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퇴마 의뢰 (2)
쩌어어어억
검은색 액체가 현수의 손에 이끌려 뽑혀 나오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 아 회색으로 보이는 데도 더러워 보여.
- 극혐.
- 자체 모자이크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저게 몸 속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끔찍함.
- 지금 저 입에서 나온 회색이 악귀라는 거죠?????
이 장면을 처음 본 시청자들은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현수는 손으로 끄집어 낸 악귀를 밀짚인형에 넣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악귀가 사람의 얼굴처럼 이목구비를 훤히 드러내며 포효했다.
동시에 아들 하성태의 얼굴을 향해 튀어 올랐다.
그의 몸속에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어딜!”
순간 화진의 부적 봉이 날아오는 악귀의 머리를 후려쳤다.
뻐억-
부적 봉에 맞은 악귀가 뒤로 쭉 날아갔다.
그 타격감은 화진의 손에 그대로 전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심령카메라가 아닌, 일반 카메라에는 화진이 허공에 봉을 휘두르는 것만 촬영이 되었다.
하지만 ‘빡’하는 타격음은 마이크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그 소리가 심령카메라 화면과 동시에 송출이 되니 시청자들은 재밌는지 반응을 보였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방금 귀신이 맞은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뭔가 소리가 뻘하게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귀신이 맞은 거?????????
- 귀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저 봉 뭔데 귀신을 때렼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액막이 부적으로 칭칭 감아놓은 봉이에욬ㅋㅋㅋㅋ 저걸로 귀신들 때림ㅋㅋㅋㅋㅋㅋ
- 졸 웃기넼ㅋㅋㅋㅋㅋ
철퍽
뒤로 날아간 악귀가 벽에 들러붙었다.
현수는 다시 달려가 악귀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밀짚인형 안에 악귀를 욱여넣었다.
키야아아아악
언제나 그렇듯 악귀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밀짚인형 안에 팥을 한 줌 밀어 넣고는 꽉 짓이겼다.
부적과 팥이 서로 뒤섞이며, 인형 안에 갇힌 악귀의 힘이 점점 약해졌다.
“후아.”
현수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꿈틀
순간 밀짚인형이 꿈틀거렸다.
“어딜!”
현수는 바로 솔트샷건으로 밀짚인형을 맞췄다.
그러자 꿈틀거리던 밀짚인형이 다시 멈추었다.
“되, 된 건가요?”
하성태가 물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아직 소멸되진 않았지만 인형 안에 가두는 건 성공했어요.”
현수의 대답에 하성태는 무섭다는 표정으로 인형을 보았다.
이후 방송을 종료하고 철수한 현수는 공터에서 밀짚인형을 태워 소멸시켰다.
이현아에 이어 하성태의 모친까지.
의뢰를 받아 퇴마를 하며 만나는 악귀들은 뭔가 달랐다.
현수는 앞으로 의뢰를 더 진행하며 그 차이에 대해 연구를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 *
그 이후, 한동안 현수는 더 적극적으로 퇴마 의뢰를 받으면서 출장 방송을 나갔다.
아울러 화진과 함께 하는 백패킹 영상도 함께 촬영했다.
의뢰를 받아 퇴마를 진행할 때, 악귀들의 성향이 더 공격적이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버린다는 점에서 산 사람의 내면과 더 깊게 유착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흉가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악귀와는 형체부터 달랐다.
현수는 여러 개의 퇴마 의뢰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면서 후기방송을 통해 그 차이점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같은 악귀다 하더라도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영상을 보면서 설명 드릴게요.”
현수가 방송 화면에 컴퓨터 바탕화면을 띄우며 설명을 이었다.
“우리가 호장리 폐 수영장 같은 곳에서 악귀를 만났을 때에는 그래도 기본적으로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기는 했습니다.”
현수는 과거 촬영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회색 아지랑이나 아우라, 연기를 낸다는 점에서 다른 귀신과 다르고 검은 액체를 흘리거나 악취를 내뿜는다는 특이성이 있어도 어쨌든 사람의 실루엣이기는 했어요. 프랑스나 폴란드, 일본에서도 그랬고요.”
