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 무연고자 공동묘지 (3)
현재 시청자 수 10290명.
계속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평균 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후원과 요구도 늘어났다.
- 파워챗 받아먹고 왜 리액션 없음??
- 재밌는 것 좀 해봐요.
- 무섭긴 한데.
일부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죄송하지만 파워챗 리액션 같은 건 별도로 없습니다. 그리고 파워챗으로 뭔가 요청하시는 것도 현장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해드릴 수 없어요.”
현수가 마이크에 대고 작게 말했다.
- 이 방송이 무슨 아메리카TV인 줄 아낰ㅋㅋㅋㅋㅋ
- 별풍 리액션 바라면 여캠 남캠을 가야짘ㅋㅋㅋㅋ
- 여기는 그런 방송 아니에요.
현수의 구독자들이 나름대로 방어를 해주고 있었다.
현수는 채팅을 확인하며 심령카메라를 비춰주었다.
봉분 위로 곧게 서있는 귀신들이 하얀 막대기처럼 기괴하게 확인되었다.
- 아까보다 하얀 형체가 길어진 것 같다.
- 개무섭
- 일어선건가???
- 10000원 파워챗
- 레이니!!!!!!
파워챗을 현수가 심령카메라 앱을 레이니 앱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무덤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귀신을 볼 수 있잖아요. 이 레이니 앱이 정말 귀신의 이목구비를 감지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수는 무덤 위에 서있는 귀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레이니 앱 화면에는 잡초에 둘러싸인 무덤만 보일 뿐이었다.
- 지금 저 위에 귀신 있는 거죠???
- 있었어요.
- 심령카메라 화면 좀 다시 보여주세요.
- 귀신 있어요??
시청자들 채팅에 현수는 다시 심령카메라 화면을 한 번 보여주었다.
봉분 위에 우뚝 서있는 하얀 형체가 선명하게 송출되었다.
- 헐
- 저게 뭐야.
- 저거 무슨 앱이에요???????
- 귀신 찍는 카메라인데 어떤 앱인지 모르겠어요.
- 캡틴님이 공개 안 하심.
- 그럼 조작이넼ㅋㅋㅋㅋ
- 근데 조작이면 진짜 천재적으로 조작하는 거임
현수는 다시 레이니 앱으로 변경을 한 후 귀신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귀신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천천히 앱을 들이밀어 보았다.
- 후달린다.
- 긴장됨.
- 설마 설마 설마
시청자들 역시 지금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레이니 앱이 귀신의 얼굴을 정확히 향하는 순간, 앱 화면으로 귀신의 눈, 코, 입 부위에 실선이 생겨났다.
귀신의 얼굴을 카메라가 인식한 것이었다.
- 헉??????
- 오잉???????????
-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왜 얼굴이 인식됨????
- 와 ㅅㅂ
- 그럼 갑자기 얼굴 인식되는 경우가 다 귀신이었던 거야??
레이니 앱에는 귀신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지만, 귀신의 눈, 코, 입 부위의 실선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현수는 귀신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레이니의 얼굴인식 기능이 귀신에게 적용이 되고 있었다.
- 아 개무서워ㅠㅠㅠㅠㅠㅠㅠ
- 방금 레이니 깔아서 옆에 비춰봤는데 아무것도 안 잡힘.
- ㅅㅂ 나 자취방인데 구석에서 얼굴 잡힘 ㅅㅂ 이거 뭐야
- 그거 개구라임 그냥 어쩌다 눈코입으로 인식될 만한 포인트 있으면 인식되는 거.
- 귀신 아니에요. 그냥 어쩌다 뜨는 거임.
채팅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현수는 정확히 귀신의 이목구비를 짚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증명해 드릴 수 없지만 귀신의 얼굴을 인식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현수가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텁
그때 등에 뭔가 부딪쳤다.
현수가 뒤를 돌아 부딪친 것을 보았다.
“으악!”
커다란 나무였다.
문제는 나무 기둥 가운데 귀신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는 것!
깜짝 놀란 현수가 뒷걸음질 치다 돌에 걸려 넘어졌다.
