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노로이노무라 (10)
화아아아아악
사무라이 갑옷을 입은 무언가가 협탁 앞에 앉은 현수와 과대를 향해 카타나를 높이 들었다.
그러고는 목을 벨 것처럼 빠르게 내려치려 했다.
“크윽!”
현수는 반사적으로 솔트샷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팡!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무라이 갑옷이 부위별로 흩어졌다.
땡강-
육중한 카타나 역시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텁
그 사이 과대가 고서를 챙겨 품에 안고 일행 쪽으로 기어왔다.
현수도 솔트샷건을 흡사 실총처럼 파지하고 주변을 경계했다.
사아아아아아
사방에서 회색 연기가 휘몰아쳤다.
쩌저저저저적
이어 벽에서 수천 개의 눈이 번쩍 떴다.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보았던 현상과 비슷했지만 훨씬 더 혐오스러운 눈이었다.
벽에 뜬 눈은 현수 일행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고, 눈 끝에서는 걸쭉한 피가 주륵 흘러 내렸다.
“여기서 나가야 해요.”
현수가 말했다.
그러자 일행들이 다급하게 계단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가자가자가자가자가-
방을 삥 두르고 있는 항아리의 뚜껑들이 모두 들썩이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현수 일행은 서둘러 마을회관 1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끼야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일행 모두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달려 나갔다.
쾅!
마을회관 밖으로 나온 일행들은 숨을 몰아쉬며 회관을 돌아보았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회관 안에서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현수는 빠진 일행들이 없는지 한 명씩 확인을 하고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여기 내린 역이 어디죠?”
“조모코겐 역이요.”
방고리가 대답했다.
“우리 소속사는요?”
“라미로브요.”
너도캠핑이 대답했다.
“우리가 처음 모두 만난 방송 이름이 뭐죠?”
“미드나잇 게임이요.”
과대가 대답했다.
“저랑 같이 다녔던 그 친구 이름이 뭐죠?”
“태환이요.”
세정이 대답했다.
“직속 상사 이름이 어떻게 되죠?”
“김창수 과장님이요.”
과대 매니저가 대답했다.
혹시 귀신이나 악귀가 둔갑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해보는 것이었다.
“빨리 이동합시다. 절대 낙오되지 마시고. 방고리님! 맨 뒤에서 뒤처지는 인원 없이 컨트롤 해주세요.”
현수가 말했다.
방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갑시다.”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일행들은 허겁지겁 노로이노무라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자자자자자자자자작
우당탕 쿵당-
비명과 함께 온갖 소리들이 마을 곳곳에 울려 퍼졌다.
현수는 비석이 있던 마을 입구로 달려가며 주변을 보았다.
각 고민카 앞으로 머리 없는 귀신들이 네발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현수는 이를 악물고 가파른 센노쿠라 산 아래로 내달렸다.
* * *
짹 짹- 짹-
밤에는 울지 않는 새 소리가 나무 사이로 들리기 시작했다.
땀에 흠뻑 젖은 일행들은 나무와 바위에 앉아 지친 듯 휴식을 취했다.
“해가 뜨고 있어요.”
방고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며 태양빛이 들이치고 있었다.
“9시까지 그 산장에 도착해야 차 탈 수 있는 거죠?”
현수가 세정을 보며 물었다.
“네. 그때 아무도 없으면 전화줄 거예요. 전화 안 받으면 현지 경찰에 신고할 거고요.”
“방송은 어떻게 됐어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세정이 바로 카메라를 확인해 보았다.
“어머. 방송이 꺼졌네요.”
정신없이 달리는 중에 방송이 종료된 모양이었다.
“다시 켜죠. 잠깐이라도.”
현수의 말에 세정이 다시 카메라를 켰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지금 노로이노무라에서 탈출하고 도망치다 방송이 종료된 모양입니다. 시청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현수의 인사에 시청자들이 채팅을 썼다.
- 종료 직전에 갑자기 노이즈가 엄청 끼더니 무한 버퍼링 걸렸었어요.
- 산이라서 전파가 잘 안 된 듯.
- 그 산에서 잘 터졌는데 갑자기 그러진 않을 듯??
- 내가 볼 때 귀신 때문인 거 같음.
- 갑자기 끊긴 김에 잠들었는데 알람 땜에 깸ㅋㅋㅋㅋㅋㅋ
10만 명 넘게 들어온 것에 비해 1000명 남짓한 시청자가 들어왔지만 갑자기 방송이 끊긴 것에 대한 큰 불만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생방송 영상이 채널에 남는 만큼 갑자기 방송이 끊긴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일행 모두 무사히 노로이노무라를 나왔고요. 이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산이라서 방송을 유지하기가 조금 힘드니 후기 방송 때 다시 찾아뵐게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현수가 손을 흔들자 지친 표정의 동료 스트리머들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방송을 끝내자 스트리머들 모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와. 빡세네.”
너도캠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여기 어디에요? 아까 올라왔던 길하고 다른 것 같은데.”
방고리가 주변을 보며 말했다.
확실히 이곳은 등산로 같은 길이 전혀 나있지 않은 산 중턱이었다.
노로이노무라를 찾아 올라갈 때에는 가파르고 풀이 많이 나있긴 했어도 나름 ‘산길’처럼 보이는 곳을 탔었는데 여기는 그것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올라온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에요. 일단 계속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가면 계곡이 나오는데요.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산장이 나와요.”
너도캠핑이 GPS와 스마트폰 지도를 들어 이것저것 확인하며 말했다.
