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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07화 (107/200)

107화

0.01초 소드마스터 107화

“이것이······ 그 유명한 아슬란 님의 신성한 성수로군요.”

“그렇습니다.”

일라이 왕국에는 성수가 우물처럼 흐른다는 소문이 있다.

당연히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건 교황 레헤나도 마찬가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성력으로도 성수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데, 어떻게 성수가 우물처럼 흐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레헤나를 비롯해 그녀를 따르는 성기사들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아론이 당당하게 그들 앞에 나섰다.

“교단의 신성력을 의심하는 것은 절대 아니나, 이 성수는 교단에서 나오는 성수보다 훨씬 더 품질이 좋고 그 깊음이 다릅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교단에서 만드는 성수와 비교하는 건······.”

“그건 직접 판단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레헤나의 직속 성기사단장, 아일린은 아론이 건네는 성수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

의심으로 가득해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번쩍 떠졌다.

“이, 이게 대체······.”

그런 반응을 보고 있자니, 교황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성수를 천천히 마셔 보았다.

“!?”

레헤나도 아일린 못지않게 깜짝 놀란 얼굴로 성수가 담긴 병을 바라봤다.

“어떻습니까?”

“······느껴집니다. 이 물 안에 담긴 강력한 성력이. 이건 교단에서 먹어본 성수 중에도 제일이군요.”

“하하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어떤 성수보다도 이것보다 더 뛰어난 것은 없다고 말입니다.”

아론의 어깨가 쫙 펴지고,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올라가기만 했다.

“무려 우리 일라이 왕국의 국왕께서 만드신 성수입니다. 심지어 그분은 빛의 표식까지 받은, 이 대륙을 구할 예언된 영웅! 당연히 그분께서 만든 성수의 질이 좋을 수밖에요.”

아론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슬란은 여기 있는 모두가 보았듯, 빛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다.

오직 교단에서만 내려오던 예언대로, 아슬란은 이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그 증표를 받았다.

하지만 레헤나는 자꾸만 어제 아슬란에게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라할이 선택한 게 아닌, 아슬란이 선택을 했다라-’

그는 라할을 존중하지 않는다.

빛 역시 숭배하지 않는다.

그의 거만하기 짝이 없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슬란은 그 누구도 숭배하지 않는다.

오직 본인 스스로의 힘을 믿을 뿐.

심지어 영광스러운 빛의 표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아슬란, 그자는 무엇일까.

왜 라할께서는 그자를 선택하신 것일까?

“자, 이건 여러분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힘든 일이나 슬픈 일, 혹은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성수를 한 모금씩 마십시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기쁨을 배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오오. 이 귀한걸······.”

“감사합니다, 아론 공!”

성기사들은 아론이 배분해 주는 성수를 받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라도 성수가 더 필요하거든, 언제든 일라이 왕국을 찾아오십시오. 아슬란 님께서 빛의 표식을 받았으니, 이제 교단과 우리 왕국은 하나가 아닙니까? 하하.”

“옳은 말씀입니다. 저희는 라할께서 예언하신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슬란 국왕께서 빛의 기사로 증명하셨으니, 저희도 당연히 따라야지요.”

“교단은 그분께 충성을 다할 겁니다!”

그러자 아론은 감동한 얼굴로 성수를 한 병씩 더 나눠 주었다.

“자자. 하나씩 더 챙기십시오. 부족함 없이 채워 드리겠습니다.”

뭔가 뇌물을 뿌리는 탐관오리를 보는 것 같았지만······. 교황은 그 말을 꾹 삼켰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은근슬쩍 아론이 주는 성수를 받아 챙겼다.

아론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2병씩 주었지만, 교황에게는 일부러 3병을 줬다.

그러면서 몰래 한쪽 눈을 찡긋이며 넘어갔다.

“······.”

교황은 하나 더 받은 성수를 몰래 품 안에 숨겨 두었다.

* * *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다시 한번 눈을 비비며 퀘스트 창을 확인해 보았다.

[내가 하늘이 되겠다]

-라할을 대신해 천계의 왕이 되십시오.

-테키나 족속을 모두 말살하고 천계의 왕이 되는 순간 게임은 끝이 납니다.

‘이게 대체 뭐야?’

이런 퀘스트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악마의 왕이 되라는 퀘스트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대체 왜 이런 히든 퀘스트가 존재하는 것인지.

그냥 게임 스토리대로 대륙을 구한 다음에 얼른 엔딩시켜 버리면 될 것을!

“내가 어떻게 천계의 왕이 되냐고.”

천계의 족속이 그걸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겠는가.

그 라할과 빛에 미쳐 있는 놈들이?

‘갈수록 태산이네. 태산이야’

빛의 증표를 받은 것부터가 잘못된 거긴 했다.

원래 빛의 증표는 알렉산더가 아니면 받을 수가 없는 거였는데, 대체 어떻게 내가 받고도 멀쩡한 것일까.

‘빛의 증표는 아무도 못 받았다고 들었는데.’

커뮤니티에서도 빛의 증표를 받았다는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것도 내가 최초라는 건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렉산더 그놈이 받아야 할 걸 내가 받는 바람에 스토리가 꼬여 버렸으니, 안 좋은 거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도-”

하나는 건졌다.

[빛의 증표]

-오직 빛이 선택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증표.

-암속성 데미지를 한 차례 100% 흡수하여 방어합니다.

여기까지는 원래 있던 빛의 증표의 옵션.

그다음으로는,

-하루에 1번 공간 이동이 가능합니다. 공간 이동 사용 시, 빛의 증표가 활성화됩니다.

바로 이게 가장 큰 메리트의 능력일 것이다.

무려 공간 이동!

