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 741소초 (2)
“다 741초소 근처에서 벌어진 일들인데요.”
태환이 기억을 더듬듯 눈을 치켜뜨고 말을 이었다.
“어떤 젊은 여자가 철책 밖에서 서 있는 걸 봤다고도 하고- 사람 목이 돌아다니는 걸 봤다고도 하고.”
“그런데 그 철책이 초소하고 가깝나? 보통 초소 위치가 보일만 한 곳은 민간인이 못 들어가잖아.”
“그쪽은 해수욕장하고 가깝긴 해도 수풀이 우거져 있는 곳이라 따로 통제되어 있지는 않아요. 진짜 짓궂은 만취 20대 남자애들이 아니면 거기를 실제로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고요.”
“실제로 사람이 피해를 본 적은 없대?”
“있대요. 전 못 봤는데 반년 전에 전역한 사람은 거기서 뭔가에 쫓기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었다고 하고요. 또 옛날엔 그쪽 철책 너머로 작업 나갔다가 실족사로 군인 한 명이 죽었다고 하고요.”
“철책 너머로 작업을 나가?”
“네, 네. 너무 수풀이 우거지면 시야 확보가 안 되니까요. 해안선까지.”
“그 외에 다른 건 있어?”
“음. 그 외에는 모르겠어요.”
“그때 실제 다쳤던 사람 인터뷰 같은 걸 들어보면 좋은데.”
“아! 저랑 같이 근무 나갔다가 군기 교육대 갔던 김호길 병장님이 그분 아실 거예요.”
“혹시 좀 불러볼 수 있나?”
현수의 질문에 태환이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후, 건장한 체격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김호길 병장이 면회실로 들어왔다.
이후 합석하자 현수는 음식을 먹으라고 앞으로 살짝 밀어주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스트리머시라고요? 캡틴 퇴마 채널.”
“네, 네. 혹시 아시나요?”
“알고리즘으로 뜬 건 봤는데 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어쩐 일로.”
김호길 병장은 어깨를 딱 펴고 앉아 물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예전에 그 741초소에서 도망치다가 다친 선임분이 계시다고 들었어요.”
“아아아아. 조창민 병장이요.”
“그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네, 네. 들었죠. 원래 조창민 병장 그 새끼도 제정신이 아니긴 했는데요. 근무 서다가 갑자기 같이 부사수로 들어간 후임 놈이 자기한테 욕을 하면서 총을 쏘려고 했다고. 도망쳤다고 하더라고요.”
“부사수로 들어간 후임이요?”
“네. 근데 그 후임은 자긴 그런 적 없다고. 그냥 가만히 초소에 있었는데 조창민 병장 혼자서 소리 지르면서 도망쳤다고 그러더라고요.”
이야기만 들어봤을 땐 그 초소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홀리고 있는 듯했다.
“아마 그때 조창민 병장 사건이 없었으면 이태환 쟤도 크게 한소리 했을 거예요. 근데 조창민 병장 일을 겪고 나니까 진짜 741초소에 뭐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라 해코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근육질에 성격이 강성일 것 같은 외모에 비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듯했다.
“그 외에는 그 초소 근처에서 이상한 일을 듣거나 한 건 없어요?”
“엄청 많죠. 하도 많으니까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모를 지경이에요. 뭐, 철책 앞에서 어떤 할머니가 준 음료 받아서 먹으려고 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수류탄이었다든가.”
흔하게 있는 군대 괴담들이었다.
“그 철책이 수풀 쪽에 있다고요. 통제구역이 아니고.”
“네. 애초에 길이 없어요. 거기 가는 길이. 예전 행보관이 거기에 출입금지 팻말을 박아놨는데 언제부턴가는 또 없어져 있더라고요.”
“그렇군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세정을 보았다.
* * *
그날 밤 8시.
속초 이종리 해수욕장.
현수는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 후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히야. 동해 바다 오랜만이다. 덕분에 속초도 오고. 좋네.”