- 맞아맞아맞아
- 맞음.
- 기억난다.
“그런데 의뢰를 받아서 퇴마를 하러 갔을 때에는 모두 검은색 액체 형태로만 등장을 합니다. 심령카메라에는 회색 덩어리로 나오죠?”
- 맞아요.
현수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면서 진중하게 소통을 이어갔다.
“제가 나름의 결론을 내린 바는 이러합니다. 정말 죄 많은 사람이 죽어서 악귀가 되거나, 성불하지 못한 귀신이 구천을 떠돌다 악귀가 될 경우에는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현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그런데 악귀가 된 채로 또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검은 액체 괴물처럼 변하는 것 같아요.”
- 으어어어 싫다.
- 상상했어.
“제가 악귀들을 마주할 때 검은 액체를 종종 봤었거든요. 호장리 폐 수영장 샤워실에서도 봤었고요. 동원훈련장 안보교육관에서도 검은 액체가 쏟아지는 걸 봤고요. 이번에 의뢰를 받아 갔던 분들의 몸에서도 검은 액체를 뽑아냈고요.”
- 아 그러면 그게 맞을 수도 있겠네.
“검은 액체로 변한 악귀들은 사람 몸에 더 쉽게 들러붙고 숨기도 쉬운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까 저도 인형에 악귀를 담고 소멸시키는 게 어려워서 퇴마 의뢰를 마치면 돌아오는 길에 인형을 그냥 다 태우고 있거든요.”
현수가 엄지로 등 뒤에 전시된 밀짚인형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튼 지금까지 상황들로 봤을 때 검은 액체의 악귀. 걔네들이 진짜 위험하고 사람한테 잘 붙는 악귀인 것 같아요. 아 참. 물론 여러분이 심령카메라를 통해 보실 땐 다 회색으로 보이실 거예요.”
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그럼 허태훈 몸속에 있는 악귀도 그런 악귀?
“네.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의뢰는 어디인가요?
시청자 중에 한 명이 물었다.
“아. 다음 출장지를 정해야 하는군요. 일단은요. 흉가를 가는 프로젝트는 라미로브 측에서 조만간 지정을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주 토요일 퇴마는 최근 진행하던 대로 퇴마 의뢰를 받겠습니다.”
현수는 바로 G메일함으로 들어가 수신된 의뢰들을 쭉 보았다.
1000통이 넘게 의뢰가 도착해 있었다.
개중에는 제목에서부터 어그로를 끄는 의뢰도 있었고, 외국어로 쓰인 의뢰도 있었다.
현수는 스크롤을 쭉쭉 내리며 의뢰를 골라보기 시작했다.
- 지금까지 악귀보다 더 센 악귀로!!!
“지금도 힘든데요? 하하하.”
채팅을 본 현수가 농담조로 받아쳤다.
하지만 의뢰를 받은 퇴마는 확실히 더 피곤하다는 것을 내심 느끼고 있었다.
촬영시간은 흉가 체험보다 짧았지만 산 사람 안에 깃든 악귀를 쫓아내는 건 신체적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인 몸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었다.
- 우리 옆집에 살인범이 살고 있습니다.
그때,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현수는 시청자들과 함께 목록을 살펴보다 스크롤을 멈췄다.
“이거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아직 출장이 확정된 건 아니니까 개인 정보는 모자이크처리 할게요.”
현수는 송출 중인 컴퓨터 바탕화면을 끄고 자신의 캠을 확대했다.
그러고 메일을 클릭해 내용을 쭉 살펴보았다.
“음. 옆집에 이사 온 할아버지가 계신데 예전에 살인 혐의로 교도소에 있다가 출소를 했다고 합니다. 으음. 그래서 근처에 강력사건이 생길 때마다 경찰들이 이 할아버지를 찾아온다고 하네요. 재범우려가 있는 걸로 판단이 됐나 봐요?”
현수는 내용을 쭉 읽어보다 카메라를 보며 물었다.
