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화 마계 장인 (8)
어차피 천사군의 목적은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하는데 있었다.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서도 그들의 목적은 똑같았으니까.
아마 이번 역시도 같은 방식을 취할 터.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 수도로 진격해 준다면.
천사들은 두 손을 들고 반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해줄 테니까.
물론 천사들이 아예 에센시아 제국에서 손을 놓지는 않을 것이다.
에센시아 제국이 마왕군에 완전히 털리면 자신들 역시 곤란한 건 매한가지일 테니.
하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개입하진 않을 것이다.
천사들의 입장에서는 초반에 에센시아 제국을 도와줘 봐야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물에 빠지기 전에 도와주는 것과.
빠져서 한참 허우적댈 때 도와주는 것.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니까.
에센시아 제국이 피해를 많이 보면 볼수록.
천사군이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 목록의 최상단에는 헤르마늄 광산의 소유권이 올라와 있을 테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계속 이득을 볼 텐데.
굳이 천사들이 움직일 리가 있나.
내 말을 들은 마왕 하킨이 놀랍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흠. 자네가 나보다 더 천사들의 속을 잘 알고 있는 기분이 드는군.”
“뭐 이래저래 몇 번 마주쳐서 알 만큼 압니다.”
하나같이 정상이 아닌 천사들만 봐서 더 잘 아는 것도 있다.
거기다 과거 성마대전의 흔적에서 천사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도 잘 봤었고.
그러자 마왕 하킨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천사들과 자주 마주쳤나?”
“아…… 얼마 전에 좀 귀찮은 일이 있었죠.”
정확하게는 저쪽 대천사가 뿌린 씨앗이 키메라라는 눈덩이가 되어 타란 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었지.
까딱 잘못했으면 그간 공들인 일들을 싹 다 날려버릴 뻔 했었다.
그래서인지 천사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기도 했고.
내 말에 충분히 동감한다는 듯 마왕 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지. 충분히 귀찮고 짜증 나는 종자들이다.”
“그동안 쌓인 게 많은가 봅니다?”
“일일이 말하자면 하루 종일 말해도 부족해.”
누가 마왕 아니랄까봐.
이런 면에서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닮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 역시도 천사들이라면 질색하니까.
특히 대천사들.
거기까지 생각이 스치자 마왕 하킨에게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이번에 에센시아 제국 쪽에 파견될 대천사들에 대해 좀 아는 게 있습니까?”
원래라면 천사군이 아니라.
그들의 대리로 요하스 성국이 나설 것이라 예상했었다.
아무리 천사군이라고 하더라도 에센시아 제국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이번에 걸린 매물이 그들의 예상을 웃도는 물건이었기 때문일까.
대륙 최대 규모의 헤르마늄 광산.
안 그래도 최전선에서 자신들의 헤르마늄 광산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천사들이 이 커다란 매물에 혹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서인지 이례적으로 천사군이 직접 이번 일에 투입된 듯 했다.
뭐 마왕군을 막기 위해 천사군이 개입했다고 하면 그림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천사들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었을 터.
거기다 오히려 요하스 성국의 참전을 에센시아 제국에서 꺼려했다는 말이 돌았다.
이건 아마 에센시아 제국으로 돌아가 황제에게 확인해봐야 알 수 있으려나.
어쩌면 요하스 성국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힘을 빌린다는 건.
그만큼 반대급부로 지급해야 할 보상이 부담스럽게 늘어나는 셈이었다.
그 대상이 요하스 성국이라면.
더 그렇고.
사실 천사군의 개입 역시도 에센시아 제국에서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이쪽은 천사군 쪽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고 하던가…….
그 속셈이야 뭐 안 봐도 뻔하겠지만.
대놓고 오지 말라고 싫은 티를 내는데도 굳이 우겨가면서 왔다는 건.
그들이 원하는 게 명확하다는 뜻이다.
당연하겠지만.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그런 그들의 속셈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천사군이 부랴부랴 짐을 싸 들고.
그것도 스스로 자처해서 올 리가 없으니.
눈치가 빠른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이걸 모를 리가 없다.
요하스 성국이야 에센시아 제국에서 막을 수 있지만.
천사군은 아마도 힘들었을 터.
특히 대천사들이 직접 온다면.
“흠. 대천사들 말이지…….”
잠시 뭔가를 떠올리던 마왕 하킨이 손가락을 펼치면서 말했다.
셋?
아니.
넷인가?
마왕 하킨이 하나씩 손가락을 펼쳐서 나온 숫자는 전부 넷.
“일단은 넷이 에센시아 제국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고 보고 받았다.”
“넷입니까…….”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어쩌면 이곳의 마왕들과 숫자를 맞췄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웠다.
에센시아 제국 북부를 점령하고 있던 마왕군 6군단의 마왕 숫자는 전부 넷.
그러니까 천사군 역시도 마왕들의 숫자에 맞춰서 대천사들을 파견한 셈이었다.
“이쪽과 쪽수를 맞췄군요.”
내 말에 마왕 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마왕을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같은 대천사들이 급이 맞을 테니까.”
단순히 숫자만 고려하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물론 마왕들도 서열이 있고.
그 서열에 따라 능력치가 천차만별이라는 걸 고려해보면 단순히 숫자만으로 모든 전력을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겉으로 보이는 숫자는 맞춰야 하니 넷이 오고 있겠지.
“원래라면 천사군과 에센시아 제국군에 밀렸을 수도 있겠네요.”
단순히 숫자로만 싸운다면.
이쪽의 마왕 넷과 저쪽의 대천사 넷.