수정이 현수의 옆에서 말했다.
현수는 대꾸하지 않고 해변가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커플부터 가족 단위 사람들까지.
고운 모래사장 위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현수는 뒷짐을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바닷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기에요.”
그때 세정이 하날하날과 현아, 그리고 너도캠핑과 효진을 데리고 오고 있었다.
합방을 하자더니 이종리 해수욕장까지 이들을 모두 끌고 온 것이었다.
“어? 과대 님하고 하날 님하고 같이 방송한다는 거 아니었어요?”
현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너도캠핑이 대답했다.
“아. 과대랑 하날이랑 여기 속초에서 먹방하고 난 설악산 쪽에서 야외 촬영이 있었거든요. 여기서 다들 모인다기에 왔는데- 과대는 현수님 퇴마 방송한다니까 거긴 들르기 싫다고 갔어요.”
“아유. 그래도 와서 인사나 하지.”
그녀의 말에 하날하날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때 그런 일을 겪었는데 귀신 밭에 또 오고 싶겠어요?”
현수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래서 오늘 어디에요?”
너도캠핑이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어어- 그런데 바로 전에 그렇게 호되게 당하시고 또 합방하시려고요?”
현수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뭐. 여기에 연쇄 살인범이 또 있겠어요? 그리고 그때 구희용 호텔 촬영 끝나고 조회 수가 엄청 올라갔단 말이야. 구독자도 몇천 훅 뛰고.”
너도캠핑이 말하자 하날하날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위험해도 조회 수 때문에 목숨 거는 건 똑같구나.’
현수는 입을 씰룩였다.
“이 친구들 이러다 죽겠다.”
그때 수정이 옆에서 속삭였다.
“그럼 이동하죠.”
현수는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을 돌려보낼 수 없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앞장서서 이종리 해수욕장 끝까지 쭉 걸어갔다.
* * *
[군사 통제구역]
철책에는 나무 판에 페인트로 투박하게 쓰인 경고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철책 안쪽으로 국방색 담장이 쭉 이어져 있었다.
“군부대 근처는 이렇게 생겼구나.”
하날하날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방송 켜죠.”
현수는 매니저들에게 눈짓을 보낸 후, 세정에게 말했다.
세정이 방송 시작을 하자 다른 매니저들도 바로 카메라를 켰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입니다. 오늘은 예고드린 대로 태환이가 복무 중인 부대 근처에 와있는데요. 부대 근처기는 하지만 민간인 출입이 가능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촬영을 해보려고 합니다. 여기는 속초고요.”
현수는 자세한 장소는 공개하지 않고 숲길로 걸어 들어가며 멘트를 이어갔다.
“민간인들이 다닐 수는 있는데 길이 많이 험해서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밤엔 위험하기도 하고요.”
현수는 앞으로 걸어 나가다 허리까지 올라온 잡초들을 보았다.
그러자 너도캠핑이 마체테를 꺼내 들고는 잡초들을 붕붕 베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 우와! 너도캠핑님 걸크러시 짱짱
- ㅈㄴ섹시해.
- 한국판 미녀 베어 그릴스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너도캠핑의 뒷모습을 보며 성원을 보냈다.
“제가 사전조사를 해 봤을 때에는, 특정 지역에서 군인들이 많이 홀리는 것 같아요. 그곳으로 가볼 겁니다.”
- 홀리는 거면 위험한 거 아님??????
- 캡틴님도 홀려보신 적 있잖음.
- 1000원 파워챗
- 힘내세요!!
- 멤버십 구독 중입니다. 파이팅입니다.
- 하날하날, 너도캠핑하고 케미가 좋은 듯. 기대하겠음.
시청자들은 현수의 말에 반응을 해주었다.
그 사이 길이 열리자 현수와 세정이 다시 앞장서서 숲 안으로 들어갔다.
- 30000원 파워챗
- 거기에는 무슨 사연 없대요????
현수는 파워챗을 보고 대답했다.
