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213화 (213/227)
  • 제213화

    # 길정산 실험실 (5)

    현수의 손이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끼릭-

    녹슨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띵- 딩딩- 딩딩-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오르골 소리.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문을 활짝 열어보았다.

    화악-

    문을 열자 다른 방과 똑같은 구조의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종 생활 집기들과 이불, 옷가지들.

    일기를 쓴 듯한 노트와 칫솔.

    주전자와 플라스틱 물병.

    그리고 방구석에 한 남자가 잔뜩 웅크린 채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분명 현수 앞에 나타났던 시메루의 옷차림과 같았다.

    앉아 있는 그의 옆에는 오래된 핸드폰과 셀카봉이 떨어져 있었다.

    “시메루?”

    현수가 손전등을 비추며 물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지금 카메라에 시메루 잡히나요?”

    현수의 질문에 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카메라와 심령카메라 모두에 잡혔다.

    다만 귀신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때, 떨어진 핸드폰 옆으로 오르골이 보였다.

    오르골의 회전목마는 계속해서 천천히 돌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현수는 카메라를 보며 오르골을 가리켰다.

    “시메루?”

    현수가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하지만 역시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저벅

    현수가 한 걸음 내디뎠다.

    일행들도 현수를 따라 한 걸음 내디뎠다.

    저벅

    또 한 걸음 내디뎠다.

    카메라도 시메루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저벅

    또 한 걸음 나아갔다.

    태환과 화진이 각자 자기 무기를 꽉 움켜쥐었다.

    저벅-

    현수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일행은 물론 세정이 든 모든 카메라, 그리고 각자 몸에 부착된 모든 로프로 카메라가 시메루의 뒤를 가리켰다.

    손전등 불빛 역시 모두 그에게 향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모두의 눈과 빛, 카메라 렌즈가 시메루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었다.

    현수가 웅크리고 있는 시메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메루 씨?”

    현수의 손이 천천히 다가갔다.

    꿀꺽

    태환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 으어어어어어어어

    - 제발 네발 제발젭레젭레제발

    - 별거 아니겠지.

    - 아 점프스케어 개싫어 진짜ㅠㅠㅠㅠ

    .

    .

    .

    채팅도 하도 많이 올라와 열 개씩 한 번에 노출이 되었다.

    그러다 현수의 손이 시메루의 어깨에 닿는 순간이었다.

    “사와루 나.”

    일행의 뒤에서 또 한 번 시메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헉!”

    깜짝 놀란 일행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앞을 보는 순간, 웅크리고 앉아 있던 시메루가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으아아악!”

    태환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벽을 보고 있다가 쓰러진 시메루는 피부가 검게 말라붙은 미이라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은 이미 부패 되어 없어져 있었고, 피부는 무척 쭈글쭈글하게 바뀌어 있었다.

    입도 크게 벌리고 있는 상태였다.

    세정은 재빨리 카메라를 돌렸다.

    - 뭐예요????

    - 무슨 상황임???

    - 설명 좀

    “시, 시메루 씨 시신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미이라처럼 말라 있어요.”

    현수가 시청자들이 궁금해 할 걸 알고 바로 설명을 해주었다.

    “경찰에 신고 해야겠죠?”

    화진이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다 잠시 멈칫했다.

    “잠깐만요. 우리 분명 올라올 때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완전히 잠겨 있었죠?”

    현수의 말에 화진이 대답했다.

    “네. 그거 따는 데에만 10분 이상 걸렸죠.”

    “그런데 어떻게 시메루 씨가 여기 올라올 수 있었던 거죠? 다른 계단이 있었나요?”

    “아뇨. 1층 다 수색했을 때에도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중앙계단뿐이었잖아요.”

    화진이 이어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시메루 씨 미이라가 있을 수 있는 거죠? 그것도 이상한 자세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귀신이 만든 환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다.

    “형. 무서워요.”

