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 백룸 (5)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방고리가 나뒹굴다 복도 구석에 처박혔다.
화진이 봉을 앞세워 서며 소리쳤다.
“뛰어요!”
그녀가 소리쳤다.
태환이 돌아서 뛰려는 순간 방고리가 덤벼들었다.
우당탕탕
화진과 방고리가 뒤엉킨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태환은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방고리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늘어졌다.
“떨어져라! 이 악귀 자식아!”
태환이 소리쳤다.
휙
그 순간 방고리가 태환을 돌아보았다.
머리만 180도 돌아간 기괴한 움직임이었다.
심지어 눈의 흰자위도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악귀가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이었다.
“키야앗!”
방고리가 팔꿈치를 휘둘렀다.
빠악-
팔꿈치에 맞은 태환이 뒤로 쓰러졌다.
그 사이, 방고리의 부적 봉이 태환의 목을 가격했다.
“쿠악!”
방고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화진은 태환의 어깨를 잡아 당겼다.
“빨리 일어나!”
태환은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움켜쥐고 일어났다.
“크륵 크륵 크륵!”
그때 화진은 뭔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가격당한 방고리의 상태가 무척 이상한 것이었다.
입에서는 검은 액체를 뚝뚝 흘리고 있었고, 눈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부적 봉에 맞아 충격을 받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과도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태환이 떠올랐다.
현수의 말에 의하면 태환의 모친은 굉장히 강한 영력을 가진 무당이었다.
지금 현수가 사용하는 모든 부적들도 모두 그녀가 공급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저 태환이라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악귀들이 싫어할 가능성도 컸다.
그리고 그건 저런 ‘거부반응’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다.
“다 맘에 안 들어. 다 맘에 안 든다니까!”
방고리가 버럭 소리쳤다.
화진은 태환을 자신의 뒤에 세운 채 뒷걸음질 치며 부적 봉을 조준했다.
가라라랑
방고리는 도끼로 벽을 긁으며 화진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 * *
멀리서 소음이 들리자 현수와 세정은 바로 소리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오른손을 벽에 짚고 계속 이동했다.
“소리가 나는 방향은 저쪽인데, 저기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세정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사인을 믿어봅시다.”
현수가 말했다.
그러자 세정이 걸음을 멈추고 현수의 팔을 붙잡았다.
“현수 님. 지금 저 소리요. 싸우는 소리 같은데 방고리가 너도캠핑님한테 먼저 도착한 거면, 다른 길이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 이건 돌아가는 길이고요.”
“빨리 가는 길이 있겠죠. 하지만 우린 모르잖아요. 여긴 미로에요. 너도캠핑님하고 약속된 사인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요.”
“그럼 방고리 저 인간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갈 수 있던 건데요?”
세정이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수정이 말했다.
“악귀들은 사람의 눈만으로 상대를 보지 않으니까.”
그녀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안.”
바로 영안이었다.
방고리도 영안이 생겨 있던 상태였다.
거기에 악귀까지 들렸으니 더욱 강력한 영안으로 영혼들을 볼 것이었다.
그 눈으로 일행을 쫓으니 당연히 더 빠르게 미로를 다닐 수 있던 것이다.
“아니, 우리도 영안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벽 너머로는 보지 못하는데.”
세정이 볼멘소리를 했다.
“악귀가 사용하는 영안이 우리와 같다고 보면 안 돼. 식탐이 강한 사람이 음식냄새를 더 잘 맡는 것처럼, 살인을 즐기는 악귀는 산 사람의 영혼을 더 빨리 잘 찾아내는 거야.”
수정이 타이르듯 말했다.
“그럼 누나는 지금 저쪽으로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어요?”
현수가 물었다.
“해볼게.”
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악귀는 아니지만 허태훈 몸속에 있던 악귀에 대한 원한이 큰 만큼 놈이 흘리는 ‘냄새’를 잘 추적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현수의 빠른 판단은 제대로 적중해 들어갔다.
* * *
부웅 부웅-
화진이 부적 봉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제 패턴을 눈치챘다는 듯, 방고리는 여유롭게 피했다.
그러고는 조금 접근 했을 때 바로 도끼를 휘둘렀다.
“큭!”
방고리가 뒤로 물러나자 날카로운 도끼날이 화진의 앞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칫하면 굉장히 위험할 뻔한 상황이었다.
부우웅 깡-
방고리도 도끼를 거세게 휘둘렀다.
화진이 피할 때마다 도끼는 벽이나 바닥에 내리꽂혔다.
‘이렇게 가면 불리해지는 건 나야.’
화진은 지금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방고리가 봉보다 무거운 도끼를 휘두르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더 클 것 같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아마 방고리는 퇴마용품을 이용한 공격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이었다.
그건 무거운 것을 계속 휘두르며 생기는 근육통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봉을 휘두르고 있는 화진이 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문제는 또 하나 더 있었다.
무게가 육중한 도끼를 직접 막았다가는 상당히 큰 충격이 전해질 것이었다.
방고리의 피지컬에 악귀의 힘. 그리고 도끼에 무게까지 더해진다면 금속으로 된 부적 봉이라 할지라도 부러질 가능성도 컸다.
그래서 화진은 도끼를 막고 반격을 하는 방법보다는 피하는 방법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진의 앞에 선 방고리가 도끼를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외통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위치였다.
화진은 부적 봉을 들어 도끼를 막았다.
까아아아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엄청난 무게가 화진을 짓눌렀다.
꿍!
손과 팔에서는 엄청난 진동이 느껴지고, 어깨에서는 방사통이 전해졌다.
그녀의 무릎 또한 순간적인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방고리 앞에 무릎을 꿇은 형상이 된 것이었다.
방고리는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잡고 니킥을 날렸다.
