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 백룸 (1)
현수가 어떤 위협을 얼마나 받든 현수 채널의 구독자는 360만 명을 넘어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그만큼 현수도 ‘걸어 다니는 대기업 스트리머’가 된 셈이었다.
매월 들어오는 수익만도 억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현수의 통장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점점 더 많은 숫자가 찍혀가고 있었다.
당연히 라미로브도 현수 덕분에 엄청난 매출을 기록해 내고 있었다.
그에 따라 라미로브는 사세를 확장했다.
강남 역세권에 커다란 빌딩을 구매할 정도가 된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라미로브가 큰 데에 현수의 채널만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너튜브와 스위치의 성장에 따른 스트리머들의 전반적인 매출 상승이 크게 기여했다.
스위치의 결정으로 인해 다소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방송 플랫폼을 통해 인터넷 방송은 계속 될 것이기에, 장기적인 리스크로 포함이 되지는 않았다.
여기에 하날하날의 사망과 방고리 채널의 폐쇄 역시도 매출에 타격은 주었지만 미비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법적 조치였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던 만큼 후속조치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날하날의 경우에는 사실 촬영 중 사망이었고,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피한 사고였다고 판단하는 바.
하날하날 유족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방고리는 달랐다.
개인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문제인 만큼 엄격한 법적 조치가 취해져야 했다.
실제로 계약서상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사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경우에는 이에 상응하는 피해보상을 명시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계약 파기 역시 담겨 있었다.
다시 말해 방고리는 라미로브 소속 스트리머에서 퇴출이 됨과 동시에 피해보상금을 지불해야 할 처지라는 이야기였다.
그 금액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방고리도 너튜브 기준 60만 명에 다다르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대형 스트리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금액이 보상금으로 책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김창수 과장은 라미로브 법무팀과 여러 변호인단, 법률자문위원을 통해 방고리에 대한 후속조치에 들어갔다.
경찰들 역시도 방고리 양수찬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공개수배가 떨어진 만큼 다양한 곳에서 제보 전화가 이어졌고, 뉴스를 통해 양수찬의 동선이 어느 정도 분석이 되었다.
물론 허위 제보도 있을 것이기에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어찌 되었든 현시점에선 현수의 주변에 없다는 것이었다.
* * *
현수도 폭발적인 매출 상승에 더불어 자산을 확충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3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하고 또 팬층이 두터워지다보니 공공주택에서 지내기에는 어려워진 것이었다.
현수도 여러 상황을 고려해 충무로 인근에 건물을 하나 매입했다.
조금 더 규모가 있는 스튜디오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악귀들의 방해도 최대한 막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허태훈 악귀, 즉 방고리 양수찬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지하에는 현수의 개인 차고와 함께 빌딩 방문객들의 주차장이 마련되었고 1층과 2층, 3층에는 여러 가게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4층과 5층에는 여러 스튜디오를 구축해 두고 액막이 부적들을 곳곳에 붙였다.
이어 6층과 7층에는 화진과 현수.
그리고 태환과 세정까지 머물 수 있는 집들을 마련해 두었다.
방고리가 노릴 수 있는 최측근들을 현수 주변에 머물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이들의 집에도 액막이 부적들을 붙여 귀신들의 접근을 최대한 차단했다.
마지막으로 옥상에는 회식을 할 수 있는 간단한 정원과 헬기장까지 구축을 해두었다.
“헬기장이 왜 필요해요?”
라는 태환의 질문에 현수는,
“옥상에 자리가 남잖아.”
라는 단순한 말로 대답을 해두었지만 사실 다른 목표가 있었다.
나중에 현수가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서게 되면 미스터리를 주로 다루는 ‘진짜 방송국’을 만들면 어떨까-하는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는 매우 추상적인 구상 단계였다.
하지만 만약 그때가 된다면 현수 이름으로 된 헬리콥터 한 대 정도는 있어야 할 가능성도 있었다.
며칠 후, 태환, 세정 모두 이삿짐을 들고 입주를 했다.
라미로브 김창수 과장은 이런 현수의 움직임을 보더니 세정과 태환에게 별도 호출이 없을 땐 출근하지 말고 현수의 건물에서 업무를 볼 것을 지시했다.
즉, 세정과 태환 모두 라미로브 본사에 출근하지 않고 현수 옆에 찰싹 붙어 근무를 하라는 것이었다.
방고리를 추적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자신을 패싱했다는 것에 기분은 나빴지만 그 스코어가 엄청났고 매출 역시 상당했기에 이들을 전폭 지원하는 쪽으로 결정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구독자들은 그 빌딩을 ‘캡틴 타워’라고 불렀다.
* * *
캡틴 타워 내부는 새 가구와 각종 새 인테리어 자재 냄새로 가득했다.
현수는 이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사업체를 냈다.
‘캡틴 퇴마’라는 이름의 콘텐츠 제작 기업을 론칭한 것이었다.
현수는 직접 코디네이터와 회계, 경리 인원을 추가로 고용했다.
바야흐로 정말 ‘기업형 스트리머’가 된 것이었다.
이렇게 성장했음에도 현수의 콘텐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화진의 콘텐츠를 도와줌과 동시에 괴담 방송, 퇴마 의뢰 방송, 흉가 체험 방송을 번갈아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구독자는 계속 꾸준히 모였고, 조회 수도 계속해서 상승세를 탔다.
가장 잘 나온 영상의 조회 수는 무려 5000만 뷰를 넘기고 있었다.
‘캡틴 퇴마’ 채널을 개설하고 채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낸 성과였다.
또 하나.
외국어로 된 메일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들어왔다.
