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211화 (211/227)

제211화

# 길정산 실험실 (3)

본관 1층 실험실들의 풍경은 전체적으로 비슷했다.

유리장과 버려진 약병들.

곳곳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과 서류들.

각종 실험 도구들과 사무집기들.

천장에서부터 축 늘어져 있는 전선들과 형광등들.

굉장히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또 귀신의 흔적들도 역력했지만,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역동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1층 마지막 실험실 앞에 선 현수는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검은색 케이블을 보았다.

“전력을 공급하는 케이블을 천장에 다 깔아뒀나 봐요. 엄청 지저분하네.”

현수가 손전등으로 케이블을 따라 쭉 비추었다.

그러다 천장에까지 불빛이 다다랐다.

그 순간이었다.

천장의 깨진 석고 텍스 안으로 웬 사람의 이목구비가 보였다.

새하얗게 질린 그 얼굴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헉!”

현수가 놀라 움찔했다.

“음?”

일행들은 현수의 반응에 손전등 불빛을 따라 고개를 들어보았다.

“으악!”

그들도 그 귀신의 얼굴을 정확히 본 것이었다.

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

그 얼굴은 갑자기 뒤로 휙 돌더니 천장 위를 기어다니는 듯했다.

천장에서 마치 쥐가 다니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뭐, 뭐, 뭐야!”

태환이 소리쳤다.

차분하게 수색을 하던 일행들은 순식간에 정신없이 주변을 보았다.

세정의 손전등과 카메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일행과 일행들의 진행 경로를 촬영하던 앵글에서 소리가 나는 천장 쪽을 계속 비췄다.

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

천장의 무언가가 내는 소리는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이야압!”

화진이 부적 봉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강하게 찔러 올렸다.

콰삭-

석고 텍스가 부서지며 무언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으악!”

어두운 가운데 갑자기 뭔가 떨어져 자세히 못 봤지만 언뜻 머리카락 뭉치 같았다.

일행이 사방으로 한 걸음씩 확 물러선 후 떨어진 것을 비췄다.

“어?”

그 물건은 사람의 머리도, 머리카락 뭉치도 아니었다.

아까 묘비 뒤에서 봤던 오르골이었다.

- 저게 왜 저기서 나와????

- 헐???

- 천장에서 자가닥 거리던 게 저거임??

- 무슨 저게 발이 달렸음??? 그냥 천장에 쥐 돌아다녔던 거겠짘ㅋㅋㅋㅋㅋ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시청자의 의견이 맞았다.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일 뿐이고, 천장에 있던 오르골이 우연찮게 발견되어 떨어졌다는 것.

가장 현실적인 답이었다.

하지만 바로 직전에 귀신의 얼굴을 봤고, 조금 전엔 밖에서 오르골을 보았었다.

심지어 그 오르골은 그 자리에 둔 채로 건물에 들어왔었다.

그런데 그거와 똑같은 모양의 회전목마 오르골이 일행 가운데 떨어진 것이었다.

“이거 성망 고등학교였나. 거기서 봤던 방울 생각나지 않아요?”

태환이 물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오르골이 작동되었다.

띠딩- 띵딩-

아까 들은 곡과 같은 곡이었지만 밖에서 들었을 때보다 더 소름 끼치는 음색이었다.

“아 진짜 싫어.”

세정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오르골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더욱 소름이 끼쳤다.

“만지지 말고 가던 길 갑시다.”

현수가 말했다.

일행들은 오르골을 보며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들어선 마지막 실험실.

이곳은 다른 곳과 조금 달랐다.

다른 실험실도 약병이 곳곳에 굴러다니기는 했지만 이곳에는 한쪽에 잔뜩 쌓여 있었다.

그것도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검은색 공병이었다.

무엇보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가 알게 모르게 불쾌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한 쪽 벽에는 제법 잘 보관이 된 유리장이 놓여 있었다.

안에는 유리병 안에 온갖 샘플들이 들어 있었다.

“뭐지?”

유리병에는 아직도 이상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검은색, 혹은 검붉은색 액체들이었다.

병에는 작은 견출지가 붙어 있었지만 세월 때문인지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안에 든 게 뭘까요?”

현수가 유리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 뭐 실험한 약이거나 생물이거나.

- 여태까지 증발 안 한 거 보면 무슨 약품 같기도 한데.

- 뭐 장기가 녹은 거 아님????

- 괜히 찝찝해.

시청자들도 여러 추측을 내놓았다.

“시큼한 냄새가 이 약품 때문인가.”

화진이 유리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덜컹

그때 들어왔던 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행들 모두 일제히 몸을 확 돌렸다.

“나니?”

실험실 입구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는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에게서는 귀신의 아지랑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보이기에는 실제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세요?”

현수가 솔트샷건을 꽉 쥐며 물었다.

“여기 조사하러 온 사람인데요.”

그가 어눌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일본인?”

태환이 물었다.

“하잇. 니혼진 데스. 시메루라고 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한국어 조금 하세요?”

화진이 물었다.

시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조금 합니다. 칸코쿠에서 3년째 살았습니다.”

그의 말에 현수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장면은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 시메루 살아있었음?????

- 3년 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함.

- 아 그럼 실종된 게 아니구나.

- 한국에 와서 거기선 실종됐다고 본 듯.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두워서 그런가 얼굴이 잘 안 보이는데.

시청자들도 확실히 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일단 일반 촬영 카메라에도 포착이 된다는 건 실제로 산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 링톡에서 여기 올리셨었죠?”

