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134화 (134/227)

제134화

# 성장아파트 108동 1003호 (1)

책상 위의 커피 한 잔.

켜져 있는 뉴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깥바람.

흔들리는 커튼과 열려 있는 창문.

현수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쇼츠 영상을 업로드 하고 댓글들을 확인한 뒤 한숨 돌릴 겸 갖는 휴식시간이었다.

그때 뒤로 수정이 다가왔다.

“팔자 좋다?”

“왜요. 또 뭐 때문에 시비 걸려고.”

“너는 내가 뭐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 아 사람이 아닌가.”

수정은 실없는 농담을 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허태훈이 체포됐는데 아직도 한이 안 풀렸어요?”

현수가 묻자 수정은 손사래를 쳤다.

“다시 말하지만 허태훈 그 인간 멱살 잡고 같이 저승 갈 거 아니면 한 안 풀려.”

“아유. 뭐 그렇게까지.”

“허태훈이 감옥 안에서는 정상적으로 생활할 거 같아?”

수정이 물었다.

현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허태훈이 얌전히 감옥에 끌려가 주기나 한 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쟤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너한테 복수를 하러 올 거란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경찰들한테 둘러싸여 있을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딱 한순간이야. 한순간 빈틈을 보이면 저놈은 탈출할 거야. 자기 주변에 있는 경찰들을 다 죽여서라도.”

“그렇게까지 할까요?”

“당연하지. 네가 여기 있으니까.”

수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현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똑똑-

벌컥

문이 열리더니 화진이 들어왔다.

“아. 편히 주무셨어요?”

현수의 질문에 그녀는 손을 내보이고는 현수의 옆 의자에 앉았다.

“어후. 네.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귀신이 보이는데 왜 잘 땐 안 나타나요? 이 집에서는 여기 계신 수정 님 말고는 귀신 못 본 것 같아서.”

“아아. 부적을 다 붙여놨거든요. 집 곳곳에. 그래서 악귀나 다른 귀신들 접근이 어려워요.”

“그렇군요. 그런데 왜 수정 님은 괜찮으신-”

“모르겠어요. 그건.”

현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집에 붙어 있는 부적들 꼴 보기 싫어. 다만-”

“-다만?”

“부적보다 ‘인연’이 더 짙을 뿐이랄까?”

“네?”

현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수정을 보았다.

“아냐. 늬들 볼일 봐.”

수정이 손을 내젓고는 벽 밖으로 투과해 사라졌다.

현수와 화진은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다음 장소는 정하셨어요? 캠핑장.”

“이번에는 백패킹으로 기획을 하고 있어요. 커뮤 탭에도 올렸는데, 캠핑장이 아니라 아예 자연으로 들어가려고요.”

“오우. 좀 위험하겠네요.”

“그래도 그게 조회 수가 잘 나와요. 김창수 과장님도 오랜만에 백패킹 가라고 하시고요.”

“그때도 저 가야 하는 거죠?”

“네, 네.”

“알겠습니다. 언제쯤 기획하고 계세요?”

“일정 잡히면 알려주세요.”

“알겠어요. 현수 님은 다음 촬영장소 구했어요?”

“아뇨. 혜련 님이 다음 방송은 우재석하고 진행하는 거 말씀하셨는데. 생각난 김에 물어봐야겠네.”

현수는 핸드폰을 들어 혜련에게 까톡을 보냈다.

그러자 잠시 후 답변이 돌아왔다.

- 예전 야담 촬영 때 중단된 거요. 그때 스태프에 몇 명 더 충원해서 퇴마 방송 하나 제작을 할 예정이래요. 관심 있으시면 미팅 일정 잡아드릴게요.

혜련의 답장이었다.

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알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

그리고 며칠 후.

TTP 방송국 회의실에 들어간 현수는 처음 보는 얼굴의 PD와 혜련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현수와 화진, 세정이 맞은편에 앉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TTP 김봉 PD입니다.”

“안녕하세요. 박현수입니다. 여기는 조화진 님이시고요.”

자리에 한 모두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 혜련 씨께 이야기는 대략 들으셨을 텐데요. 우재석 씨를 필두로 해서 퇴마 방송을 진행하려고 하거든요.”

“네, 네.”

PD의 목적은 사실 뻔해 보였다.

현수의 퇴마 방송이 너튜브 스트리밍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인기를 끌자 거기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많았다.

너튜브나 스위치 등에서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면 방송가에서 예의주시 하다가 이슈가 되는 포인트를 찾아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 케이스였다.

예전부터 귀신을 추적하는 예능프로그램은 한 번씩 등장했었지만 이렇게 역동적인 영상은 없었고, 또 폭발적인 실시간 시청률과 매출로 직결이 되었던 기록도 없었다.

그러기에 방송사는 현수를 필두로 해서 방송을 진행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현수가 걱정되는 요소가 있었다.

실시간 생방송을 진행을 할 때에는 조작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컷 편집이 없이 무조건 롱 테이크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또한 개인 방송인만큼 다른 스태프가 없을 것이라는 걸 전제로 해서, 여러 기현상들에 대해 귀신의 행위라는 것을 최대한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방송사를 끼고 하게 될 경우 수많은 스태프들이 투입되게 되고, 컷 편집이 당연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조작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현수를 캐스팅 했다는 건 이러한 조작 의심을 받더라도 현수의 이미지 하나만 믿고 밀고 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거기에 국민MC 우재석을 투입시키겠다는 건 국민들을 상대로 ‘퇴마 쇼’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출연료는 분량에 따라서 이렇게 지급이 될 겁니다.”

