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 구리시 폐허 (1)
“수고하셨습니다!”
방송 종료가 되자마자 김창수 매니저가 박수를 치며 인사했다.
그러자 하날하날과 현수도 자리에서 일어나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야. 캡틴님. 실감나게 말씀 잘 하시던데요?”
다른 스태프들이 스튜디오 정리를 하러 들어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하.”
현수가 멋쩍은 듯 인사를 했다.
“그럼 전 다음 촬영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볼게요.”
하날하날은 현수와 김창수 매니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바로 스튜디오를 나갔다.
“그래. 들어가 봐요.”
김창수 매니저가 그녀에게 손 인사를 해 보인 후, 정리를 하고 있는 현수에게 다가갔다.
“저희 라미로브 소속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셨어요?”
그의 말에 현수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볼을 긁적였다.
“제안 주신 부분은 너무 마음에 들긴 하는데 제가 그렇게 대형 스트리머가 아니어서. 하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대형 스트리머를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형 스트리머가 될 분을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의 말인즉, 라미로브에서는 현수가 대형 스트리머로 성장할 것이라고 점 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음.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볼까요?”
현수의 말에 김창수 매니저가 밝게 웃었다.
* * *
그렇게 현수와 라미로브는 공식적으로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현수 역시 국내 최대 스트리머 에이전시 라미로브 소속 크리에이터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현수에게 새로운 매니저가 배정되었다.
“안녕하세요. 김세정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엄청 어려보이는 외모에 귀여운 헤어스타일, 원색 계통의 옷을 입은, 꽤 개성이 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요청하실 사항이나 필요하신 부분 있으면 편하게 연락주셔요.”
“네, 알겠습니다.”
“채널이 조금 성장하면 회사측에서 현수님을 위한 별도 자택을 구해드릴 거예요. 스튜디오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으로요.”
“와. 진짜요?”
“채널이 성장하면요. 후기 방송 진행하실 때마다 여기 스튜디오로 출근하시기는 어렵잖아요. 밤늦게까지 이야기 나누시기도 하고.”
“뭐- 그렇죠.”
“그리고 촬영이나 녹음 장비들은 저희 회사에서 지원해 드릴 거예요.”
“스태프들 지원은 있나요?”
“있기는 한데 그러면 비용 문제가 조금 있죠. 간단한 촬영 정도라면 제가 도와드릴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촬영을 도와주신다고요?”
“네.”
“현장 나갈 때요?”
“네.”
“어우.”
“그리고 편집자도 배정이 될 거예요. 앞으로는 편집이나 업로드 관련해서는 저 포함해서 편집자랑 같이 회의해서 결정하시면 돼요. 어지간한 후 작업도 다 넘기시고요. 현수님께서는 콘텐츠만 고민해주시면 됩니다.”
“업로드 주기가 더 빨라져야겠네요.”
“네. 지금 토요일에 현장 방송, 일요일에 후기 방송이잖아요? 주중에 한 번 더 진행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네.”
“하날 미스터리 같은 그런 콘텐츠를 진행하셔도 좋을 것 같고요.”
“그럼 너무 중복되지 않나요? 하날하날님도 같은 회사인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김세정 매니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현수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김세정 매니저가 미소를 유지한 채 물었다.
“그래서 다음 장소는 어디로 생각하시나요?”
그녀의 질문에 현수가 눈을 껌뻑였다.
* * *
그 주 토요일에 진행된 퇴마 방송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작은 폐허에서 촬영이 되었다.
이번 방송의 목적은 시청자들에게 공포감을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현수가 라미로브 소속 크리에이터가 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새 장비에 대한 테스트가 주 목적이었다.
현수는 부서진 대문 앞에서 세정이 든 카메라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입니다!”
방송이 시작되자 역시나 시청자들이 바로 유입되었다.
- 안녕하세요.
- 지난 수요일에 하날하고 합방 잘 봤어요!
- 오 오늘은 누가 찍어주시네요????
- 우와 태환이 복귀??
500여명의 시청자가 바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며 현수가 대답했다.
“아. 태환이가 돌아온 건 아니고요. 저도 이번주부로 라미로브의 정식 스트리머가 되었습니다! 박수!”
현수가 텐션을 살짝 올려 말했다.
- 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 숙제까지 받아오더니 이제 라미로브에까지 입성이라니.
- 진짜 빨리 뜬닼ㅋㅋㅋㅋ
- 괜히 내가 다 뿌듯하구맠ㅋㅋㅋㅋ
- 아무도 없는 방송에서 혼자 게임 얘기 하던 게 엊그제 같은뎈ㅋㅋ
- 엊그제 맞음.
- 축하드려요!!
- 50000원 파워챗.
- ㅊㅋㅊㅋㅊㅋ
- 1000원 파워챗
- 기쁨의 댄스 한 번 ㄱㄱ
- 축하드려요.
-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 채널은 또 오랜만에 봄. 보통 떡상 채널들 보면 영상 한 두 개로 확 뜨고 나서는 운영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빠르게 성장하면서 확실히 채널도 더 공고하게 다져가는 것 같음. 보기 좋음.
- 응원합니다.
후원과 함께 응원 채팅이 이어졌다.
“제가 라미로브하고 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캡처님들의 응원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태환이가 복귀한 건 아니고요. 라미로브에서 전담 매니저 분을 배정해 주셨습니다. 인사하세요.”
현수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세정에게 말했다.
그러자 세정이 소리 나지 않게 자신을 가리켰다.
정말 말하라는 것인지 확인받는 것이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정이 작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채널의 매니저입니다.”
그녀가 말하자 채팅창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 헐????
- 여자 매니저네???
- 목소리 예쁘닼ㅋㅋㅋㅋㅋㅋ
- 게스트로 출연하는 겁니까???
