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109화 (109/227)

제109화

# 지하철 평지역 (1)

며칠 후.

라미로브 회의실.

현수와 세정이 앉아 있는 맞은편에 삐쩍 마른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는지 무척 초췌한 모습이었다.

“저희 쪽으로 의뢰를 하실 게 있다고요?”

제일 끝에 앉은 김창수 과장이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건넸다.

이제 20대 초반이나 되었을 법한 젊은 남성의 사진이었다.

“우리 아들이에요. 아들을 좀 찾아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런 건 경찰에 문의를 해보셔야죠. 여기는 경찰도, 흥신소도 아닌데.”

김창수 과장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보았다.

“이미 경찰에 신고도 했죠. 그런데 경찰에서는 단순 가출로만 생각을 하고 사건을 종결시키더라고요.”

“그래요? 그러면 저희도 뭐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은데.”

김창수 과장은 애초에 자르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의뢰를 받은 세정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흠.”

현수는 실종자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사아아아아

목덜미로 살짝 한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뭔가 안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현수가 물었다.

“아, 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설명을 해나갔다.

- 1년 전쯤입니다.

대학교에서 무슨 시설 관리에 대한 현장 조사를 하는 과제를 한다고 나갔어요.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까 저기 지하철 1호선에 신평지역 있잖아요.

거기 지하에 폐쇄된 역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기억이 나는 게 ‘평지역’이라고 한 90년대까지는 운행을 했던 곳인데요.

왜 거기로 가냐니까 그 당시 전기 설비에 대해 봐야 하는데 거기가 사람들 손 안 타고 좋다고 갔어요.

그 뒤로 완전 실종이 되었죠.

경찰에 신고하니까 몇 번 수색하는 흉내만 내더니 단순 가출이라고 사건을 종결시키는데, 우리 애는 가출할 애가 아니었거든요.

남자의 말을 듣던 김창수 과장이 말했다.

“거, 부모님들이 생각하시는 거랑 애들이 겪고 느끼는 건 달라요. 가출할 사유는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경찰들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김창수 과장의 말이 불쾌했는지, 여자가 쏘아붙였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저를 찾으신 이유가? 전 그냥 흉가 다니고 퇴마하는 스트리머일 뿐인데.”

“아, 네. 그런데 그 뒤로 꿈에서 자꾸 우리 주열이가 꿈에 나타나요.”

“아, 이름이 주열인가요?”

“네. 양주열이요. 꿈에 나타나는데 계속 구해달라고 그러니까 대체 뭔지.”

“그 꿈에 나온 장소는 어디인가요?”

“음. 어둡고 회색이었는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징조는 없었고요?”

“와이프가 자꾸 주열이가 보인다는데 헛것을 보는 건지 어쩐지.”

남자가 말하자 여자가 덧붙였다.

“밤에 TV를 보다 창문에 시선이 느껴져서 보면 주열이가 서 있고 그랬어요. 아파트는 10층인데.”

그녀의 말에 김창수 과장이 현수를 슥 보았다.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 번 아드님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수의 대답에 김창수 과장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부의 제안이 얼토당토않은 느낌이었지만 현수 본인이 이 의뢰를 맡는다면 무어라 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 *

회의가 끝난 후, 현수는 고스트 크루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 지하철 1호선 평지역에 사람 찾으러 가실 분.

그러자 바로 다른 멤버들의 답이 올라왔다.

- 방고리 : 평지역??

- 하날하날 : 신평지역 아님??

- 너도캠핑 : 평지역이라고 신평지역 지하에 폐쇄된 역 있음. 소문 들었음.

- 하날하날 : 사람 찾으러 가다니 무슨 말이에요?

- 방고리 : 뭔진 몰라도 전 따라갑니다. 캡틴 형이랑 방송 한 번 뛰면 구독자가 몇 천씩 쑥쑥 오름ㅋㅋㅋㅋㅋㅋㅋㅋ 빨대를 꽂아랔ㅋㅋㅋ

- 과대 : 목숨 걸고 구독자 올리는 거죠.

