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 성망고등학교 (3)
최동천은 그때 이야기를 하며 끔찍했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현수가 물었다.
“학생들을 비롯해서 감독 선생님들이 부랴부랴 달려갔죠. 그때 그 학생은 초상화 앞에 기절해 있었어요. 거품까지 문 채로요. 경련을 일으키고 있더라고요.”
“바로 병원으로 갔나요?”
“네. 119 신고해서 병원으로 실려 갔죠. 응급실에서 정신이 들었고, 자기가 본 걸 이야기해줬습니다.”
“그 학생은 지금 괜찮나요?”
“아아. 그게-”
최동천이 머뭇거렸다.
현수 일행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학교에 등교를 했는데 그때부터 이상해졌습니다. 굉장히 감정적으로 변하고 욕을 달고 살더라고요. 학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아아.”
“그러더니 며칠 있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교통사고로요?”
“네. 횡단 보도를 건너던 중에 졸음운전을 하던 트럭에 치였습니다.”
“충격이었겠네요.”
“네. 학생들도 모두 충격받았죠. 한동안 애도 분위기였고요. 그런데 그러고 2년도 안 지나서 과학실에서 또 사고가 난 거죠.”
“흐음.”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졸음운전 차량에 치였다는 건 우연적인 사고일 수도 있었지만 한 학교에서 두 번이나, 그것도 학교 미스터리와 관련한 사망사고가 일어났다는 건 뭔가 의심스러웠다.
“이 그림입니다.”
최동천이 3층과 4층 계단 사이에 있는 게시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괴상한 타입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낙인조차 찍혀 있지 않았지만 꽤 수준 높은 그림인 것 같았다.
문제는 그 그림의 액자에서부터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다는 것.
“이 그림이군요.”
현수가 그림을 보며 말했다.
심령카메라에도 하얀 연기는 명확하게 찍혔다.
- 현재 성망고 재학생입니다. 저거 3학년 선배들이 떼어다가 버렸다고 들었는데요.
- ㄹㅇ?????????????????????
- ?????????????????
- ????????????????????
- ??
- 떼서 버렸는데 또 걸려 있다고???
- 구라치고 있네
- 진짜임.
채팅을 본 세정이 현수에게 채팅창을 가리켰다.
지금 바로 확인을 해보라는 의미였다.
채팅을 본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이 그림을 떼서 버리려던 학생들이 있었나요?”
“가끔 있었죠. 그런데 떼서 버려도 계속 그 자리에 걸려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누가 떼어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그렇다-라는 소문만 돌아요.”
최동천이 대답했다.
- 샷건 ㄱㄱㄱㄱㄱㄲㄱㄱㄱㄱ
- 팥 뿌려버려요!
이어 공격하라는 채팅이 올라왔다.
현수는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저 액자에 귀신이 깃든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딱히 모습을 드러내거나 공격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 한 번 소통을 해 보겠습니다.”
현수가 초상화와 카메라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고스트사운드를 꺼내 설치했다.
“이게 귀신 소리를 듣는 거로군요.”
최동천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고스트사운드를 보았다.
그 사이 현수는 솔트샷건에 달린 EMF 탐지기를 초상화에 대보았다.
그러자 불빛이 다섯 개까지 치솟았다.
전자기파가 아닌, 확실한 귀신의 기운이었다.
사아아아아아
공기도 은은하게 차가워졌다.
화진도 부적 봉을 꺼내 조립했다.
“당신은 여기 계신가요.”
현수가 물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긍정의 소리’가 들려왔다.
방고리나 하날하날처럼 명확한 음성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다른 귀신들과는 같은 패턴인 듯했다.
“초상화 속 주인공이신가요?”
현수가 물었다.
꾸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아까보다 조금 더 강렬한, 울림이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문을 들어보니 산 사람을 부른다고 하시는데. 이거 없이도 저와 소통이 가능한가요?”
현수가 고스트사운드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일행 모두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시청자들 역시 숨죽인 듯, 채팅이 잠시 멈칫했다.
그 순간이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일행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최동천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우왁!”
이어 화진과 태환, 세정도 깜짝 놀라 뒤로 도망쳤다.
카메라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래도 최동천보다는 덜 놀란 모습이었다.
이 중 가장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건 현수였다.
현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초상화와 고스트사운드 앞에 서있었다.
- 아 깜작이야
- 진짜 놀랐네.
- 진자 놀랐어요.
- 아닠ㅋㅋㅋㅋ 갑자기 뭐얔ㅋㅋㅋㅋㅋ
방송용 마이크로도 그 목소리가 전달된 듯했다.
“이번에는 귀신 목소리가 마이크에 잡힌 것 같아요.”
태환이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안 그래도 전에 의정부에서 방고리 귀신이 일반 카메라에도 잡혔지?”
“네.”
“이게 무슨 현상인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현수는 고스트사운드 볼륨을 조절하며 말했다.
“어라?”
그때 화진이 손전등으로 초상화를 비췄다.
초상화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무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더 기괴하고 소름 끼치게 보였다.
- 영매로서의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때 채팅 하나가 올라왔다.
세정과 현수는 다음 채팅을 확인해 보았다.
- 원리는 몰라도 심령카메라를 통해 귀신을 촬영했는데 지금 태환쿤도 그렇고 캡틴님도 그렇고, 거기 멤버들 영안이 있다는 건 다 신가물이자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귀신들의 기운도 그만큼 선명해지는 거임.
- 그러니까 빙의한 무당들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귀신 들리는 것처럼 캡틴팀이 지목하는 귀신들의 형체가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이는 거임.
- 아 생각해 보니까 그때 어디더라. 어디 여행 가이드도 귀신인지 뭔지 아직 못 밝혀내지 않았음??????
- 맞네.