    태환이 나지막이 말했다.

    현수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환각인가. 아닌가.’

    현수가 미이라 주변을 보았다.

    그가 멨던 것으로 보이는 배낭과 힙색이 구석에 놓여 있었다.

    먼저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다.

    당연히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우리 보조배터리 있죠?”

    현수의 질문에 세정이 보조배터리 하나를 건넸다.

    현수는 바로 충전을 시작한 후 가방을 확인해 보았다.

    여권과 비행기표, 공항에서 사용했던 듯한 영수증.

    그의 지갑과 엔화 등이 발견되었다.

    현수가 자기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 앱으로 이것저것 확인해 보았다.

    본명은 료스케 소우타.

    주소지는 신주쿠.

    이 사람이 ‘시메루’가 맞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묘한 것이 있었다.

    그가 입국한 날짜는 마지막 영상이 업로드 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의 하루 전.

    즉, 그는 입국했다가 다시 귀국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핸드폰 전원 들어왔어요.”

    그때 태환이 시메루의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수가 그의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보안 패턴이 걸려 있었다.

    홍채인식이나 얼굴인식, 지문인식이 있다 해도 미이라인 상태에서는 인식이 될 리 없었다.

    “아.”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수정이 옆에서 속삭였다.

    “니은이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현수가 깜짝 놀랐다.

    “어우! 깜짝이야. 어디 갔다 오셨어요?”

    현수가 수정을 보며 물었다.

    “저기 뒷건물에서 사람들하고 이야기 좀 하느라고.”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귀신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무슨 이야기 한 건지 말씀 안 해주실 거죠?”

    “응. 근데 별관에 반드시 가보긴 해야 할 거 같아.”

    수정이 대답했다.

    그곳에 뭔가 있다는 의미였다.

    현수는 시메루의 핸드폰 보안패턴을 풀었다.

    그러자 일본어 앱들이 보였다.

    갤러리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촬영한 영상이 담겨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액정을 보았다.

    현재 현수가 촬영 중인 것과 비슷한 화면.

    손전등 불빛과 핸드헬드 카메라 앵글.

    콘크리트로 된 건물.

    그는 일본어로 무어라 말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던 중, 그가 놀랐는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여기 1층에서 별관으로 가는 그 길 같은데요. 우리 아직 안 간데.”

    화진이 말했다.

    현수는 턱을 매만지며 영상을 계속 보았다.

    영상 속 시메루는 계속 무어라 멘트를 치며 혼자 웃기도 했다.

    이런 촬영이 자연스러운 듯,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호흡은 그가 겁에 질려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공포 콘텐츠로 유명한 대형 링톡커의 촬영 스킬이라면 스킬일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별관 지하에까지 향했다.

    그곳은 도배나 페인트가 되어 있지 않은, 순수 회색 콘크리트 공간이었다.

    그의 걸음이 더욱 메아리쳐 들려왔다.

    그는 무어라 일본어로 쭉 말하고는 오르골을 켜 바닥에 두었다.

    그러자 오르골에서는 현수가 익히 들어온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 저 오르골이 전매특허였음. 일본에 살 때 저 시메루 영상 많이 봤었는데 긴장감이 올라갈 때 저 노래를 틀어놔서 더 무서운 연출을 함. 자기 스스로 브금을 만드는 셈.

    - 아아아아아아아아아

    - 그래서 오르골을 틀어놓는 거구나.

    지금 현수가 보고 있는 핸드폰 액정을 생방송으로 확인한 시청자가 말했다.

    그렇게 오르골 소리가 흘러나오는 중, 그는 시멘트 욕조를 발견했다.

    이어 그는 셀카봉으로 긴장한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며 어깨 너머로 욕조가 보이게 했다.

    순간 욕조 뒤에서 검은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포착됐다.

    셀카봉을 들고 셀카모드로 자신을 찍던 시메루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시메루는 잘못 봤나 싶어 다시 카메라를 보며 멘트를 했다.