- 방고리 : 뭘 하든 목숨을 걸어야 성공하는 거 아니겠음? ㅋㅋㅋ

- 너도캠핑 : 이번엔 나도 갈래. 하날이는 안 감?

- 하날하날 : 저 그 날 BJ남조랑 합방있어요.

- 방고리 : 남조? 걔 여캠들한테 엄청 껄떡댄다던데.

- 과대 : 저랑 합방하고 나서도 들이댔었어요. 조심하세요.

채팅으로 봐선 방고리, 너도캠핑이 합류할 것 같았다.

“방고리하고 너도캠핑님이 같이 간다 하시네요.”

현수가 세정을 보며 말했다.

“거의 고정 멤버 같은 느낌이네요. 하하. 하날하날 님은 조금 다른 노선 타시는 것 같고.”

“아무래도 방송 성격 차이가 있으니까요. 너도캠핑 님은 그래도 와일드한 콘텐츠를 하시니까 제 콘텐츠랑 맞는데 하날 님은 말 그대로 ‘여캠’이시니까.”

“나중에 토크 콘텐츠 할 때 부르든가 해야겠어요. 하날 님 나오면 그래도 시청자가 좀 잡히는데.”

“네, 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쪽으로 촬영 스케줄 잡아놓을게요. 이번 주 토요일 21시인 거죠?”

“네, 네. 그리고 의뢰주신 분들께 양주열 학생 실명이 나올 거라고 말씀해 주세요.”

“알겠어요. 그런데요.”

세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어 물었다.

“이번 당해고등학교에서 허태훈이 나타났었잖아요. 또 나타나면 어떡하죠?”

그녀의 질문에 현수가 생각을 하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상당히 위협적이던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저도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어차피 악귀와 싸우고 있는 상황이고 놈이 덤벼든다 해도 상대할 수는 있을 거예요. 단, 같이 간 사람들이 절대 흩어지면 안 되겠죠.”

현수의 말에 세정은 볼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 * *

토요일 21시.

신평지역 앞에 모인 현수와 세정, 방고리, 너도캠핑은 잠시 모여 사담을 나누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세정이 방송 시작 버튼을 누르자마자 셋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오늘도 저희 고스트 크루! 방고리님과 너도캠핑님이 함께 해주시겠습니다!”

현수의 인사에 방고리와 너도캠핑이 손을 흔들었다.

- 하날님은 왜 안 모심?

- 하날하날 보고 싶음.

일부 시청자들이 하날하날을 찾았다.

“하날하날님은 지금 방송 스케줄이 겹쳐서요. 오늘은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셨습니다.”

현수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가 어디죠?”

방고리는 진행을 하는 듯 현수를 보며 물었다.

“아! 저희 라미로브 본사 쪽으로 의뢰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1년 전 실종된 ‘양주열’ 학생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는데요. 이곳 평지역으로 뭘 조사하러 들어간 이후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경찰에서는 단순 가출로 처리를 한 것 같고요.”

“평지역이라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신평지역은 옛날에 ‘평지역’으로 다른 역사가 있었습니다. 신평지역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플랫폼을 옮긴 게 한 20년 됐더라고요.”

“왜 이름이 바뀌었던 거죠?”

“들리는 소문에 첫차와 막차 때, 승강장에 귀신이 나타나서 기관사 분들이 고통을 호소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귀신을 본 날이면 가위에 눌린다고. 그러다 몇 번 운행 사고가 나니까 지하철공사에서 승강장을 바꾼 겁니다.”

현수와 방고리, 너도캠핑은 시청자들에게 정보전달을 할 겸, 평지역과 지금 상황에 대해 토크쇼처럼 멘트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 셋은 신평지역 사무실로 이동했다.

현수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하자 역무원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일전에 전화 드렸던 스트리머 박현수인데요. 그 폐쇄된 평지역 촬영 건으로-”

“-아아. 네, 네.”

