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 백룸 (6)
현수는 방고리의 위에서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몸부림치는 방고리의 머리 주변에는 검은 액체가 마구 튀고 있었다.
흡사 피가 튀는 것처럼 흉측한 모습이었다.
물론 촬영 카메라에는 검은 액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현수가 방고리를 꽉 누르고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쾅-
그때 멀리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들이 들어온 모양이에요!”
화진이 소리쳤다.
“여기예요 여기!”
태환도 벽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 현재 있는 곳이 출구와 얼마나 먼지, 어느 방향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달이 되긴 한 모양이었다.
키기기긱 키기기긱
방고리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현수는 그의 입속을 살펴보았다.
걸쭉한 악귀 덩어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안에 깊숙이 들어차 있는 모양이었다.
‘끄집어내야 해!’
현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떨어져 있는 밀짚인형을 발견했다.
하지만 팔이 닿지 않았다.
“인형!”
현수가 소리치자 세정이 발로 툭 차 주었다.
인형을 집은 현수는 바로 방고리의 입속에 다시 욱여넣었다.
그러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제발 좀 나와라. 이제 그만 좀 나와라!”
현수가 온몸의 무게를 실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아주 지독한 악귀였다.
지금까지 그 많은 악귀를 마주치고, 그 많은 의뢰로 처리하면서도 이렇게 끈질긴 놈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태환의 소리를 듣고 찾아온 경찰들이 바로 테이저건과 총을 들었다.
“떨어져! 떨어져!”
그들이 영어로 마구 외쳤다.
하지만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서 떨어지게 되면 또 퇴마는 실패하는 것이었다.
- 아!!!! 끼어들지 말라고!!!
- 극혐!!!
- 발암 그만 고구마 그만!!!
- 고구마 고구마 고구마
- 아 ㅅㅂ 끼지 말라고!!!
- 영상 봤으면 좀 닥치고 있으라 해!!
시청자들이 채팅창에서 소리쳤다.
화진과 태환도 경찰에게 다가가 한국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경찰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할 리는 없었다.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그들이 보기엔 사람이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만 보이기 때문이었다.
“멈춰!”
경찰이 영어로 소리치고는 현수에게 테이저건을 쏘았다.
지지지지지지직
테이저건에 맞은 현수의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경련을 일으켰다.
순간 방고리는 벌떡 일어나더니 도끼를 집어 들고 현수를 공격하려 했다.
탕- 탕 탕 탕-
흉기를 든 모습을 보자 경찰은 바로 실총 방아쇠를 당겼다.
네 발의 총성.
그리고 네 개의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도끼를 든 방고리가 피를 흘리며 돌아보았다.
경찰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총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모습에 역시나 두려움을 느낀 것이었다.
“이 새끼들이.”
방고리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도끼를 질질 끌며 경찰에게 향했다.
그 모습은 흡사 좀비와 같았다.
탕 탕 탕 탕-
경찰들은 연이어 총을 쏘았다.
테이저건을 들고 있던 경찰도 권총을 뽑아들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꺄악!”
화진과 세정이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도 확 돌아가 천장을 향했다.
- 진짜 총 쏘고 있는 거??????
- 저거 연출 아냐???
시청자들도 깜짝 놀라 채팅을 썼다.
태환과 현수도 자세를 낮춘 채 머리를 감쌌다.
탕 탕-
다리와 팔, 목, 머리에 맞은 방고리는 두 팔이 축 처진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팔의 관절과 근육이 찢어지며 악귀의 힘으로도 도끼를 들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 것이었다.
사방에는 방고리의 피로 가득했다.
탕-
또 한 발의 총성.
결국 무릎까지 부서지며 방고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끼히히힛! 끼힛!”
방고리가 기괴한 웃음을 내뱉었다.
경찰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총을 겨눈 채 현수를 보았다.
“디스 이즈 이블! 이블!”
현수가 어설픈 영어로 소리쳤다.
경찰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이었다.
방고리가 느낄 강한 통증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 안의 악귀도 그 몸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촤라라라락
방고리가 누운 채로 구역질을 하자 검고 걸쭉한 덩어리 툭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뭔가에 홀린 듯 밀짚인형으로 빨려 들어갔다.
방고리에게서 악귀를 끄집어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다.
현수가 몸을 던져 밀짚인형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들었다.
“스톱! 스톱!”
경찰은 폭탄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본 건지 현수의 행동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하기야 경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위협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할 법 했다.
“캄 다운! 캄 다운!”
태환이 경찰들 앞에서 양팔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경찰은 무슨 일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사이, 라이터에 불이 붙었고 이내 밀짚인형에 옮겨 붙었다.
화르르르륵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밀짚인형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비명소리가 복도를 타고 현수 일행과 경찰들에게까지 모두 뻗어나갔다.
경찰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불타는 밀짚인형을 지켜보았다.
인형에게서 비명이 나온다는 건 보지도 듣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명이 잦아들어갈 무렵, 경찰들이 달려와 바로 현수를 붙잡았다.
화진과 태환은 두 손을 번쩍 들었고, 세정은 끝까지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총구가 돌아보자 황급히 내려놓았다.
경찰은 세정이 내려놓은 카메라를 들어 화면을 확인하고는 전원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방송이 갑자기 종료되며 시청자들이 튕겨나갔다.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촬영은 일단락되었다.
순간 최고 시청자 수 48만 명.
북미 시청자만 20만 명.
국내 시청자는 15만 명.
