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초 소드마스터-83화 (83/200)

83화

0.01초 소드마스터 83화

일라이 왕국의 기사단은 거침없이 돌진을 이어 갔다.

그들의 창과 칼 아래 몬스터들이 썰려 나가며 말발굽에 짓밟혔다.

더군다나 이들은 단단한 중갑 기병을 앞세운 터라, 몬스터들이 공격해도 끄떡없어 보였다.

퍼펑-! 퍼퍼펑-!

“캬오오오!”

그리고 위에서는 연신 성수 폭탄이 터지면서 악마들을 괴롭혔다.

악마의 덩치가 크든 작든, 성수가 피부에 닿는 순간 타들어 갔으며, 몸부림을 치다 기사들이 날리는 창칼에 맞아 죽기 일쑤였다.

거기다 무엇보다,

쐐애애액-!!

선봉에 서 있는 자들의 무력이 압도적이었다.

“저건 설마······. 레바노스?”

켈린은 줄에 매달린 대검을 크게 휘둘러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휩쓸어 버리는 레바노스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대체 저자가 언제부터 일라이 왕국과 함께 싸우기 시작한 거지?

그 자존심 높고 고고한 소드마스터가?

콰아아아-!

특히 저 빛의 힘은 레바노스의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아슬란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전, 한때 레바노스가 빛의 기사로 불렸던 이유도 바로 저 때문이 아니던가.

“키에엑!”

“캬오오!”

하지만 몬스터들은 끝없이 몰려오고 있다.

놈들은 레바노스를 죽이고자 한번에 들이쳤는데, 하늘에서 무언가가 괴성을 지르며 내려왔다.

“키루우우-!!”

영롱한 푸른 빛으로 비행하며 지면을 휩쓰는 사파이어 자쿤.

그것이 거센 날갯짓으로 몬스터들을 흐트러 놓았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레바노스는 대검을 휘둘러 포위망을 뚫어 버렸다.

“진격!!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와아아-!!”

기사단은 무서울 것 없이 진격했고, 그 많던 악마 군단은 어느새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일라이 왕국이 이 정도였다니.”

환골탈태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일라이 왕국은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저것이 과거 대륙 최약체라 불리던 왕국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건 아마도,

“저 사람 때문이겠지.”

저 무시무시한 기사단과 레바노스라는 소드마스터를 휘하처럼 부리는 한 사람.

일라이 왕국을 강대국으로 바꿔 놓은 대기사단장 아슬란.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유자적하듯 저 뒤에서 화려하게 망토를 휘날리며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대륙을 정복해 나가는 위엄 넘치는 군왕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음?”

그런 그의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그림자는 곧 거대한 형상으로 바뀌었고, 그 높디높은 몸뚱이로 아슬란을 내려다보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콰아아앙-!!

그 악마가 아슬란을 향해 두 주먹을 내려쳤다.

* * *

‘역시 키운 보람이 있구나.’

할라즈 왕국에 잘 왔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일종의 테스트라고나 할까.

그동안 내가 키워 놓은 기사들이 얼마나 악마와 잘 싸우는지, 얼마만큼의 전투력을 가졌는지 오늘 알아볼 수가 있었다.

‘마기에 쩔쩔맸던 나약한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네.’

그만큼 현재 내 기사단은 강한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이다.

마기라는 건 결국 훈련과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다른 악마 군단이랑 싸워도 해볼 만하겠어.’

성수 폭탄 세례에 중갑 기병단, 거기다 무시무시한 무력을 발휘하는 레바노스까지.

이 아름다운 삼박자가 맞춰지니,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래. 내가 여기다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데, 이 정도도 못 해주면 섭섭하지.’

역시 돈값을 하는구나.

투자하기 참 잘했다.

나중에 여기 게임을 탈출하고 나면 주식 투자나 해볼까?

그런 헛소리를 속으로 지껄이고 있던 중.

“······?”

나는 내 아래로 드리워지는 시커먼 그림자에 고개를 뒤로 돌려 보았다.

나를 호위하고자 주변을 경계하던 기사들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는,

“아,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거대한 악마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건 또.’

악마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검은 두 뿔을 장착한 이 괴물의 이름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푸르카스]

내가 아는 네임드 악마였다.

왠지 저 많은 몬스터 군단 중에 네임드 악마가 하나도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서 줄곧 숨어 있었던 건가?’