“하잇.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많아서 다시 왔습니다.”

현수의 질문에 그는 오르골을 들고 서서 대답했다.

“그거 시메루 씨 건가요?”

현수가 물었다.

“하잇. 제 거입니다.”

“혹시 아까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분도 그쪽이신가요?”

현수가 이어 물었다.

시메루는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예전에 여기서 뭘 찾아내셨죠?”

현수가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순간, 시메루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조, 조, 조또마떼!”

갑작스런 그의 태도 변화에 일행들이 당황한 듯 주춤했다.

자가자가자가자가자가자가자가자가

동시에 온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까 들었던, 석고 텍스 천장 위에서 무언가 다니고 있는 소리였다.

화아아아악

이어 천장의 깨진 석고 텍스 위에서 또 한 번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긴 머리카락이 아래로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일행이 깜짝 놀라 주춤했다.

“으, 으, 으아아아악!”

시메루가 비명을 지르더니 어딘가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 시메루상!”

“시메루 씨!”

현수 일행이 실험실 밖으로 달려 나가 보았다.

그는 이미 복도를 마구 헤집고 달리고 있었다.

태환이 쫓아가려 하자 현수가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 쫓아가지 마. 악귀의 함정일 수도 있어.”

현수의 말에 태환이 멀어지는 시메루와 현수를 번갈아 보았다.

“갑자기 시메루가 등장한 게 좀 이상하긴 한데.”

화진이 중얼거렸다.

현수는 2층 계단 위로 올라가며 사라진 시메루의 뒷모습을 보다 현재 방송 중인 화면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2분 전 화면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짤막하게 말한 뒤 천천히 영상을 보았다.

시메루가 등장한 장면.

일반 촬영 카메라에는 그의 모습이 정확히 찍혔다.

허나 심령카메라에서 이상한 것이 잡혔다.

회색, 흰색 연기가 포착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이목구비가 이상할 만큼 뭉개져 있었다.

혹시 어두운 데다가 실시간 방송을 송출하니 화질이 뭉개진 것인가 몇 번을 돌려봤지만 아니었다.

분명 그의 얼굴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기이하게 표현이 되어 있었다.

“뭐야. 귀신이었던 거예요?”

화진이 물었다.

“이런 식의 귀신은 처음 보는데.”

현수도 기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귀신은 거의 처음 보는 듯했다.

물론 악귀 중, 사람의 몸속에 깊이 숨어 있어 티가 나지 않는 케이스는 종종 보았었다.

하지만 일반 카메라에도 모습이 드러남과 동시에 대화까지 하고, 심령카메라에는 얼굴이 사라져 보이는 이런 케이스는 분명 처음이었다.

순간 현수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름이 없는 묘비.

얼굴이 뭉개진 시메루.

어쩌면 이곳에 있는 귀신의 본질은 ‘익명’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지워진 채 묻혀 있는 귀신들과 얼굴이 사라져 있는 시메루에게서 미묘한 교집합이 있었다.

현수는 여러 생각을 하며 실험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아아아아아

온갖 아지랑이가 땅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석고 텍스 위에 있던 귀신의 얼굴은 사라져 있었다.

“시메루는 어쩌죠?”

화진이 물었다.

현수는 그가 귀신이었으리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계속 해나갑시다. 흔들리지 말고.”

현수가 다시 실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1층의 마지막 실험실 수색은 계속 이어졌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병과 서류들.

글자를 알아볼 수 있는 서류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유리장 안을 살펴보던 태환이 현수를 불렀다.

“형님. 잠깐 이거 좀 와서 봐주실래요?”

태환의 말에 현수와 화진, 세정이 그의 뒤로 다가갔다.

“왜?”

현수가 묻자 태환이 유리장 맨 아래 가장 구석에 있는 유리병을 가리켰다.

“저거. 혹시 손톱들이에요?”

태환의 질문에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유리병을 보았다.

안에 하얀 조각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정확히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모양은 분명 손톱이었다.

“진짜 그런 거 같은데요?”

화진이 중얼거렸다.

“아니, 여기서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사람 손톱을 저렇게 모아둔대요?”

태환이 인상을 썼다.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제약회사 실험실에 귀신이 나오고, 정체모를 무덤이 많고, 저게 손톱이라면 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고 생각이 되니?”

현수가 물었다.

태환과 화진이 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왠지 인체실험을 했던 흔적 같지 않냐.”

현수가 나지막이 덧붙여 말했다.

휘이이이이잉-

창문에서 찬바람이 강하게 몰아쳐 들어옴과 동시에 바닥에 있던 서류들이 휘날렸다.

“시청자 여러분. ‘증보제약’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으면 제보 좀 해주세요.”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곳도 단순히 폐쇄된 실험실이 아닌 뭔가 사연과 사건이 있었던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 증보제약 건물이었구나.

- 난 처음 들어보는데????

- 지금 없는 회사임.

- 증보제약이 지금 선린바이오 전신일 걸????

- 선린바이오???

- 언뜻 들었음.

- 검색해도 뭐 그렇다는 정보는 안 나오는데???

- 나도 귓동냥으로 들었던 거.

현수의 요청에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검색을 하면서 채팅을 올려주었다.

현수 일행은 채팅을 확인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선린바이오’를 검색해 보았다.

굉장히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구성된 홈페이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도 여러 약들을 개발하고 생산하고 있는 듯했다.

최근에는 효과적인 심장병 약을 개발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식이 폭등했던 그 곳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곳에서 정말 끔직한 인체실험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선린바이오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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