역무원이 반갑게 현수와 악수를 나누고는 바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폐쇄된 평지역은 역무원님 허락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죠?”

현수가 시청자들 들으라는 의미로 물었다.

“네, 맞습니다. 들어가는 문을 잠가놓기 때문에 임의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시청자들 중 일부가 찾아와서 폐를 끼칠 수도 있으니 저희가 들어가면 문을 다시 잠가주시기 바랍니다.”

“네, 네. 안에서 잠글 수 있습니다.”

현수와 역무원의 대화는 그대로 방송에 송출 됐다.

- 찾아가지 맙시다.

- 현수님 촬영하는 데 찾아가서 훼방 놓고 그러지 마세요.

- 민폐ㄴㄴㄴㄴ

시청자들이 서로 경고를 해주었다.

고정 구독자들은 이제 현수 방송 스타일을 완전히 꿰고 있는 것이었다.

“여깁니다.”

그 사이 역무원이 ‘출입금지’라 적힌 철문 앞에 섰다.

그는 문을 열고 활짝 열었다.

끼이이익

그러자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복도가 드러났다.

역무원이 한쪽으로 걸어가 스위치를 올리자 환하게 불이 켜졌다.

“어우.”

벽과 바닥에는 회색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였다.

“1년 전에 그 양주열 학생인가. 그 학생도 여기 뭐 조사한다고 들어가겠다고 했었는데 우리가 허락을 안 해줬었거든요.”

“그럼 그 학생이 여기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도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거네요?”

“네. 그리고 그때 경찰들이 들어가 봤었는데도 아무 흔적도 찾지 못했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수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역무원은 문을 닫고 나갔다.

현수는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근 뒤 통로를 보았다.

후우우우웅-

안 쪽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을씨년스럽긴 하네요.”

현수가 바닥을 보며 말했다.

오래 전 생긴 듯한 발자국 여러 개가 흐릿하게 보였다.

“절대 흩어지지 말고 이동합시다.”

현수는 일행들을 한 번 살핀 뒤 EMF 탐지기를 꺼냈다.

불이 세 개 정도 깜빡이고 있었다.

현수는 입구에 고스트돌을 하나 놓은 뒤 앞장서서 통로를 걸어 나갔다.

*

[나가는 곳]

[주변 지도]

[광고 배너]

[쓰레기통]

이곳은 90년대에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많은 흉가를 다니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타임머신’을 타고 회귀한 것 같은 기분이 격하게 들기는 처음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광고 배너부터 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까지.

모두 현수가 어렸을 때나 보았던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지징- 지징- 파밧-

통로가 끝나자 폐쇄된 승강장이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곳곳에 있는 형광등이 불안정하게 깜빡거렸다.

심지어 구역별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도 보였다.

마치 아포칼립스 시대를 맞은 지하철 대피소 같은 느낌이었다.

“스크린도어가 없는 지하철 승강장은 되게 오랜만이네요. 괜히 낯서네.”

방고리가 승강장 끝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맞아요. 그땐 스크린도어 있는 역이 신기했는데. 뭔가 고급스럽고.”

너도캠핑도 고개를 끄덕이고 덧붙였다.

그 사이 현수는 주변을 살피며 승강장 한쪽에 고스트돌을 놓았다.

그 순간이었다.

끼히히히히히힛-

방금 건너온 통로 쪽에서 고스트돌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쪽에서 뭔가 심령현상이 감지된 것이었다.

현수와 방고리, 너도캠핑, 세정의 카메라 모두 통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끼히히히히힛-

기괴한 웃음이 들리는 가운데, 문 쪽에서부터 형광등이 순서대로 꺼지기 시작했다.

고스트돌의 눈에서 반짝이는 붉은 LED가 어둠 속에서 음산하게 깜빡거렸다.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때, 어둠 속에서 회색 피부를 가진 검은 존재가 확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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