냐? 너희가 그토록 원하는 대륙의 평화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 입 다물거라.”
라일라칸은 이미 결정을 내렸고,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리베리엄 화산에서 가져온 영원의 불을 무덤 아래에 떨어뜨렸다.
“이건······.”
“영원의 불이라는 것이다. 이 힘으로 나의 기사단은 다시 살아나겠지.”
무덤 안에 퍼져 나간 영원의 불은 라일라칸의 말대로 기사들을 하나둘 되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육신이 영원의 불에 의해 재탄생하고, 그 푸른 원혼의 불길이 온몸에 감돌았다.
“영원의 불을 이곳에다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흠. 글쎄. 리베리엄 화산처럼 이곳 주변이 전부 불지옥이 되겠지.”
“!?”
그 말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이곳 가자르 왕국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멈추십시오!”
“이미 멈출 수 없는 일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법. 카르만, 너도 왕이라면 알 텐데?”
카르만은 점점 퍼져 나가고 있는 불길을 막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깨달았다.
사실 자신들이 깨운 것은 대륙의 영웅이 아닌, 악을 물리칠 새로운 악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살벌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전각 안에 감돌았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왕?”
어처구니가 없었던 미카엘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슬란이란 인간은 거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본좌가 틀린 말을 했느냐? 빛의 증표를 받은 자를 따르는 것이 너희들이 사명일 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인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빛의 증표를 가진 자를 돕고 따르라는 명령이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아주 당연하게도 미카엘은 사르디엘 족속 중에서 빛의 증표를 받는 천사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될 거라 믿기도 했다.
왜냐하면 천계의 천사들은 그 어떤 족속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인간 따위가 저 증표를 가졌단 말인가?
반발심이 일고 적개심이 물씬 피어올랐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우리가 왜 네게 고개를 조아릴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너희는 라할의 개가 아니더냐? 그럼 라할의 명령을 따라야지. 왜 거부하는 거지?”
천계의 천사는 신비스러운 존재이며, 그들의 강림은 백성들에게 두렵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리 강대국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천계의 천사들이 내려오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무릎부터 꿇었다.
그만큼 이들의 권위가 대단했다.
그런데 감히 인간 따위가 천사들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자신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한다.
그것도 라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미카엘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라할이 사라진 지 오래라 이미 그에 대한 충성심도 함께 사라진 것이냐?”
그 말에 미카엘이 눈을 부릅떴다.
“이 건방진 놈이 감히!”
“역정을 내는 것을 보아하니, 반박할 말이 없는 모양이군.”
대체 어떻게 안 거지?
라할의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천계에서도 그 일을 아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찌 저자가······.
“정녕 라할이 사라진 덕분에 네놈들의 족쇄가 풀린 것이라면 방금 전 말은 정정해 주도록 하지.”
미카엘은 빠득 이를 갈았다.
저놈이 그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죽여서 그 입을 막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빛의 증표를 받았다고 해서 죄로부터 자유로울 거라 생각하는가?”
미카엘이 손을 뻗자 그의 앞에 찬란한 빛을 품은 검이 만들어졌다.
“네놈은 감히 신을 능멸하고, 너의 창조주이신 라할을 부정했다. 그것은 죽음으로 갚아야 할 일! 또한 너를 따르고, 너를 섬기는 이 왕국 전체에도 라할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슬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하찮게 미카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참으로 과하지 않은가. 한 사람의 잘못을 왕국 전체에 돌리다니. 너희의 신이 그리하라고 했다면 참으로 그 신은 역하기 짝이 없구나.”
“뭐라?”
“그리고 이 결정이 정녕 신의 결정이라 할 수 있겠나. 만일 지금 이 결정이 정말로 너희가 믿고 따르는 라할이 내린 것이라면 순순히 따라주겠다. 그러니 라할을 이곳에 데려오너라. 너희의 심판이 정의롭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
미카엘은 눈가를 꿈틀거렸다.
“네놈이 정녕 미친 게로구나.”
그러고는 빛에 의해 만들어진 검을 땅에 꽂았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빛에 의해 정화되리라.”
그러자 검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신성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으헉!”
“크악!”
전각에 모여 있던 기사들과 신하들이 일제히 신음을 토하며 쓰러졌다.
“한 톨의 거짓, 한 톨의 죄라도 그 안에 남아 있다면 이 심판의 빛으로 정화될 것이다. 죄가 없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고, 죄 있는 자는 이곳에서 심판을 받으리라.”
사람은 누구나 악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선과 악이 그 안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카엘이 뿌린 이 심판의 빛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구원시킨 적이 없었다.
늘 심판하며 그들을 죄와 함께 소멸시켰을 뿐.
그런데-
“······?”
이들 모두가 심판의 빛에 괴로워하며 고통의 신음을 흘리고 있거늘.
저 왕좌에 앉아 있는 아슬란은 멀쩡했다.
빛이 분명 그를 관통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여전히 덤덤하고 냉담한 눈동자로 미카엘을 바라볼 뿐이었다.
더군다나 그를 관통한 빛은 서서히 그에게 스며들고 있기까지 했다.
그렇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저 심판의 빛이 아슬란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저 심판의 빛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하다니.
정녕 그에게는 단 한 톨의 죄악도, 단 한 톨의 어둠도 없다는 뜻인가?
인간이 어찌 그럴 수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로구나.”
그때 아슬란의 음성이 미카엘에게 파고들었다.
“그러니 너희가 라할의 개 노릇을 하는 것이다.”
“!?”
미카엘은 마른침을 삼키며 아슬란을 올려다 보았다.
