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 백룸 (2)
메일의 발신자 이름은 ‘White Mansion’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도 유럽이나 미국 쪽에 있는 빌딩과 아파트만 검색이 될 뿐 다른 것이 검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음모론자의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그때 태환이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저 ‘화이트 맨션’이요. 보니까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데요?”
“유명해?”
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태환을 보았다.
태환은 자신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태환이 검색한 키워드는 ‘리미널 스페이스 화이트 맨션’이었다.
“리미널 스페이스는 또 뭐래?”
“백룸하고 비슷한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단어에요. 공간으로 뭔가 공포감을 주는 건데 ‘백룸 화이트 맨션’ 검색해도 뭐 특별한 게 안 나오기에 저걸로 검색해봤죠.”
“우와. 넌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냐?”
“그냥 미스터리 좋아하다 보니까 건너건너 듣게 되는 거죠. 너튜브에도 이런 괴담 콘텐츠 많아요. 형님도 언제 한 번 다루세요.”
“이번에 다룰 것 같은데 뭘.”
현수는 태환이 검색한 것들을 쭉 내려 보았다.
[화이트 맨션 백룸 채널 가본 사람???]
있으면 댓 좀.
어느 유머 커뮤니티 사이트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현수는 댓글을 살펴보았다.
- 화이트 맨션은 누구????
- 화맨 누구인지 아는 닝겐 있냐.
- └백룸 영상 올리는 사람 있음. 너튜브에 검색하면 나와.
- 발음 봐서는 영국사람 같음.
- └발음을 어케 앎?
- └#58 영상 3시간 7초쯤에 한 마디 나옴.
- └그게 화맨 목소리인지 어케 앎???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꽤 화두거리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화이트 맨션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 괜스레 소름끼치는 댓글 하나가 보였다.
- 근데 솔직히 화이트맨션 그 사람이 백룸 ‘탐험가’인지 ‘설계자’인지 어케 앎?
설계자.
도시괴담 ‘백룸’을 조금씩 알게 되고 있는 현수 입장에서는 무섭게 들리는 단어였다.
그 설계자가 자기를 구해달라며 현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현수와 태환이 화이트 맨션과 백룸에 대해 조사하는 사이, 세정은 김창수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백룸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고 전달해 주었다.
그러자 김창수 과장은 한 마디를 했다.
[이번에도 나 무시하고 진행하지 못하게 해. 스트리머가 소속 회사를 무시하고 방송을 진행하면 쓰나.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알겠습니다.”
세정은 멀리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현수와 태환을 보며 대답했다.
* * *
메일을 보내고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 화이트 맨션에게서 답장이 왔다.
- Thank you very much for replying to me.
I was sure you too would be interested in the ‘back room’.
Stepping into the ‘back room’ can be dangerous.
whoever it is
Are you ready to touch the truth of the ‘back room’?
(답장 감사합니다. ‘백룸’에 관심가져 주실 줄 알았어요.
백룸에 들어오시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누구든지요. 백룸의 진실을 파헤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내용인즉 백룸에 접근할 준비가 되었는지 다시 묻는 것이었다.
현수는 태환, 화진과 함께 메일 본문을 앞에 두고 시선을 교환했다.
“답장을 해달란 거겠죠?”
화진이 물었다.
“그렇죠?”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차례 되물으며 회신을 받는 것이 괜스레 찝찝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이기에 이렇게까지 여러 번 확인을 하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메일 보내보죠.”
태환도 궁금한지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긍정의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몇 분 후 바로 메일이 수신 되었다.
이번에는 별다른 내용 없이 주소 하나만 포함이 되었다.
“캐나다. 서스캐처원. 마샬.”
현수는 주소를 확인한 후 지도에 들어가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완전 시골이네요.”
옆에서 사진을 보던 태환이 거들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정 매니저님. 김 과장님한테 여기 위치 말씀해 주시고 촬영지원비 신청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세정이 OK사인을 보냈다.
* * *
김창수 과장은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퇴근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 외투를 걸쳐 입은 뒤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
김창수 과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짧게 대답한 후 정리 마무리를 했다.
잘각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창수 과장은 외투를 입은 채 그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양수찬 씨?”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방고리 양수찬이었다.
철컥
방고리는 사무실 문을 잠근 뒤 김창수 과장 앞에 섰다.
김창수 과장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방고리를 주시했다.
“오랜만입니다. 과장님. 잘 지내셨죠?”
방고리가 웃으며 물었다.
김창수 과장은 긴장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핸드폰을 보았다.
112에 긴급 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핸드폰 전원버튼 세 번 빠르게 연타를 누르면-’
그는 위급상황 시 빠르게 신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다른 게 아니고 뭐 좀 부탁드릴까 싶은데요.”
방고리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빈틈!’
순간 빈틈이라고 생각한 김창수 과장이 핸드폰으로 팔을 뻗었다.
꽈직-
동시에 방고리가 소매에 넣고 있던 망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김창수 과장의 어깨를 가격했다.
“끄악!”
엄청난 통증에 김창수 과장이 비명을 지르자 방고리는 책상을 번쩍 뛰어넘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허튼짓하면 죽어요.”
