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 성장아파트 108동 1003호 (4)
“마무리 다 됐어?”
“이제 철수하자고!”
이삿짐센터의 기다란 트레일러 앞에서 인부들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구우우우웅-
그 사이 사다리차도 사다리를 접으며 철수 준비를 했다.
“후.”
얼굴에 흉터가 있고 몸에 살집이 두둑한 남자도 장갑을 벗은 뒤 툭툭 털었다.
“수고들 했어.”
“오늘 짐 더럽게 많네.”
주변의 인부들도 방금 이사를 마친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손을 털었다.
“오늘 소주나 한잔 할까?”
“그럴까. 오늘은 마셔야겠어.”
이들은 땀을 닦으며 차량으로 다가갔다.
그때 우재석과 현수, 혜련, 김봉 PD가 남자에게 접근했다.
남자는 우재석을 알아보고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어?”
국민MC인 우재석을 실제로 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가 자신에게 용무가 있는 듯 다가오는 것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혹시 신철상 씨 맞으십니까.”
우재석이 물었다.
“그런데요?”
남자가 동료들을 슥 둘러본 뒤 대답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김PD가 말했다.
신철상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예전에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사람이 죽는 걸 목격하신 적이 있죠?”
우재석이 물었다.
“철이 없었을 때였죠. 이거, 모자이크 확실히 되는 거죠?”
신철상이 우재석과 김PD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그는 대답을 하면서도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까봐 극히 꺼리는 모습이었다.
“네. 걱정 마십시오.”
김PD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걸로 소년원에 들어갔었어요. 죗값은 다 치렀고요.”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우재석과 신철상이 대화를 이어갔다.
현수는 옆에서 대화를 가만히 경청했다.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비명을 지르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그 정도였나요?”
“네. 사람이 그렇게 크게 비명을 지를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뭐 특별한 건 없었어요. 가스에 본드가 가득한데 담뱃불을 붙이니 화재가 일어난 것뿐이죠.”
신철상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의에 의한 건 아니었죠?”
“어어-”
신철상은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권했죠. 그땐 그게 간지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귀신이 돼서 그때 그 아파트 그곳에 있다는 말씀이세요?”
신철상이 물었다.
그는 이삿짐 일을 하면서 개과천선을 했는지 그때 일에 대해서 순순히 말해주면서 촬영 의도에 대해 재차 확인했다.
“네. 그래서 신철상 씨가 현장에 가 진심으로 사과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귀신도 한을 풀고 떠날 겁니다.”
현수가 끼어들어 대답했다.
그러자 신철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때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아요. 내내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을 풀고 저도 죄책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네요.”
신철상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일이 신속하게 정리가 되어갔다.
그와의 인터뷰 장면도 마치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목격자 인터뷰처럼 연출이 되었다.
*
그리고 이어 추가 일정을 잡은 뒤, 그와 함께 다시 성장아파트로 향했다.
현수와 화진, 우재석, 혜련이 신철상과 함께 1003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중년 부부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
안에서부터 강력한 찬 공기가 세게 휘몰아쳤다.
현수는 신철상의 등장에 귀신이 무척 화가 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김PD와 스태프들은 이 장면을 모두 촬영했다.
“들어가시죠.”
현수는 침착하게 신철상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신철상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사람들의 입에서 입김이 새어나왔다.
현수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후 보일러실로 향했다.
정작 신철상도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키며 따라갔다.
이어 보일러실 앞에 오자 현수가 말했다.
“이 안에 귀신이 갇혀 있습니다. 문을 열면 귀신이 난리를 칠 겁니다. 거기에 크게 동요하지 마시고 차분하게 하실 일을 하시면 됩니다.”
현수의 말에 신철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는 우재석과 김PD, 그리고 화진, 혜련을 한 번씩 본 후 부적을 뗐다.
동시에 문을 확 열었다.
사아아아아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확 몰아치면서 온 집안의 방문이 세게 닫혔다.
뿐만 아니라 부엌에 있는 선반들에서 그릇들이 쏟아져 나와 아수라장이 되었다.
화가 난 귀신은 악귀가 되어 현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수는 악귀를 정확히 응시했다.
그때 신철상이 무릎을 꿇었다.
“명수야. 그땐 내가 미안했다.”
신철상의 사과에 악귀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땐 내가 어렸다. 너한테 그런 걸 권하면 안 됐는데. 면목이 없다. 너 그렇게 되고 소년원 생활을 하면서도 내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더라.”
그가 말을 이었다.
악귀는 우두커니 서서 신철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무 미안하다. 너무 미안해. 평생 트라우마였어. 미안해. 사과 받아주길 바란다.”
신철상이 말했다.
그러자 회색 아우라를 뿜어내던 악귀가 다시 하얀색으로 조금씩 모습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화진의 심령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카메라에 전달이 되었다.
“나한테 복수를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렴. 미안해.”
신철상이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그러자 검은 잿더미 귀신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눈물 자국을 따라 검은 재가 조금씩 벗겨졌다.
사아아아아아
마치 검은 잿가루가 휘날리듯, 귀신의 몸 곳곳에 들러붙어 있던 재가 공중으로 흩날렸다.
그러자 평범하게 생긴 중학생 남자아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현수와 화진은 똑똑히 보고 있었고, 우재석과 혜련, 그리고 스태프들은 화진이 들고 있는 심령카메라를 통해 어렴풋이 보았다.
