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161화 (161/227)

제161화

# 의정부 신시가지 (5)

이승아가 방고리의 습격에 본능적으로 반격을 하고 얼굴을 보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호신술을 배웠었고, 다른 여성들에 비해 운동신경과 근력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방고리는 그녀를 습격할 때 방심을 했었고, 그때 이후로는 실수 없이 깔끔하게 ‘살인’을 했다.

심지어 성인 남성을 표적으로 삼고 죽일 때에도 단 한 치의 실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단 한 번의 실수가 결정적인 단서를 남기게 된 꼴이었다.

현수는 이승아 귀신을 불러다 옆에 앉혔다.

그러고는 방고리의 방송 화면을 쭉 보여주었다.

그리고 현수와 함께 퇴마를 나갈 때 촬영된 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승아가 기억하는 방고리의 옷차림은 방송에서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

그녀가 기억하는 그의 신발은 론 프리저브 촬영 당시 신었던 신발과 같다고 말했다.

아주 명확한 기억이라고 자부하지는 못했지만 등산화 같은 디자인에 검붉은 색이 가미 되어 있는 신발이라고 했다.

그 신발의 색을 기억하는 이유는 칼에 맞고 쓰러질 때 바로 눈앞에서 보았던 것이라는 끔찍한 말도 덧붙였다.

현수는 지금까지 알게 된 사실을 오 형사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 사이 오 형사는 경전철 의정부역 근처 골목을 비롯한 사건 현장에 있는 CCTV를 샅샅이 뒤져보고 있었다.

그리고 현장 근처에 방고리 양수찬이 나타났던 사실을 알아낸 상태였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했던 곳에서 범인의 행색으로 추정된 용의자와는 옷차림이 달랐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팀원들과 분석을 했고, 범행 전후로 환복을 한다면 어디서 했는지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CCTV에 담긴 방고리와 범인의 동선을 토대로, 촬영되지 않은 공백 구역을 서칭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었다.

* * *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는 대낮.

카페에 앉은 현수 앞에 오 형사가 찾아왔다.

그는 잔뜩 피곤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았다.

“수고가 많으신 것 같아요.”

현수가 그의 초췌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오 형사는 손사래를 쳤다.

“어후. 간당간당해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듯, 나올 듯, 나올 듯, 나오지를 않네요.”

그는 마음이 조급해지는지 두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그 붉은 등산화에 대해서는 조사가 됐나요?”

“아아. 범인으로 보이는 용의자가 검붉은 무늬가 들어간 등산화를 신은 건 확인 됐어요. 그런데 사건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 근처에서 포착된 양수찬 씨의 신발이 그 신발인 건 제대로 보이지 않더라고요.”

“아.”

자칫 헛물을 켜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등산화가 이번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촬영할 때 방고리가 신었던 것이라는 것만으로는 증거가 안 되죠?”

“그럼요. 그게 뭐 수제화도 아니고 공장에서 찍혀 나온 걸 텐데. 그런데 그 신발에서 혈흔이 발견된다면 옭아맬 수 있는 단서가 될 겁니다.”

“신발을 훔쳐오는 건요? 가능하다면.”

“불법행위로 수집한 증거는 법적 증거로 채택이 되지 않아요. 그것도 참고만 될 겁니다.”

오 형사가 손을 내저었다.

그때 현수가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이승아를 살해할 때, 방고리는 분명 실수를 했었다.

그렇다면 그 살인을 조금 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이승아 씨가 살해되는 날, 그 경전철 의정부역 근처 CCTV도 확보가 되었나요?”

“네. 거기서도 양수찬 씨의 모습은 나왔는데 범행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참고인 조사 차원에서 경찰서로 와달라고 연락할까 논의 중입니다.”

“음. 그건 좀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호출되면 의심 받는다 생각하고 증거를 인멸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당연히 그러겠죠. 그런데 현 시점에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말이에요. 뭐 진척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으니 참고인 조사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주변 상인들 탐문 수사는요?”

“제자리죠, 뭐.”

오 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증거를 확보해 볼게요.”

현수가 오 형사를 보며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불법으로 증거를 확보하는 건 안 돼요.”

“참고하겠습니다.”

현수가 대답했다.

* * *

현수는 고민에 빠졌다.

합방을 하자고 하고 그의 집에 갈 수도, 그를 현수의 스튜디오로 부르기도 어려운 상황.

어떻게 해서든 사건과 방고리 사이에 접점을 찾아야 했다.

만약 경찰 쪽에서 출두 명령을 내리게 되면 지금까지 현수가 조사하던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연락을 받는 순간 범행 때 입었던 옷부터 신발까지 모두 소각해 버릴 것이었다.

게다가 현시점에서 경찰이 현수를 제대로 옭아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경찰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살인과 취조를 해온 ‘악귀’가 경찰의 수사망과 유도심문에 넘어가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고민하던 현수는 귀신들과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사망했을 당시의 분위기와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기 때문이었다.

피해자 귀신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니 현수의 머릿속에는 온갖 음성들로 가득 찼다.

각자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데에 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현수가 모두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도 아니었다.

현수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수정이 말했다.

