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 741소초 (3)
현재 시청자 수 3894명.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의 시청자 수까지 합치면 약 8000여 명이 현재 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의 시청자 중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고 싶은 시청자들이 현수의 방송으로 조금씩 넘어오고 있었다.
“그럼, 다가가 보겠습니다.”
현수가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다가가며,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에게 그 자리에 있으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아무래도 절벽 쪽에 귀신이 서 있는 만큼 실족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심령카메라를 촬영 카메라에 수시로 비춰주며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갔다.
까드득 까드득
그 순간이었다.
군인 귀신의 고개가 마치 목각인형처럼 부자연스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장이 난 기계처럼 떨리게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은 무척 소름이 끼쳤다.
“계속 가고 있습니다. 지금 고개가 90도로 꺾였다 돌아왔다를 반복하고 있어요. 굉장히 징그럽습니다.”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레이니 앱으로 확인 됨?????
- 쌍판떼기 한 번 보여주세요.
- 레이니 ㄱㄱㄱㄱㄱ
채팅을 본 세정이 작게 속삭였다.
“캡틴님. 지금 캡처님들이 레이니로 얼굴인식 한 번 해보자는데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 귀신이 고개를 계속 움직이고 있어서 제대로 인식이 안 될 겁니다.”
현수는 심령카메라 앱을 레이니 앱으로 바꿔 구동한 뒤 귀신의 얼굴 쪽으로 확대했다.
역시 군인 귀신의 고개를 쉬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있어 이목구비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저기에 귀신이 서 있는데 얼굴을 포착하지 못합니다.”
- 구라 아님??????
- 귀신 없는데 구라치는 거 같은뎈ㅋㅋㅋㅋㅋ
- 뭐가 없으니까 안 잡히겠짘ㅋㅋㅋ
역시 믿지 않는 시청자들이 격하게 채팅을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레이니 앱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갑자기 실선을 그려내며 이목구비를 잡아낸 것이었다.
동시에 현수 역시 정체 모를 사람의 머리가 현수 앞에 갑자기 등장한 것을 선명히 보았다.
“으악!”
조금 떨어져 있는 군인 귀신만 신경 쓰던 현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 리ㅐᅟᅣᆽ더래ᅟᅵᆽㅁ러ㅑㅐㅐ4ㅈ러43저
- 와씨 깜짝아!
- 헐 방금 캡틴님 레이니 앱 화면 안 보고 있지 않았음????????
- 맞음. 지금 저 레이니 보고 놀란 게 아님.
- 뭐임 뭐임. 뭘 보고 놀란 거야 캡틴은????
- 놀란 타이밍이랑 레이니에 얼굴 잡힌 타이밍이랑 똑같은 게 소오오오오름
수백, 수천 개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다.
하날하날과 너도캠핑도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했다.
그쪽 방송 시청자들도 현장에 완전히 몰입했는지 대거 이탈해 현수 방송으로 유입해 들어갔다.
“헉. 헉. 헉.”
현수가 가슴을 움켜쥐고 일행들을 보았다.
그들 모두 놀란 표정으로 현수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소리 질러서 죄송합니다. 아. 지금 너무 놀랐네요.”
현수는 천천히 일어나 다시 귀신을 살펴보았다.
절벽 쪽에 있던 군인 귀신도, 눈앞에 나타났던 머리 귀신도 사라져 있었다.
“난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수정이 현수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좀 말씀해주시든가요!”
“그러면 쟤가 싫어해. 산 사람들이 자길 알아주길 바라는 거지, 죽은 사람이 옆에서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하, 참.”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정은 이 상황을 지켜보며 모른 척 계속 촬영을 이어갔다.
방금 시청자 수 5000명 선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방송 상황을 지켜보던 너도캠핑은 효진과 카메라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이곳 지형이 위험하기도 하니까 저희 방송은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상황을 지켜보실 분은 캡틴 퇴마 채널로 가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런 너도캠핑의 말에 효진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카메라 앞으로 성큼 다가가 손 인사를 하고는 바로 방송 종료 버튼을 눌렀다.
“언니. 갑자기 왜-”
효진이 당황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차피 시청자 계속 빠지고 있잖아. 숫자 떨어진 방송 계속 붙들고 여기 있느니 게스트처럼 저기 붙어있는 게 나을 거야.”
너도캠핑이 세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굉장히 빠른 판단이었다.
어떻게든 방송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기는 했지만, 현수 채널로 시청자들이 빠르게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되레 너도캠핑 생방송 시청자 수가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었다.
나름 47만 구독자를 가진 스트리머인데 생방송 시청자가 세 자리, 두 자리로 떨어져 있는 생방송을 계속 유지하면 스트리밍 실시간 목록을 보던 네티즌들에게 노잼 이미지가 심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너도캠핑의 주력 플랫폼인 스위치에서는 하날하날이 아직 방송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방송 효율이나 안전을 생각해 봤을 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효진아. 너는 저기 캡틴 채널 촬영 서포트 해줘.”
“네, 네.”
효진이 현수와 세정에게 성큼 달려갔다.
“캠핑 언니. 괜찮아요?”
하날하날이 너도캠핑을 보며 물었다.
“이게 나아. 어차피 이 방송에서는 우리가 득 볼 게 없겠어.”
그녀는 하날하날에게 귓속말로 대답하고는 바로 현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사이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때 효진이 세정에게 다가왔다.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저희 방종 쳤어요.”