- 일반 카메라에 귀신 또 찍힌 적 있었던 거 같긴 함.
누군지는 몰라도 무속신앙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 같았다.
시청자들도 거기에 호응하며 흥미로워 했다.
정리하자면 현수 일행의 영안, 영매 능력이 점점 강해지며 타깃인 귀신의 형체가 조금 더 뚜렷하게 포착이 된다는 말이었다.
일반 카메라나 마이크에도 잡힐 정도로.
그리고 이건 방송 콘텐츠 면에서는 꽤 호재라고 볼 수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더욱 적나라하고 현장감 넘치는 장면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스트크루 일행들에게는 더 위험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나저나 여기 이 그림의 주인공이요. 예전 교장선생님 딸이라고 했나요?”
현수와 태환, 세정이 채팅을 보고 있던 중, 초상화를 주시하던 화진이 물었다.
그러자 현수도 다시 현장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네. 제가 언뜻 듣기로 30년 전인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아뇨. 들은 바 없습니다.”
최동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밝은 손전등 불빛이 일행을 확 비추었다.
“아앗.”
“깜짝이야!”
일행들이 손으로 빛을 가리며 계단 위를 보았다.
짤랑 짤랑-
열쇠 꾸러미 소리가 들렸다.
상황상 수위인 듯했다.
“거기 뭡니까?”
걸걸한 장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아. 저 1학년 5반 담임 최동천입니다. 여기 이분들은 스트리머고요.”
최동천이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제야 수위가 손전등을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주름이 가득한 수위의 모습이 드러났다.
“토요일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수위가 공격적으로 물었다.
“어라. 새로 오셨어요? 못 보던 분이신데.”
“이번 주 월요일부터 근무하기로 한 근무자인데요. 뭐하시냐고요.”
수위가 공격적으로 재차 물었다.
“저 박광복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요. 오늘 촬영한다고. 같이 수위실에서 근무하시는.”
“아, 그랬어요?”
수위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최동천은 안심하라는 듯 일행들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거 그림 앞에서 뭐 한대요? 에이, 저거!”
수위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성큼성큼 내려왔다.
그러고는 붙어 있는 초상화를 한 손으로 확 떼어냈다.
“이 재수 없는 그림 그거 뭐 한다고 보고 있어요. 일들 봐요! 이건 내다 버릴 테니까!”
수위는 떼어낸 초상화를 허리에 끼고는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현수 일행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었다.
“요새도 수위 선생님이 순찰을 도나요? 보안 방범 장치들이 잘 되어 있을 텐데.”
현수가 물었다.
“그러게요. 저도 주말 이 시간에 학교에 있는 건 처음이라 몰랐네요. 아무튼 죄송합니다.”
그는 미안한지 현수에게 인사를 했다.
“어?”
그때 세정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채팅창을 보여주었다.
- 다들 뭐함?
- 뭐보고 이야기 하는 거임?
- 뭐해요??
- 시청자가 갔나??
- 뭣들하심????
시청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채팅을 써 올렸다.
“지금 수위 아저씨가 오셔서-”
현수가 엄지손가락으로 게시판을 가리키다가 눈을 번뜩 떴다.
분명 카메라 앵글 상 수위가 화면에 안 잡힐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수위가 귀신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
현수가 초상화가 걸려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초상화 대신, 피가 묻어 있었다.
마치 벽 안에서 피가 새어나오듯, 은은하게 번져나갔다.
수위가 귀신이든 아니든, 초상화를 떼어간 것이었다.
- 헐????
- 초상화 어디 감???
- 초상화 초상화 초상화
- 그림 어디 갔음??
- 뭐야 무슨 상황이야
- 수위는 무슨 수위???? 못 봤는데??
- 게임 화X트데이 오마주임????ㅋㅋㅋㅋㅋㅋ 수위 귀신이라도 됨??ㅋㅋㅋㅋ
- 뭐임??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수위 아저씨.”
현수는 고스트사운드를 다급하게 해체한 후 바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최동천도 엉겁결에 현수의 뒤를 따라 달렸다.
순식간에 온 화면이 뒤흔들렸다.
마이크에도 뛰는 소리와 멤버들의 숨소리만 잡혔다.
헉 헉 헉 헉
다다다다다다
터벅 터벅 터벅
그렇게 1층까지 달려온 현수가 물었다.
“쓰레기장 어디에요?”
“여기요!”
최동천이 뒷문으로 향하며 대답했다.
다다다다다다
복도에서는 유난히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쾅-
유리로 된 뒷문을 열고 나가자 분리수거장과 쓰레기장이 보였다.
이곳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쓰레기봉투나 분리수거 물품이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다 수거해 가서 토요일, 일요일에는 쓰레기가 없어요.”
최동천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 어떤 쓰레기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초상화도 보이지 않았다.
- 무슨 상황임?
- 어떻게 된 거예요?“
시청자들이 다급하게 물었다.
“아까 초상화 앞에서 웬 수위 아저씨가 나타나셨거든요? 그래서 우리 상황설명 듣고 초상화를 떼어가셨는데- 카메라엔 안 잡히고 초상화는 사라져 있고- 이런 상황입니다.”
현수가 숨을 몰아쉬며 설명해 주었다.
- 심령카메라에는 잡혔던 것 같아요.
그때 누군가의 채팅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거는 바람에 태환이 심령카메라가 아니라 수위를 보고 있던 터라 화면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현수는 지금 생방송 중인 캡틴 채널에 들어가 방송 영상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일반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지만 심령카메라에는 하얀 무언가가 일행들 사이로 확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포착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수위는 귀신이 분명했다.
그런데 귀신이 초상화를 분명 떼어가지고 내려갔었다.
“그, 그럼?”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중앙계단으로 달려가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