털썩
현수가 쓰러지자마자 봉분에 있던 귀신들이 네 발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켜져 있는 레이니 앱 화면에는 수십 개의 이목구비 실선들이 다가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연출이닼ㅋㅋㅋㅋㅋㅋ
- 영화 감독들 뭐하냐 이거 써야지
- 와 개무서워!!!!!!! 진짜 쌉소름이야
- 아 소리 끄고 있음 나는
현수는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멘트 길에서 벗어나 수풀 사이를 거칠게 헤집었다.
거미줄과 잡초가 온 몸에 걸리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사각 사각
그러면서 온갖 소음이 마이크에 고스란히 담겼다.
* * *
“헉, 헉, 헉.”
현수는 근처에 있던 바위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더 쫓아오는 귀신이 보이지는 않았다.
“어유.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화면이 많이 흔들렸죠.”
현수가 방송 상태를 확인해보며 말했다.
- 방금 최고였음여.
- 매 방송마다 크리티컬 하나씩 터지넼ㅋㅋㅋㅋㅋ
- 와 그 눈코입 인식 수십 개 몰려오는 거 진짜 장난 아니었다.
- 무슨 상황이었던 거예요?
- 200000원 파워챗
- 최고 존엄 캡틴 퇴마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헉 헉. 봉분 위에 있던 귀신들이 갑자기 저한테 몰려오기 시작했었어요.”
현수는 채팅에 답변을 해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숙제 물건 고장나진 않음?
시청자 중 한 명이 물었다.
“아, 네. 튼튼합니다. 방금 넘어지면서 제가 바닥에 찍었는데 살짝 스크래치가 났는데도 작동엔 전혀 문제가 없네요.”
현수는 손잡이 부위에 스크래치가 난 부위를 카메라에 보여주며 말했다.
확실히 현수의 체중이 실린 채 시멘트 바닥 위를 찍었지만 건재한 내구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 광고 ‘주님’께서 흡족해 하십니다.
- ㅋㅋㅋㅋㅋㅋㅋ숙제 만점
- 와 아까 진짜 세게 넘어졌던뎈ㅋㅋㅋ
- 저거 튼튼하긴 하다.
- 캠핑 좋아하면 필수겠음.
덕분에 제품 이미지도 꽤 좋아지고 있었다.
“잠시만요. 그런데 여기 위치가 어딘지 모르겠네요. 갑자기 너무 정신없이 뛰다 보니까.”
현수는 지도 앱을 켜고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초록색 산악지형으로 표시가 될 뿐, 위치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왔던 곳이 저쪽이니까 저기로 가면 다시 공동묘지가 나오는 거 같긴 하거든요.”
현수는 자신이 달려온 곳을 가리키며 주변을 보았다.
그때, 굉장히 허름한 창고 하나가 나무 사이로 보였다.
굉장히 오래 되어 보이는 이 창고는 슬레이트 지붕에 콘크리트로 대충 세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기에 뭔가가 있네요. 한 번 이동해 보겠습니다.”
현수는 창고로 천천히 다가가 보았다.
창고 벽면에는 ‘하늘의 문 시설 창고’라는 글자가 반듯하게 페인팅 되어 있었다.
“이곳 공동묘지 관리에 필요한 물건을 적재해 둔 곳인가 봐요.”
현수는 손전등으로 창고 외관을 비추며 말했다.
저벅 저벅 저벅
현수의 발걸음 소리가 괜스레 더 크게 마이크에 들어갔다.
- 이제 걸음걸이로도 무섭게 하네.
- 발에 뭐 붙이고 다니낰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창고 뭐냐
- 저런 데가 있어???
현수는 창고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입구에는 손상된 비석들이 몇 개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비석들이네요. 음.”
음각으로 만들어진 비석에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충정 이 씨 도화의 지묘. 1947년 2월 8일 생, 1984년 10월 1일 사망.”
현수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 한자도 잘 읽네.
- 하기야 이런 거 하려면 한자는 좀 알아야지.
채팅이 이어졌다.
현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비춰보았다.
이것 말고도 비석이 제법 쌓여 있었다.
“충정 이 씨면, 본관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건데. 무연고자 맞나?”
현수가 혼잣말을 하며 주변을 보았다.
