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 노로이노무라 (9)
현재 시청자 수 104812명.
이 중 30%정도는 일본인 시청자였다.
주 언어가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센노쿠라의 노로이노무라를 촬영하고 있다는 제목과 키워드에 일본 시청자들이 유입된 것이었다.
그에 따라 일본인 구독자 수도 실시간으로 늘어 63만 명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 사이 현수는 일행들과 바닥의 ‘뚜껑’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뭐죠?”
“지하로 내려가는 문인 것 같은데요?”
현수가 쪼그려 앉아 뚜껑의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꾸직-
흡사 나무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러자 생선 비린내 같은 냄새와 썩은 냄새가 확 풍겨 올라왔다.
“우욱!”
과대가 코를 막으며 몸을 돌렸다.
“이게 무슨 냄새죠?”
방고리도 불쾌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반면 너도캠핑은 꽤 침착한 표정으로 지하 계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런 냄새 맡아본 적 있어요.”
“어떤 냄새죠?”
현수가 물었다.
언뜻 첫 느낌으로는 음식물쓰레기 같은 냄새였다.
“시체 썩는 냄새요. 백패킹 할 때 가끔 동물 죽은 사체들이 있을 때가 있거든요. 그때 그 주변에서 나던 냄새에요.”
너도캠핑의 말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 밑에 시체 있는 거임????
- 생방송 이거 중단될 수도 있겠다.
- 중단 ㄴㄴㄴㄴㄴㄴㄴ
- 힘내세요!!!!
- 현수오빠 사랑해요.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다.
일행은 계단 아래쪽으로 손전등을 쭉 비춰보았다.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없게 계단 끝에 모퉁이가 있었다.
“내려가 봐야겠죠?”
방고리가 과대를 보며 물었다.
“그럼요.”
과대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현수를 보았다.
“그래야죠.”
현수는 고스트사운드를 정리해 넣은 뒤 고스트돌을 꺼내보았다.
끼히히히히힛
고스트돌은 켜자마자 웃음소리를 내며 붉은 LED 불빛을 깜빡거렸다.
EMF 탐지기 역시 다섯 개 불빛 모두 표시되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심령현상을 탐지하는 게 무의미할 것 같네요.”
이곳 안은 온통 회색 악귀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디를 탐지하든 귀신의 흔적이 포착되고 있었다.
이는 현수의 눈에도, EMF 탐지기에도, 방고리가 들고 있는 심령카메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주변에 회색 연기는 뭐에요?”
급기야 귀신을 볼 수 없는 방고리와 너도캠핑, 과대까지도 천장에 자욱하게 낀 회색 연기를 보기 시작했다.
심령카메라로만 볼 수 있던 현상을 이들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만큼 악귀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심령카메라를 볼 때 나타났던 현상 있죠? 하얀 형체는 귀신, 회색 형체는 악귀에요. 그리고 한이나 분노가 강하면 강할수록 연기 같은 모습에서 사람 모습으로 선명해지죠.”
현수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도 귀신을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현수 님은 이런 걸 매일 겪고 계신다고요?”
방고리와 너도캠핑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지하실 문이 열리면서 악귀의 힘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다들 긴장하세요.”
현수는 이들까지 귀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이해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철컥
현수가 솔트샷건을 장전한 후 앞장서 내려갔다.
이어 스트리머들과 매니저들이 따라 내려갔다.
자박 자박 자박
먼지 쌓인 콘크리트 지하실을 내려가자 다다미가 깔린 커다란 홀이 등장했다.
이곳의 천장에도 역시 회색 연기가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바로 여기에요.”
영상 속 집회 장소.
시멘트벽과 겹겹이 쌓여 있는 작은 항아리.
영상 속에서 사람의 목을 쳤던 사무라이 무사의 갑옷이 벽 중앙에 걸려 있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집회를 벌인 거지?”
방고리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항아리 쪽으로 다가갔다.
모든 항아리에는 일본어가 짧게 적혀 있었다.
“사람 이름이 적혀 있어요.”
