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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91화 (91/200)

91화

0.01초 소드마스터 91화

“요즘 참 기이한 일의 연속이지 않소?”

호레스의 말에 넬라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악마와 치열하게 싸우고 심지어 교단과도 크게 전투를 벌이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할라즈 왕국이 우리에게 완전히 복속했고요.”

“그렇소.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괴이한 일을 뽑으라면······.”

호레스는 저기서 아이의 몸으로 배부른 배를 땅땅 치다 드래곤 몸통으로 돌아와 하늘을 훨훨 날아가고 있던 드래곤을 가리켰다.

“드래곤······. 우리 왕국에 드래곤이 드나든다는 것이오!!”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호레스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뒷목을 붙잡았다.

“구, 군사님!”

“드래곤이라니······. 저 파괴만 일삼고 이기적인 종족이 우리 성을 마음대로 드나들고 있지 않소이까!”

파괴의 종족이자 대륙의 공포, 드래곤.

그 파멸적인 종족이 할라즈 성을 드나들고 있다는 것이 호레스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심지어 그 두려운 존재가 무려 아슬란과 친분을 맺었다는 것이다.

“친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저번에 보지 않으셨습니까? 드래곤이 아슬란 님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던 것을 말입니다. 하하!”

드래곤과 아슬란의 전투는 이미 왕국 전체에 퍼질 만큼 대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대결에서 승리한 것이 아슬란이라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내가 그래서 더 놀란 것이오. 이제까지 그 어떤 인간도 드래곤을 단신으로 상대해 승리한 적이 없소이다. 라일라칸조차 그런 엄청난 업적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오. 그런데 우리 대기사단장님께서는 그것을 해내셨지. 아마 이 소식이 다른 왕국에도 퍼져 나간다면 그들은 이걸 믿지 않을 것이오.”

테키나 족속도 아니고 천계의 족속도 아니면서, 고작 인간 따위가 드래곤을 상대로 승리했다?

당연히 의심부터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슬란 님께서 세우신 공적을 생각한다면 솔직히 그다지 놀랍지도 않습니다.”

아슬란은 지금껏 남들이 믿지 못할 업적만을 이루고 다니는 중이다.

그러니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도 왠지 믿음이 가는 것이었다.

“그래.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놀라운 업적만을 세우실 분이지.”

“예. 분명 그럴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나만 묻겠소, 넬라 단장.”

“예?”

호레스는 진지한 어조로 넬라에게 물었다.

“지금 일라이 왕국을 다스리는 왕가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갑작스러운 물음에 넬라는 당황했다.

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호레스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난 왕가를 지키고자 노력했소. 비록 모자란 왕이긴 하나, 우리 왕국의 유일한 희망이라 믿었소. 왕가가 바로 서야 만이 왕국이 사는 거니까. 그리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

“예?”

“왕국이 바로 서려면 왕가의 힘이 강해야 하오. 하지만 지금 어떻소이까? 왕가의 힘은 나약하기 짝이 없지.”

“군사님. 그 말씀은······.”

“오해하지 마시오. 이미 허수아비에 불과한 왕에게는 일말의 동정조차 없소. 하지만 왕가라는 자존심을, 왕좌라는 곳을 그리 놔둘 순 없는 노릇.”

날이 선 호레스의 목소리에 넬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왕가와 왕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소.”

“······?”

“바로 아슬란 님을 왕으로 추대하는 것이오.”

“!?”

넬라는 입을 떡 벌렸다.

설마 호레스에게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까닭이다.

저번 날, 엘버스테인이 처음 이런 얘기를 꺼냈을 때만 하더라도 아슬란은 두 번 다시 그런 헛소리를 입에 올리지 말라며 못을 박았다.

그때 호레스는 누구에게도 동조하지 않고 그냥 침묵하기만 했다.

워낙 보수적인 사람이니, 현 왕조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저는 군사님이 반대하실 줄 알았습니다.”

