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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23화 (23/200)

23화

1초만 소드마스터 23화

심상치 않은 황금빛.

다년간 단련된 고인물의 직감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대박 옵션이 뜬 게 분명하다!

‘그래. 이제 나도 꽃길 걸을 때가 됐지.’

휘리릭 잭팟 머신처럼 돌아가는 옵션창에 마른침을 삼켰다.

색깔만 요란하고 사실은 별 것도 아닌 게 나오는 거 아니야?

나는 속으로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아이고. 제발 좋은 거 뜨게 해 주세요.

착하게 살겠습니다.

이윽고,

[기검사]

보석에 부여된 옵션이 나타났다.

‘기검사?!’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르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미친. 기검사면 1티어 옵션이잖아?!’

[기검사]

-기검사 효과를 부여합니다.

-검에 깃든 보석의 힘이 전방 15m까지 날아갑니다.

-한번 부여된 효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마법사는 마력을 소모해 마법을 쓰는 것처럼, 기사 역시 기력, 혹은 오러라 불리는 것을 소모해 스킬을 쓴다.

그중 검에 기를 불어 넣어 전방에 발사하는 검기나 검강 같은 종류는 그 힘에 따라 기력 소모가 천차만별이며, 무한정으로 쓸 수 가 없다.

하지만 이 기검사 효과는 팔을 휘두를 힘만 있으면 무한정으로 검기를 발산시켜 주는 효과였다.

기력 소모를 거의 하지 않고 검기나 검강을 계속 쏠 수 있다?

플레이어에게는 엄청난 옵션이었다.

‘이게 여기서 뜨네. 나 플레이 할 때는 거의 뜨지도 않던 놈이.’

난이도에 따라 스크롤이 있으면 보석 효과를 바꿀 수 있다.

한때 나도 이 옵션을 얻으려고 얼마나 가챠를 돌렸던가.

점점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보석 효과 가챠도 횟수가 줄어드는데, 극악 난이도라서 그런지 효과 변환 가능한 횟수가 0 이었다.

그런데 고작 1트 만에 1티어 옵션이 나오다니.

‘행운 특성 효과를 본 것일 수도 있겠네.’

대체 아슬란에게 왜 붙어 있는지 모르겠는 ‘행운’ 특성.

개발자가 이 똥캐를 만들면서 죄책감이라도 느꼈나?

거기다 행운 특성은 정확히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쓰읍. 그런데 이거 아슬란한테 쓸모가 있나.’

1티어 옵션을 얻은 건 좋지만, 문제는 파일럿이었다.

아슬란이라는 똥캐가 검기를 무한정 쓸 줄 안다고 해도 그래 봐야 무력 50따리다.

그런 놈이 날리는 검기를 날려봤자 벌레 물리는 게 더 아프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찰나의 괴력을 쓴다면?’

찰나의 괴력은 그 유한을 일격에 죽였고, 무려 미스릴을 진흙처럼 바스라뜨렸으며, 미뉴엘을 손가락 하나로 튕겨 날려 보냈다.

그런 무지막지한 스킬에 보석 효과를 발동시킨다면······?

‘그 스킬에 보석 효과가 적용되는 거라면 엄청 좋은 거 같은데?’

찰나의 괴력의 단점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에만 힘이 발동된다는 것이고, 쿨타임이 무척 길다는 점, 그리고 상대가 순순히 맞아줘야 한다는 가장 큰 단점이 있었다.

즉,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기검사 효과는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것.

‘사거리 15m도 나쁘지 않아.’

사거리 문제는 다른 보석들을 파밍해서 해결하면 된다.

‘첫 파밍부터 아주 순조로운데?’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아슬란의 허세가 막아세웠다.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주 근엄한 얼굴을 한 채 보석을 검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보석이 검에 스며 들면서 옵션 효과가 그 안에 깃들었다.

나는 효과가 잘 적용됐나 확인하기 위해 검의 정보를 살펴봤다.

[찬란한 베라크의 보검]

-전설의 대장장이 레바투스가 만든 베라크 가문의 보검입니다.

-대장장이 레바투스의 가호가 깃들어 있습니다.

-검의 내구도가 닳지 않습니다.

-검이 주인의 정신에 감응하여 내구성이 달라집니다.

-기검사 효과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내가 들고 있는 검은 베라크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이다.

보통 이런 보검에는 특별한 옵션이 하나씩 들어있는데, 특이하게 이 검은 내구도가 닳지 않고 주인의 정신에 감응한다고 되어 있다.

즉, 주인의 정신이 약해지면 검의 내구성도 약해지고, 주인의 정신이 강하면 검의 내구성도 함께 강해진다는 뜻이었다.

‘진짜 쓸데없는 옵션이네.’

이 약한 몸 지킬 수 있는 공격 옵션 하나 달아줄 것이지.

내구성을 어따 써먹으라고.