과대가 항아리에 적힌 일본어를 보며 말했다.
“항아리마다 주인이 있다는 건가요?”
너도캠핑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열어보면 안 되겠죠?”
방고리가 묻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100000원 파워챗
- 열어봅시다.
- 200000원 파워챗
- 열어주세요.
- 50000원 파워챗
- 여기까지 왔으면 열어야지.
그러자 거액의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세정은 현수에게 눈치를 주었고, 과대가 바로 캐치를 했다.
“한 번 열어보죠.”
과대가 현수를 보며 말했다.
“이미-”
“이미 이곳 봉인은 깨졌잖아요. 뭐가 더 있겠어요?”
과대가 항아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 과대가 시원한 데를 긁어주긴 하는데 조금 발암이다.
- 너무 함부로 하는 느낌인데.
- 시청자들이 뭘 원하는지는 빠르게 캐치하는데 캡틴님 방송 스타일하고는 안 맞는 거 같음.
- 저 정도 강단이면 그때 투신하려고 했던 것도 연기 아님?
격렬하게 올라오는 채팅 사이로 과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현수가 손을 뻗으며 말리려는 순간, 과대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꺄아아아아악!”
동시에 과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뚜껑을 떨어트렸다.
와장창-
두꺼운 항아리 뚜껑이 깨지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다들 화들짝 놀라 항아리와 과대 쪽으로 다가갔다.
“저기, 저기, 저기!”
과대가 너도캠핑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항아리를 가리켰다.
너도캠핑은 과대의 등을 토닥여 주며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옆으로 방고리와 현수도 항아리 안을 확인했다.
“X발.”
방고리가 입을 틀어막고 욕을 중얼거렸다.
“카메라 조심.”
현수 역시 세정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뭔데요?”
세정이 물었다.
- 뭐가 있기에????
- 뭐 들어있음???
시청자들의 호기심도 극대화 되었다.
“사람 머리요.”
현수가 대답했다.
“사람 머리가 소금에 절여져 있어요.”
이어진 현수의 말에 모두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항아리에 붙어 있는 이름이-”
“-항아리 속 머리 주인들 이름이겠죠.”
현수와 방고리, 너도캠핑, 과대가 뒷걸음질 치며 항아리와 거리를 벌렸다.
그 사이 세정은 카메라를 확대해 항아리에 쓰인 이름들을 촬영했다.
- それは群馬県で行方不明になった人々の名前です。
그때 일본인 시청자 중 한 명이 이름을 보고 채팅을 썼다.
세정은 과대 매니저에게 채팅을 보여주었다.
“저 항아리에 적힌 이름들. 군마현에서 실종된 사람들 이름이래요.”
과대 매니저가 채팅을 번역해 말해주었다.
그러자 일행 모두의 시선이 과대 매니저에게 돌아갔다.
- 群馬県に遊びに行って行方不明になった人もいますね。
(군마현에 놀러갔다가 실종된 사람도 있네요.)
- ニュースに一度ずつ出てきた名前です。
- (뉴스에 한 번씩 나왔던 이름이에요.)
- これは不気味な事実ですね。
- (이거 소름돋는 사실이네요.)
일본어 채팅이 올라올 때마다 과대 매니저가 번역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봤던 목 잘린 귀신들은-”
“-이 항아리에 있는 사람들인 거죠.”
“목이 여기 있으면 몸통은 어디에 있는 거죠?”
“센노쿠라 산 여기저기에 묻혀 있겠죠.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센노쿠라 산에 들어설 때부터 보였던 목 잘린 귀신들의 정체가 바로 그거였어요. 목이 없이 산 곳곳에 묻힌 사람들의 귀신. 그 머리는 바로 여기에 봉인되어 있는 거고요.”
“그래서 영혼인데도 목이 없었던 거군요.”
“선택 받은 자만이 노로이노무라를 찾을 수 있다. 이건 목이 잘린 귀신들이 인도해줘야 여기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었던 거예요.”
“그럼 그 귀신들은 자기 머리를 바라고 있는 거네요.”