PD는 태블릿에 숫자를 적어 슥 보여주었다.

괜히 누군가 볼까 봐, 몰래 보여주는 것 같은 뉘앙스였다.

하지만 정작 숫자를 본 현수는 심드렁했다.

현수가 한 번 방송을 뛸 때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인지도를 생각한다면?’

그래도 생각해보면 너튜브 스트리밍보다 TV에 출연하는 것이 인지도 상승에는 더 효과적이었다.

더구나 우재석과 함께 방송이라니.

현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대신 촬영할 때 롱 테이크로 촬영할 수 있나요?”

“롱 테이크로요?”

“네. 조작 여론이 최대한 없게끔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음. 조작 여론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은 걸 텐데.”

김PD는 어깨를 으쓱이고 잠시 고민하다 답을 이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하지만 연출이 필요한 부분은 연출이 있을 거예요. 중요한 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자들 이목을 확 끌어야 하는 거니까요.”

김PD가 덧붙였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자극적인 소재라.’

현수는 속으로 그 말을 곱씹다 살짝 비소를 지었다.

결국 방송가들이 바라는 것도 이것이었다.

너튜브나 스위치와 같은 곳에서 스트리머들이 자극적인 방송을 한다면서 비판을 해대지만 결국 공영방송, 종편 방송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만 TV로 송출이 된다는 이유 하나로 고상한 척, 자극적이지 않는 소재를 다루는 척하지만 결국 시청률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자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

그 중간점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저희가 이번에 첫 방송을 기획하면서 시청자들의 제보를 받았는데요. 거기서 조금 흥미로운 제보를 받아서 거기를 첫 촬영지로 정했습니다.”

김PD가 말했다.

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서울 광리동에 가면 ‘성장아파트’라고 있거든요. 그곳에 살고 계신 주민인데 집에서 자꾸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요. 불에 탄 것 같은 귀신이 밤에 계속 거실을 돌아다녀서 무당도 불러보고 구마사제도 불러봤는데 도무지 나아지질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현수가 혼자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네, 네. 그래서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희가 추적을 해나가는 과정을 담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현장에 대한 퇴마나 귀신 수색 컷은 짧겠네요?”

“네. 가정집이니까 길게 나오지 않을 거예요.”

김PD가 대답했다.

* * *

예정된 촬영 날이 다가오고, 현수와 화진, 세정이 성장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 앞에는 경비아저씨를 비롯해 촬영팀 버스와 승합차가 대거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우재석은 미리 도착해 스태프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혜련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현수가 꾸벅 인사하자 우재석이 손을 흔들며 반겼다.

혜련도 달려와 현수, 화진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후 김PD와 카메라 감독 모두 모여 촬영 진행 방법에 대한 논의를 간략하게 나눴다.

일단 처음은 근처 카페에서 거주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본인들이 겪었던 무서운 경험을 공유하고, 그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현수와 화진을 필두로 귀신을 수색한 후, 이 건물에 나타난 귀신에 대해 파헤치는 흐름이었다.

그리고 관련해 근처 공인중개사 사무실 등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수집해 두었다.

그 집은 내내 귀신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집이었다.

이전 거주자들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었지만 공인중개사들은 이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귀신이 나온다고 하면 거래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집은 항상 약간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는 특이사항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귀신이 언제부터 나왔는지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 파고 올라가 시공사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고, 시공사 측으로부터 한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파트를 짓고 있던 도중 그 층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 개괄적인 내용을 파악한 우재석과 현수 일행은 이 흐름을 바탕으로 촬영이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

큐 사인이 들어가고, 카페에 앉아 있는 우재석과 현수, 화진 앞으로 중년 부부가 자리했다.

이들은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앉아 무척 피곤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우재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중년 부부도 심각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분위기가 한 층 가라앉아 있었다.

현수는 둘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때, 둘의 등 뒤로 하얀 아지랑이가 흐릿하게 보였다.

‘아.’

현수는 귀신의 기운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귀신이 쓰여 있다거나 쫓아다니는 것만큼의 강렬한 기운은 아니었다.

그저 귀신이 머무는 곳에 있다가 나왔을 때 보이는 수준이었다.

즉, 냄새나 잔상이 남는 수준의 기운이었다.

“댁에서 귀신이 나타난다고 들었습니다.”

“네. 너무 힘들어요. 아이도 지금 고3인데 귀신 때문에 공부도 하지 못하고.”

“지금 그 집에서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죠?”

“이제 1년 되어갑니다.”

“자제분은 고3 학생 한 분인가요?”

“아뇨. 중학생 딸이 있습니다.”

“지금 둘 다 학교에 있겠네요?”

“네, 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분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우재석과 혜련이 번갈아 대답하며 질문을 했다.

그러자 중년 부부는 서로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부터 이상한 걸 느끼긴 했었어요.”

중년 여성이 운을 떼자 현수가 혼자 팔짱을 끼고 진중하게 경청했다.

그 옆의 화진과 뒤에 선 수정도 흥미롭다는 듯 이야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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