늘어난 구독자 수 10만 명.
짧고 굵은 해외출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피해는 컸다.
라미로브 김창수 과장이 사망했고 동료 스트리머 방고리가 영혼까지 잃은 채 사살 되었다.
엄청난 주목을 이끌어냈지만 상처가 큰 촬영이었다.
* * *
화이트 맨션.
그의 본명은 스티브 티럿.
미국 뉴저지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음모론에 빠져 지내다 51구역이나 로즈웰 등, 온갖 미스터리 발생지를 찾아다니는 스트리머가 되었다.
하지만 구독자 수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다른 방송들을 염탐하며 아이템을 얻던 중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백룸’에 대한 괴담이었다.
그는 다크웹에 떠도는 백룸에 대해 한참 조사를 하던 도중 캐나다 마샬 지역에 백룸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티브 티럿은 다크웹에 명시된 이곳에 백룸을 만들면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직접 백룸을 만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 공장처럼 건물을 세워 백룸을 직접 설계하고 촬영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실제로 그가 자신의 채널에 올린 백룸 영상은 모두 직접 내려가 자신이 촬영한 것이었다.
계속 같은 공간을 도는 것임에도 다른 영상이라 느꼈던 것은 걷는 방향이나 재생 시작 위치, 아니면 걸음 속도를 달리 해 ‘다른 곳’ 같은 착시 현상을 준 것뿐이었다.
그렇게 점점 ‘백룸’ 키워드에 자신의 닉네임 ‘화이트 맨션’을 입히는 작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음모론 좋아하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고, 그는 자신이 만든 백룸이 핫플레이스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의 퇴마 영상이었다.
그는 현수를 이용하면 자신이 만든 백룸을 음모론자들의 성지로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 욕심에 현수에게 컨택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화이트 맨션 ‘스티브 티럿’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가 지하에 불법 건축을 해놓고 너튜브에서 사람들을 속여 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또한 방고리와 김창수 과장의 사망.
객관적으로 보면 연쇄살인범과 그 피해자에 불과했지만 현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괴롭혀 온 악귀를 처치한 것이었다.
물론 그 둘의 죽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고스트 크루로 미드나잇 게임 때 처음 만나 계속 함께 연락해 오며 서로 도와준 방고리.
조회 수에 미쳐 있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현수가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준 김창수 과장.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악귀에 쓰여 결국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현수 주변을 맴돌던 피해자 귀신들도 모두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명.
‘보내야 할 사람’이 있었다.
현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 * *
수정.
허태훈에게 죽음을 당해 망령처럼 호텔에 갇혀 있다가 현수를 만난 뒤, 복수를 위해 현수의 곁에 머물고 있던 수정.
복수를 하고 싶어 하던 그녀의 복수도 끝이 난 셈이었다.
현수는 그 사실을 알고 수정이 곧 떠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 3일째.
수정은 성불할 생각도 않은 채 TV 앞에 앉아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허태훈 악귀도 소멸 됐는데 계속 이렇게 지내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수정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그놈 소멸하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떠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네?”
“그게 그렇게 의지대로 되는 거였어요?”
“안 될걸? 몰라. 아무튼 별로 그럴 생각이 안 들어. 아직 뭐 한이 남았나.”
수정은 현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방고리하고 악귀 잡으면서 그 피해자 귀신들도 다 성불했잖아요.”
“몰라. 모른다니까 왜 자꾸 나한테 그래.”
수정이 현수를 보며 버럭 소리쳤다.
순간 확 한기가 들자 현수는 수정이 화났다는 걸 눈치 채고 자리를 피했다.
“음.”
현수는 방문 앞에서 수정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무척 귀찮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의식하지 않게 되었던 귀신 수정.
계속되는 퇴마에 도움도 많이 받고 고민상담도 주고받았던 고마운 ‘귀신’이었다.
그만큼 떠나게 되면 무척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현수 옆에 머물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현수는 태환의 모친을 찾아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기로 했다.
* * *
오랜만에 찾아가는 만큼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 수원으로 간 현수는 수정이 쫓아왔는지 수시로 확인을 해보았다.
“형님!”
태환이 손을 흔들었다.
현수는 태환에게 화답을 해주며 그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현수를 본 태환의 모친은 반가운 듯 인사를 해주었다.
“오랜만이네요. 방송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악귀들을 상대로 그렇게 오랫동안 방송을 잘해나갈 줄은 몰랐는데. 의외예요.”
“아닙니다. 하하.”
“우리 아들은 그런 일 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현수 씨 매니저가 됐다고 해서 얼마나 뭐라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현수 씨가 워낙 잘해주시니 안심이 되어요.”
“감사합니다. 태환이도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하. 그런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태환의 모친이 물었다.
현수는 주변을 슥 돌아보고는 물었다.
“귀신이 자기가 늘 말하던 한을 풀었는데 성불하지 않으면 뭐죠? 물어보니까 별로 성불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던데.”
“늘 붙어 다니던 그 귀신이죠?”
태환의 모친이 웃으며 물었다.
이미 현수에게서 느꼈던 모양이었다.
“네, 네.”
“그 귀신하고 이야기를 안 나눠봐서 모르겠는데요. 제가 볼 때 그게 원한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네?”
현수가 놀라 되물었다.
“제가 현수 씨한테서 느껴지는 그 귀신의 기운은 원한이나 원망, 분노가 아니에요. 현수 씨도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지 않아요?”
태환의 모친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와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