이런 음흉한 놈을 봤나.

“대, 대기사단장님을 지켜라!”

혹시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일부러 내 호위 인원을 수백 명으로 늘려 놓았다.

하지만 상대가 푸르카스라면 지금 이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삐이이이-!!

푸르카스의 검은 뿔이 진동하자 고막을 흔드는 음파가 퍼져 나왔다.

그러자 기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투석기로 성수 폭탄을 날리던 보병들까지 음파 공격에 휩쓸려 쓰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크으윽-”

“대, 대기사단장님.”

기사들의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이 수백 명의 기사가 한순간에 전투 불능이 되었다.

이것이 푸르카스의 고유 능력, 음파.

하지만 나는 이들과 다르게 아주 멀쩡했다.

‘신성한 보호 때문인가.’

하루에 한번 즉사급 데미지를 흡수해 주는 신성한 보호.

그 덕분에 방금 전 공격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

푸르카스는 나 혼자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러다 놈은 깍지를 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더니, 망설임 없이 내려쳤다.

콰아아앙-!!

나는 수호의 방패를 펼쳐 놈의 공격을 막아냈다.

“크르르-”

놈은 거칠게 으르렁거리며 다시 한번 두 손을 들고 나를 내려치려 들었다.

하지만 놈은 제 두 손이 찢어지고 팔에서 피가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멈칫거렸다.

수호의 방패를 내려치던 그 데미지를 고스란히 자신의 두 팔로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푸르카스의 당황하는 얼굴과 눈동자가 내 눈에 보였다.

바로 그때.

“건방지구나.”

잠들어 있던 허세가 충만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악마 따위가 이 몸을 내려다보다니.”

나는 천천히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푸르카스는 인상을 쓰며 검은 뿔을 천천히 진동시켰다.

다시 한번 음파 공격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피이잉-!

벌써부터 고막이 흔들리고 그에 따라 몸 전체가 떨리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강렬한 허세로 무장하여 우아하고 격조 있게,

“시끄럽다.”

칼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푸르카스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멍하니 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나는 휘둘렀던 검을 천천히 검집에 집어넣었다.

착-!

그와 동시에,

콰콰콱-!!

푸르카스의 몸이 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더니 이내 두 갈래로 쪼개져 양옆으로 쓰러졌다.

‘미친. 조금만 늦었어도······.’

음파 공격에 머리가 터져 죽었을 것이다.

이놈의 허세는 가벼운 동작을 할 때도 기품 있고 격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만약 푸르카스의 뿔이 더 빠르게 진동했다면 쓰러지는 건 저놈이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대기사단장님!!”

마치 사건이 다 끝난 뒤에 나타나는 영화 속 경찰마냥 아론과 기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푸르카스의 시체를 보고 흠칫거렸다.

“역시······. 대기사단장님이십니다!”

“이 거대한 악마를 단칼에-!”

하지만 내 허세에 심취해 있는 이 몸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칭송과 찬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말했다.

“아론.”

“예, 대기사단장님.”

“호들갑 떨지 말거라.”

“소, 송구합니다.”

그런데 그때 기사 하나가 소리쳤다.

“대기사단장님! 저, 저걸 보십시오!”

방금 전 내게 죽임을 당한 푸르카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 서로 합쳐지고 있었다.

‘뭐야. 대악마급도 아니면서 이놈도 불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대악마가 특별한 건 바로 그들이 불사라는 점에 있다.

하지만 푸르카스는 불사의 악마가 아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놈의 영혼이 되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모두 공격 준비!”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 각자 무기를 꺼내려 했다.

그러나 저들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이런 걸로 소란 피우지 말거라.”

나는 덤덤하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기 포식이 발동되면서 하나로 뭉치고 있던 검은 기운이 내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내 손끝으로 흡수되고 있던 마기는 곧 황금빛으로 뒤바뀌어 마치 성스러운 불길이 푸르카스의 시체를 태워 버리는 것처럼 바꿔버렸다.

츠츠츠츠-

마기 포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맹렬하게 타오르던 황금 불꽃 역시 금방 사그라들었다.

[포효]

-15초간 포효 능력을 얻게 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15초)

-시전자의 포효를 듣게 된 아군은 사기가 올라갑니다. 적군은 사기가 저하됩니다.