그나마 찰나의 괴력을 쓸 때 검이 부러지지 않는 정도의 쓸모라고 해야 하나.

“대기사단장님. 바, 방금 그 성스러운 빛은 대체······.”

성스러운 빛?

보석에 정신이 팔려 있어 기사들의 반응을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다.

“그 빛은 분명 신성한 라할의 빛이었어.”

“왜 갑자기 대기사단님 몸에 그런 강력하고 성스러운 빛이······!”

이놈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군.

이건 그냥 황금 보석에서 나오는 이펙트일 뿐이다.

라할과는 일절 관계가 없었다.

“대기사단장님. 혹시 라할께서 계시를 내리신 건······.”

“아론.”

“아, 예.”

“호들갑 떨지 말거라.”

“······.”

다른 건 몰라도 라할이랑 엮여서 좋을 게 없다.

모든 판타지 게임이 그렇듯, 그곳에서 등장하는 신이랑 엮여서 몸만 피곤하지, 잘되는 꼴을 본적이 없다.

그러니까 그런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마라.

“모두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예!”

그럼 얻을 건 얻었으니, 이제 현상금을 얻으러 가 볼까?

* * *

오메르 왕국의 다섯 번째 왕자, 엘버스테인.

그는 자신을 따르는 기사단과 함께 간신히 오메르 왕국을 벗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의 이복형제이자 큰형인 리버테일이 추격대를 보낸 상황.

그로 인해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기며 도망만 치고 있는 신세였다.

“왕자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리카르 성주는 왕자님을 지지하지 않습니까. 그가 있는 성에만 무사히 도착할 수만 있다면 다시 힘을 기르실 수 있을 겁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은 맞으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왕궁 안에서는 패배했어도, 왕궁 밖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숙부인 리카르 성주다.

그를 중심으로 힘을 모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왕좌를 탈환할 수 있으리라.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왕자님?”

그러나 그의 길을 막아 서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왕실 최고 마법사, 페리마라였다.

“페리마라. 그대도 내 목숨을 가지러 왔는가?”

“후후. 저는 이미 우리 왕국의 새로운 국왕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아버지는 형님이 아니라 내게 왕좌를 물려 주셨다. 그런데 어떻게 너희들이 그 뜻을 배반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항상 백색 옷을 입고 있었던 페리마라가 오늘은 새까만 마법사복을 입었다.

거기다 그는 낄낄 음흉한 웃음까지 터트리며 성스럽고 인자해 보였던 왕실 마법사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저 저는 제 이익을 취했을 뿐. 누가 왕이 되든 상관없습니다.”

“뭐라?”

“왕자님께서도 부디 제 입장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뒤로 검은 복장의 마법사들이 여럿 나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이윽고,

“와, 왕자님. 저걸 보십시오!”

마법사들 아래로 생겨난 검은 마법진.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마력.

저것은 분명,

“흑마법입니다!”

모든 왕국이 금지하는 흑마법을 저들이 쓰고 있었다.

“페리마라. 타락했구나!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할 금기를······!”

“후후.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겁니다, 왕자님. 힘에 선과 악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마법진 안에서 나오는 건 흉측한 몬스터를 닮은 거인이었다.

그 손에는 두꺼운 철퇴를 들고 있었다.

“우리가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제물을 바쳤는지 아십니까? 드디어 왕자님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었군요.”

“사령술까지······! 기어코 네놈이 오메르 왕국을 멸망시키려 하는구나.”

“오메르 왕국은 이제 변화할 겁니다. 마법의 힘으로 강대국이 되어 대륙을 정복하겠지요. 아참.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군요. 이 아이를 소환하기 위해 또 누굴 제물로 바쳤는지 아십니까?"

"······?"

"바로 당신의 아버지, 선왕입니다.”

"뭐?"

내 아버지 몸을 감히 제물로 바쳤다는 것인가?

거기서 엘버스테인의 눈이 돌아갔다.

“죽여 버리겠다, 페리마라!”

“와, 왕자님!”

"왕자님을 지켜라!"

분노한 엘버스테인이 뛰쳐 나가자 기사단도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크워어어-!!”

엘버스테인의 검이 페리마라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거인이 휘두르는 철퇴에 땅이 갈라지고 사악한 힘이 퍼져 나가면서 함부로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거기다 페리마라가 지휘하고 있는 기사들도 있어 이미 수적으로도 열세였다.

콰앙-! 콰아앙-!!

“크윽!”

기사단이 엘버스테인을 도와 거인에게 공격을 가했지만, 저 두꺼운 살가죽을 쉬이 뚫을 수가 없었다.

또한 가볍게 휘두르는 철퇴에 기사들의 몸이 짓뭉개져 버리기까지 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였다.

페리마라는 입 꼬리를 올리며 왕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길게 끌 것 없다. 어서 놈을 죽여라.”

“크오오오-!”