프랑스와 폴란드, 미국, 일본에서 촬영한 퇴마 영상으로 인해 수많은 마니아층이 생긴 것이었다.
일부는 현수를 욕하기도 하였고, 일부는 추앙하기도 했다.
또 일부는 스팸이나 바이러스 메일을 보냈다.
악마 추종자들도 이상한 그림과 함께 알 수 없는 메일을 보냈다.
그만큼 현수의 인지도는 세계적으로도 급상승하고 있었다.
심지어 ‘캡틴 퇴마’를 브랜딩한 이후로는 신규 구독자 중 외국 네티즌이 국내 네티즌을 보다 많아진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띄는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현수는 별 의식 없이 메일에 들어가 보았다.
Hi. Mr.Park.
통상적인 인사로 시작한 이 메일에는 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와 함께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도메인이 너튜브로 되어 있어 현수는 안심하고 클릭을 했다.
그리고 접속이 되어 나오는 영상은 무척 굉장히 기괴했다.
노란색 바닥과 천장.
그리고 일정한 패턴의 벽지들이 가득한 건물.
가구나 전자제품 하나 보이지 않는 이 공간은 마치 도배, 장판만 깔린 미입주 아파트 같았다.
영상 속 카메라는 이곳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계속 같은 곳만 나오고 있었다.
흡사 미궁에 갇혀 있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영상의 제목은 ‘Back RooM. #481’라고 되어 있었다.
“백……룸?”
현수는 그 영상의 채널로 접속해 보았다.
채널에는 다른 영상이 없이 방금 보았던 그 공간을 돌아다니는 영상들만 가득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일기를 남기듯, #1부터 #481까지 업로드가 되어 있었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총 플레이 시간 4시간.
몇 개 영상을 들어가 보았다.
대사나 내레이션, 자막, 영상 설명도 단 한 줄 없었다.
각 넘버링 영상마다 모두 같은 배경이었지만 분명 카메라 무빙은 달랐다.
이게 그래픽이다 하더라도 상당히 고된 작업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뭐 하자는 거지?”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수정도 어깨를 으쓱였다.
“백룸이 뭐야?”
수정이 물었다.
현수도 알 수 없었다.
현수는 괜스레 찝찝한 기분을 가진 채 메일의 뒷부분도 읽어보았다.
- I am in a very painful state right now.
If you rescue me from the ‘back room’, I will reward you appropriately.
Are you wondering where I am?
Please reply to the mail.
I'm sure it will be quite interesting for you.
메일을 번역해본 현수는 턱을 매만졌다.
- 나는 지금 무척 괴로운 상태이다.
당신이 나를 백룸에서 구해준다면 너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줄 것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한가?
메일에 회신을 해주길 바란다.
당신에게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딘가 찝찝한 마음에 현수는 바로 태환을 불렀다.
아무래도 한참 어리고 최신 트랜드를 알고 있으니 혹시나 아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태환에게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저도 백룸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냥- 뭐랄까. 약간 ‘도시괴담’ 같은 건데요.”
“도시괴담?”
“뭐- 일단 백룸의 개념 자체는 무대나 홀의 대기실이나 관리실 있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무실이나 뒷공간. 그런 곳을 의미해요.”
“사전적 의미로는 그렇겠네. 백룸이니까.”
“그런데 그런 공간은 뭔가 약간 좀 이질적이고 무서운 느낌을 줄 때가 있잖아요. 화려한 조명이 가득하고 소란스러운 무대하고 딱 대비되니까.”
“음. 어떤 느낌인지는 대충 알겠다.”
“거기에서 기인한 건데요. 현재 세계와 다른 또 다른 공간이랄까요?”
“또 다른……공간?”
“네. 뭐 밈을 만드는 사람들 따라서는 거기를 이세계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세계와의 중간 통로라고도 이야기하는데 뭐든 현실세계와는 격리된 공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돌아다녀도 출구도, 환풍기도, 창문도 없다는 거고요.”
“그런 데가 있어?”
“실제로 있는지는 몰라요. 뭐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어디에 있다 없다 말이 많은데 증거가 없죠.”
태환이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볼 땐 이 영상들. 그래픽 같아? 실사 영상 같기도 하고. 너무 단조로운 화면이라 헷갈린다.”
현수가 그 채널의 영상을 가리켰다.
태환은 재생되고 있는 영상을 가만히 보았다.
그때 세정도 현수의 뒤로 와 그 영상을 보았다.
“음. 진짜 분간이 잘 안 되네요. 실제로 백룸이 게임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많아요. 보시다시피 배경이 굉장히 단조롭고 인물의 행동 패턴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인디 게임 개발자들도 제작을 하기 좋거든요.”
“그렇긴 하겠네.”
“게다가 그 폐쇄적인 공포? 이런 것들을 쉽게 줄 수 있어서 많이들 선호하고요.”
“음.”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볼 때 이 사람. 자기를 백룸에서 구해달라고 하는데 미친 사람일까?”
“세계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제가 섣불리 뭘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요. 백룸이 밈으로 유행을 했으니까 키워드 잡는 용도로 해서 관련 영상을 촬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태환이 말했다.
현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이 사람한테 회신을 한 번 보내볼게. 세정 매니저님은 과장님한테 백룸 관련 취재 한다고 보고해 주시고요. 태환이, 너는 이 메일 발신인에 대해서 네가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조사해 봐.”
“넵!”
“알겠어요.”
태환과 세정이 번갈아 대답하고는 자기 자리로 향했다.
“해외 일정이 또 잡히는 거예요? 아직 방고리가 잡히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멀리 움직여도 될는지 모르겠네.”
화진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현수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