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 공포 예능 야담 (3)
흉가를 수색하면서, 왕벌보살은 확실히 귀신을 볼 줄 아는 듯했다.
하지만 현수처럼 선명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세정처럼 아주 흐릿하게, 혹은 구체 형태로만 보이는 듯 했다.
즉, 어느 존재가 어느 자리에 있을 때 그곳에 귀신이 있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방송 연출 때문인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대고 귀신이 있다는 말을 자꾸 해대고 있었다.
현수는 태클을 걸었을 때의 우재석과 황PD의 반응을 본 이후로 왕벌보살의 의견에 딱히 반박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혜련은 그런 현수의 눈치를 보다 한 번씩 말을 걸었다.
그러면 현수는 ‘귀신이 보인다.’는 표현보다는 ‘귀신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표현을 하며 에둘러 몇몇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
실제로 그곳은 귀신의 발자국이라 볼 수 있는 하얀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흉가를 수색하는 장면이 이어진 후 거실에 모인 게스트와 MC들은 바로 토크 방송을 진행할 준비를 했다.
세정이 다가와 간단하게 현수의 메이크업을 봐주는 사이, 다른 게스트와 우재석도 다시 정비를 하고 있었다.
“그쪽은 80만 스트리머라면서 따로 코디도 없나 봐요? 매니저가 메이크업까지 봐주네?”
왕벌보살이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현수에게 말했다.
세정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현수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아오. 마음 같아선 저 뒤통수를 한 대 확 후리고 싶네.”
수정은 그런 현수와 세정 옆에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옅게나마 들은 세정은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현수님. 도와드릴게요. 성아야. 가서 현수님 메이크업 좀 도와드려.”
혜련은 왕벌보살의 말을 듣고는 훅 끼어들어 말했다.
그러자 혜련을 도와주던 코디네이터가 현수에게 다가왔다.
“뭐야, 둘이 뭐 있어?”
왕벌보살이 현수와 혜련을 번갈아 가리키며 물었다.
“아뇨. 제가 부족해서 도움 주시는 거죠.”
현수는 왕벌보살을 보고 대답했다.
그녀는 입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돌렸다.
순간 할 말이 없어진 것이었다.
* * *
“자, 들어갑니다. 레디- 큐!”
황PD가 손을 들며 소리쳤다.
그러자 우재석과 혜련은 붉은 LED가 켜진 카메라를 보며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야담의 MC를 맡은 우재석!”
“혜련입니다!”
“오늘은 이 흉가에서 토크를 진행해볼 건데요. 혜련 씨는 무서운 거 잘 보세요? 무서운 이야기나.”
“아, 저 무서운 거 진짜 싫어해요.”
“그렇죠. 저도 무서운 거라면 정말 싫어하는데요. 그래도! 여름의 끝을 잡고 우리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눠보면서 뜨거운 이 밤을 시원하게 보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재석은 특유의 하이텐션으로 멘트를 해나갔다.
“일단 ‘귀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 볼까요?”
우재석이 왕벌보살을 보며 물었다.
“‘귀신’이라고 하면 굉장히 무섭고 끔찍한 존재라고들 여기는데요. 귀신의 ‘귀’는 ‘귀신 귀’자로 ‘먼 곳’, ‘교활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먼 곳에 있는 신-이라는 맥락으로 이해를 해주시는 게 좋죠.”
“그러면 우리 생각보다 무섭고 끔찍한 존재는 아니다~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귀신은 어디든 있습니다. 어느 공간, 어느 순간에든 있죠. 삶과 죽음이 있는 이상 귀신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 현수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재석이 현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수는 차분하게 카메라와 우재석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왕벌보살님 말씀과 비슷한데요. 다른 이야기를 첨언하자면 ‘귀신’이란 존재는 ‘영역의 중간’에 존재하는 존재라고 봅니다.”
“영역의 중간이요?”
“네. 산 자의 영역이 있고 죽은 자의 영역이 있다면 그 중간 영역의 존재인 거죠. 그래서 여기저기 들락거릴 수 있는 거죠.”
“‘죽은 자의 영역’은 보통 지옥- 같은 저승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저승’이 아예 또 다른 세계, 다른 공간이 아니라 이 세계와 중첩되어 있습니다.”
현수는 수정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 전달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조금 더 풀어서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네요.”
혜련이 말했다.
왕벌보살은 현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해서 듣는 듯한 얼굴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사는 세상과 죽은 자가 사는 세상은 똑같이 이 땅이라는 거죠. 다만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볼 수 없는데 귀신은 그 중간점에 있어서 산 자들에게도 보인다는 거죠.”
“아하. 그러니까 지옥으로 가고, 천국 가고, 그런 게 아니고 이곳이 곧 이승이자 저승이라는 말씀이신 거군요.”
“네. 그래서 가끔 귀신들은 자신이 귀신이라는 것도 잊고 인파 사이를 걸어 다니기도 하죠. 그리고 ‘거울’이나 ‘유리’ 같은 것이 가끔 ‘통로’가 되어주기도 하고요.”
“맞아요! 어렸을 때 보면 칼 물고 거울 보면 귀신 보인다- 이런 이야기들 있었죠.”
“네. 그것 때문에 거울에 대한 괴담도 많이 나오는 거죠.”
현수는 유려하게 우재석과 혜련의 질문을 받아갔다.
그렇게 다른 게스트들과 웃고 떠들며 재미있는 이야기와 무서운 이야기, 그리고 간단한 근황 토크들이 이어지는 중, 현수는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느꼈다.