한 마디로 내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통 공간 이동 같은 걸 쓰려면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빛의 증표에 이런 옵션이 달렸다.

‘이건 진짜 좋은 스킬이잖아.’

물론 하루에 한 번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어느 곳이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그런데 공간 이동 사용 시 빛의 증표가 활성화된다는 건 또 뭐지?’

그렇게 혼자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을 때.

“왕이시여.”

누군가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백옥 같은 피부와 성스러운 빛에 둘러싸여 있는 교황이 있었다.

“빛의 영웅을 뵙습니다.”

레헤나는 내게 정중히 예의를 갖췄다.

그 뒤에 있는 성기사들도 머리가 땅에 닿을 것만 같이 허리를 숙였다.

“아직 교단으로 안 돌아갔었나?”

“제가 얼른 돌아갔으면 하십니까?”

“교황이 교단에서 자리를 오래 비우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지.”

“······.”

내 말에 뼈가 있다는 걸 알아챘을까.

비록 내가 빛의 증표를 받아 영웅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단의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알렉산더만 해도 교단에 있는 벌레 같은 놈들이 끝까지 그를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핍박했으니, 나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교단을 위해 충성을 다 하는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그들이 정녕 라할과 교단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 같은가? 이미 교단은 썩어빠진 지 오래다. 하늘과 백성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을 따라가고 있지.”

“······제가 그들을 잘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들이 당신을 따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굳이 힘들일 필요 없다. 어차피 따를 사람은 따를 것이고, 나를 부정할 사람은 부정할 테니. 그 썩은 가지들은 잘라내면 그만이다.”

빛의 증표를 가져서 좋은 건 교단이 힘을 실어 준다는 것이다.

물론, 교단에 있는 모든 원로, 장로, 그리고 제사장이 나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황이 나를 지지하고 있으니,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내게 힘을 실어 줄 수밖에 없다.

“라할께서는 빛으로 모두를 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라할의 말을 따르는 자로 보이나?”

“하지만 당신은 빛의 선택을 받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누구의 선택도 받지 않았다. 그저 내가 선택한 것일 뿐.”

레헤나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가뜩이나 왕이 되면서 지랄 맞게 바뀐 허세가 한층 더 뜨겁게 타올랐다.

“네가 만일 나를 고작 빛의 증표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다. 난 네가 생각하는 라할의 앞잡이가 아니다.”

“······.”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였다.

“위대하신 왕을 뵙습니다!”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와 내게 아뢰었다.

“만 왕국에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현재 만 왕국이 악마 군단에 포위되어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여 그곳에서 급히 지원군을 요청했습니다.”

그 보고에 레헤나가 말했다.

“악마 군단?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 정도로 많은 숫자의 악마가 나타난 거라면 교단에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것이······.”

“레헤나. 최근 악마 군단이 얼마나 나타났는지 넌 알고 있나?”

“네? 그건······. 저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교단에서는 이미 악마와 내통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교황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게 분명했다.

“교단에서는 악마가 출몰해도 오히려 그것을 외면하고 있지. 그렇다는 건 그들이 악마와 손을 잡았다는 뜻이다.”

“그, 그럴 리 없습니다! 교단 사람들을 그리 폄하하지 마십시오!”

“······레헤나. 진실이 보고 싶은가?”

나는 레헤나에게 손을 뻗었다.

“이 손을 잡아라.”

그러자 레헤나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럼 네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보여 주지.”

* * *

검의 왕국 ‘만’.

만 왕국의 국왕과 주요 군대가 있는 르겔 성 사방으로 악마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이렇게······. 우리 왕국이 멸망하는 건가.”

“이제 끝이다. 저놈들을 대체 어떻게 막으라고.”

“젠장. 마법의 힘이라도 있었다면-”

성벽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이 뱉어내는 목소리가 크라엘의 귀에도 들어왔다.

하지만 감히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자들에게 달려가 호통을 칠 수도 없는 노릇.

이미 기사들의 사기는 내려갈 대로 내려가 있는 상태였으며, 크라엘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크라엘. 역시, 지원군을 기대하는 건 힘들겠지?”

“······당연한 소리를.”

악마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하더라도 크라엘은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는 교단에 먼저 지원군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교단은 침묵했다.

다른 왕국들 역시 만 왕국의 도움 요청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원 요청을 보낸 곳이 바로 일라이 왕국이었다.

“설사 그곳에서 원군을 보내 준다고 해도 시일이 걸릴 거다. 지금 당장 올 순 없겠지.”

일라이 왕국에서 군을 보내 준다고 해도 도착했을 땐 이미 만 왕국은 악마들에 의 해 짓밟혀 사라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라이 왕국이 우릴 도와 줄 이유도 없지 않나?”

이미 몇 번이나 충돌을 거듭한 곳이다.

두 세력 간의 사이가 좋지 못하기에 도움을 바라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럼 기사답게 여기서 최후를 맞이하면 되겠군.”

“······그래.”

라이에르의 말에 크라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전군-!”

그렇게 어떻게든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고자 목소리를 높이려는 찰나.

쿠웅-!!

무언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꽂혔다.

“키에에엑-!”

악마들은 그 성스러운 빛에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쳐댔고, 감히 그 빛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저, 저건 뭐지?”

성벽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크라엘도 그 빛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펄럭~

황금빛으로 물들인 망토를 펄럭이며 눈부신 빛의 갑옷을 입고 있는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격조 있고, 흔들림 없는 발걸음.

거만하지만, 위엄이 느껴지는 고갯짓과 눈동자.

그 모습을 보자마자 크라엘은 기함을 터트렸다.

“아, 아슬란!?”

무려 일라이 왕국의 국왕 아슬란이 저 평야를 검게 물들인 수많은 악마 가운데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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