“이 봉인을 풀어주기를 바랐던 거라고 봐야 하는데 이상한 건 누가, 왜 그랬던 건지 모르겠어요.”
현수가 턱을 만지며 이곳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사무라이 갑옷 앞에 놓인 협탁에 시선이 갔다.
협탁 위에는 오래된 고서가 놓여 있었다.
현수가 손전등을 앞세워 협탁으로 다가가자 일행들도 쫓아갔다.
스멀스멀
그 사이 열린 항아리 안에서는 회색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이거. 해석 가능한가요?”
현수가 과대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과대가 쪼그려 앉아 고서를 보았다.
“현재 일본어하고는 차이가 좀 있지만 대충 해석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되죠?”
“음. 집회에 대한 순서에요. 우리가 영상에서 봤던 집회는 말이 ‘집회’지 일종의 ‘의식’이나 ‘종교행사’ 같은 거였네요.”
과대가 자리를 잡고 앉아 페이지를 넘겼다.
“카가미 타다요시가 전국시대 때 이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학살한 이후에 목을 잘랐대요. 근데 그 이후로 카가미 타다요시의 가족들이 하나둘 죽어나가서 그 후손들이 이 마을 사람들에 대한 제를 1년에 한 번 지내줬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세대가 흐르면서 제사도 끊겼고, 이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사고로 죽는 일이 자꾸 발생하니까 이곳도 버려지게 됐는데- 카가미 타다요시의 후손인 카가미 료이치가 정적 세력에 쫓겨서 여기 오게 되고 터를 잡았답니다.”
“여기까지는 대충 아는 이야기고요.”
“그런데 여기 들어온 카가미 가문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죽기 시작하자 카가미 료이치는 이게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라고 생각하고,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았다고 합니다.”
“어떻게요?”
“바로 다른 사람의 목을 잘라다 바치는 거죠.”
“아아-!”
“그래서 이곳을 철저하게 사회에 격리시켜 두고 등산객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납치해 목을 베었던 거예요. 주기적으로.”
“그래서 센노쿠라 산에 그런 괴담이 돌았던 거군요.”
“만약 의식 때 바칠 머리를 못 구했으면 밑에 있는 다른 마을에서 납치를 해오기도 했대요.”
“어르신 인터뷰에서 동네 형들이 사라졌다는 게 그건가.”
“그런데 센노쿠라 산에 괴담이 돌면서 관광객이 줄어들고 제물을 구하기 힘들어지니까-”
번역을 하던 과대가 말을 멈췄다.
“왜요?”
방고리가 물었다.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나 봐요.”
“아아-”
현수는 들렀던 고민카 중에 아이들이 촬영 된 사진 앨범을 떠올렸다.
뛰어노는 아이들 사진에서 항아리 사진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바로 그 앨범.
현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런 걸 왜 다 기록한 거죠?”
너도캠핑이 물었다.
“사람 목을 벤다는 게 정상적인 행위는 아니잖아요. 그것도 집단으로. 그걸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킨 거겠죠. 우리는 이래서 이 행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현수는 고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다 미쳤네.
- 이건 미친 거지.
- 세상에... 그럼 애들까지????
- 애들만 그랬겠음????
- 그런데 왜 저 회관을 봉인한 거지? 저 마을회관을 아예 봉인할 이유가 있나?????
- 귀신들이 도망갈까 봐???
- 굳이 그럴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채팅을 써 올렸다.
그때 누군가 채팅을 썼다.
- 제물을 바쳤다면 그 제물을 받는 존재가 있다는 거 아님? 그걸 막으려고 했나 보지.
채팅을 본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혼의 한을 다스리기 위해 사람 목을 베었다면, 제물이 끊긴 지금 그 원혼은 화가 많이 나있을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벽에 걸려 있던 사무라이 갑옷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협탁 앞에 앉아 있던 현수와 과대가 고개를 들었을 땐, 사무라이 갑옷을 입은 무언가가 카타나를 높이 치켜든 상태였다.
“위험해요!”
방고리가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