“아슬란 님이 우리 왕국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시오. 그분만큼 백성을 위하고 이 대륙을 위하는 분이 없지. 그런 분이야말로 왕이 되어야 하오. 아니. 가능하다면 이 대륙을 통째로 다스리는 황제가 되셔야지.”

“마, 맞습니다! 저희 기사단 모두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자 넬라도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사단장님께서는 이미 경고를 하셨습니다. 자신의 긍지를 더럽히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거야 우리가 어떻게 해드리느냐에 다른 것 아니겠소?”

“예?”

“지금 만약 명분 없이 왕을 폐하고 대기사단장님을 왕좌에 앉힌다면 그분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건 사실이오. 하지만 왕이 그 명분을 제공한다면 어떻소?”

“그게 무슨······.”

호레스는 잠시 주변을 살피다 조용히 말했다.

“왕이 현재 타 왕국과 내통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소. 또한 악마와도 접선을 시도했다는 흔적이 있지.”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 왕이 지금은 국정에 관심이 없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뒤에서 모종의 계략을 꾸미며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것이오. 언제든 아슬란 님을 죽이고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할 날을 말이오.”

“저, 저런! 그동안 자기가 한 게 무엇이 있다고 그따위 계획을!”

넬라는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분노했다.

일라이 왕국의 왕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라가 다 기울어져 가도 그는 놀고먹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의 일라이 왕국을 만든 것은 오직 아슬란.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일라이 왕국은 진작에 멸망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제가 가서 왕을 처단하겠습니다!”

“자중하시오. 내 방금도 일렀듯, 명분 없이 일을 치른다면 그건 대기사단장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오. 확실한 증거가 잡힌다면 그때 다시 언질을 주겠소.”

일라이 왕국은 이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러니 급할 것 없다.

아슬란의 긍지를 지킬 수 있다면 넬라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아깝지 않았다.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라이 왕국의 왕을 바꾼다라.

가슴 떨리고 피가 끓는 일이었다.

하루빨리 아슬란이 저 왕좌에 앉아 이 대륙을 다스려주길 바랄 뿐.

그런 행복한 상상 속에 잠시 빠져 있을 때였다.

“음?”

아슬란이 있는 집무실 쪽에서 갑자기 강렬한 빛이 발산되는 것이 보였다.

그 빛은 스멀스멀 하늘 위로 오르더니,

“아, 아니!?”

“저, 저게 무슨!”

거대한 눈동자가 되어 황금빛 불길이 그 겉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 * *

[천상의 눈동자]

-1분 동안 천상의 눈동자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5분)

-천상의 눈동자는 시전자가 장소를 떠올리면 만들 수 있습니다.

-천상의 눈동자를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니, 이게 뜬다고?”

나는 멍하니 엘라의 팬던트에 부여된 옵션 효과를 바라보았다.

천상의 눈동자!

난 이 능력을 잘 알고 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건 마치 어두운 맵에 빛을 밝히며 그곳에서 적들이 뭘 하고 있는지 훤히 볼 수 있는 스킬이라고 해야 하나.

이 스킬의 장점은 사거리가 존재하지 않고, 어디든 내가 아는 장소라면 시야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꽤 쓸모 있는 스킬로 알고 있는데.”

적이 어디서 매복을 하고 있는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보급을 옮기고 있는지 등등.

이 눈동자 스킬 하나로 전부 파악할 수가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스킬이 좋은 건 이거 때문이 아니지.”

이 스킬에 달린 부가 옵션이 하나 더 있었다.

[천상의 눈빛]

-지혜의 신, 엘라의 가호를 받아 1분 동안 천상의 눈빛을 갖게 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5분)

-일시적으로 모든 신체적 능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죽음의 위기를 미리 알아채 자동으로 발동이 됩니다.

한 마디로 적이 나를 기습 공격하게 되면 천상의 눈빛이 미리 알아채 1분 동안 내 신체적 능력을 일제히 상승시킨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 똥캐 아슬란의 몸으로 어디까지 상승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플레이어로 게임을 했을 땐 이 능력으로 미리 살기를 감지하고 기습 공격을 여럿 막아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떻게 적용이 될지 모르겠다.