중학생 남자아이 귀신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현수를 슥 보더니 이내 사라졌다.
굉장히 깔끔하고도 단순하게 퇴마가 완료된 것이었다.
“이제 귀신이 더 나타나지는 않을 겁니다.”
현수가 중년 부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중년 부부는 신기한 듯 서로를 보았다.
입김까지 나오던 집 안의 공기는 어느새 따뜻하게 바뀌어 있었다.
* * *
성장아파트에서의 촬영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이 촬영 본은 2주 후, 방영이 되었고 순간 시청률 10%라는 성공적인 기록을 남겼다.
현수가 등장한다는 예고편 덕분에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이었다.
아울러 현수의 채널도 또 한 번 떡상을 했다.
구독자 180만 명을 넘어선 것이었다.
아울러 너도캠핑 채널도 100만 명을 넘어서면서 골드버튼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라미로브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무려 두 명의 스트리머가 동시에 2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모은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격렬한 성장세에 올라탄 현수에게 서브매니저가 투입되었다.
세정의 요청이었다.
방송 중 채팅을 관리할 인원을 더 확충하려는 것이었다.
일찌감치 필요한 인력이었지만 다른 소통 스트리머에 비해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많지 않아 그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실시간 시청자 수가 수십만 명에 다다르자 분탕질하는 시청자들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있었다.
이에 세정은 바로 김창수 과장에게 서브매니저 충원을 요청했고, 라미로브 측에서는 신속하게 움직여 주었다.
그렇게 현수 채널은 라미로브 소속 전체 스트리머 중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스트리머’가 되었다.
다른 스트리머들에 비해 스태프들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인건비가 빠지지 않고, 거기에 특별히 제작비가 필요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에 투자비용도 들지 않았다.
거기에 저작권 이슈로 인한 수익 분배도 없으니, 순수 현수의 발품으로만 월 수천만 원의 매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라미로브 입장에선 ‘효자 스트리머’가 아닐 수 없었다.
*
“다음 촬영지요?”
현수는 김창수 과장과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며 물었다.
[네. 미리 알 수 있을까 해서요.]
“으음. 지금 검색을 해보고는 있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현수가 대답했다.
그 사이 화진은 옆에서 이런저런 사이트들을 뒤져보고 있었다.
방문할 흉가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조금 새로운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새로운 곳이요?”
[네. 한 번쯤 새로운 콘텐츠를 해봐도 좋을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어떤 거요?”
[전에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해서 확인을 해본다든가 하는 건 어떨까요?]
“아아아. 음.”
[아니면 다른 퇴마사가 퇴마를 한 곳을 가서 확인을 해보는 거죠. 예전 수아도령 때처럼.]
순간 현수는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의 악귀가 떠올랐다.
‘으. 싫어.’
한동안 계속 현수의 주변을 맴돌며 괴롭혔던 그 악귀는 결국 현수의 손에 소멸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전까지 얼마나 현수를 괴롭혔는지, 현수는 똑똑히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때 화진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구마사제 한평화 마태오 신부님. 구마 활동으로 우리 딸이 건강을 찾았습니다.]
모니터를 확인한 현수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한 번 찾아보고 결정되면 연락드릴게요.”
현수가 전화를 끊고 내용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대충 봤는데, 이 ‘한평화’라는 신부님이 구마사제로 유명한 것 같아요. 검색해보면 이런저런 기사들이 많은데-”
화진도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교황청에서도 인정한 구마사제라. 이거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화진이 물었다.
하지만 현수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무속신앙 같은 건 상대적으로 괜찮은데……. 가톨릭 쪽은 워낙 조직화가 되어 있는 종교단체라 자칫 잘못 걸고넘어지면 반격을 세게 당할 수도 있어요.”
“걸고넘어지다뇨?”
“만약 구마사제의 구마행위가 가짜였다든가 하는 것이 생방송에서 증명되면 큰 논란이 될 거라는 거죠.”
“음.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할까요?”
화진이 물었다.
순간 현수는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현수가 하는 일은 퇴마를 하는 것이었다.
만약 특정 구마사제의 구마행위가 가짜였다고 판명이 나더라도 그건 현수가 하는 콘텐츠와 상충이 되며 발생한 문제이며, 가톨릭 측에서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한 마디로, 현수가 가톨릭계의 눈치를 보면서 콘텐츠를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의도 자체가 가톨릭을 비판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것만 어필이 되면 문제가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구독자는 현수가 더 많았지만 너도캠핑 화진이 더 오래 방송을 해온 만큼, 이런 부분에서의 관록은 현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럼 이렇게 하죠.”
현수가 화진을 보며 말했다.
계획은 이러했다.
먼저 한평화 신부를 만나 구마행위에 대한 개념과 악마에 대해 직접 들은 뒤, 그의 허락을 받아 촬영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채팅으로 분탕질을 하는 시청자들에게 할 말이 생길뿐더러, 모든 책임소재는 한평화 신부에게로 넘길 수 있었다.
현수는 바로 한평화 신부가 머물고 있는 사제관의 주소를 확인해 보았다.
“강원도- 수재리.”
그리고 주소와 함께 작은 시골 성당의 사진도 확인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