다른 비석들에는 다른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그 중 몇 개에는 유성매직으로 쓰인 듯한 ‘불량’이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보였다.
“여기서 비석을 제작해서 판매도 했었나 봐요.”
현수는 곳곳에 널려 있는 커다란 장비들을 비췄다.
비석을 깎는데 사용했던 기구들 같았다.
그런데 소름끼치는 것은, 비석들에서도 하얀 형체라 어릿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비석에서도 영혼의 기운이 느껴져요.”
현수는 심령카메라로 비석을 비췄다.
그러자 은은한 하얀 빛이 비석 주위에 맴돌았다.
- 헐 비석에도 귀신이 있는 거????
- 다른 귀신들에 비해서는 빛이 좀 여린데.
- 10000원 파워챗
-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아아.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귀신이라기보다는 그 영혼의 기운 정도만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이 하얀 빛은 비석 주인의 기운이 아닐까요?”
현수는 비석을 슥 쓸어내린 뒤 창고 입구 문을 열었다.
끼기이이잉-
쇳소리와 함께 창고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삽과 곡괭이, 수레, 관 짤 때 쓰이는 듯한 나무, 정체모를 천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관 위를 덮는 칠성판도 보였다.
“사람들을 매장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인 것 같아요.”
현수가 한 걸음씩 나아가며 중얼거렸다.
- 발인할 때 쓰는 물건들이네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장례절차에 필요한 물건들도 있는 것 같아요.”
현수는 채팅에 응답을 해주며 구석에 있는 선반으로 다가가 보았다.
달각-
걸어가는데 발에 무언가 자꾸 차였다.
현수는 수시로 아래를 보며 조심스럽게 선반 앞에 섰다.
오래된 초와 향이 보였다.
“못해도 20년은 된 것 같네요. 그것만큼은 안 됐으려나.”
현수는 먼지 쌓인 향 박스를 살짝 들어보며 중얼거렸다.
끼기잉- 쿵-
그때 들어왔던 창고 문이 닫혔다.
“으헉?”
현수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귀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아오 깜짝이얔ㅋㅋㅋㅋㅋㅋ
- 진짜 깜짝 놀라게 하는 게 무슨 패시브인듯ㅋㅋㅋㅋ
- 깜놀했넼ㅋㅋㅋ
- 바람 때문에 문이 닫혔나보다.
채팅을 본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문, 되게 뻑뻑했어요. 바람 때문에 닫히진 않을 것 같은데.”
현수가 다시 문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창고 벽 쪽으로 수십 명의 귀신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현수가 깜짝 놀라 심령카메라로 주변을 비췄다.
그러자 창고 벽이 온통 하얗게 변한 것이 송출되었다.
“아까 그 귀신들인가?”
현수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설마 또 악귀?????
- 위험한 거 아니에요??
현수의 방송을 자주 본 시청자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보냈다.
“아뇨. 악귀로 보이지는 않아요.”
현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한 손에는 솔트샷건을 쥐어 들었다.
덜컹-
선반 맞은편에 있는 공구함이 저 혼자서 바닥에 떨어졌다.
현수가 또 한 번 놀라 몸을 돌렸다.
“일단 나가도록 할게요.”
아무래도 귀신들이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한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덜컹 덜컹
창고 문을 열려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현수는 어깨로 세게 밀어보았지만 밖에서 잠긴 것 같았다.
사아아아아아
현수는 다시 레이니 앱으로 창고 내부를 슥 찍어 보였다.
그러자 창고 벽으로 수십 개의 이목구비 실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쫓아왔네.
- 귀신이 쫓아온 것 같아요.
- 왜 쫓아오는 거지??????????
현수는 가만히 귀신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접근한 후 가만히 현수를 지켜보기만 했다.
창고 문을 붙잡고 있던 현수가 귀신들에게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 귀신들. 제가 누군지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요?”
불현 듯 스친 생각이었다.
무연고자 공동묘지인 만큼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고 가정하면, 오랜만에 자신들을 알아보는 사람의 등장에 귀신들이 몰려들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귀신들은 벽에 얼굴을 드러낸 이후 눈동자만 현수 쪽으로 정확히 향하고 있을 뿐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