“그럼 일단 한번 써볼까?”

나는 천상의 눈동자부터 사용을 해봤다.

잠깐 눈을 감고 천상의 눈동자를 발동시키자 일순 강렬한 빛이 내 몸에서 새어 나오더니, 그대로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오.”

마치 높은 꼭대기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시야가 드러났다.

할라즈 성 저 먼 곳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탁 트인 시야를 만끽하며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보는 거였구나.”

게임을 할 땐 그냥 맵을 밝히는 용도로만 썼었는데, 여기서는 직접 그곳을 이 눈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음?”

집무실 아래에서 곡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으, 으아아!”

“저, 저게 대체 뭐야!?”

아래를 내려다보니 겁에 질린 기사들이 창칼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바닥을 기고 있었고, 오늘도 무슨 작당을 하려고 모인 건지 호레스와 넬라 역시 기겁하며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왜 저러는 거지?”

나는 궁금한 마음에 집무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도대체 뭘 보고 있기에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궁금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

내 집무실 위로 거대한 사우론의 눈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인간과 같은 눈동자에 그 겉에는 황금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 불길만으로도 이 주변을 태양처럼 환하게 비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러면 누구라도 오줌을 지릴 만하겠네.’

넬라 저놈이 아이처럼 꺅 비명을 지르는 게 이해가 됐다.

설마 천상의 눈동자가 저렇게 무서운 비주얼로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임에서는 저런 이펙트 없이 그냥 빛만 번쩍이고 말았는데.

“대, 대기사단장님!!”

“피하십시오!”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아론과 알렉산더, 그리고 레바노스까지.

그들은 저 황금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저건 무엇이란 말인가.”

“내 평생 저리도 두려운 건 본적이 없습니다.”

“겁먹지 마라. 우린 자랑스러운 아슬란 님의 기사들이다. 단칼에 저것을 베어 버리면 될 일! 모두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모아라!”

아론의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그냥 한번 지켜볼까?’

저 눈동자가 과연 물리적인 힘으로 파괴가 되는 것인지 한번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공격을 펼치든지 그냥 놔두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죽음의 위기를 감지했습니다.]

“······?”

[천상의 눈빛을 발동합니다.]

갑자기 두 눈이 생으로 타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내 앞에 어떤 환상이 나타났다.

지금 이곳에서 잔뜩 힘을 모으고 있던 아론과 기사들이 저 위로 튀어 올라 눈동자를 공격하는 환상 말이다.

문제는 그게 환상의 끝이었다.

환상에서는 아론과 기사들의 공격은 눈동자에 닿지 않았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그대로 공격이 관통되어 버리고 만다.

여기까지는 괜찮으나, 그 공격들이 집무실을 무너뜨리고 그 여파가 내게 퍼져 버린다. 그리고 총알처럼 튀는 잔해들에 의해 나는 처참하게 맞아 죽는다.

이것이 환상의 끝이었다.

“잠깐!”

나는 아론과 기사들이 뛰어들기 전 그들을 잡아 세웠다.

“예?”

잠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이 천상의 눈빛이구나.

죽음의 위기를 감지하고 그 과정을 주마등처럼 환상으로 보여 주는 것.

이 스킬 역시 내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사용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냥 위기 감지만 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걸 생생하게 보여주기까지 하다니.

심지어,

[아슬란]

무력: 85

지력: 85

일시적인 스텟 상향까지 되었다.

절대 올릴 수 없는 스텟이 스킬의 영향으로 반짝 오른 것이었다.

물론, 1분이 지나면 원 상태로 돌아가겠지만.

“호들갑 떨지 말고 모두 칼을 거둬라.”

“헉!”

“대, 대기사단장님! 누, 눈이!”

그들은 내 명령을 듣다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내 눈?

내 눈이 왜?

난 저 위에 떠 있는 천상의 눈동자로 내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 이게 뭐여.’

그리고 그 눈동자에 보이는 내 모습은 마치 폭주한 광전사가 된 것처럼 두 눈동자가 천상의 눈동자처럼 황금 불길로 타오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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