“몇 개 사연을 듣기는 했는데 군대에서 흔히 도는 사연들이라서요. 군인들이 직접적으로 홀렸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작업을 하던 군인이 여기서 실족사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현수가 말하는 사이 그들은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 들어가자 일행 모두 숨을 몰아쉬었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길이 나 있지 않은 산길을 올라가는 것은 체력적으로 소모가 컸다.
촤악 촤악-
어느 정도 올라가자 동해 바다의 파도 소리가 평화롭게 들려왔다.
현수가 걸음을 멈추고 옆을 보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드넓은 바다가 느껴졌다.
하도 어두워서 수평선이나 바닷물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다가 가진 압도적인 위용이 전해져 왔다.
“이 옆으로는 쭉 바다네요.”
현수가 바닥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몇 걸음 옮겼다.
그러자 굉장히 가파른 절벽이 나타났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뎠으면 밑으로 굴러떨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조심해요. 여기 보니까 쭉 절벽인 것 같아요.”
너도캠핑이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추며 말했다.
“진짜 위험하네요.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어요.”
하날하날도 카메라를 보며 멘트를 했다.
“아무래도 해안 부대는 레이더를 돌려야 하니까 상대적으로 높은 고지에 자리를 잡는데, 이렇게 약간 절벽 위에 부대를 세웠던 모양이네요.”
현수는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그때, 수정이 바닥에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거 뭐야?”
그녀의 말에 현수가 바닥을 살펴보았다.
“뭐 있어요?”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이 손전등을 비추며 다가왔다.
“군용 건빵 포장지에요. 보니까 20년쯤 된 것 같아요.”
현수가 초록색 건빵 봉지를 꺼내 들며 말했다.
“확실히 예전에는 이곳으로 군인들이 많이 오갔던 것 같네요.”
현수는 심령카메라를 켜 주변을 비춰주었다.
아무래도 이곳부터 귀신이 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캡틴님이 지금 심령카메라를 켰습니다. 이 근처에 귀신이 있나 봐요.”
하날하날이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수정이 속삭였다.
“쟤들. 저러다 내 친구 되겠는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현수는 수정의 말에 딱히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방송 중인데다가 하날하날과 너도캠핑 앞에서 허공에 대고 이야기 하는 걸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정은 수정의 말을 알아들었고, 수시로 그녀들을 살펴보았다.
화아아아아-
그 순간이었다.
현수의 목덜미로 오싹한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현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진 곳의 절벽 쪽을 보았다.
그러자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00년대 남색 활동복 상의에 군복 바지를 입은 군인 귀신이었다.
그는 시커먼 얼굴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새하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악귀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굉장히 흉측한 외모였다.
“쉿. 지금 저 앞에 귀신이 있습니다.”
현수의 말에 하날하날과 너도캠핑, 현아, 효진 모두 현수의 뒤에 다가와 바싹 붙었다.
현수는 심령카메라로 절벽 쪽을 비췄다.
그러자 새하얀 형체가 공중에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어머. 어머. 어머.”
“지금 저쪽에 귀신이 잡히고 있어요.”
하날하날과 너도캠핑이 각자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보니까 저희를 해코지하려는 속셈은 없는 것 같아요.”
현수가 수정을 보며 중얼거렸다.
“해코지 할 생각은 없는데 뭔가 말하고 싶긴 한 것 같은데.”
수정이 귀신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녀 역시 현수와 같은 의견인 것이었다.
- 1000원 파워챗
- 어떻게 생겼나요???
“남색 활동복 아시나요? 00년대 초 군인들 활동복이요. 그거에 군복 바지를 입고 있어요.”
현수가 복장을 설명해 주었다.
- 전형적인 작업 복장이네.
- 나도 그렇게 입었었음.
“그리고 검은 피부에 눈동자가 없는 눈을 가지고 있어요. 흰자위만.”
현수가 귀신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부연설명을 했다.
- 아 무서워. 상상했어.
- 뭐지. 물에 빠진 귀신인가.
채팅창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