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 성망고등학교 (4)
5만 명.
10만 명.
1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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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수는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눈에 띄게 20만 명을 달성해 냈다.
이번 학교괴담 에피소드도 꽤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괴담.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귀신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었다.
또한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조금 이질적인 동양 고등학교의 분위기를 전달해 줌으로써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사실 구독자 300만, 400만 명인 스트리머 중 동시 시청자가 이 정도 숫자나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되레 동시 시청자 수에 비해 구독자 수가 적은 편에 속할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너무 몰입해 구독 버튼을 누르는 것도 까먹은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몰입도가 현실로 증명이 되고 있었다.
다다다다다다다다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화면은 무척 역동적이었다.
현수 일행이 다시 복도를 가로질러 중앙계단으로 뛰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게시판에 왔을 때.
초상화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 촬영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은 수위가 떼어간 그림이 진짜로 사라진 것이었다.
다만 핏자국은 사라져 있었다.
현수는 현재 생방송 중인 영상으로 들어가 몇 분 전으로 돌려 보았다.
분명 촬영 카메라에도 초상화는 걸려 있었다.
“우리가 지금 뭐에 홀린 건가요?”
최동천이 혼란스러운 듯 물었다.
현수는 그렇다, 아니다,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맙소사.”
화진도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초상화가 걸려 있던 자리에는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누가 설명 좀.”
최동천이 발을 동동 굴렀다.
이미 그는 평정심을 완전 잃은 듯했다.
“침착하시죠.”
현수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어떤 상황이든 중요한 건 지금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죠? 그렇죠?”
현수가 일행 한 명 한 명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 역시 퇴마 짬빠는 무시못하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신에 홀린 사람 있는지 체크하는 거임
- ㅇㅇㅇㅇㅇㅇㅇㅇ
- 홀린 사람 없어 보임.
- 캡틴 요새 되게 안정되어 보여서 좋음.
- 저렇게 해야지.
시청자들도 모두 칭찬을 해주었다.
일행들은 현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침착합시다. 일단 지금 초상화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어디로 사라졌는지 추측할 수도 없고요. 설사 추측을 한다 해도 귀신이 유인하는 걸 수 있으니 여기는 패스합시다.”
현수가 계단 아래쪽과 위쪽을 번갈아보며 말을 이었다.
“패스라면요?”
화진이 물었다.
“다음 미스터리로 한 번 가보죠.”
현수가 말했다.
- 이거 깔끔하게 처리하고 갑시다.
- 이거부터 처리해요.
- 1000원 파워챗 후원.
- 괜히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 뒤지다가 방송 지루해짐. 캡틴님이 잘하는 거.
- 패스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 화X트데이 게임 앎???? 그거 하위호환 같넼ㅋㅋㅋㅋㅋ
- 딴 거부터 돌고 방송시간 남으면 그거 찾읍시다.
시청자 여론도 현수를 따르는 쪽으로 기울었다.
세정이 OK사인을 보내자 현수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수위 아저씨가 귀신이었다면 우리 존재를 분명 인식했을 겁니다. 다들 주변 경계 잘 하면서 쫓아오세요. 최동천 선생님은 저랑 캠핑님 사이에 서시고.”
현수가 위치를 지정해 주었다.
가장 무방비 상태인 최동천을 자신과 화진 사이에 세워 귀신에 들리지 않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럼 다음 괴담이 뭐였죠?”
화진이 물었다.
“과학실입니다.”
“거기는 어떤 괴담인가요? 단순히 귀신이 목격된 건가요?”
“옛날에 한 학생이 화학 실험을 하다가 염산을 뒤집어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굴 피부가 다 녹아 굉장히 흉측하게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몇 주 후에 자살을 했는데 그 뒤로 밤에 그 학생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사실인가요?”
“뭐, 봤다는 학생들은 제법 됩니다. 밤에 운동장에서 과학실을 봐도 그 학생이 보인다고-”
“-아뇨. 거기서 학생이 사고를 당했던 게 사실이냐고요.”
현수가 물었다.
“아, 그것까지는.”
이것도 단순히 뜬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섣불리 판단할 것은 아니었다.
단순 괴담이라고만 여겼던 초상화를 두고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뭐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상황이었다.
뚜벅 뚜벅 뚜벅
일행들의 발걸음 소리가 크게 메아리쳤다.
현수는 몇 명의 발소리인지 구분 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두 명까지는 몰라도 네댓 명 되는 발걸음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땐 소수가 훨씬 편하긴 하네.’
현수는 혼자 퇴마를 다녔던 때를 떠올렸다.
짤랑-
그 순간이었다.
아까 들렸던 수위의 열쇠 소리가 들렸다.
현수가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비추었다.
일행들도 모두 들었는지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수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만 들은 거 아니죠?”
현수가 물었다.
“저도 들었어요.”
화진이 대답했다.
짤랑-
또 한 번 들렸다.
고오오오오오오
동굴에서 나는 바람소리가 복도 전체에 휘감겼다.
귀신의 기운이었다.
현수는 솔트샷건을 들고 EMF 탐지기를 확인해 보았다.
네 개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몇 학년 몇 반인지 알려주는 패찰들과 커다란 창문들.
교실의 앞문과 뒷문.
복도 창문.
어디든 비슷한 학교 복도 사이로 강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짤랑-
다시 한번 열쇠소리가 들렸다.
“괜히 기분 나쁜 게- 꼭 그 방울소리 같지 않아요?”
태환이 말했다.
그때 현수의 눈앞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현수가 손전등을 비추며 천천히 다가갔다.
- 설마
- 저거 설마?????
- 태환쿤 촉 좋네.
- 설마 설마 설마
- 게임에서도 저 소리 나면 수위 나타났음ㅋㅋㅋ
화면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연달아 채팅을 올렸다.