- ㅋㅋㅋㅋㅋ목소리 ㄹㅈㄷ
다들 매니저를 궁금해 하는 모양이었다.
현수는 세정의 얼굴을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계속 출연시키면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생방송 연속 시청률을 올리기 좋은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구리 아래 하남에 있는 폐허인데요. 꽤 오래전부터 버려져 있던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현수는 허름하게 녹이 슨 대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페인팅이 벗겨진 것도 모자라 갈색으로 녹이 슨 모습이 무척 흉물스러웠다.
현수가 앞장서서 EMF 탐지기와 구형 스마트폰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고, 세정이 그 모습을 촬영하며 따라갔다.
“매니저님은 귀신을 믿으세요?”
현수가 마당에 들어서며 물었다.
“네.”
세정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어우.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해주시네요.”
“믿죠. 실제로 봤는데.”
“진짜요?”
“네. 현수님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귀신 제법 보고 살았어요.”
“어떤 귀신이었는데요?”
“음. 호프집에서 알바할 때 서빙까지 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귀신이었다든가 하는 경우가 있었죠.”
“진짜요?”
“네.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세정이 대답하는 사이, 현수는 좁은 마당을 슥 훑어보았다.
집의 구조는 전형적인 옛날식 단독주택이었다.
좁은 마당과 미닫이 샤시로 되어 있는 1층짜리 시골집.
붉은 벽돌과 검은색 알루미늄 창틀.
녹이 슬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마당의 수도꼭지와 변색된 세숫대야.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마당에 둘 법한 집기들이 정리가 안 된 채 마구 널려 있었다.
그리고 바닥 곳곳에 담배꽁초와 술병들이 종종 보였다.
현수는 택티컬 라이트로 바닥의 꽁초들을 자세히 비춰보았다.
오래되어 갈색으로 변한 꽁초부터 하얀 빛이 남아 있는 꽁초까지.
제법 최근까지도 이곳에서 누군가 담배를 폈던 모양이었다.
“바닥의 흔적을 보니까 최근에도 누가 와서 여기서 담배를 폈나 봐요. 술병도 보면 최근 출고 된 소주병 라벨이 붙은 것들도 있고.”
현수가 턱을 만지며 바닥의 집기들을 살폈다.
“누가 왔던 걸까요? 집 주인?”
세정이 물었다.
확실히 그녀가 촬영을 하며 이야기를 건네자 조금 더 입체적인 촬영이 진행되었다.
태환이 이야기를 나눌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세정은 방송을 아는 매니저였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정말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듯 이야기를 해나갔다.
태환이 날것 그대로의 UCC 감성을 그대로 만들어갔다면 세정은 체계적이면서도 핸드헬드기법을 적극적으로 채용한 다큐멘터리의 감성을 확실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음. 집 주인 같지는 않아요.”
현수가 구석에 구겨져 있는 성적표를 꺼내들며 말했다.
“이 근처 학생들이 이곳을 아지트처럼 쓰는 모양이에요.”
성적표의 성적은 거의 최하위권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 안녕하세요. 방금 들어왔습니다.
- 오늘따라 화질 왤케 좋음??????
- 라미로브랑 계약해서 매니저도 붙고 장비도 지원 받은 듯.
- 와 레알????
- ㄹㅇㄹㅇ
- 10000원 파워챗
- 축하드립니다.
채팅에서도 바뀐 장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올라왔다.
세정은 채팅을 확인하며 새 장비들이 제법 효과가 좋다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사아아아아
한기가 감돌았다.
현수는 성적표를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났다.
- 여기 급식들 아지트로 쓰고 있는 거면 귀신 없는 거 아님?
이 채팅에 세정이 현수에게 물었다.
“캡처님들 중에서, 여기 학생들 아지트면 귀신 없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 있는데요?”
세정의 질문에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랑 그거랑은 별개에요. 아이들이 귀신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감지를 해도 정확히 귀신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수도 있고.”
사아아아아
현수의 목덜미로 한기가 맴돌았다.
귀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저기 창고가 있네요.”
현수가 마당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사람 키보다 약간 작은 시멘트 구조물이 보였다.
창고로 사용하려고 만들어둔 모양이었다.
현수가 창고로 한 걸음씩 이동했다.
세정은 그런 현수의 뒤를 놓치지 않고 계속 촬영했다.
그때 현수의 눈에 무언가 눈에 띄었다.
창고 옆으로 작은 개집이 놓여 있던 것이다.
현수는 개집 안 쪽으로 슬쩍 상체를 숙여 보았다.
“으.”
현수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카메라를 막았다.
“왜요?”
세정이 묻자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에 개 사체가 있네요.”
카메라에 담기면 너튜브 제재에 걸릴 수도 있는 소스였다.
세정은 그쪽으로 카메라 앵글과 시선을 주지 않으며 다시 현수와 창고 쪽으로 이동했다.
끼익-
창고 문을 열자 각종 공구들이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특별할 것은 없어보였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 보죠.”
현수는 창고 문을 닫고 집 쪽으로 몸을 돌렸다.
- 나 저기 어딘지 알 것 같음. 고딩 때 친구들이랑 가위바위보해서 저기 집 안 사진 찍어오기 했는데 친구 한 명 들어갔다가 소리 지르면서 뛰쳐나왔었음. 엉겁결에 같이 도망치다가 멈춰서 그 친구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전혀 모르는 거. 걔는 내 옆에 있었는데 내가 뛰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뛰었다는 거임. 그 뒤로 저기는 근처에도 안 감.
그때 장문의 채팅이 하나 올라왔다.
오싹함을 느낀 세정이 현수의 등을 톡톡 두드린 후 채팅을 보여주었다.
저게 사실이라면 이곳에서도 귀신에 홀린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