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 무연고자 공동묘지 (4)
시청자 수 12938명.
현수는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귀신들을 똑바로 응시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슬픈’ 분들이죠.”
현수가 마이크에 대고 멘트를 이어갔다.
“누구에게나 부모가 있죠. 그리고, 누군가는 부모와 함께 자라지만 누군가는 버려지기도 하고, 어떤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혼자 자라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멘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현수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귀신의 얼굴이 있는 벽 쪽으로 다가갔다.
“살면서는 친구도 사귀고, 연인도 생기고,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아이가 있기도 하겠죠.”
현수의 손은 벽에 있는 귀신의 얼굴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레이니 앱 화면과 함께 송출되고 있었다.
하얀 실선으로 표시된 이목구비로 손을 뻗는 현수의 손.
시청자들은 흥분한 듯 채팅을 썼다.
- 귀신한테 물리는 거 아님?????
- 그래도 되는 거예요??
- 조심하세요!!
- 헐 헐헐헐헐헐
- 과연 과연
“하지만 이렇게 비석도 없이 무연고자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건- 어떤 상황, 어떤 의미로든 혼자가 되었다는 의미겠죠. 제사도 제대로 받을 수 없이.”
이내 현수의 손이 벽에 닿았다.
그러자 벽에 드러났던 귀신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눈이 인식되지 않자 레이니 앱에 표시되던 이목구비 실선이 사라졌다.
“저로선 여기 있는 사람들의 사연과 이름을 하나하나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곳을 ‘귀신의 집’ 같은 공포 유희로써만 즐기지 않고 같이 슬퍼해주러 왔다는 걸 이 분들이 알아주면 이 분들 마음이 좀 나아지려나요?”
현수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벽에 드러났던 귀신들의 얼굴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현수는 레이니 앱을 심령카메라 앱으로 바꾼 뒤 창고 주변을 비춰주었다.
- 오????
- 와!!! 신기하다!!
심령카메라에 비친 화면에 시청자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벽에 가득했던 하얀 형체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순차적으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굳게 닫혀 있던 창고 문을 살짝 밀어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열리지 않던 문이 ‘끼구웅-’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현수가 밖으로 나가며 무덤 쪽을 보았다.
하얀 형체들이 그쪽으로 모두 이동해 가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에는 뚜렷하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귀신들도 있었다.
현수는 다시 자신의 무덤가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멘트를 이어갔다.
“지금 심령카메라를 보시면 귀신들이 다시 무덤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 무덤에서 누군가 찾아올지 모를 자기 가족, 친구를 기다리러 가는 것 같아요.”
현수의 말에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왔다.
- 씁쓸하다.
- 괜히 기분이 묘하네요.
- 뭔가 씁쓸하다.
-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죽음이라.
- 내가 저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되게 슬픔. 살면서도, 죽어서도 혼자인 거 아님??
- 가족, 친구들한테 잘합시다.
현수는 채팅을 확인하며 창고 앞에 서서 사라져가는 귀신들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현수가 특별하게 뭔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죽은 자들의 또 다른 감정’을 알게 된 촬영이었다.
* * *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한 현수는 바로 녹화한 영상들에 대한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귀신이 촬영된 장면들을 정리해 분류함과 동시에 쇼츠 영상에 등록할 하이라이트 부분도 따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화원 방문 때처럼 내레이션을 포함시킨 영상도 하나 제작을 하였다.
그렇게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대략적인 작업을 마친 현수는 너튜브에 업로드 예약을 걸어둔 뒤 바로 잠에 들었다.
오후 8시.
잠에서 깬 현수는 빠르게 씻고 간단히 식사를 한 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수백 개의 댓글 알림들이 누적되어 있었다.
현수는 커피를 한 모금씩 들이키며 마음에 드는 댓글에 하트를 눌러주었다.
그러는 사이, 동영상 관리 탭에 드디어 첫 매출에 대한 리포트가 올라왔다.
현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리포트를 확인해 보았다.
6,183,900원.
숫자를 본 현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현수의 영상 조회 수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고, 구독자도 수익 창출 이후 한 달도 안 되어 12만 명을 넘기기는 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매출이었다.
이것이 똑같은 상황의 다른 스트리머보다 더 잘 번 것인지, 못 번 것인지 비교할 수는 없었다.
너튜브 수익이라는 것이 워낙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었다.
“오?”
여기서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일본과 미국에서의 광고 영상 송출 수익이 제법 되는 것이었다.
미국 기업인 너튜브 특성상 달러 기준으로 환산이 되는데, 환율에 따라 같은 영상이다 하더라도 광고 수익이 달랐다.
즉, 똑같은 영상에 15초짜리 광고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시청했다면, 일본 환율이 더 높기 때문에 일본 쪽 광고 수익이 더 큰 것이었다.
“아무래도 영어나 일본어 번역이 필요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번역가를 고용하는 것은 아직 부담이었다.
“자막 기능을 한 번 살펴볼까?”
현수는 업로드 된 영상의 동영상 설정으로 들어가 자막 기능을 살펴보았다.
AI로 인식하는 음성을 기준으로 자동 번역이 가능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나운서 정도의 발음이 아니라면 사실상 정확히 번역을 해내지는 못했다.
“으음.”
현수는 잠시 고민하다 해외 영상들을 확인해 보았다.
미국과 일본에서 제작된 영상 중 자동 번역 자막 기능을 사용한 영상들을 직접 보고 체험해보려는 것이었다.
- 나는 방아쇠를
- 당길 수
- 있어볼 것이다.
- 너는 이걸 확인해 본다.
- 이것은 표적에 정확히 들어왔다.
