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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87화 (1,387/1,404)

#1387화 마계 장인 (3)

우리가 굳이 마왕군에 헤르마늄 광산의 위치를 알려준 이유는 딱 하나뿐이었다.

마왕군이 헤르마늄 광산에 주둔한 에센시아 제국의 기사단과 병사들을 죽이고 헤르마늄 광산을 무너뜨렸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만 보면 이미 목표는 한참이나 빨리 달성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한 마왕군이 조금 더 에센시아 제국군을 괴롭혀줬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단지 마왕군이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에센시아 제군군은 북부와 헤르마늄 광산으로 병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다.

아마 그 비중은 헤르마늄 광산 쪽에 조금 더 높을 테고.

북부야 이대로 마왕군이 남하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나중에라도 치면 되지만.

헤르마늄 광산은 이야기가 다르다.

당장 헤르마늄 광산이 막히면 광석 수급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무구를 생산해야 하는 광석들은 물론이고 마법과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광석 소모량을 따라가지 못할 테고.

이는 곧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심각하게 불리해진다는 뜻일 테니까.

우리가 여기 북부로 오기 전에.

헤르마늄 광산으로 수도 없이 많은 비공정이 날아갔던 것만 봐도.

헤르마늄 광산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당연하게도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한 마왕군.

그러니까 지금 마왕 하킨의 지시를 받아 마왕 헤르게니아를 찾아야 하는 그…… 언데드 마왕?

아무튼 그 녀석이 무리를 하는 상황이 나오게 될 것이다.

헤르마늄 광산을 계속 파고 내려가야 원래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던 그 대천사의 결계가 나올 테니.

마왕 하킨에게 삽질 그만하고 그 마왕을 되돌아오게 하라는 말은 그냥 농담으로 던진 말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마왕군을 그냥 두었다가는 조만간 피 튀기는 전쟁이 일어날 게 뻔하다.

굳이 우리의 목적을 전부 달성한 시점에.

혹시라도 내 패가 될지도 모르는 마왕을 너무 쉽게 소모품으로 던지는 건 역시 좀 아쉬운 일이다.

내 조언을 마왕 하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뭐 그 마왕을 안 불러들이면 그냥 거기서 끝인 셈이다.

“흠. 역시 불러들여야 하나?”

그래도 아주 생각이 없진 않나 보네.

일단 호응을 해주었다.

내 의도대로 따라와 준다는데 굳이 여기서 초를 치고 싶진 않으니까.

“여기 북부로 오기 전에 에센시아 제국의 영웅들과 기사단이 대거 헤르마늄 광산으로 출발하는 걸 지켜봤습니다만…….”

다른 말보다 에센시아 제국의 영웅이라는 말에 마왕 하킨이 눈을 잔뜩 구기면서 반응했다.

조금은 어리둥절한 것 같은 얼굴이기도 했고.

진짜 예상하지도 못했다는 표정이랄까.

“흠. 그 녀석들이 지금 왜 에센시아 제국에 돌아와 있지? 베르마 제국 국경 부근에 있어야 할 텐데?”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

니들 마왕군끼리는 소통을 아예 안 하는 거야?

설마하니 마왕들 사이에 이 정도까지 정보가 막혀 있을 것이라고는 나 역시 예상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당황한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좀 한심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불멸> 설마 이것들 서로 정보를 안 주나? 성마대전 최전방에 있는 마왕들이라면 지금쯤 에센시아 제국에서 지원 온 영웅들이 싹 빠졌다는 걸 너무 잘 알 텐데.

<주호>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재중이 형 말이 맞다.

전방의 마왕들이 일부러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마왕 하킨의 저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언가를 판단하고 싶어도 정보가 없다면 그 판단 차체가 문제가 될 테니.

어쩌면 단독으로 베링턴 산맥을 넘은 것에 대한 보복일 수도 있으려나?

뭐 그 이유를 붙이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고.

아무튼 마왕 하킨이 다른 마왕군에게서 제한된 정보만 받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그럼 나라도 나서서 정보를 바로잡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 마왕이 앞으로 써먹을 패가 되려면.

조금은 도움을 줄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에센시아 제국이 타란 제국을 치기 위해 영웅들을 불러들였다는 정보까지는 줄 이유는 없지.

여기서는 적당히 흘려주는 정도가 좋으려나.

그리고 약간의 왜곡된 정보도 괜찮을 테고.

“에센시아 제국에서 무리하게 영웅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에센시아 제국을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샜을 수도 있겠죠.”

내 말에 마왕 하킨의 눈썹이 움찔했다.

기분 나쁘다는 투가 그대로 드러나는 딱 그런 얼굴이랄까.

아마도 내 말에 마왕 하킨은 머릿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말은……?”

“말 그대로입니다. 중간에 마왕군의 누군가가 에센시아 제국에 정보를 흘렸겠죠.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약간의 의심.

지금은 이 정도만 줘도 충분하다.

그 나머지는 마왕 하킨이 스스로 채워 넣을 테니까.

빈 공백에 뭘 채워 넣을지는 마왕 하킨에게 달려있다.

곧 마왕 하킨이 뭔가를 생각해냈는지 몸에서 강렬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화가 많이 났음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곧 팔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자 아무 죄 없는 테이블이 반쪽으로 갈라지면서 운명을 달리했다.

“감히 케만 이 새끼가……!”

역시 그쪽인가.

확실히 누가 봐도 마왕 케만이라는 녀석이 의심스럽긴 하다.

당장 마왕 하킨이 영웅들이 죄다 나가 있을 에센시아 제국을 홀라당 삼키기라도 한다면.