페리마라의 명령에 거인은 말 위에서 떨어진 엘버스테인을 향해 쿵쿵 뛰어갔다.

* * *

‘음. 기사단을 좀 더 데려올 걸 그랬나.’

막상 엘버스테인을 잡으러 가려니, 기사단 숫자가 마음에 걸렸다.

100명을 채워 오긴 했는데, 그냥 500명 정도 꽉꽉 채워서 데려올 걸 그랬나.

'뭐, 이 정도도 충분하긴 해.'

어차피 놈을 지키는 기사단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터.

이 퀘스트는 질리도록 해왔기 때문에 이 정도도 차고 넘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거기다 내게는 아론이 있지 않은가.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오겠지?’

아마 지금쯤 발바닥에 땀나도록 달려 리카르 성주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격대를 피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고 있을 텐데, 그 길목으로 가게 되면 우리 일라이 왕국의 경계선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이미 수십 번을 반복해서 봤던 패턴이기에, 나는 놈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을지 다 꿰고 있었다.

‘감히 일국의 왕자가 일라이 왕국의 경계선을 침범했다는 명분으로 붙잡으면 돼.’

놈을 넘기면서 높은 현상금과 오메르 왕국과의 외교적 이득을 얻는 일석이조의 이익까지 얻을 수 있다.

‘길목에 가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아론한테 얼른 가서 잡아오라고 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푸르~ 푸르르~!

그렇게 말의 콧노래 소리를 들으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음?”

전방에 몬스터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뭐, 레벨도 낮은 잡몹들이라 크게 신경쓸 필요 없었다.

스르릉-.

아론은 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칼을 뽑아 들었다.

기사단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콰콱-!

퍼억-!

아론의 섬광 같은 검술에 몬스터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언제 봐도 참 든든한 호위기사면서 속이 쓰렸다.

항상 볼 때마다 저게 내 능력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저놈을 미래의 소드마스터로 잘만 성장시키면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몬스터들을 빠르게 처리한 아론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갑자기 옆에 있는 수풀을 바라보았다.

왜 저러는 거지?

쿠웅··· 쿠웅···

얼마 안 있어 옆쪽에서부터 진동이 이는 것을 나도 느꼈다.

점점 그 소리가 커지더니,

콰아앙-!!

“크오오오!!”

굉음과 함께 왠 거인이 튀어 나오며 괴성을 질러댔다.

콰직-!!

갑작스레 수풀을 헤치고 나온 거인이 휘두른 철퇴가 아론을 강타했다.

아론이 칼을 들어 막아내긴 했으나, 그 몸이 저 먼발치까지 쓸려나갔다.

그리고 저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건 이 거인뿐만이 아니었다.

[엘버스테인]

무력: 70

지력: 85

내가 노리던 사냥감, 엘버스테인도 있었다.

‘저놈이 왜 여기서 튀어 나와?’

아직 목적지까지는 좀 더 걸리는데.

그 사이 벌써 경계선을 넘었다는 건가?

하지만 그런 걸 복잡하게 따지고 있을 새가 없었다.

“크르르르-.”

족히 4m는 되어 보이는 키와 거대한 덩치.

발밑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검은 기운과 흉측한 생김새.

그리고 들고 있는 저 무기까지.

‘거인 병사?’

악마라고도 불리는 테키나 족속의 몬스터.

거인 병사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크고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는 거인 병사는 처음이었다.

‘이건 또 왜 여기서 튀어 나오는 건데?’

섬뜩한 하울링을 흘리던 거인 병사는 자신의 옆을 내려다 보았다.

그 순간 내 눈이 놈과 서로 맞부딪혔다.

'이런 미친.'

그 눈동자에서 읽을 수 있었다.

살인에 대한 놈의 엄청난 욕구를 말이다.

“크오오오!!”

놈은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철퇴를 들었다.

저놈이 처음에 노리던 건 엘버스테인이었는데, 갑자기 타깃을 나로 바꾼 것 같았다.

‘이건 왜 나한테 지랄이야!'

피해야 한다.

방어력도 약한 몸으로 저 철퇴에 맞기라도 하는 날에는 여름철 터져 버린 수박이 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감히."

난 말머리를 돌릴 수가 없었다.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아슬란의 허세가 말머리를 비틀려던 내 손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더러운 미물 따위가 이 몸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냐?”

허리는 더욱 꼿꼿하게 세워지고, 거인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더욱 강렬해진다.

철퇴의 그림자가 내 몸을 덮고 있어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건방지구나."

손은 고삐가 아닌, 허리춤에 있는 검의 손잡이로 향했다.

그리고,

“죽어라.”

키이이잉-!!

검집에서 뽑힌 칼이 비명을 질렀다.

검에 깃든 찰나의 괴력은 곧 드높이 솟은 푸른 검강이 되어,

콰콰콰콱-!!

순식간에 땅과 거인의 몸을 가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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