하지만 에센시아 제국의 영웅급들까지 전력에 넣으면 에센시아 제국의 연합 쪽으로 세가 확 기울게 된다.
아마도 천사군은 거기까지 고려해서 대천사들을 파견했을 터.
그들 입장에서는 필승을 자신할 수 있는.
정말 발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거란 전력을 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생겨 버렸다.
바로 마왕군 4군단.
마왕 케만을 비롯해 4군단에 소속된 마왕들이 추가로 넘어오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
이젠 둘이 붙는다고 하더라도.
절대 마왕군이 지지 않을 전력이 되니까.
아니.
오히려 이제는 마왕군이 천사들과 제국군의 연합을 압도하는 전력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변수가 더 없다면 말이지.
내 말에 마왕 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투로 말하자 딱히 대답하지 않고 마왕 하킨의 뒷말을 기다렸다.
어차피 마왕 하킨은 마왕 헤르게니아만 빼돌리고 나면 그 뒤는 어떻게 되든 크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에센시아 제국 북부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으면 베스트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 자리를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4군단 말이죠.”
“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케만 녀석 덕분에 이쪽의 전력이 강해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정할 건 인정한다 이거군.
만약 고집이 강한 마왕이었다면 절대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그런 면에서 성향이 괜찮다고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확신이 담긴 투로 말을 꺼냈다.
“지금 당장 6군단과 4군단이 힘을 합친 상태로 붙으면 무조건 우리가 이긴다. 케만 녀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미 상대 전력에 대한 파악은 끝난 듯 했다.
그런데 과연 이걸 마왕 케만이 모를까?
여기 오기 전에 우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는 녀석이?
당장 부랴부랴 베링턴 산맥을 넘어온 것만 해도 그렇다.
천사군이 파견된다고 하니까 추가로 온 게 아닌가.
그렇다는 건 상대에 대한 전력 파악은 이미 끝나 있을 것이다.
“마왕 케만도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흠. 역시 그런가.”
그런데 왜 마왕 케만은 당장 밀고 가자는 뜻을 내비치지 않았을까.
잘하면 바로 에센시아 제국 영토 전체를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당장 에센시아 제국을 먹어치워 암흑 지대로 만들면 주변 왕국들과 바로 국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 말은 대륙 어느 곳으로든 마왕군을 바로 투입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잘 된다면 말이지.
당연하겠지만.
에센시아 제국이 마왕군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온갖 지원이 주변 국가들에서 들어올 것이다.
거기다 다른 제국들 역시 참전할 테고.
여기에 천사군들이 보다 많은 대천사들을 투입하면?
상황이 뒤집히는 건 순식간일 터.
반면 마왕군은 추가 병력을 받으려면 베링턴 산맥을 통해 전력을 수급받아야 했다.
산맥이 지켜주니 보급로야 안정되었다지만.
그 거리가 문제다.
당장은 우리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은 추가 투입 병력의 여력이 있는 연합군이 우세할 터.
이게 바로 원정군의 패널티겠지.
만약 마왕 케만이 거기까지 파악했다면.
그 역시 쉽지 않은 상대일 거다.
잠시 재중이 형과 대화를 나눠보니 역시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멸> 정면 승부는 어렵겠지. 이쪽이 이기려면 다른 방법으로 균열을 내야 해.
<주호> 네. 그런 점에서 헤르마늄 광산은 꽤 괜찮을 겁니다.
적어도 헤르마늄 광산이 중간에 걸려 있다면.
천사군과 제국군은 절대 힘을 합치지 못한다.
서로 헐뜯기 바쁠 테니.
“그런데 어떤 대천사가 옵니까?”
마왕들도 그렇지만.
대천사들 역시 정보가 그렇게 많진 않았다.
우리라고 성마대전의 모든 정보를 가진 건 아니니까.
오히려 지금 앞에 있는 마왕 하킨 같은 현역 마왕에게 듣는 게 가장 정보를 얻기 쉬운 방법일 것이다.
음.
이건 좀 예외려나.
애초에 유저가 마왕과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
사실 다른 유저들은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일일지도.
당장 목이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내 질문에 마왕 하킨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떤 대천사들이 전선에서 빠졌는지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뭐 이해합니다. 서로 전력을 숨기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어떤 마왕과 대천사들이 어느 전선에 배치되어 있는지 상대측에서 다 알고 있다면.
이미 성마대전은 끝나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 맞춰서 최적의 비율로 마왕과 대천사들을 배치해버리면 상대 전력을 하나둘씩 잡을 테고 결국 한쪽으로 확 밀리게 된다.
“그럼 적들도 이쪽의 전력을 전혀 모르겠군요.”
“음. 아마 6군단의 마왕은 알 수도 있겠지. 북부를 치면서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하지만 4군단은 모르죠.”
내 말에 마왕 하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 케만이 베링턴 산맥을 넘어온 지 얼마 지니지도 않았다.
당연히 에센시아 제국군은 이 4군단의 전력을 파악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북부를 도는 정찰병들이 모든 정찰을 끊어내고 있으니까.
잘하면 아예 성마대전 전선에서 4군단이 빠진 지도 모르고 있지 않을까.
아니.
이건 너무 나갔나?
하지만 4군단이 빠진 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여기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터.
“일종의 히든카드인 셈이네요.”
“마음에 들진 않지만…….”
마왕 하킨도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왕 하킨에게 말을 꺼냈다.
“그럼 정말 숨기죠.”
“뭐?”
“4군단. 아예 숨기자고요.”
과연 마왕 케만이 이쪽 의견에 따라줄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적들에게 숨길 수만 있다면.
최고의 수가 될 수 있다.
“히든카드는 히든카드답게 써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