현수의 뒷모습과 함께 카메라에 담긴 것은 바로 방울이었다.
아크로스 봉안당 로비에 녹슨 채 떨어졌던 방울.
회색 연기가 은은하게 피어나고 있는 모습.
심지어 동물 털이 징그럽게 엉킨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아니, 그게 왜 여기에.”
화진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현수는 방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귀가 따라왔어요.”
현수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죄책감이 없어지면서 악귀도 사라진 거 아니에요?”
태환이 물었다.
그러자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날 쫓는 악귀는 항상 있었잖아. 사백안을 한.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부터 보기도 했고. 그 악귀가 봉안당에도 있었거든.”
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가장 강력했던 그 악귀는 퇴치한 거 아니에요? 사람을 미치게 했던.”
“그 히키코모리 스토커에 들렸던 악귀는 퇴치했죠. 근데 그놈 하나만 있던 건 아니니까요. 현장에서 보셨죠? 여러 귀신, 악귀들이 보였던 거.”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그럼 수위가 그 악귀일까요?”
“그건 아닐 거 같기도 하고.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수가 방울을 다시 그 자리에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
“왜 안 가져가요?”
태환이 물었다.
“그 악귀가 가져온 거면 좋은 기운이 서려있지는 않을 겁니다.”
현수는 방울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걸어갈 때마다 한 학급 지나 그 방울이 계속 보이는 것이었다.
최동찬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 방울을 뚫어져라 보며 걸었다.
“자꾸 쳐다보지 마세요.”
화진이 속삭여 말했다.
“맞습니다. 자꾸 쳐다보지 마세요. 절 쫓아다니는 악귀들 중 하나가 저기 깃들어 있는 겁니다.”
현수가 덧붙였다.
최동천은 고개를 세차게 저은 뒤 앞을 보았다.
그렇게 계속 이동을 하다 복도 모퉁이를 돌자 과학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깁니다.”
최동천이 앞장서서 과학실 앞문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딸랑-
방울소리였다.
현수와 카메라들이 뒤를 도는 순간, 수위가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으억!”
최동천이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철컥 팡-
현수가 바로 솔트샷건을 장전한 후 달려오는 수위에게 쏘았다.
파아아아악-
달려오던 수위가 뒤로 쭉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러자 마치 연기처럼 수위가 벽 속으로 사라졌다.
쉬이이이이-
차가운 한기와 침묵만 남아 있었다.
현수는 천천히 샷건을 내렸다.
“으으?”
최동천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주변을 보았다.
현수 일행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소멸 됐나요?”
화진이 물었다.
“아뇨. 다시 올 겁니다.”
현수가 짤막하게 대답한 후 과학실을 가리켰다.
최동천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과학실 문에 열쇠를 꽂았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한 번에 넣지도 못했다.
*
철컥
문이 열리더니 넓은 과학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스테인리스로 된 개수대와 유리 선반.
나무 책상과 빔 프로젝터.
코끝을 찌르는 약한 알코올 냄새.
구석에 서 있는 태양계 도감과 지구본.
인체 크기의 근육 마네킹과 뼈 마네킹.
개구리 해부 도감과 인체 장기 도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걸려 있었다.
지금까지 폐교를 다니면서 들렀던 과학실보다 괜스레 더 무서운 느낌이었다.
“밤에 여기 오면 귀신을 만난다고요.”
현수가 다시 물었다.
최동천이 스위치를 조작하며 대답했다.
“네, 네.”
딸깍 딸깍
하지만 당연하게도 스위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약품들은 어디에 있나요?”
현수가 물었다.
“네? 약품들은 왜…….”
“보내주신 사연을 보면 염산을 뒤집어썼다고 하셨잖아요. 그 정도로 염산을 뒤집어썼다면 책상에서 사고가 나진 않았을 것 같아서요.”
현수의 대답에 최동천은 구석에 있는 유리장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입니다.”
그는 구석에 있는 철제 유리장을 가리켰다.
그 유리장에는 빨간색으로 ‘접근금지’라는 패찰과 함께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위험한 약품은 저기에 넣어둡니다. 강화유리라 깨지지도 않고요.”
현수가 다가가는 사이, 최동천이 설명을 해주었다.
“확실히 단단해 보이네요.”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철제 유리장을 가리켰다.
손전등과 카메라는 모두 유리장 쪽을 비췄다.
“이상하게 학교 건물은 괜스레 더 추운 것 같아요.”
태환이 볼멘소리를 하듯 중얼거렸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장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카메라들도 유리장에 서서히 다가갔다.
손전등 불빛이 유리에 반사되지 않도록 살짝 각도를 틀었다.
그러자 유리장 안의 약품들과 반사된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유리장 앞에 선 일행들 사이로 한 여학생이 서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으헉!”
심령카메라를 들고 있던 태환이 깜짝 놀라며 카메라를 확대했다.
유리장 안에 비친 여학생의 모습에서 회색 연기가 촬영되었다.
“왜? 뭐야!”
화진도 태환을 한 번 돌아본 뒤 유리를 보았다.
동시에 현수도 유리에 비친 여학생을 발견했다.
피부가 온통 벗겨진 것처럼 쭈글쭈글한 모습이었다.
“으악!”
이 모습은 최동천도 본 모양이었다.
그는 유리장에 비친 여학생을 보고 뒷걸음질 치다 과학실 책상에 골반을 부딪치고 쓰러졌다.
“크윽!”
굉장히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화진이 바로 그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유리나 거울 같은 데 반사되는 귀신은 영안이 없어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울 괴담이 많은 거고요.”
태환이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그 사이, 여학생은 옆으로 몸을 돌리더니 유리장 밖으로 슥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