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99화 (99/227)

제99화

# 공포 예능 야담 (4)

저벅 저벅 저벅

왕벌보살이 구석으로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갔다.

게스트와 MC들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현수도 그런 그녀의 뒤를 가만히 보았다.

“음?”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스태프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왕벌보살을 보았다.

고오오오오-

마치 효과음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어디선가 괴상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조명이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 들어서자 모두의 눈이 조금씩 어둠에 적응되며 어렴풋이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거실 구석에 있던 검은 형체가 갑자기 커지더니 왕벌보살을 덮쳤다.

꽈당-

왕벌보살은 뒤로 쓰러졌고, 주변에 있던 게스트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이내 어둠 속에서 하얀 소복에 입가에 피를 묻힌 사람이 나타났다.

귀신 분장을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 배우였다.

“어머. 죄송해요. 죄송해요.”

배우가 왕벌보살과 넘어진 게스트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뭐야?”

왕벌보살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배우는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총총걸음으로 뛰어나갔다.

“저 구석에서 졸고 있었나 보네요.”

우재석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에이, 젠장.”

왕벌보살이 아주 작게 속삭이듯 욕을 내뱉었다.

“네가 기현상을 미리 파악하고 주목받으니까 자기도 뭐 좀 하나 해보려고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

수정이 그런 왕벌보살을 보며 말했다.

현수도 같은 생각이었다.

왕벌보살은 현수를 필요 이상으로 견제하고 있었다.

뚜벅 뚜벅

그때 방 안에서 귀신 분장을 한 사람이 또 걸어 나왔다.

“이분도 연기자인가보네.”

왕벌보살과 게스트들이 길을 비켜주며 말했다.

순간 현수는 귀신 분장을 한 사람의 어깨 위로 하얀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귀신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진짜 귀신이었던 것이다.

귀신은 출구 쪽으로 걸어가다 뒷머리를 옆으로 슥 빗었다.

그러자 뒤통수에 달린 이목구비가 훤히 드러났다.

‘으-!’

귀신과 눈이 마주친 현수가 인상을 썼다.

순간 귀신의 목이 거꾸로 돌아갔다.

뒤통수에 달린 이목구비가 앞으로 돌아가더니 평평한 얼굴 앞면이 뒤로 온 것이었다!

현수가 징그러운 듯 고개를 돌리자 귀신은 키득거리며 집 밖으로 걸어 나갔다.

MC와 게스트들은 그 순간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현수 님.”

그때 세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현수가 돌아보자 세정이 다가와 속삭였다.

“현수 님. 지금 주변에 귀신들이 엄청 모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귀신을 볼 줄 아는 세정이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 밖을 보았다.

뿌연 창문 너머로 하얀 형체의 귀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왕벌보살 님.”

현수가 불렀다.

그러자 왕벌보살이 현수를 보았다.

“액막이 부적 쓰실 줄 아시죠?”

현수가 돌아보며 물었다.

왕벌보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다 본인도 귀신의 기운을 느꼈는지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황PD가 스태프들과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왕벌보살이 노란 종이에 붉은 붓으로 부적을 쓰고 있었고, 우재석과 혜련, 그리고 게스트들 모두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황PD는 지금부터 촬영을 시작하라는 손짓을 하고는 왕벌보살에게 물었다.

“보살님. 지금 뭐 하세요?”

황PD가 물었다.

“주변에 귀신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촬영장 주변에 이걸 붙여놔야겠습니다.”

왕벌보살은 능숙하게 부적을 써내려가며 말했다.

황PD가 현수에게 고개를 돌리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덜컹

낡고 허름한 창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현수는 귀신이 창문에 다가와 이마로 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끼히히힛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힛

이마로 창문을 치고 있는 귀신은 기괴하게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까닥였다.

‘뭘 원하고 있는 거지?’

현수는 그런 귀신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때 왕벌보살이 여러 장의 부적을 게스트와 스태프들에게 나눠주었다.

“수고스럽더라도 이거 저 창문하고 출입문에 갖다 붙여.”

그녀의 말에 스태프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부적을 붙였다.

“이걸 왜 우리한테. 하하.”

하지만 게스트들은 일을 하기 싫은지 주변에 있던 스태프에게 부적을 건네주었다.

현수는 이런 게스트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저런 애들이 다치던데. 전에 ‘랩터’인가 걔도 스타병 걸려있다가 다리 아작났지?”

수정이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은 채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제 자리에 찾아갔다.

“다 붙인 것 같으니 촬영 다시 시작하죠.”

황PD의 사인에 모두 토크를 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재개된 촬영.

우재석은 확실히 프로였다.

창문이 덜컹거리고 여기저기서 스태프들이 준비한 공포 기믹들이 작동을 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부드럽게 촬영을 이어갔다.

그리고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주면서 틈틈이 시청자들을 웃길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 나갔다.

여기에 개그우먼 혜련의 서포트.

촬영장 분위기는 수시로 화기애애해졌다가 금세 다운이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촬영을 이어가던 중, 현수는 우재석의 멘트에 리액션을 하다가 황PD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황PD 옆에 서있는, 모자 쓴 스태프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의 어깨에서 회색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악귀?’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이었다.

번쩍 번쩍

깜빡 깜빡

조명이 요란하게 깜빡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퉁 나가버렸다.

“어?”

황PD가 당황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이동식 모니터는 여전히 잘 작동이 되고 있었다.

전기 배선의 문제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야. 동식아. 저기 커넥터 좀 확인해 봐라.”

황PD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때, 황PD 옆에 있던 모자 쓴 스태프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시커먼 피부에 시뻘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악귀였다.

그리고 애초에 그 스태프는 ‘야담’ 촬영팀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산 사람 몸에 빙의된 악귀가 아닌 순수한 악귀라는 의미였다.