- 1000원 파워챗
- 한 번 학교 갔다 오다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들어봤는데, 어디서 사건 일어났는데 그 시간에 어디서 뭐하고 있었냐 그런 거 묻더라고요.
메일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시청자가 파워챗 후원을 쏘며 말했다.
“아. 그런 거면 재범 때문에 찾아가는 게 맞는 것 같네요.”
현수는 메일의 뒷부분도 쭉 읽어보았다.
“음. 음. 오케이, 오케이. 교회활동을 되게 열렬히 하고 동네 사람들한테도 선한 모습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는데 이분은 아무래도 바로 옆집이다 보니 무섭다는 것 같아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나라도 무섭지.
- 살인 전과 있는 사람은 어디 무인도에 다 모아놓으면 안 됨???????
- 사회에 왜 다시 푸는 거임???
- 나도 싫을 거 같아.
시청자들은 의뢰인의 입장을 100% 공감해주고 있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죄에 따라 형량을 때리고 나면 자유를 주는 거야 당연하긴 한데 조금 거시기 하긴 하죠?”
현수가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꾸해주며 나머지를 읽어보았다.
“어떤 죄를 얼마나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살인 전과가 있으면 악귀에 쓰인 것 아닐까 해서 의뢰 드립니다. 만약 악귀가 쓰여 있다면 내쫓아주시는 게 조금 안정될 것 같고요.”
현수는 사연을 쭉 읽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는 됩니다만 음. 살인을 저지른 모든 사람들이 악귀에 쓰인 건 아니에요.”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까지 모두 악귀에 쓰였다고 볼 수는 없죠.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연쇄살인범들이나 허태훈 같은 케이스는 분명하지만요.”
- 그래도 한 번 가보즈아
- 맞아 허태훈 때문에라도 한 번 확인해볼 필요 있지 않음????
- ㅇㅈㅇㅈ
- 이거 잼날 것 같은데.
시청자들은 이 의뢰를 받아주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흠.”
현수는 고민이 되었다.
일단 이 사람이 얼마나 사람을 죽였는지 모를뿐더러, 본인 스스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퇴마를 하러 왔다며 들이대기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자칫했다가는 법적인 문제에 휩싸일 수 있었다.
- 50000원 파워챗
- 가봅시다!!!!
그때 5만 원 후원이 떨어졌다.
현수에게는 큰돈이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 후원을 무시하면 먹튀 논란이 생길 것이었다.
현수는 머리를 긁적이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문제소지가 될 부분이 많으니까 사전 조사 작업은 확실히 진행을 할게요.”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 * *
방송을 종료한 후, 이를 지켜보고 있던 화진이 다가왔다.
“그 사람이 악귀에 쓰여 있는 게 아니면 어떡해요? 괜히 고소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맞아요. 그래서 좀 난감한데.”
현수는 혼자 팔짱을 끼며 방송이 꺼진 모니터를 빤히 보았다.
그때 수정이 다가왔다.
“뭘 고민해. 악귀가 쓰여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악귀에 쓰인 짓을 하고 있을 거야. 그걸 포착하면 되지.”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현수가 수정에게 물었다.
“악귀에 쓰인 사람이면 어떤 식으로든 기행을 저지르고 있을 거야. 그걸 포착해서 퇴마를 하면 법적인 문제를 피할 수 있지 않겠어?”
“그 기행이 하성태 씨 모친처럼 생식을 하는 수준이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의뢰인하고 그 전과자가 혈연도 아니고. 그 전과자가 우리를 고소할 건덕지는 충분할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번 알아나 봐. 그 의뢰인 이야기 들어보니까 께름칙한 게 있는데.”
“께름칙한 거요?”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사람들한테 선한 이미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는 거.”
“그게 왜요? 개과천선한 거 아니에요?”
“보통 살인 전과가 있는 사람들 중에 사람들 앞에서 선한 활동 하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냥 조용히 묻어 살지 않을까?”
“으음.”
“자기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는 이야기 같아서 그래. 겉을 포장한다는 건 속을 감춘다는 의미도 있는 거잖아?”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수정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