MC와 게스트들이 한창 떠들던 도중 현수가 허리를 펴고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을 포착한 우재석이 물었다.
“현수 씨. 갑자기- 왜 주변을 살피세요?”
“귀신의 기운이 느껴졌어요.”
현수의 말에 웃고 떠들던 게스트들의 표정이 굳었다.
물론 현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카메라가 돌고 있는 만큼 나름 연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귀신의 기운이요?”
“네. ‘귀신의 기운’은 누구나 느낄 수 있어요. 인간에게는 여섯 번째 감각이라고 해서 영적인 기운을 느끼는 촉이 있거든요. 사람들은 그걸 ‘오한이 든다.’ 내지는 ‘소름이 끼친다.’고 표현을 하죠.”
현수가 말하자 왕벌보살이 바로 끼어들었다.
“맞아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신을 모시는 사람일수록 그 감각이 더 발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녀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심으로 인정하며 끄덕이는 고갯짓은 아니었다.
“저 사람 말이 진짜면 네가 저 무당보다 신기가 센 거야.”
현수의 귀에서 수정이 속삭였다.
“아무튼 지금 주변에 귀신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씀이신 거죠?”
혜련이 무서운 듯 제 팔을 만지며 주변을 보았다.
사아아아악
그때 흉가의 베란다와 창문으로 귀신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얼굴에 풀어헤친 머리카락.
무명옷을 입은 남자 귀신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셔츠 차림의 여성 귀신도 보였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니까 자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귀신들이 모여드는 거예요.”
현수가 창문 쪽을 빤히 보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달라진 현수의 표정과 목소리 톤에 게스트들은 긴장한 듯 눈치를 보았다.
혜련은 위즈소카에서의 현수를 겪었기 때문에 실제 저곳에 귀신이 있다는 걸 믿고 있었다.
하지만 우재석은 카메라와 게스트들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바로 분위기를 잡았다.
“어우. 점점 더 음산해지는데요. 우리 왕벌보살님은 가장 무서웠던 경험이 언제예요.”
우재석이 왕벌보살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거실 한쪽에 있는 거울 너머로 ‘사백안의 악귀’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악귀였다.
현수가 눈을 부릅뜨는 순간, 그 악귀가 거울에서 튀어나오려는 듯 달려들었다.
덜컹! 챙강-
이내 벽에 걸려있던 거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조명 장비가 껌뻑거렸다.
“뭐에요!”
우재석이 놀라 황PD를 보았다.
제작진이 설치해둔 장치인지 묻는 눈치였다.
“저, 저, 저희가 한 게 아니에요.”
황PD의 목소리는 그대로 오디오에 들어갔다.
“카메라 계속 돌려요. 우리한테도 말 안 한 모양이네.”
음향 감독은 카메라 감독 옆에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는 이 상황도 녹화하자는 것이었다.
우재석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스태프와 게스트들의 눈치를 빠르게 살폈다.
통상적으로 이렇게 사람을 놀래는 기믹을 설치할 때에 게스트는 물론 MC들에게도 비밀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스태프들에게도 비밀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의 반응을 보았을 땐 그들에게조차 비밀로 한 것 같았다.
심지어 황PD는 이 순간에도 자신이 설치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저희가 설치한 게 아니에요.”
황PD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현수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백안의 악귀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스톱. 스톱.”
결국 황PD가 손을 들고 외쳤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게스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코디와 매니저가 달려들어 메이크업을 고쳐주었다.
그 사이 황PD는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지금 세팅 중인 스태프들하고 연기자들. 다 제 자리에 위치해있죠?”
[네. 스탠바이 중입니다.]
[네~]
무전기 너머로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중 게스트들을 놀래키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귀신 아르바이트 배우와 장비를 이용할 스태프의 답변이었다.
“방금 전에 거울 건드린 스태프 있나요.”
[거울 쪽에는 설치된 장치 없었습니다~]
스태프의 답변이 들려왔다.
수군수군
황PD와 스태프들은 구석에 모여 긴급회의를 했다.
자신들이 설치하지 않은 위치에서 기현상이 발생한 것에 대해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왕벌보살도 방금의 기현상이 신기했는지 깨진 거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 악귀가 근처에 왔어.”
수정이 현수 옆에서 말했다.
“촬영 재개하겠습니다.”
그때 황PD가 스태프들과 해산하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으니 촬영을 속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MC와 게스트 모두 제 자리에 다시 앉았다.
“자- 들어갑니다. 레디- 큐!”
황PD의 사인에 다시 토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수는 제대로 토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강한 악귀의 한기가 점점 가까워지기 때문이었다.
* * *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촬영.
새벽 1시가 되자 황PD가 다시 한번 촬영을 중단했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것이었다.
“30분 동안 쉴게요.”
황PD는 스태프들과 함께 흉가 밖으로 나갔다.
“차에 가서 한숨 자야겠다.”
“맥주나 한잔 했음 좋겠네.”
게스트들도 하나둘 일어나며 저마다 볼멘 소리를 했다.
철야로 진행되는 강행군에 다들 피곤한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그때 혜련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네, 괜찮아요. 야간 촬영이야 늘 하는 건데요, 뭘.”
현수가 웃으며 답했다.
“저기 뭔가 있는데. 다들 안 보여요?”
그때 왕벌보살이 조명이 닿지 않는 거실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그러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구석을 보았다.
어둠 속 검은 무언가.
현수의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다만 귀신의 흔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