그녀가 묻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구형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여기 이게 심령카메라 앱이고 이게 얼굴 인식하는 레이니 앱이거든요? 이거로 저 계속 따라오시면서 촬영해 주시고, 시청자들한테 화면 보여주세요.”
현수가 너도캠핑의 눈치를 보며 부탁했다.
그러자 효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구형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그럼 계속 이동하겠습니다.”
그렇게 세정과 효진은 캡틴 퇴마 채널의 스태프로, 너도캠핑은 공식 게스트처럼 둘씩 짝지어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고 하날하날은 이 장면을 3자 입장에서 촬영을 해주고 있었다.
“귀신이 있던 자리로 가보겠습니다. 바닥이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스태프 분들, 제가 가는 길 쪽으로만 잘 쫓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현수가 수시로 바닥을 비추며 군인 귀신이 있던 자리에 다가갔다.
저벅 저벅-
푸스스스-
흙바닥 밟는 소리와 수풀 스치는 소리가 마이크에 잡혀 들어갔다.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수시로 멘트를 했다.
그렇게 군인 귀신이 서 있던 자리에까지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우득!
현수는 무언가 나뭇가지를 밟았다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중심을 잃었다.
“어?”
이어 짧은 탄식과 함께 절벽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다.
“캡틴님!”
세정과 현아의 카메라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다른 일행들도 놀라 절벽에 모여들었다.
긴급 상황이었다.
“여, 여러분. 지금 캡틴님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셨어요!”
하날하날이 놀라 카메라에 대고 소리쳤다.
“큭!”
그 사이 너도캠핑은 나무를 붙잡고 몸을 절벽 아래로 기울여 아래를 보고 있었다.
‘절벽’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90도로 깎여 들어가 있는 절벽은 아니고 가파른 언덕 수준의 절벽이었고, 현수는 나무 몇 개와 바위에 부딪치며 내려가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타박상이 상당할 것 같은 수준이었다.
“이씨!”
너도캠핑은 바로 배낭에서 로브와 카라비너를 꺼내 몸에 결속하더니 나무에 걸었다.
그러고는 손도끼를 들고 절벽 같은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정과 현아는 이 광경을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었다.
- 헐??? 실제 상황????
- 저거까지 연출이겠음??
- 와 대박이다ㅠㅠㅠㅠㅠ
- 100000원 파워챗
- 다치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 5000원 파워챗
- 너도캠핑 걸크러시 쩐다.
- 1000원 파워챗
- 캡틴님도 좋은데 너도캠핑도 진짜 멋있는 듯
- 1000원 파워챗
- 나도 이제 팬 될 거 같음.
현수 채널에 파워챗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정은 매출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마냥 기쁠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현수의 현재 상황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 * *
쿵!
한참 동안 정신없이 가파른 절벽을 구르던 현수는 나무 밑동에 등을 부딪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크윽!”
강한 통증이 전해지며 애써 정신을 차려보았다.
거의 70도 정도로 가파른 언덕.
다행히 낭떠러지 수준의 절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려오면서 여기저기 부딪쳤고 온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더구나 조금만 잘못 움직였다가는 밑으로 아예 굴러떨어질 판이었다.
“으으.”
현수가 조심스럽게 몸을 틀어 아래를 보았다.
저 멀리 까마득한 아래쪽으로 바위들과 파도의 하얀 거품이 언뜻 보였다.
이대로 계속 굴러떨어졌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아. 환장하겠네.”
현수는 붙잡을 것을 찾아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환장하겠다.”
그때 수정이 현수 앞에 나타나 말했다.
그녀는 70도 경사의 가파른 절벽에서도 지면과 90도로 꼿꼿이 서서 현수를 보고 있었다.
굉장히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주시죠?”
“잊었니? 난 귀신이야. 지금 널 어떻게 도와. 덜 다치게 해주는 수준이지.”
수정이 말했다.
“네?”
그러고 보니 그렇게 격렬하게 굴러떨어지며 바위와 나무에 부딪친 것 치고는 부상의 정도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통증은 있지만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 위에 그 너도캠핑인가 뭔가 하는 여자가 너 구하겠다고 지금 내려오고 있어.”
“아니, 위험한데!”
“지금 너보다는 안전해 보여.”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며 말했다.
“크으. 그나저나 그 군인 귀신은-”
“너도 기본적인 건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까 상기시킬 겸 이야기해 주면. 귀신이 나타나면 나타나는 이유가 있어. 걔가 거기 있었으면 거기 있는 이유가 있는 거고, 거기서 네가 실족했으면 실족한 이유가 있는 거야.”
“이유요.”
“그래. 만약 네가 죽었다면 죽을 이유도 있는 거지. 그 이유를 이해하느냐, 못하냐의 문제는 별개인 거고.”
“어렵네요.”
“네가 군인 귀신을 발견하고 이쪽으로 왔는데 이렇게 굴러떨어졌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야.”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춰보았다.
나무 밑동에 겨우 몸을 걸치고 있는 상황이라 몸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팔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 나뭇가지에 무언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는 것이 ‘귀신의 흔적’이 역력한 물건이었다.
현수는 팔을 뻗어 그것을 들어보았다.
“녹슨 군번줄.”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엄지로 이름과 군번을 확인해 보았다.
육군
03-7200XXXX
이승태
B
03군번의 군인 군번줄.
현수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보았던 군인 귀신이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귀신 이름 함부로 부르면 안 되는 거 알지?”
수정이 강조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로 군번줄을 슥 닦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