빠악-
화진이 피를 흘리며 뒤로 쓰러졌다.
“캠핑님!”
태환이 소리쳤다.
“다음은 네 차례다. 꼬마.”
방고리가 태환을 보며 씩 미소를 지은 뒤 화진의 머리 위에 도끼를 놓았다.
“한 방에 쪼개주마.”
그러고는 나무 장작을 패듯 도끼를 번쩍 들었다.
태환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태환은 모든 것이 슬로모션으로 변한 것 같았다고 후기를 남겼다.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현수와 세정.
둘이 구세주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만둬-!”
현수가 버럭 소리쳤다.
도끼를 든 방고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보는 순간, 현수가 어깨로 방고리의 복부를 강하게 밀어쳤다.
꽈아아앙
속도에 체중까지 실린 태클에 방고리는 도끼를 떨어트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현수는 바로 능숙하게 주짓수 기술로 방고리를 다시 압박했다.
그 사이 태환이 화진을 수습했다.
그녀는 다쳤는지 손목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넌 나한테 안 돼.”
방고리가 회색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현수가 인상을 쓰며 손을 들어 보였다.
손에는 귀신을 부르는 부적과 밀짚인형이 들려있었다.
“여기로 나와라. 이 냄새 나는 자식아!”
현수가 방고리의 입에 밀짚인형을 쑤셔 넣었다.
“잡아. 잡아!”
화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태환이 몸을 던져 방고리의 몸을 짓눌렀다.
성인 두 명이 체중과 근력으로 제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고리의 힘이 어찌나 센지 두 사람 모두 들썩였다.
“캬아아아악!”
방고리가 소리치자 입에서 검은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올라왔다.
동시에 밀짚인형도 다시 튀어나왔다.
세정은 발을 동동 구르며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지금 경찰한테 신고는 들어간 거예요? 왜 안 오는지 확인 돼요?”
그녀가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방고리가 눈이 돌아 저렇게 공격하고 있으니 엄청나게 두려워진 것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스태프가 직접 말도 거네.ㅋㅋㅋㅋ
- 캡틴 채널 오랫동안 구독하고 봤지만 세정 매니저가 이렇게 말 거는 거 처음 봄ㅋㅋㅋㅋ
- 주작이어도 무섭긴 무서운가보넼ㅋㅋㅋ
- 당연히 무섭지. 앞에서 지금. 어우.
- 심령카메라에 저 회색 뭐가 막 분수처럼 나오는 거 뭐임??
- 현지 교민입니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신고해서 출동했는데 시신 하나만 발견 돼서 폴리스라인 치고 지원병력 요청했다고 합니다. 지하에 백룸 입구가 있는 건 몰랐나보더라고요. 그래서 말해줬습니다. 금방 진입할 거예요.
- 10000원 파워챗
- 신고 다시 했고 이 생방송 전달해줬습니다.
일부 시청자들이 영상을 보고 추가 신고를 해준 모양이었다.
경찰들이 출동했을 때, 화이트 맨션의 시신만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룸 입구는 평평한 바닥에 뚜껑을 열어야 보이니 육안으로는 바로 확인되지 않을 법도 했다.
어찌 되었든 신고가 됐다면 이제 곧 진입해 온다는 뜻.
‘조금만 시간을-’
하지만 그 희망은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끝나고 말았다.
경찰이 여기에 진입한들, 지금 이 현장을 어떻게 찾아올 것인가.
세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크아아악!”
방고리가 두 팔로 현수와 태환을 확 밀쳤다.
그러자 마치 와이어에 연결된 영화배우처럼, 뒤로 쭉 날아가 천장과 벽에 부딪혔다.
가히 엄청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방고리는 회색 눈을 번쩍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끼를 들었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이 있는 세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시청자 수 몇이야?”
방고리가 물었다.
“이, 이십만 명 조금 넘었어요.”
세정이 뒤로 물러서며 대답했다.
“어이. 캡처들. 잘 봐. 너희 방장이 이대로 고등어처럼 토막 쳐지는 거.”
방고리가 씩 미소를 지었다.
- 와. 표정 진짜 광기 쩐다.
- 배우 하지 왜 스트리머하냐.
- 저거 연기 아님. 악귀에 쓰인 거잖음.
- 연기지 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직도 저게 다 진짜라고 믿는 ㄷㅅ들이 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능이 딸리낰ㅋㅋㅋㅋㅋ
- 이러든 저러든 어쨌든 주인공 일행이 위험한 상황이잖음. 연출이든 뭐든 일단 좀 몰입하면 안 됨????
- 저런 게 진짜 분탕질임. 그냥 몰입하고 보면 되지.
이 와중에도 분탕치는 시청자들은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튜브 생방송 특성상 찾아오는 팬보다 알고리즘에 떠밀려 오는 사람이 많아 신규 유입 시청자의 비중이 큰 편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후.”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고리는 살기 어린 미소를 띠며 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굉장히 자주 쓰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예상을 못 했나 봐.”
현수의 말에 방고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그는 복부 쪽에 이물감을 느꼈다.
방고리의 바지 주머니와 허리에 스프링텐션 수류탄이 세 개나 걸려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악귀들을 상대할 때면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아니, 어, 어느새-!”
방고리가 소리치는 순간, 화진이 뒤에서 부적 봉으로 수류탄 하나를 깼다.
빠각-
팥가루가 사방으로 확 튀었다.
“캬악!”
방고리가 괴로운지 비명을 질렀다.
순간 현수가 다시 달려들어 태클로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무릎으로 허리와 바지에 있는 수류탄을 모두 깨버렸다.
빠가각-
팥가루가 사방에 흩날리자 방고리는 괴로운 듯 몸부림을 쳤다.
그의 눈과 코에서도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