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 방성 봉안당 (3)
- 뭐가 보임???
- 낮이라 더 안 보이는 거 같은데.
- 뭐예요?? 무슨 상황임???
-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시청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현재 시청자 수는 약 1500여 명.
처음보다 많이 들어왔지만 시청자들의 상황 이해도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낮이다 보니 대부분 다른 일을 하면서 방송을 틀어놓은 것 같았다.
더구나 봉안당의 위치나 이름이 정확히 노출되지 않기 위해 세정이 앵글을 자꾸 땅으로 향하는 통에 장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매니저처럼 상황을 설명해주는 시청자도 있었다.
- 하날하날 봉안당인데 구석에 뭐 보여서 가는 중.
- 악귀일 거 같은데.
- 악귀 본 거 같아요.
세정은 채팅을 확인하며 현수 일행을 뒷모습을 쭉 촬영해 나갔다.
그렇게 수풀 앞에까지 오자 여성의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하날하날 님.’
현수는 그 여성이 하날하날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눈, 코, 입에 잿빛 피부. 보라색 입술.
하늘하늘한 원피스.
몸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
“지금 저쪽에 보이시나요? 하날하날 님의 영혼으로 보입니다.”
현수가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위기로 봤을 때 캡틴 타워 화장실에서 보았던 악귀가 아닌, 진짜 하날하날의 영혼이라 확신한 것이다.
하얀 연기를 은은하게 뿜어대던 하날하날의 몸에서 회색 아우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 회색인데??
- 하날하날이 악귀가 됐단 거임?????
- 색깔만 봐선 그럼요.
- 에이. 아니지.
- 악귀 하날하날이라니.....
- 적당히 해라 캡틴.
시청자들이 흥분해 채팅을 올렸다.
그 사이, 태환이 레이니 앱을 켜 여성을 확대해 보았다.
확-
그러자 하날하날의 이목구비가 앱에 표시가 되었다.
태환은 그 장면을 촬영 카메라에 비춰 보여주었다.
- 아 씨 깜짝이야.
- 진짜 하날하날????
- 아니겠지.
- 이거 주작이면 진짜 캡틴 개쓰레기다.
- 주작인데 아직도 모르냨ㅋㅋㅋㅋㅋㅋ
- 아직도 주작 논란ㅋㅋㅋㅋㅋ
- 해명도 안 하잖음.
여러 의견들이 채팅창에 올라오는 사이, 현수가 천천히 다가갔다.
“하날 님. 잠깐 이야기 좀 나눌까요?”
현수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하날하날은 현수를 가만히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날 님?”
현수가 다시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휙-
하날하날이 뒤로 확 돌더니 수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날 님!”
현수가 솔트샷건을 뽑아 들며 수풀 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이어 화진도 부적 봉을 들고 쫓아갔다.
“어엇! 같이 가요!”
태환이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파스스 파스스스-
현수 일행은 숲속을 거칠게 헤치며 나아갔다.
촬영 카메라도 엄청나게 흔들리면서 수시로 가리는 이파리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덕분에 실시간 방송 화질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 아 화질.
- 안 보여요
- 화질 좀.
여러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어지는 중, 작은 공터에 다다랐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헉 헉 헉.”
화진과 태환, 세정도 뒤따라 공터에 도착했다.
“그 귀신. 하날하날 님이에요?”
화진이 물었다.
“보기에 그래 보였어요.”
하날하날의 모습은 완전 사라져있었다.
현수는 힙색에서 방울을 꺼내 태환에게 건넸다.
“태환아. 내가 신호하면 방울을 흔들어. 알았지?”
“네, 네.”
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들에게 방울은 귀신을 불러오는 도구였다.
신통한 무당의 핏줄을 가진 태환이 흔들면 확실히 효과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어우. 춥다.”
화진이 어깨를 움츠리며 중얼거렸다.
“한기에요.”
귀신의 한기.
이 주변에 원혼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었다.
