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 노로이노무라 (1)
며칠 후.
라미로브 본사 회의실.
센노쿠라 산의 노로이노무라에 가기 위한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현수와 방고리, 과대, 너도캠핑이 참석했고 매니저는 세정만 자리했다.
그리고 세정의 옆에는 김창수 과장이 앉아 있었다.
“저희가 지난 위즈소카 수용소를 촬영하고 나서 채널 인사이트를 확인해 봤는데요. 같은 기간 대비 대충 2.5배 정도 트래픽이 올라갔더라고요.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영상 조회 수는 더 높이 올라갈 것 같아요.”
“네, 네.”
영상 조회 수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 누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커다란 매출처가 되어 줄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보면 볼수록 알고리즘에 잡힐 확률도 높아질 수 있었다.
여러모로 캡틴 퇴마 채널의 성장 원동력이 된 촬영이 아닐 수 없었다.
김창수 과장은 여기에 또 한 번의 폭발적인 성과를 얹고 싶은 것이었다.
“노로이노무라 내용 검색해 봤을 때에는 조회 수 뽑기 딱 좋을 것 같더라고요. 일본이 특히 그런 귀신 문화, 이런 거에 관심이 많잖아요. 일본 공포 영화도 해외로 많이 팔리고.”
“네, 그렇죠.”
현수도 생각했던 것이었다.
위즈소카 수용소가 첫 해외 촬영이라 주목을 받은 것도 있었지만 세계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 관련 키워드를 타면서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이 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부분이 있었다.
반면 노로이노무라 같은 경우에는 세계2차 대전만큼 범세계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풍 공포’를 다룬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과대님이 같이 가기로 했는데, 그렇죠?”
김창수 과장이 과대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과대가 찝찝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수정이 말했다.
“딱 보니까 억지로 가는 느낌인데?”
현수도 같은 느낌을 받은 상태였다.
“센노쿠라 산까지는 편하게 갈 수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는 차편은 저희가 준비할게요. 그리고 위즈소카 때처럼 가이드 혼선이 없게 하기 위해서- 가이드는 과대님이 맡아주시기로 했어요.”
“과대님이요?”
현수가 놀라 쳐다보았다.
“과대님이 일본어 전공에 유학도 다녀오셨더라고요. 그래도 100만 대형 스트리머시니까 같이 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창수 과장이 말했다.
현수는 괜스레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과대가 전에 악귀에게 홀렸던 것은 둘째 치고, 그때 이후로 현수를 계속 피하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외 출장에 같이 간다니.
현수로서는 여러 걱정이 몰아칠 수밖에 없었다.
* * *
회의가 끝나자마자 과대는 도망치듯 라미로브를 빠져나갔다.
회사 건물 앞에 서서 현수는 멀어지는 과대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김창수 과장이 억지로 가게 등 떠민 모양이에요.”
방고리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과장님이요?”
“위즈소카 때 진짜 완전 대박났잖아요. 라미로브에 수백 명의 스트리머가 있지만 생방송으로 그렇게까지 터진 건 처음이었거든요. 편집 영상들도 단시간에 떡상하고. 전 세계 시청자들이 몰리고. 외국인들이 많다보니 구독자 수가 빠르게 올라가지 않은 거지, 사실 이례적인 스코어죠.”
“네, 네.”
“김창수 과장은 그때 그 떡상을 다시 한번 노리는 거예요. 지금 과대 구독자가 120만 명이니까 과대가 투입되면 시청자들이 더 몰릴 거라는 계산이죠.”
“그래도 과대님은 그때 악귀에 홀려서 죽을 뻔한 이후로는 저랑 방송 안 하실 줄 알았는데.”
“최대한 합방은 꺼리고 싶었겠지만 현수 님하고 같이 방송해서 구독자 오르는 우리 크루들 보면 살짝 배가 아프긴 했을걸요?”
방고리가 말했다.
그때 너도캠핑도 현수 옆으로 다가왔다.
“방고리님 말이 맞아요. 과대가 악귀에 홀려서 투신할 뻔해서 마음 약한 애라고 보실 수 있는데 안 그래요. 아무나 100만따리 되는 거 아니거든요.”
그녀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악귀한테 홀렸다는 건 앞으로도 또 그럴 수 있다는 건데.”
“그런 두려움보다 구독자, 조회 수가 더 중요한 거죠.”
너도캠핑이 대답했다.
현수는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은 채 차에 타는 과대를 보았다.
‘뭔가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미드나잇 게임에서 보였던 그녀의 행동 패턴.
아무리 생각해도 노로이노무라 촬영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보이게 될지 걱정이 앞섰다.
* * *
일본 군마현.
덜컹- 덜컹- 철컹- 철컹-
센노쿠라 산 남단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현수 일행은 저마다 장비와 일정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저희는 조모코겐 역에 도착해서 근처 숙소에서 하루 머물 거고요. 거기서 렌트카로 센노쿠라 산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세정이 일행들 좌석 앞에 서서 관광지도를 보며 말했다.
“시간은요?”
너도캠핑이 물었다.
“이제 한 30분 정도 있으면 조모코겐 역에 도착하고요. 바로 호텔 체크인을 할 거예요. 그리고 저녁 때 저희가 섭외한 식당에서 과대님 생방을 돌릴 예정입니다. 미리 공지해 드렸듯 모두 함께 출연해주시면 됩니다.”
세정이 과대를 보며 말했다.
과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별도 요청 중 하나였다.
김창수 과장이 과대에게 이번 해외 촬영을 요청할 때 그녀는 자기 채널 콘텐츠도 한 편 촬영하기를 조건으로 걸었던 것이다.