-포효의 강도에 따라 적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게 됩니다.

-포효의 강도는 시전자의 힘에 비례합니다.

푸르카스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포효였구나.

나는 돌고래 같은 음파 공격인가 싶었는데.

그럼 이것도 찰나의 괴력과 섞어 쓰면 어떻게 되려나?

“······이, 이것이 빛의 힘인가.”

“대기사단장님께서 악마를 정화하셨다!”

기사들은 시끄럽게 함성을 질러댔다.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것만 같았다.

“아론.”

“아, 예! 대기사단장님!”

아론의 눈동자 역시 뭔가에 충만한 듯했다.

“여기 있는 부상병들부터 처리하거라.”

난 방금 전 음파 공격을 맞고 널브러져 있는 기사들을 한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쯧. 고작 그 정도도 버텨내지 못해서야, 너희들이 정녕 나를 지키는 호위 기사들이라 할 수 있겠느냐?”

“······.”

저들은 아마 내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아론. 왕국으로 돌아가면 호위 기사들의 훈련을 더욱 강화하거라.”

“······예!”

아론은 부하들과 함께 부상병을 부축했다.

“자. 이 성수를 마셔라. 그럼 금방 나을 것이다.”

“아슬란 님의 신성한 물이다. 이것을 귀에 붓거라.”

그런데 부상병을 얼른 데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성수를 들이붓고 있었다.

“······.”

뭔가 할 말이 많았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 * *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성안으로 들어오자 켈린과 기사들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아슬란 님께서 저희 왕국과 이 백성들을 살리셨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물었다.

“그런데 왕실 친위대가 보이지 않는군. 켈린, 너 다음으로 그들이 가장 쓸모 있는 놈들일 텐데.”

할라즈 왕국의 왕실 친위대는 갑옷 색깔부터가 다르다.

평소에는 그냥 왕궁에 대기하고 있지만, 왕궁이 위험에 빠지면 그들이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나서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어째서인지 코빼기도 보이지가 않았다.

켈린은 곧 이를 뿌득 갈며 대답했다.

“우리의 왕, 르데만은 친위대를 데리고 왕궁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왕이 왕궁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것이냐?”

“예. 그것도 모자라 가자르 왕국에 투항했습니다. 할라즈 왕국의 백성들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의 목숨만을 살리기 위해 그런 비겁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르데만이 원래 그런 놈이긴 하지.

왕국이 위험에 빠지면 보통 왕이라는 작자가 나서서 싸우기 마련인데, 르데만은 생존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무조건 자기 살길부터 찾고 다니는 놈이었다.

그래서 이 게임을 할 때, 할라즈 왕국을 공격하면 항상 르데만을 붙잡기가 힘들었다.

거기다 놈은 주변 왕국에 항복한 뒤, 그곳의 힘을 빌려 다시 역공을 펼치는 악랄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왕이 떠났다면 누가 여길 통치한다는 것이냐? 왕의 후계자는?”

“후계자도 없습니다. 르데만이 도망을 치면서 왕가의 자식들을 전부 데려가는 바람에······.”

그래도 자기 가족은 챙길 줄 아는 놈이라는 건가.

“그럼 남겨진 이들을 이끌 수 있는 건 켈린, 너밖에 없다는 거군.”

“······.”

켈린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는 부담스럽게 내게 극진한 예의를 차렸다.

“줄곧 생각을 해왔습니다. 악마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지······. 하지만 결코 다음은 막아내지 못할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고, 사실은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대기사단장님의 위용과 당신이 이끄시는 강대한 기사단을 보고 결정했습니다.”

“······?”

슬슬 불안감이 느껴지는 켈린의 대사였다.

“아슬란 대기사단장님. 할라즈 왕국은 왕가가 이곳을 버린 순간, 그 맥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이미 막대한 피해를 입은 저희는 더 이상 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도 힘이 듭니다.”

잠깐, 이거 설마-

“그러니 당신께서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왕이 버린 이 할라즈 왕국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메인 퀘스트, 황제의 길을 시작합니다.]

-모든 왕국을 정복해 제국을 건설하십시오.

-제국을 건설할 시 게임은 끝이 납니다.

(첫 정복 왕국: 할라즈)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황제의 길 퀘스트가 자동 수락되면서 첫 정복 왕국이 할라즈로 표시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