“너 뭐야?”

처음 보는 얼굴에 놀란 황PD가 버럭 소리쳤다.

끼야아아아악-

동시에 창문이 깨지더니 바닥에 있던 집기들이 요란하게 들썩였다.

우당탕탕탕

와장창-

갑작스런 소란에 게스트들이 혼비백산해서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왕벌보살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망쳐.”

수정도 현수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사아아아아아

모자를 쓰고 있던 검은 피부의 악귀가 현수를 보고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피부가 새하얗게 변했다.

이어 붉게 충혈되어 있던 눈이 징그럽게 커지면서 피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백안의 악귀.’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봤던 바로 그 악귀였다.

‘솔트샷건!’

소금을 뿌리려 했지만 촬영 때문에 세정에게 맡겨 둔 상태였다.

현수가 도망치는 스태프들 사이로 세정을 찾았다.

순간 세정이 스태프들 사이에서 나타나 솔트샷건을 던졌다.

현수가 솔트샷건을 낚아챈 뒤 바로 펌프를 당겨 쏘았다.

팡-

소금이 뿜어져 나가자 사백안의 악귀가 모습을 감췄다.

“나가. 저놈. 오늘 날 잡고 널 타깃으로 잡았다.”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세정과 함께 흉가 밖으로 달려 나왔다.

“갑자기 왜 절 타깃으로 잡았다는 거죠?”

현수가 도망치며 물었다.

“그 수영장에서부터 내내 널 쫓아다니고 있었다며! 틈만 노리고 있던 거야!”

수정이 현수 옆으로 슥 날아오며 대답했다.

그녀는 발을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부드럽게 따라왔다.

“왜 하필 지금이 틈인 거죠?”

현수가 차로 달려가며 물었다.

수정은 이 질문에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사백안의 귀신이 현수 차 앞에 서있기 때문이었다.

“큭!”

현수와 세정은 바로 흉가 옆에 있는 산길로 뛰어 들어갔다.

* * *

몇십 분이나 지났을까.

현수와 세정은 숨을 고르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다.

주변에서 귀신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아까 보았던 악귀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현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옆을 보았다.

숨을 헐떡이는 현수, 세정과 달리 수정은 태연하게 서있었다.

“그러니까요. 왜 지금이 ‘틈’이라는 거예요?”

현수가 묻자 수정이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아직도 그 질문이야? 당연하지. 기본적으로 연예인들은 신기가 있어. 연예인이나 무당이나 사주팔자가 비슷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 이야기는 들어봤죠.”

“그래서 연예인 주변에 귀신이 많이 나타나는 건데, 그런 연예인들이 흉가에 모여서 귀신 이야기를 하니 귀신들이 들끓을 수밖에 없지!”

“아.”

“귀신들이 들끓으니 악귀 힘도 더 세지고. 자연스럽게 산 사람의 ‘기운’도 약해지고. 그러니까 그 악귀가 널 한 번 차지해보려고 한 거지. 액막이 부적도 있고 나도 있으니 쉽진 않았겠지만.”

수정이 덧붙여 말했다.

“그나저나 저기 촬영은 또 다 망했겠네요. 우재석도 있고 다른 배우, 가수들도 있어서 이름 좀 알릴 수 있겠거니 했는데.”

세정이 침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또 기회가 있겠죠. 다치는 사람이나 없길 바라야죠.”

현수가 중얼거리다 손가락을 튕겼다.

“지금 생방을 돌리죠.”

현수의 말에 침울해 있던 세정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고 여기서 나가는 생방을 한 번 하죠.”

“방송이 될까요? 귀신이 나올지도, 안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냥 소통방송이라고 생각하죠, 뭐. 이대로 묻히기에는 아까운 상황 아니에요?”

현수가 말했다.

만약 여기서 방송을 켜지 않고 복귀를 할 경우, 지금 상황을 말로만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믿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뿐더러 임팩트도 적을 것이었다.

반면 지금 생방송을 켠다면 조금 더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터였다.

“그, 그럴까요?”

세정이 바로 카메라 장비들을 꺼내 세팅하기 시작했다.

- 어??????

- 급 평일 생방송???

- 야외인 거 같은데???

- 뭐지????

- 어디에요?

- 안녕하세요~

방송을 켜자마자 시청자들이 몰려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오늘 TTP에서 준비하던 프로그램 촬영장에 왔는데요. 촬영 도중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서 촬영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현수가 마이크를 상의에 착용하며 말했다.

- 와!! 박현수 방송도 나가는 구나.

- 우리 방장님 짱짱맨이시다.

- 짱짱맨ㅋㅋㅋㅋㅋㅋ아재놐ㅋㅋㅋㅋ

- 거긴 어디에요???

“여긴 부산이고요. 지금 촬영 스태프랑 게스트들이 모두 흩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주변을 좀 둘러보는데 여러분들과 함께 하려고 긴급히 라이브를 켰습니다.”

현수의 말에 시청자들이 좋다는 채팅들을 올렸다.

- 좋아요!!!!!!

- 역시 캡틴이 짱임.

- 감사합니다!

- 심심했는데 잘 됐다!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원래 촬영장소로 다시 이동을 해보겠습니다.”

- 게스트 누구누구였어요?

- 하날하날아님? 너도캠핑이나.

“영화배우 XXX씨하고요. 아이돌 ‘사라바나’의 OO씨. 그리고 탤런트 AAA씨하고요-”

현수가 게스트를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MC로는 우재석 씨랑 헤련 씨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 헐????

- 우재석 방송에 출연했다고???

- 캡틴 떴다. 진짜 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격렬했다.

그 순간이었다.

부스럭

수풀 건너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저기 뭔가 있는 것 같아요!”

현수가 자세를 살짝 낮추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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