가장 배가 아플 만한 녀석이 바로 그 마왕 케만이라는 녀석일 테니까.

지금 부랴부랴 마왕 하킨의 몫을 뺏겠다고 베링턴 산맥을 꾸역꾸역 넘어오는 것만 봐도 뭐…….

적당히 알아서 오해를 해주자 슬슬 밑밥을 깔았다.

“영웅이 돌아와 전력이 건재한 에센시아 제국과 마왕 하킨의 마왕군이 이대로 붙으면 둘 다 굉장한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어쩌면 서로 괴멸할지도 모르겠군요.”

아마 마왕 하킨은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면서 마왕 헤르게니아를 찾아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전방에 나가 있는 영웅들이 돌아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

적어도 그동안은 에센시아 제국을 상대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터.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에센시아 제국의 영웅들이 죄다 몰려간다면.

당장 헤르마늄 광산에 나가 있는 마왕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이곳 북부 역시도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하고.

그렇게 마왕 하킨의 마왕군이 괴멸 상태가 되면서 에센시아 제국 역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가장 이득을 보는 게 과연 누굴까.

그건 바로 지금 베링턴 산맥을 통해 이곳으로 새 마왕군을 끌고 오는 녀석일 것이다.

마왕 케만.

범인은 보통 상황이 끝나고 가장 큰 이득을 보는 녀석이니.

얼마나 열 받았는지 쉽게 분을 삭이지 못하는 마왕 하킨을 향해 일단 말을 흘렸다.

“헤르마늄 광산은 이쯤 하면 된 것 같군요. 어차피 마왕 헤르게니아는 이미 빠져나왔고. 굳이 주둔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은 마왕군의 전력을 보존할 때입니다.”

하지만 한 번 올라간 열은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 마디를 더 붙였다.

“헤르마늄 광산은…… 마왕 케만에게 넘겨주도록 하죠?”

순간 마왕 하킨의 시선이 확 내게 돌아왔다.

“무슨 뜻이지?”

“아. 일단 마왕 케만이 적에게 정보를 흘려서 이쪽에서 한 방 먹었으니까. 이번엔 반대로 마왕 케만에게 한 방 먹여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마왕 하킨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순간 대전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마왕 하킨에 가서 닿았다.

과연 이 마왕이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가 궁금한 것이다.

이 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판단을 한다면.

아마도 그건 최악의 수가 될 수도 있을 터.

그렇다면 나 역시 마왕 하킨은 버려두고 다른 쪽 패를 잡으면 된다.

또 다른 마왕인 마왕 케만.

뭐 이쪽을 구슬리는 게 훨씬 난이도가 있겠지만.

굳이 침몰해가는 배에 같이 타는 것만큼 미친 짓이 없으니까.

만약 마왕 하킨이 쓸 만한 조타수라면.

배를 갈아타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음. 자세하게 말해봐라.”

이제는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하면서 이성을 찾은 마왕 하킨이 내게 조언을 구했다.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자 그녀는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해. 머리 쓰는 건 네가 좋잖아.”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예 대놓고 마왕 하킨에게 내 장점을 어필해주었다.

그만큼 믿고 쓰라는 거지.

“아, 그리고 대천사의 결계를 파훼한 것도 이 녀석이니까. 앞으로 꽤 도움이 될 거야.”

순간 마왕 하킨이 깜짝 놀란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인가?”

“음. 그런 적이 있긴 하죠.”

“어떻게……?”

“그건 영업 비밀이죠. 저도 가진 패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당당히 대답하자 마왕 하킨이 곧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사실이었군.”

“그런 걸로 거짓말할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 여기서 내 신뢰도는 조금 더.

아니.

꽤 많이 올라갔을 것이다.

《 마왕 하킨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하킨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하킨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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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바로 시스템 메시지로 반응이 왔다.

마왕 헤르게니아의 보증.

내 답변의 당당함이 충분히 먹힌 모양이었다.

“하하. 그 대천사들을 제대로 물 먹이다니. 마음에 드는군.”

그리고 마지막에 이 감탄이 호감도가 올라간 가장 큰 이유지 않을까.

거기다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를 빼냄으로 인해 자신의 목적에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 테니.

이 정도 호감도 상승은 당연한 일이다.

“방법은 궁금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도록 하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 이런 배려가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마왕 하킨에게 있어.

헤르게니아를 빼낸 방법보다는.

마왕 케만을 엿 먹일 수 있다는 방법 쪽이 훨씬 더 흥미가 있을 터.

“그래서 마왕 케만에게 헤르마늄 광산을 넘겨준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마왕 케만이 원하는 건. 아마도 마왕 하킨의 공적을 뺏기 위함이 아닙니까.”

“흠. 그렇겠지.”

“그럼 그냥 미련 없이 줘버리십시오. 어차피 헤르마늄 광산 자체를 원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군.”

“아직 마왕 케만은 헤르마늄 광산이 우리에게 한 번 뚫렸다는 사실 자체를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에센시아 제국군 대부분이 헤르마늄 광산에 가 있다는 사실 조차도요.”

“흠. 정보를 숨기자는 건가?”

“어차피 다른 마왕들도 마찬가지였지 않나요? 새삼 새로운 일도 아니군요.”

에센시아 제국에 영웅들이 돌아온 정보를 주지 않는 일을 언급하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 케만의 마왕군을 헤르마늄 광산으로 보내 에센시아 제국군과 피 터지게 싸우게 하자는 거군.”

“네. 아주 정확합니다.”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감히 남의 밥상에 공짜로 숟가락을 올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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