사아아아아
그걸 증명하듯 나무 사이로 하얀 연기가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어 먹구름이 끼는 것처럼 태양빛이 살짝 어두워지기도 했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 같았다.
딸랑 딸랑-
그때, 태환의 손에 들린 방울이 저 혼자서 울렸다.
현수와 화진이 놀라 그를 보았다.
현수가 신호를 준 것이 아닌데 울렸기 때문이었다.
“전 가만히 있었는데-”
태환이 손사래를 쳤다.
그 순간이었다.
공터 한 쪽 나무 사이로 하날하날의 모습이 보였다.
현수가 솔트샷건을 빠르게 겨누었다가 총구를 내렸다.
사아아아아-
하날하날은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저기예요!”
현수가 짤막하게 외친 후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아아아아
이미 주변에는 흰색, 회색 연기들이 뒤엉킨 채 가득한 상태였다.
화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변 나무를 보았다.
왠지 모르게 귀신 소굴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 캡틴 오늘 좀 이상한 거 같은데.
- 원래 조심성 없고 대책 없는 느낌이 있긴 했는뎈ㅋㅋㅋㅋ오늘따라 좀 더하네.
- 그만큼 하날하날한테 미안해서 그런 거 아님??
시청자들도 현수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수의 생각은 단순했다.
하날하날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탓-
하날하날의 흔적을 쫓아오자 그 다음 공터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굉장히 허름한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방치된 지 50년은 넘어 보이는 건물.
입구에는 ‘아크로스 봉안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도색은 벗겨져 회색 시멘트가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었고, 넝쿨과 잡초가 주변을 가득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시뻘건 페인트로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출입금지]
[무단출입 시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방성 봉안당 측은 법적 책임이 없음을 고지합니다.]
현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건물을 보고 있는 사이, 다른 일행 모두 뒤쫓아 왔다.
“어머. 이게 뭐예요?”
화진이 놀라 물었다.
“아크로스 봉안당?”
그 사이 태환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전혀 검색이 안 되는데요.”
태환은 검색 결과를 보며 말했다.
“방치된 봉안당이다 이거지. 아예 잊힌.”
현수가 건물을 슥 올려보았다.
3층짜리 건물.
제법 큰 규모였다.
화아아아아아아
살짝 열려 있는 1층 출입문 안에는 회색 연기가 자욱했다.
안에 악귀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동시에 3층 창문 안으로 하날하날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저기 들어갈 거예요?”
태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날하날 님이 여기로 우리를 유인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 * *
스윽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강력한 한기가 몰아쳤다.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주변을 보았다.
1층은 관리사무실과 커다란 칸막이 방들이 보였다.
칸막이 방은 조문객들의 제사를 위해 마련해 둔 제사실로 쓰인 듯했다.
자박 자박 자박
걸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바닥에 있는 먼지와 흙이 밟히는 소리였다.
달각
현수가 손전등을 켰다.
몇 걸음 안으로 들어오자 햇빛이 닿지 않으며 확 어두워졌다.
이어 다른 일행들도 손전등을 켠 후 주변을 비췄다.
딸랑-
방울이 흔들리며 소리가 퍼졌다.
침묵을 깨는 방울소리에 현수가 흠칫 놀랐다.
이번에도 역시 태환이 직접 흔든 것이 아니었다.
“자꾸 왜-”
태환이 방울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멀쩡하던 금색 방울이 녹이 슬어 흉측하게 변한 것이었다.
심지어 방울 안쪽에 동물의 털 같은 것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으악!”
태환이 깜짝 놀라 방울을 떨어트렸다.
현수와 화진, 세정의 카메라 모두 떨어진 방울에 주목했다.
- 뭐야 왜 저럼????
- 방금 방울 울리지 않았음?? 저런 방울이 어케 소리를 내???
- 저거 머리털임???
- 동물 털 아닌가.
- 뭐야 ㅅㅂ 무서워
현수가 쪼그려 앉아 방울을 들어보았다.
도저히 못 쓸 정도로 망가져 있는 수준이었다.
