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0.01초 소드마스터 106화
“그 힘은 무엇이냐? 그 순수한 악의 힘은 대체······! 네놈은 악마였던 것인가? 마력도, 오러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그렇게 사악한 힘을 다루다니!”
우스시엘은 내가 악마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성 속성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어둠 속성의 공격이 나가기 때문에 그리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 당장 놈을 막아라! 수호자여!”
하나 남은 수호자의 동상이 내게 칼을 겨눈 채 멈춰 있었다.
처음에는 그 칼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더니, 이내 동상 전체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하느냐! 너는 이 성소를 지키는 수호자다! 그 본분을 다하거라!!”
우스시엘은 그런 수호자를 향해 다그쳤지만, 그것은 여전히 몸을 떨며 움직이지 못했다.
동상도 공포에 떨 수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난 겁쟁이를 상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목숨이 아깝다면 알아서 꺼지거라.”
내 허세는 그 공포를 먹이 삼아 더욱 강하게 끓어 올랐다.
그리고 수호자의 동상은 내 말을 듣고 천천히 칼을 거두었다.
더 이상 내 앞길을 막는 것은 없었다.
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 이런 한심한!”
나는 양옆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인 복도를 지나 성소의 중앙에 다다르게 되었다.
‘여기를 산 채로 밟게 되는구나.’
우스시엘의 말대로 이곳에서는 그 어떤 마력도, 오러도 쓸 수가 없기에 만약 이곳에 소환이 된다면 저 수호자의 동상에 의해 몸이 반갈죽 되어 죽게 된다.
하지만 난 그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오직 주인공 알렉산더만이 밟을 수 있는 이 성소의 중앙. 그리고 오직 주인공에게만 허락되는 빛의 증표 앞에 섰다.
“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느냐? 이곳은 오직 약속된, 예언된 존재만이 올 수 있는 곳. 감히 네놈 따위가 밟을 수 있는 땅이 아니란 말이다!”
우스시엘은 내가 중앙까지 왔음에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그저 먼 끝 발치에서 방관만 하고 있을 뿐.
하지만 내가 성소 중앙에 있는 빛의 증표에 손을 뻗자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멈춰라! 그건 아무나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라할께서 선택하신 자만이 그 증표를 만질 수가 있다!”
빛의 증표.
알렉산더만이 받을 수 있는, 그가 영웅이라는 증표.
빛의 기둥이 내려와 알렉산더를 데려가는 것도 전부 이 증표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증표는 내 앞에 있었다.
그러나,
“넌 그 증표를 받을 수 없다. 라할께서 널 선택하지 않으셨으니까.”
저 말대로 난 이 증표를 받지 못한다.
이건 시스템적으로 알렉산더에게만 부여될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우스시엘을 죽여야 하나?
예전에 알렉산더로 플레이를 할 때 궁금해서 우스시엘을 한번 죽여본 적이 있다.
그러자 빛의 증표가 사라지고 성소가 무너졌으며, 나 역시 거기서 게임이 끝나 버렸다.
즉, 우스시엘은 이 성소와 연결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플레이어가 함부로 그를 죽이지 못하게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장치 같았다.
거기다 우스시엘 저놈은 목소리만 높일 줄 알지, 딱히 위협적인 놈도 아니었다.
‘그럼 이 증표를 받아야만 내가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잖아?’
이 성소에서 나가려면 빛의 증표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근데 이건 내가 못 만지지 않나?’
그게 문제였다.
잠시 나는 빛의 증표를 바라보았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지?
“너 같이 악마의 힘을 쓰는 자는 그 증표를 만지기만 해도 죽게 된다. 아니. 결국 이 성소에 가득한 라할의 힘이 너를 정화할 것이다.”
우스시엘의 말에 난 고개를 들어 그에게 말했다.
“악마의 힘이라 했느냐? 그럼 한번 말해 보거라.”
나는 한손을 들어 그곳에 불길을 일으켰다.