“나는 프로파일러가 아니지만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나온 연쇄살인범들 보면 그 특유의 습관들이 있잖아.”

수정이 말하자 한껏 현수를 시끄럽게 괴롭히고 있던 귀신들이 모두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손톱 뽑는 거 아니에요?”

“내 생각에는 그게 허태훈의 습관이라고는 생각 안 해. 전에 이야기 했듯 손톱을 뽑아간 건 피해자의 영혼이 현장을 떠나지 못하게 한 것뿐이야.”

“그럼 습관이 뭔 거 같아요?”

“높은 곳.”

“네?”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 악귀가 허태훈 몸속에 있을 때 나 말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정확히 모르고, 또 허태훈의 몸속에 들어가기 전엔 누구 몸에서 어떤 살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두 건만 봤을 때 공통점이 있지 않아?”

“두 건이라면요?”

“날 죽여서 옥상 물탱크에 숨겨뒀지.”

“네, 그랬죠.”

“그리고 박효종 몸에 들어갔을 때에도 시계탑 위에 숨어 있었지.”

“네.”

“여기서 우리가 아무런 의심을 안 했는데, 박효종은 왜 시계탑에 숨어 있었을까?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면 다른 곳에 숨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을 텐데.”

“으음.”

“내가 볼 때 뭔가 중요한 걸 숨기기에 높은 곳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

“아.”

“그 방고리가 살고 있는 집 옥상을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어. 아니면 의정부에서 가장 높은 건물 옥상이라든가.”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수정의 말을 한 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방고리 양수찬으로서 벌인 살인에 국한 되어서만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태훈이 벌였던 살인까지 조사를 해본다면 또 다른 단서를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었다.

현수는 바로 오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님. 혹시 얼마 전에 사망한 연쇄살인범 ‘허태훈’의 범죄 기록 좀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 * *

방고리 몸에 들어선 ‘악귀’의 습관.

방고리의 무의식을 잠식해 나가며 범죄를 벌이고 있는 것이라면 분명 그 악귀의 습관이 방고리에게도 투영이 될 것이었다.

현수는 허태훈이 과거에 어떤 범죄들을 일으켰는지 자료를 확인해 보았다.

수정의 시신을 물탱크에 버린 것.

이 이외에도 여러 건의 살인이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방고리가 벌인 것으로 확인된 살해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해된 것도 여럿 확인되었다.

뒤에서 입을 틀어막은 뒤 가슴과 복부, 옆구리를 찌르는 방식.

그리고 그때에는 손톱을 뜯어가지는 않았지만 죽인 뒤 전봇대 밑에 시신을 버려두는 것까지 동일했다.

현수는 방고리 안에 그 악귀가 들어섰다는 것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범행 증거를 옥상에 숨겨두었던 전례가 확인되었다.

“방고리 집이 어떻게 되죠?”

현수가 화진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화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른다는 몸짓이었다.

현수는 세정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세정 매니저님.

방고리님 집 주소 좀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거 물어본 건 비밀로 해주시고요.

현수의 요청에 세정은 계약서에 기재된 방고리의 주소를 확인해 회신을 주었다.

- 여기 주소요.

그런데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세정이 물었다.

현수는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

- 조만간 알게 되실 거예요. 잠시만 비밀로 해주세요.

현수의 말에 세정은 더 캐묻지 않았다.

* * *

현수 일행은 세정이 알아봐 준 주소를 토대로 방고리의 집을 확인한 뒤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아파트인지라 옥상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화진이 문을 딴 뒤, 바로 옥상에 진입했다.

그리고 옥상을 슥 둘러보며 확인한 결과, 충격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피해자들의 손톱이었다.

그리고 방고리가 범행을 할 때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옷과 마스크가 봉투에 담겨 있었다.

현수는 바로 오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분 뒤, 오 형사가 출동했고 현수가 발견한 것을 확인했다.

“사건 현장 근처에서 발견되었고, 비슷한 신발을 신고 있었고, 그가 사는 아파트 옥상에서 이게 발견되었어요. 이 정도면 엮을 수 있겠어요.”

오 형사가 바로 자신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수와 화진, 태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지원해주세요. 양수찬 핸드폰 위치 추적 해주시고요!”

오 형사가 능숙하게 소리쳤다.

“우리는 빠지죠. 방고리와 마주쳐서 좋을 게 없으니.”

현수가 화진에게 말한 뒤 돌아섰다.

* * *

그 사이, 방고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투가 들려 있었고, 안에 술과 안주가 담겨 있었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걷다 전봇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았다.

사람 모양의 하얀 실선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피해자 귀신’이 보이지 않았다.

“손톱을 뽑아갔는데 왜 없지?”

방고리는 혼잣말을 하며 주변을 보았다.

그러다 문득,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공지를 올린 현수가 떠올랐다.

“설마 이 자식이?”

불길한 예감이 든 방고리가 자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미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경찰차가 포진해 있는 것을 보았다.

오 형사의 요청을 받고 다른 경찰들까지 모두 출동해 방고리의 집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이런 X발.”

방고리는 바로 돌아서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 X새끼. 내 손으로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그는 흥분한 듯 씩씩대며 회색빛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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