    그때 어깨 너머 보이는 등 뒤 욕조에서 다시 검은 그림자가 확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악!]

    강렬한 비명과 함께 카메라가 뒤흔들렸다.

    이어 ‘툭’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을 비췄다.

    촬영 중인 스마트폰을 떨어트린 것이었다.

    이어 한참 동안 천장만 보였다.

    영상은 그대로 30분이 더 켜져 있었다.

    현수는 중간중간 영상을 뛰어넘어 보았다.

    계속 천장만 비추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인가.”

    현수가 중얼거리며 맨 마지막 장면으로 돌려보았다.

    천장만 보이던 화면 가운데로 시메루의 얼굴이 툭 튀어나오더니 그가 웃으면서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영상은 끝이 났다.

    “마지막 시메루 얼굴이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현수가 화진을 보며 물은 뒤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았다.

    핸드폰을 집어 드는 시메루의 얼굴.

    기괴하리만치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지은 것이 굉장히 이상했다.

    흡사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 最後の映像がそこでした。 あなたがその映像を見つけました。

    (마지막 영상이 저것입니다. 당신이 찾아냈습니다.)

    일본인 시청자가 댓글을 달아주었다.

    “삭제되기 전 마지막 영상이 저거였대요.”

    세정이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환각에 빠진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별관으로 이동하죠.”

    현수가 세정을 보며 말했다.

    * * *

    세정이 경찰에 신고를 한 뒤, 일행은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아까보다 찬 공기는 더욱 심해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귀신의 흔적들이 공격적인 형태로 바뀌지는 않고 있었다.

    아까 달려든 악귀를 제외하고는 아직 그 어떤 공격도 없었다.

    그리고 15번방에서 시메루의 미이라와 오르골을 찾은 뒤로는 노래도 들리지 않았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시메루는 어떻게 거기 들어갈 수 있었던 걸까.

    오르골은 대체 어떻게 한 거였을까.

    뭘 그렇게 만지지 말라는 걸까.

    무엇보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현수는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힌 채로 계단에 도착했다.

    현수 일행은 열려 있는 철창문을 지나 다시 1층에 도착했다.

    1층 풍경도 아까 올라올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별관으로 가는 통로는 계단 옆쪽에 있는 문을 통해야 했다.

    현수가 문을 열고 나가자 밤하늘과 짙은 어둠에 휩싸인 풀숲이 보였다.

    그리고 맞은편으로 또 다른 문이 보였다.

    별관에 가려면 바깥길을 통해야 하는 것이었다.

    현수 일행은 조용히 별관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별관 건물은 본관보다 더 허름했다.

    나무속에 파묻혀 있어서인지 넝쿨은 지저분하게 붙어 있었고, 이끼도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창문들까지 모두 깨져 있었다.

    “여긴 진짜 뭐 창고 같네.”

    태환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보일 법도 한 것이, 본관과 다르게 별관은 아예 페인트칠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거 굴뚝인가.”

    화진이 건물 끝에 있는 커다란 기둥을 가리켰다.

    확실히 보기에는 소각장의 굴뚝같았다.

    “그런 거 같네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별관 문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이상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여기. 쓰레기장이었나?”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부를 비춰보았다.

    별관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방인 듯했다.

    곳곳에 커다란 쓰레기봉투와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는 소각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확실히 밖에서 본 그 기둥이 소각장 굴뚝인 듯했다.

    현수가 다가가 소각장 안을 보았다.

    타다 만 종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옹-

    그때, 언뜻 사람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어디선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현수 일행이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가늠해 보았다.

    그건 이 소각장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쪽에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시메루가 무언가를 보고 핸드폰을 떨어트렸던, 촬영이 끝났던 바로 그곳.

    “매니저님. 향 불 좀 확인해 주세요.”

    현수가 지하 계단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세정은 휴대용 향로에 든 쑥을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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