“태환아. 보통 이렇게 무구가 갑자기 상하는 경우가 있니?”
현수의 질문에 태환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급속도로 변하는 건 본 적 없어요. 그냥 건너 듣기로 한이 강하면 그럴 수 있다고만…….”
태환이 대답했다.
현수는 바닥에 떨어진 방울을 보며 수많은 퇴마 영화를 떠올렸다.
악귀, 혹은 악마의 힘이 강력할 때 성물들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부서지는 등의 현상.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하날 님이 이렇게 한 걸까요?”
화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글쎄요.”
지금은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오직 분명한 건, 굉장히 강한 한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하날하날 님이 여기로 우리를 유인하는 이유가 뭘까요?”
세정이 조용히 물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를 노리는 걸 수도 있고요.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부른 걸 수도 있고요.”
현수가 대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왜 이런 데로?”
세정이 되묻자 태환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귀신들은 이렇게 음기가 강한 곳에서 자기 의지를 더 쉽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최소한 귀신들은 그렇게 믿고 있죠. 자기가 이렇게 해야 산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태환의 대답에 세정이 카메라를 돌렸다.
“일단 관리사무실부터 가보죠.”
현수가 한쪽에 있는 관리실 문을 가리켰다.
언제나 그렇듯, 들어가서 지도와 시설물 구조부터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다.
“병원이나 장례식장보다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세정이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 동의
- 동의
- 동읰ㅋㅋㅋ
- 맞아 진짜 그럼ㅋㅋㅋㅋ
- 분위기가 무서워
- 공동묘지랑은 또 분위기가 달라.
그 사이 현수가 관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캐비닛과 책상들이 보였다.
손 글씨로 표지명이 적힌 서류들과 붓펜으로 쓴 것 같은 메모들.
벽에 걸린 흑칠판.
전형적인 1970년대 사무실 분위기였다.
현수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한두 개 들쳐 보았다.
“2층에 약 5000기 정도 납골함을 넣을 수 있고 3층에 5500기 정도 넣을 수 있는 규모였네요.”
현수가 서류에 적인 메모를 보며 말했다.
“그 정도면 큰 규모인가요?”
“그렇게 큰 규모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현수가 대답했다.
“그런데 여기를 왜 치우지 않고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거지.”
태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관리실 안을 슥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온갖 집기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인형과 장난감도 보였다.
그게 괜히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폐관이 결정되고 유족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납골함을 챙기라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되는 유족들이 여럿 발생했다. 그리고- 책임자들이 모두 사직했다. 그리고-”
화진이 책상 위에 놓인 메모를 보고 중얼거리다 말을 멈췄다.
“그리고요?”
태환이 뒷내용이 궁금한지 화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철수 날짜가 정해진 후부터 위층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하네요. 올라갔다가 직원 한 명이 정신줄을 놨다고.”
화진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로비에 버리고 온 방울이 울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데다가 녹슬고 털까지 끼어 도저히 소리가 안 날 것 같았음에도 혼자서 포효하듯 울리는 것이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동시에 날카로운 한기가 복도 구석을 슥 훑으며 현수 일행을 덮쳤다.
꾸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관리실 밖에서는 마치 고스트사운드에서 나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방울소리고 끊이지 않았다.
“뭐야. 대체 여기 뭐가 있는 거죠?”
화진이 놀라 두리번거렸다.
“수정 누나. 지금 무슨 상황이죠?”
현수가 나지막이 물었다.
“말했지만 나는 많은 걸 알려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어. 그냥 언질을 하나 해주자면-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거?”
수정이 현수의 옆에 슥 나타나더니 말했다.
딸랑 딸랑 딸랑-
이러는 사이에도 방울소리는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현수는 미간을 확 찌푸리며 고민하다 고스트사운드를 열었다.
꾸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계속해서 들리는 이 소리를 고스트사운드로 들으면 어떻게 들리는지 확인을 해보려는 것이었다.
화아아아아악
주위의 온도가 급속도로 빠르게 떨어졌다.
일행들의 코와 입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