새빨갛던 불은 곧 성스러운 빛의 불로 변하였다.
“아니!?”
그것을 보고 우스시엘은 화들짝 놀랐다.
이번에는 반대편 손에 어둠의 불을 만들어냈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어둠과 빛을 동시에! 그건 라할께서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거늘!”
“불가능이라 했느냐?”
나는 양손에 머금고 있던 불을 거두었다.
“그래. 너희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내게는 아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가 빛의 증표를 만질 수 없게 처져 있는 보호막이 전류처럼 흐르고 있었다.
난 넘치는 허세와 들끓는 허영심을 느끼며 칼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스르릉-!
영롱한 검신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오직 선택받은 자만이 이 증표를 만질 수 있다고 했는가? 그렇다면 보거라.”
“지, 지금 뭘 하려는······.”
나는 칼을 높이 들어 보호막을 향해 날을 세웠다.
“내 앞을 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베어 버리겠다. 라할의 약속이라는 이 증표마저도 나는 베어 버리겠다. 나아가 만일 저 하늘이 나를 막고자 한다면-”
그리고 힘껏 칼을 내려쳤다.
“저 하늘마저 베어 버릴 것이다.”
콰콰콱-!!
찰나의 괴력이 실린 내 검에 의해 빛의 증표는 진흙처럼 부드럽게 잘려 버렸다.
우스시엘은 기겁하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비, 빛의 증표를! 라할께서 내리신 빛의 증표를 네놈이!!”
쿠콰콰쾅-!!
빛의 증표가 내 칼에 의해 잘려나갔기 때문일까.
성소 전체가 흔들리고 균열이 일어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증표를 베어도 이렇게 된다고?’
이건 내 계산에 없던 일인데.
증표를 베어내면 성소가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밑이 갈라지고, 두 쪽 난 빛의 증표와 함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하늘이 나를 거부한다면, 그것을 베어내고 내가 하늘이 되겠다.”
병신 같은 허세를 부렸다.
콰콰콰쾅-!!
“으아아아악!”
우스시엘도 성소와 함께 아래로 추락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꼿꼿한 자세로 팔짱을 낀 채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짓눌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악! 시발 살려줘!!’
차마 겉으로는 내뱉지 못하는 비명소리가 내 안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
“저, 저것이 빛의 기둥인가?”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빛의 기둥이 실재하는 거였다니!”
왕좌에 내리꽂힌 빛의 기둥.
그 영험하고 두려운 힘에 감히 그들은 그곳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와, 왕께서는 어떻게 된 거지?”
“라할의 부름을 받으신 건가?”
“만약 뭔가가 잘못된 거라면······.”
슬슬 아슬란이 오지 않고 있어 불안해진 신하들이었다.
“교황님. 왜 왕께서 오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건 저도 알 수 없어요. 성물이 반응하는 건 처음 보는 거라서요. 빛의 기둥 역시 마찬가지고요.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오직 라할과 아슬란 왕만이 알겠지요.”
“그 말씀은 아슬란 님에게 큰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까?”
“만약 라할께서 선택한 영웅이 아니라면······. 아슬란 왕은 빛의 심판을 받아 소멸될 겁니다.”
교황의 말에 모두 웅성거리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달랐다.
“그분이라면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
“전 그분을 믿습니다. 설사 라할께서 그분을 선택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그분은 기어코 살아 돌아오실 겁니다.”
“신성모독이군요. 라할께서 심판을 내리시고자 한다면 그 어떤 인간도 피할 수 없어요.”
“아슬란 왕께서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정녕 꺾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알렉산더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왕을 믿지 못하는 건가? 그분께서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오오오-!!”
아론을 필두로 기사들이 모두 함성을 지르며 불을 지폈다.
그런데,
콰직-! 콰콰콱-!!
“헉!”
“서, 성물이 부서진다!”