“이런 하찮은 힘으로 감히 본좌를 판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가? 고작 이런 힘으로 본좌의 그릇을 헤아릴 수 있을 거라 믿었느냐?”
이 힘은 라할이 천계에서 유일하게 미카엘에게 허락한 심판의 권능.
하지만 아슬란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만약 이게 통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이 그에게 통할 수 있을까.
이윽고 아슬란의 진노 섞인 음성이 전각 안을 울렸다.
“건방지고 가소롭다. 모두를 심판할 수 있을 거라 믿는 너희의 오만함에 치가 떨리는구나.”
그는 발을 들어 바닥을 가볍게 내리쳤다.
그러자,
쿠웅-!! 콰콰콱-!!
왕궁 전체가 흔들리는 진동이 울리면서 전각 전체에 균열이 벌어졌다.
또한 그 균열이 일직선으로 뻗어와 미카엘이 바닥에 꽂은 검에 닿았다.
콰앙-!!
그리고 거기서 폭발하며 검이 튀어 올라 바닥에 떨어졌다.
‘저건······?’
미카엘은 떨어진 검에 서서히 퍼져 나가고 있는 검은 기운을 보게 되었다.
빛을 거부하고 그것을 삼키려 드는 힘.
바로 어둠이었다.
어둠은 그 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슬란에게서 뻗어 나간 어둠이 빛으로 심판을 받고 있던 기사들과 신하들에게 닿았고, 그것들이 빛을 몰아내면서 그들은 자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어둠이 미카엘과 천사들에게 닿는 순간.
“크억!”
그들은 바닥에 고꾸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들을 지키던 빛이, 그들의 아름다운 날개가,
“아, 안 돼!”
어둠에 물들고 있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저 심연 속에서 모든 걸 빨아들이는 어둠은 빛마저도 집어삼킨다.
“크으읍-!”
미카엘은 무릎을 꿇은 자리에서 몸을 떨며 아슬란을 힘겹게 올려다보았다.
거기서 그는 보았다.
아슬란에게서 나오는 지독한 어둠의 힘을.
그리고 그것은 마치-
‘레메게톤?!’
지옥의 왕이자, 어둠을 다스리는 악의 신, 레메게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촤아아-
“······?”
그들을 짓누르던 무지막지한 힘과 어둠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대로 어둠이 그들을 집어삼키도록 방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슬란은 중간에 멈춰 버렸다.
어째서지?
“이제야 올바른 자세가 되었구나. 너희의 왕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 힘에 짓눌려 미카엘과 천사들은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정말로 왕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자세처럼 말이다.
미카엘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분노했다.
“감히!”
그러나 그런 그를 천사들이 붙잡았다.
“미, 미카엘 님.”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 이러다 정말 죽습니다.”
“······!”
미카엘은 천사들의 몸이 성치 않음을 볼 수 있었다.
어둠에 의해 잡아 먹힐 뻔한 그들의 날개는 반쯤 녹아내렸으며, 그들의 몸 역시 어둠이 남기고 간 흔적에 의해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빛을 집어삼키던 레메게톤의 심연의 악몽이 정말 오랜만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재롱을 더 피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보거라.”
미카엘은 아슬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만약 여기서 또 한번 싸움을 걸게 된다면 그땐······.
‘진짜 죽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천계의 족속.
그들은 빛에 의해 영원히 살 수가 있다.
그렇기에 죽음이란 건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
이것보다 더 큰 공포는 없을 것이다.
이 바들바들 떨려오는 두 손이 그것을 증명한다.
미카엘은 지금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의문인 것은,
“악마의 힘······.”
아슬란이 부린 저 힘의 정체였다.
“방금 그건 분명 악마의 힘이었다. 빛의 증표를 가진 자가 어찌 악의 힘을!”
“악마의 힘이라······. 왜 너는 어둠을 무조건 악으로 단정짓는 거지?”
“뭐?”
“또한 빛이 무조건 선인 것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 힘을 다룰 줄 아는 자일 뿐.”
“궤변이다! 너는 빛의 증표를 받은 자가 아닌, 인간의 탈을 쓴 악마다!”
그러자 아슬란이 손을 들었다.
그가 든 손에는 찬란한 빛의 영롱한 불길처럼 일어났다.
아슬란은 그것을 미카엘에게 던졌다.
그 빛이 몸에 닿자, 미카엘은 그 안에 응축된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거기다 그것은 미카엘 몸을 타들어가게 만들고 있던 어둠의 흔적을 치유해주고 있었다.
“어, 어떻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이 천사보다 더 강력한 신성력을 발휘하다니.
특히 이 경외스러운 신성력은 오직 한 존재에게서만 느껴왔던 것이다.
바로 그들의 창조주인 라할.
그런데 어찌 아슬란이 이 정도의 신성력을······!
“이제 다시 한번 말해보거라. 본좌가 정녕 악마인가?”
미카엘은 입을 열지 못했다.
악마는 신성력을 쓸 수 없다.
이 정도의 신성력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는 건 아슬란은 어둠과 빛을 동시에 다룬다는 뜻이었다.
“라할께서도 빛과 어둠을 동시에 다스리지 못하셨거늘!”
그렇기에 미카엘은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너희가 아직도 족쇄에 묶인 어리석은 놈들이라는 것이다.”
아슬란은 그런 미카엘과 천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들 위로 빛의 기둥이 떨어졌다.
“뭐, 뭣?!”
천계에서 내려오는 빛의 기둥이 아닌, 저 아슬란이 만들어낸 기둥이었다.
“너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기다리거라.”
빛의 기둥에 의해 몸이 서서히 떠오르면서 미카엘은 아슬란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본좌가 곧 너희에게 강림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