확실히 백패킹과 야외 캠핑을 많이 하는 스트리머라 그런지 산길에는 능숙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던 현수 일행은 팻말이 하나 세워진 동굴을 발견했다.
현수와 방고리, 너도캠핑, 과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동굴을 빤히 보았다.
동굴 입구 쪽에는 밧줄과 함께 방울과 하얀 천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저긴 또 뭐하는 곳이죠?”
과대가 물었다.
안에서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아 저곳도 귀신과 관련이 있는 곳 같았다.
“매니저님. 촬영하죠. 생방까지 할 필요는 없고 녹화 떠서 영상 올리죠. 후기 방송 때 쓰고 클립으로도 만들게요.”
현수가 세정을 보며 말했다.
“알겠어요.”
세정은 고개를 끄덕인 후 카메라를 켰다.
“네, 지금 저희는 노로이노무라에서 탈출한 후에 차도를 찾아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요. 이 동굴을 찾았습니다. 지금 막 방종을 한 상태니 지금 이 영상은 녹화로 진행이 되고요. 의심하시는 분이 없게 편집하지 않고 생방처럼 롱테이크로 가겠습니다.”
현수가 마이크에 대고 말하며 세정에게 눈짓했다.
세정은 손가락으로 OK사인을 보내왔다.
“어떻게 잘 탈출했네?”
순간 현수의 옆에서 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현수가 옆을 보았다.
세정은 수정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별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가, 가시죠.”
현수는 수정과 대화를 하지 않고 동굴로 돌아서 걸었다.
“갑자기 그렇게 나타나면 어떡해요!”
맨 앞에 선 현수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그럼 내가 뭐 어떻게 나타나. 멀리서부터 이름 부르면서 손 흔들어주리?”
수정은 현수 옆에 뒷짐을 지고 총총 걸어가며 되물었다.
“하여튼 진짜!”
현수가 인상을 쓰고 말하자 수정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동굴 쪽으로 다가가자 또 한 번 한기가 흘러나왔다.
현수는 EMF 탐지기를 꺼내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불빛이 4개까지 올라갔다.
“지금 안쪽 어두운 곳에서 하얀 형체가 나오고 있습니다. 심령카메라로 확인해주시겠어요?”
현수가 방고리를 보며 말하자 그가 현수의 구형 스마트폰을 꺼내 심령카메라를 켰다.
그러자 동굴 안쪽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방고리는 말없이 세정의 카메라에 포착된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거는 봉인 부적이 아닌가요?”
과대가 밧줄과 하얀 천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뇨. 뭐가 쓰여 있지 않은 걸로 봐선 봉인은 아닌 것 같아요.”
현수가 손전등으로 안을 슥 비췄다.
동굴은 그렇게 깊지 않은 듯했다.
안쪽으로 작은 제단과 함께 향로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방금 피운 듯한 향불이 꽂혀 있었다.
현수의 머릿속에는 아까 노로이노무라에서 뛰쳐나간 노파가 스치고 지나갔다.
현수 일행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저벅 저벅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제단 뒤쪽으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손전등을 살짝 들어 멀리 비추자 그것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사람의 백골이었다.
사람의 뼈가 모두 분리되어 서로 뒤엉켜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람의 머리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신들을 여기에 모아놨나 봐요.”
너도캠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수는 백골들 사이로 하얀 아지랑이가 계속 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귀신이 서려 있는 것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한이 서려 있는 것이었다.
“여기 못 있겠어요.”
과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섰다.
“꺄악!”
그 순간이었다.
과대가 돌아서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다들 깜짝 놀라 돌아보자 동굴 입구에 노파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노파는 무표정하게 현수 일행을 바라보다가 슥 걸어왔다.
그러고는 무심히 스쳐 지나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이 노파는 목이 잘려 죽은 사람들을 기리고 있던 것 같았다.
현수는 일행들에게 나가자는 손짓을 조용히 하고는 돌아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곳 위치, 보여주세요.”
현수는 혹시 모르겠다는 생각에 너도캠핑에게 말했다.
그러자 너도캠핑이 현재 위치가 찍힌 지도 화면을 녹화 카메라에 보여주었다.
“그러면 노로이노무라 촬영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이동하죠.”
현수는 세정에게 카메라를 끄라는 수신호를 보낸 후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호텔에 돌아왔을 때에는 방에 있던 가부키 인형이 사라져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인테리어에 가부키 인형은 애초에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당장 해답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수정이 가부키 인형과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걸로 봐선 귀신 들린 물건이었을 것이라는 확신만 가질 뿐이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다음날 귀국한 현수는 곧장 촬영 영상들을 분류, 정리했다.
그리고 곧장 후기 방송 때 사용할 소스들을 확인해 보았다.
산장과 등산 장면.
그리고 노로이노무라 입성.
고민카 수색.
VTR이 재생되는 장면들.
현수는 그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마지막에 찾았던 마을회관 지하실 풍경이었다.
그리고 사무라이 갑옷도 현수가 직접 발견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영상이 올라가고 나면 구독자들이 이것저것 더 알아보려나.”
“아마 그러지 않을까? 꽤 디테일한 자료들이 나왔는데. 거기다 실종된 사람들 이름이 적힌 항아리까지 발견했다며. 거기에 머리가 들어 있었고. 그럼 뭐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되겠지.”
현수의 혼잣말에 수정이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이후 저녁 때 진행된 후기 방송.
후기 방송은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진행이 되었다.
이번에는 현수가 일방적으로 상황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닌, 구독자들과 상의를 하며 ‘추리’를 해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채팅 참여율이 상당했고, 시청자 유입 역시 후기 방송들 중에선 최고치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