실시간으로 자동 번역이 되는 만큼 발음과 화자의 어순에 따라 엉망진창으로 표기가 되었지만 장면과 함께 보니 어느 정도 내용의 흐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영상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는 크게 문제 없겠는데.”
현수는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장면에 대한 정보 및 스토리 전달만 된다면 제법 쓸모가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현수는 지금까지 업로드 된 퇴마 관련 영상에 자동 번역 자막 기능을 활성화 시켜 놓았다.
“아, 벌써 시간이.”
그러는 사이 9시가 되자 현수는 바로 생방송을 시작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현수가 거수경례를 하며 시청자들을 맞이했다.
역시 수백 명의 시청자들이 한 번에 몰려 들어왔다.
물론 현장에 나가 방송을 할 때보다는 적은 수였지만 그래도 후원과 채팅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예중시 무연고자 공동묘지에 대한 후기 방송을 할 건데요. 관련해서는 따로 내레이션 편집 영상을 업로드 할 거예요. 제작은 완료 됐고 내일 업로드 될 겁니다.”
현수가 웃으면서 방송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 방송을 하던 도중, 시청자의 채팅이 보였다.
현수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잠시 채팅을 확인했다.
“어? 뭐라고요?”
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지금 ‘하날하날’님 방송 중인데 캡틴님 언급하심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레알??????
- 찐임ㅋㅋㅋㅋㅋ 나도 그 방송 보다가 캡틴 퇴마가 뭔지 확인해보러 들어옴ㅋㅋㅋ
‘하날하날’이라면 ‘스위치’라는 방송 플랫폼과 너튜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캠BJ였다.
현수가 보는 너튜브 화면에서도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을 통해 수차례 썸네일을 보았을 정도였다.
“네? 하날님이 저를 언급했다고요?”
현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로 하날하날의 생방송을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그 화면은 생방송 시청 중인 시청자들에게도 송출이 되었다.
[어머, 진짜요? 아니~ 나도 그런 공포 이야기 좋아하는데. 요새 그 분이 핫하시잖아.]
뽀얀 색감에 굉장히 예쁜 이목구비, 그리고 연예인처럼 정돈된 웨이브펌의 헤어스타일, 약간은 자극적인 원피스 옷을 입은 BJ가 눈웃음을 치며 멘트를 치고 있었다.
[매너도 굉장히 좋으신 것 같고. 이상형? 아이, 아뇨. 이상형이라고 보고 싶은 게 아니고 그런 흉가 체험을 같이 해보고 싶은 거지.]
하날하날은 시종일관 예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누군가랑 콘텐츠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진 않을 텐데. 특히 여캠들은.’
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 진짜? 지금 우리 방송에 캡틴님이 들어오셨어?]
그녀는 채팅창을 확인하는 듯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스크롤을 내렸다.
그걸 본 현수가 채팅에 한 마디 남겼다.
- phs1818님께서 10,000원을 기부해 주셨어요!
-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저희 구독자 분들이 하날님 말씀하셔서 구경 왔습니다. 도방 ㅈㅅㅈㅅ
일부러 눈에 띄게 도네이션을 보내주었다.
그러자 하날하날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머! 진짜 오셨네!! 반가워요! 저희 공포 콘텐츠 같이 해요!]
하날하날의 말에 현수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귀신에 홀리고 해코지를 당했던 태환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 합방 ㄱㄱㄱㄱㄱㄱ
- 하날하날 너튜브 채널 구독자 30만은 넘김. 빨대 꽂을 수 있음ㅋㅋㅋㅋ
- 합방하면 잼나겠당.
- 합방해요!!!
현수 채널의 채팅창에서도 합방 찬성 의견이 올라왔다.
현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채팅을 남겼다.
- 한 번 논의해 보도록 하죠. 그럼 방송 수고하세요!
현수는 재빨리 이야기를 정리한 후 하날하날 스위치 방송에서 나왔다.
현수의 반응에 시청자들은 꽤 불만인 듯 했다.
- 아 그냥 같이 하시지ㅠㅠㅠㅠㅠ
- 하날하날 개 예쁘네??????
- 처음 봤는데 존예다.
- 구경가야짘ㅋㅋㅋㅋㅋ
현수 생방송 중에 노출된 하날하날의 방송 장면에 일부 시청자들이 이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수는 크게 개의치 않으며 멘트를 했다.
“태환이도 그랬고, 수아도령님도 그렇고. 같이 했다가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요.”
또 문제가 생기면 채널을 운용하는 데에 치명적인 오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지금도 현수가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고 비난하는 시청자들이 간혹 있는데 30만 구독자가 넘는 여캠BJ가 해코지를 당한다면 그 후폭풍은 태환, 수아도령의 사고 이후 보다 더 클 것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녀와 함께 합방을 했을 때 발생할 시너지 효과는 분명했다.
과거, 공포영화를 비롯해 TV프로그램에서 납량특집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왜 여자 연예인들을 많이 섭외하겠는가.
잠시 고민하던 현수는 다른 이야기를 하며 화제를 돌렸다.
어차피 방송 중에 언급이 된 것만 가지고 합방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논의해 보자는 채팅을 남겨 뒀으니 방송이 끝난 이후에 그쪽 스태프들과 이야기 나눈 후, 메일이든 뭐든 따로 연락이 올 것이었다.
현수는 하날하날 이야기를 뒤로 하고 무연고자 공동묘지의 촬영 영상을 보며 후기를 해나갔다.
* * *
그날 새벽.
후기 방송을 마치고 잠들려는데 메일이 한 통 와있었다.
하날하날 쪽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역시나 합방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같이 현장에 나가는 조건. 혹은 그냥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는 조건.”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봄이 오고 조금씩 날이 더워질 테니, 여름까지 해서 시리즈처럼 구성을 해보는 것에 대한 제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꽤나 적극적인 합방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