이 부분은 현수의 본 촬영에 앞서 예고편처럼 여러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기에 현수도, 김창수 과장도 그 조건에 수락을 했었다.
그래서 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바로 먹방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조모코겐 역이에요.”
세정이 안내 방송을 들으며 말했다.
조모코겐 역 근처는 꽤 한산한 시골 풍경이었다.
주변에 높고 커다란 산들이 포진해 있었고, 좁은 도로 양옆으로 푸르른 나무와 잔디들이 가득했다.
유동인구도 많지 않아 무척 잔잔한 분위기의 도시였다.
현수 일행은 기차에서 내려 세정의 안내에 따라 근처에 있는 허름한 호텔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체크인을 한 현수는 방고리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쿵
방고리가 호텔 구석에 캐리어를 던지듯 놓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아우. 일본 오기도 빡세네.”
“그러게요. 시골이라 그런가.”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장대와 TV장을 보았다.
일본 특유의 가부키 인형들과 소품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전 이상하게 일본의 그 전통적인 분위기만 보면 귀신이 서려 있을 것 같아요. 기분 탓인가.”
방고리가 가부키 인형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분 탓이 아니지. 실제로 일본에 귀신이 많아. 걔네가 공포영화를 잘 만드는 이유가 있다니까.”
그러자 수정이 방고리의 말에 대답해주듯, 현수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현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일본 특유의 문화가 있잖아요. 모든 거에 기도하고. 모든 사물에 영혼이 깃든다고 하고.”
현수는 가부키 인형의 머리를 톡 치며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가부키 인형에서 하얀 연기가 스멀 피어나더니 인형의 눈이 현수에게로 돌아갔다.
현수가 흠칫 놀라 손을 떼자 하얀 연기는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왜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방고리가 물었다.
“아, 아니에요.”
괜히 벌써부터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현수가 대답했다.
“어째 이번에도 보통이 아닐 거 같다?”
수정이 혼자 팔짱을 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현수는 그런 수정을 곁눈질로 째려보고는 돌아섰다.
“아. 현수 님. 슬슬 준비하죠. 촬영 갈 시간 다 돼가요.”
“알겠어요.”
현수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방고리와 함께 방을 나가다 가부키 인형을 돌아보았다.
가부키 인형은 현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마치, 나가는 현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 * *
과대의 먹방은 조모코겐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돈카츠 식당에서 진행이 되었다.
과대의 매니저와 세정이 조명과 카메라를 세팅했고,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에 출연자들이 앉았다.
식당 사장인 할아버지는 신기한 듯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리 전화 드렸던 대로 여기 있는 메뉴들 모두 다 내주시면 됩니다.”
과대의 매니저가 유창한 일본어로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알겠다는 듯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영화에서 보던 식당 분위기네요.”
현수가 식당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나무로 된 벽과 천장.
일본어가 쓰인 메뉴판과 은은한 조명.
시골에 있는 식당이지만 촬영하기에 제법 괜찮은 ‘핫 플레이스’였다.
잠시 후,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세팅이 되기 시작했다.
예쁘게 음식과 저분이 정리되자 과대의 매니저는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과대입니다. 여기는 바로 일본 군마현에 있는 ‘나라 돈카츠’ 식당인데요!”
시종일관 말이 없이 조용하던 과대의 텐션이 갑자기 올라가며 멘트를 이어갔다.
‘오우.’
그 모습을 본 현수는 ‘역시 스트리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 앞에서의 텐션과 실생활에서의 텐션이 판이한 것이었다.
“오늘 방송에는 방고리님과 캡틴 퇴마 박현수님! 그리고 너도캠핑님이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과대의 인사에 출연자들 모두 밝게 웃어 보였다.
“일본까지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렇게 일본 여행도 오고 좋네요. 하하.”
방고리는 합방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멘트를 받아쳤다.
그렇게 방송이 진행되는 사이, 현수는 촬영 중인 카메라와 세정, 그리고 과대의 매니저 뒤로 무언가 눈에 띄었다.
구석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촬영 테이블을 보고 있는 노파였다.
새하얀 피부와 지저분할 정도로 자글자글한 주름.
흰자가 없는 검은 눈에 검은 입술.
누가 봐도 귀신이었다.
“자! 여기 있는 음식들은 여기, 나라 돈카츠의 모든 메뉴들인데요. 저희가 하나씩 먹어보며 맛을 설명해 드릴게요.”
과대가 귀엽게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현수의 눈은 카메라 너머 노파 귀신에게 꽂혀 있었다.
그러다 방송 중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바로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을 보았다.
“이건 상당히 바삭바삭하네요. 굉장히 고소해요. 소스를 찍어먹지 않아도 될 만큼 소금 간이 있는 것 같고요.”
과대가 돈카츠를 먹기 시작하며 말했다.
그 사이 주인 할아버지가 주방에서 나와 촬영을 구경하고 있었다.
현수는 할아버지의 등 뒤에 걸린 가족사진에 주목했다.
‘아.’
구석에 있는 노파 귀신은 할아버지의 아내인 모양이었다.
“현수님. 현수님은 음식 어떠세요?”
그때 과대가 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생방송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을 하고 일부러 말을 건 것이었다.
“네. 고기가 굉장히 고소하고 식감이 좋네요. 뭐라고 해야 하나. 겉바속촉?”
현수는 재빨리 반응을 해주며 카메라에 미소 지어 보였다.
그렇게 방송을 하는 내내 노파 귀신이 눈에 띄었다.
이어 벽과 천장에서도 긴 머리를 가진 여자 귀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현수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찾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현수는 내내 귀신들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때 수정이 현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너도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도시 자체가 조금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