방고리의 말에 김창수 과장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무래도 박현수 그 새끼를 죽여야 할 것 같은데요. 접근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아요.”
액막이 부적에 개인 경호원까지 고용된 캡틴 타워 안으로 직접 침투해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 새끼를 유인한 다음에 죽이는 걸 방송으로 내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어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채널 정지 먹고 싶어요?”
“이미 내 채널 다 비공개로 돌렸더만.”
“큭.”
김창수 과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조회 수 달달하게 나올 것 같지 않아요? 원래 그런 거 좋아하잖아. 조회 수. 구독자. 자극적일수록 더 많이 모이는 거 몰라요?”
“아무리 그래도-”
“-원래 사람들은 범죄에 더 끌린다고.”
“당신 미쳤어.”
김창수 과장이 말했다.
그 순간, 방고리가 김창수 과장의 반대편 어깨도 내리쳤다.
꽈지직
어깨뼈가 부서지며 김창수 과장이 쓰러졌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그때 김창수 과장의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방고리는 차가운 표정으로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김세정 매니저]
현수의 매니저였다.
방고리는 씩 미소를 짓더니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고는 김창수 과장의 얼굴 앞에 들이댔다.
그러고는 망치로 김창수 과장의 머리를 톡톡 쳤다.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으라는 의미였다.
“여, 여, 여보세요?”
김창수 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과장님. 김세정입니다.]
“어, 어, 그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목소리가 힘드신 것 같은데.]
세정이 묻자 김창수 과장이 방고리를 보았다.
방고리는 살기 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 운동하고 있었어.”
김창수 과장은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있었다.
지금 방고리가 여기 있다고, 살려달라고 소리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분위기로 봐선 십중팔구 바로 죽일 것 같았다.
그 공포는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공포보다도 압도적이었다.
[촬영지원비 요청 드려요. 전자결재로 촬영지랑 관련 비용 견적서 보내드렸거든요. 승인해 주시면 바로 진행할게요.]
“알았어. 확인해볼게.”
[알겠습니다~]
세정이 해맑게 전화를 끊었다.
방고리는 핸드폰을 들고 책상 위에 툭 던져두고는 다시 컴퓨터를 켰다.
“비번.”
그의 질문에 김창수 과장은 쓰러진 채 비밀번호를 읊었다.
그리고 전자결재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해당 프로그램의 인증절차도 김창수 과장 덕분에 무사히 통과한 뒤, 수신 된 결재 서류들을 확인해 보았다.
“내일 모레 출국. 목적지는 캐나다 서스캐처원 마샬 마을. 백룸 취재.”
방고리가 결재 내용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현수 일행이 언제 어디로 촬영을 가는지 눈치 챈 것이었다.
그는 김창수 과장을 대신해 결재를 승인했다.
그러고는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김창수 과장 옆에 쪼그려 앉았다.
“과장님 도움이 없어도 되겠네요.”
방고리는 섬뜩한 미소를 짓고는 망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 * *
출국 날.
현수와 화진, 세정, 태환은 각자 장비를 챙겨 공항에 도착했다.
태환의 촬영 실력도 부쩍 나아진 만큼 다른 직원들을 대동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비행기 시간까지는 여유가 좀 있네.”
현수가 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면세점 갑시다. 면세점.”
태환은 기대가 되는지 살짝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현수 일행은 공항에서 간단히 식사과 커피를 마신 뒤 면세점에 들렀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핸드폰을 끄기 위해 들었을 때 전화가 한 통 왔다.
라미로브 김창수 과장과 함께 일하는 이 대리였다.
현수는 핸드폰을 끄기 전에 받아두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캡틴님. 김창수 과장님이 사망하셨어요.]
내용을 들은 현수는 놀란 표정으로 화진을 보았다.
그 사이,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기수를 돌리고 있었고, 스튜어디스들이 오가며 안전벨트와 핸드폰 이용자를 확인했다.
* * *
캐나다에 도착한 뒤, 현수는 핸드폰을 켜 자세한 사항을 확인해 보았다.
범인은 방고리 양수찬.
속초로 도망간 그가 언제 서울로 다시 돌아갔는지는 아직 확인이 안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라미로브에 침입했고, 김창수 과장의 개인 사무실에서 그를 처참하게 살해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정말이네요.”
화진이 옆에서 기사를 보며 말했다.
“왜 김창수 과장님을 찾아간 걸까요?”
세정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글쎄요.”
순간 불현듯 며칠 전, 세정의 통화가 떠올랐다.
“사망 추정 시간이 그제에요. 시신이 사무실에 이틀 정도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거든요?”
“정말요?”
“혹시 그때 전화 통화할 때 이상한 거 못 느끼셨어요?”
“음. 모르겠는데 좀 힘든 목소리셨어요. 운동하고 있었다는데.”
세정이 며칠 전 통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현수는 그때 방고리가 옆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이번 촬영의 행선지 역시 눈치를 챘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촬영지원비 지급을 승인해준 사람이 방고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도 스쳤다.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때랑 비슷한 상황이네요.”
화진이 말했다.
“혹시 다른 몸으로 옮겨서 여기로 올까요?”
태환이 물었다.
현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현재로썬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나 분명한 사실은 현수에게 직접적으로 칼을 들이대려 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