멀쩡히 잘만 있던 성물이 갑자기 썩어 버리고 갈라지며 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뿌려졌다.
“······.”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교황은 입만 벌린 채 가루가 되어 버린 성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콰아아아-!!
왕좌에 내리쬐던 빛의 기둥이 굉음을 내며 사라지더니,
“엇!”
“대왕이시여!”
“왕이시여!”
사라지기 전과 똑같이 거만하게 왕좌에 앉아 있는 아슬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께서 돌아오셨다!!”
“와아아아-!!”
교황은 티끌 하나 다친 곳이 없어 보이는 아슬란의 모습에 눈을 껌뻑였다.
빛의 기둥을 맞고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건······.
“그곳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아슬란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교황 레헤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빛의 교만함을 보았다.”
“······예?”
“감히 나를 판단하고 심판할 수 있다는 교만함 말이다.”
“그게 무슨······.”
이윽고,
파앗-!!
아슬란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차마 눈을 뜰 수도 없는 그 엄청난 빛의 파동에 모두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촤아아-
서서히 빛이 사라지면서 교황은 보았다.
아슬란의 몸에 가득 새겨진 빛의 언어와 그 증표를.
“역시나······. 당신이었군요. 라할께서 예언하시고 선택한 빛의 영웅이!”
교황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녀는 곧 제자리에서 사뿐히 내려앉아 아슬란을 향해 예의를 갖췄다.
“빛의 영웅을 뵙습니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성기사들도 함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위대하신 빛의 영웅을 뵙습니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신하들도 같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아슬란은 자신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교황에게 말했다.
“라할이 나를 선택했다고?”
“······?”
“건방진 소리구나.”
“네?”
“라할이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을 했을 뿐.”
그런 뒤 그는 왕좌에서 일어나 천천히 교황의 옆을 지나치며 말했다.
“누구도 감히 내 운명을 선택할 수 없다.”
* * *
극에 달한 허세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속을 들끓게 했다.
가까스로 방에 들어오면서 나는 그제서야 그 족쇄에서 해방될 수가 있었다.
“후아-!”
극도로 긴장해 있던 다리가 풀리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빛의 증표를 베는 순간, 성소가 무너져 내리면서 꼼짝없이 거기서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두 쪽 나 버린 빛의 증표가 내게 흡수되면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것도 간발의 차로 말이다.
“미친, 진짜 뒤지는 줄 알았잖아.”
하지만 다행히 난 살아 돌아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몸을 누였다.
“두고 보자, 알렉산더.”
키워 준 은혜도 모르고 날 죽이려 하다니.
그런데 잠깐.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빛의 증표는 알렉산더에게 갔어야 했는데, 나한테 오게 되면서 스토리가 이상하게 꼬여 버렸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메인 퀘스트가 뜨지 않았다.
알렉산더가 받지 않았으니, 메인 퀘스트도 없다, 이건가?
[빛의 증표]
-오직 빛이 선택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증표.
-암속성 데미지를 한 차례 100% 흡수하여 방어합니다.
-랜덤으로 옵션 하나가 추가로 부여됩니다.
빛의 증표라고 해서 뭔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건 아니다.
한 마디로 이건 증표이면서 동시에 명분이었다.
영웅이 될 수 있는 명분.
거기다 암속성 데미지를 100% 흡수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옵션이었다.
“랜덤으로 옵션 하나를 부여하는 건 뭐가 나오려나.”
그리 기대를 하며 손을 비비고 있을 때였다.
[새로운 히든 메인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설마!”
드디어 내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 메인 퀘스트가 발동하는 것인가!?
잠깐만. 그런데 왜 히든 메인 퀘스트라는 거지?
[새로운 히든 메인 퀘스트 ‘내가 하늘이 되겠다.’를 시작합니다.]
“······?”
-라할을 대신해 천계의 왕이 되십시오.
-테키나 족속을 모두 말살하고 천계의 왕이 되는 순간 게임은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